[개벽예감 642] 태평양 방어선에서 또 다시 제외된 한국과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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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642] 태평양 방어선에서 또 다시 제외된 한국과 대만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25-08-04
<차례>
1. 시제를 혼동한 실수가 아니었다
2. 동아시아 정세의 흐름을 바꿔놓을 전략적 차별성
3. 역사박물관에서 잠든 태평양 방어선을 다시 불러낸 루비오
4. 오늘의 군사 상황과 닮은 75년 전 군사 상황
5. 한국과 대만이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
1. 시제를 혼동한 실수가 아니었다
2025년 7월 31일 미제국 국무부장관 마코 루비오(Marco A. Rubio)는 워싱턴에 있는 국무부 청사에서 한국 외교부장관 조현과 회담하였다. 회담이 끝난 직후 미제국 국무부는 대변인 태미 브루스(Tammy K. Bruce)의 명의로 루비오-조현 회담에 관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대체로 고위급 회담에서 논의된 중요한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덜 중요한 내용이 보도자료를 통해 외부에 공개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미제국 국무부가 내놓은 짤막한 보도자료에는 루비오-조현 회담에서 논의된 중요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 © 외교부 |
그런데 이번 보도자료의 끝부분에 들어있는 문장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문의 뜻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내가 번역한 문장과 보도자료 원문을 병기한다.
“양측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국제 사회의 안전과 번영에 불가결한 요소이었음을 강조했다.”
“Both emphasized that maintaining peace and stability across the Taiwan Strait was an indispensable element of security and prosperity fo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위의 인용문은 마코 루비오가 외교부장관 회담 중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국제 사회의 안전과 번영에 불가결한 요소이었음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인용문에서 이상야릇한 단어 한 개가 눈에 띈다. 그것은 불가결한 요소라는 말 앞에 붙어있는 과거 시제(past tense)다. 보도자료에서 미제국 국무부는 현재 시제(is)를 사용해 “불가결한 요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라고 기술하지 않고, 과거 시제(was)를 사용해 “불가결한 요인이었음을 강조했다”라고 기술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해야 할 문장에서 과거 시제를 사용한 실수였을까?
유럽의 언어들이 모두 그런 것처럼, 영어도 시제 사용에 유달리 민감하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시제를 혼동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더욱이 단어를 하나씩 따져가며 엄밀히 사용해야 하는 외교문서에서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를 혼동하는 실수는 있을 수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위의 인용문에서 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은 무의식적인 실수가 아니라 의식적인 용어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의 인용문을 명시적인 용어로 재해석하면, 루비오는 지난 시기 바이든 행정부가 대만 방어를 미제국의 안보 이익에 불가결한 요소라고 보았던 것과 달리, 오늘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 방어를 미제국의 안보 이익에 불가결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내용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미제국이 대만을 방어해주기 위해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경우 미제국은 패전하고 회복하기 힘든 전쟁 피해를 입을 것이고, 그런 사태로 미제국이 쇠락하는 위험이 예상되기 때문에 미제국은 쇠락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만을 방어해줄 수 없는 것이다.
루비오의 회담 발언을 이렇게 해석해놓고 보니, 좀 혼란스러운 느낌이 생긴다. 왜냐하면 대만은 미제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사활적 이익이 걸려있는 지역이므로, 미제국은 중국과 전쟁을 벌여서라도 대만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과 루비오의 회담 발언이 서로 엇갈리기 때문이다. 루비오의 회담 발언은 사회적 통념을 뒤집어버렸다. 미제국이 대만을 방어해주면서 얻는 이익(동아시아 패권 유지)보다 대만을 방어해주면서 입는 손해(미제국의 쇠락)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전쟁에서 대만을 방어해줄 수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적 통념을 뒤집은 미제국 국무부의 전략적 판단이다.
미제국 국무부의 철저한 손익계산법에 따르면, 미제국이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미제국을 쇠락의 길로 떠밀어버릴 중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야 한다. 따라서 미제국은 대만에 대한 정치군사적 지원을 계속하면서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지만,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억제전략을 끌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 동아시아 정세의 흐름을 바꿔놓을 전략적 차별성
위에 서술한 해석은 미제국 국무부의 보도자료에 들어있는 문장 하나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위에 서술한 해석이 확대해석인지 아니면 정확한 해석인지 판명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 2024년 7월 16일 당시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는 미제국 언론매체 ‘블룸벅 비즈니스위크(Bloomberg Businessweek)’와 대담하는 중에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제국이 대만을 방어해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대만은 우리에게서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 갔다. 대만은 엄청나게 부유하다. 우리가 대만 방어를 위해 돈을 내는 것은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미국은 (대만의 위험부담을 스스로 떠안은) 보험회사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대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대만은 미국에서 9,500마일 떨어져 있고, 중국에서 68마일 떨어져 있다.”
이 발언을 들어보면, 트럼프는 대만 방어가 미제국의 안보 이익에 불가결한 존재로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지리 공간적으로도 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만을 방어해주기 힘들다는 견해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2022년 5월 23일 당시 미제국 대통령 조 바이든(Joseph R. Biden)은 일본 도꾜(東京)에서 미일정상회담을 진행한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미제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인가라는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고, “그렇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commitment)다”라고 답변했는데, 트럼프는 대만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제국이 대만 방어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2) 2025년 3월 5일 당시 미제국 국방부 정책차관 후보자 엘브리지 콜비(Elbrige A. Colby)는 미제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주고받은 질의응답 중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질문 - “대만은 미국에 중요한 이익이지만, 실존적(existential) 이익은 아니지 않은가?”
답변 - “대만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지만, 실존적 이해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핵심적 이익은 중국의 지역 패권을 거부하는 것이다.”
콜비의 답변에 나오는 중국의 지역 패권을 거부한다는 말은 중국을 억제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정책차관 콜비는 미제국이 중국을 억제해야 하지만, 중국과의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견해를 자신의 주도로 작성되고 있는 미제국 국방부 전략문서에 반영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3) 미제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2025년 3-4월 합병호에 ‘타이완 집착: 미국의 전략은 승리하지 못하는 전쟁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The Taiwan Fixation: American Strategy Shouldn’t Hinge on an Unwinnable War)‘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미제국의 비정부 국방연구기관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즈(Defense Priorities)’ 선임연구원 제니퍼 캐버나(Jennifer Kavanagh)와 미제국의 비정부 국제안보연구기관 ‘카네기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선임연구원 스티븐 워심(Stephen Wertheim)이 공동 집필한 글이다. 필자들은 이 글에서 미제국이 중국과 전쟁을 하면 미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인명손실과 재산피해를 입을 것이고, 중국의 핵공격과 싸이버공격은 미제국 본토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심히 우려하면서 대만이 미제국에 중요하지만 미제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중국과의 전쟁을 해야 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주장을 폈다. 그들은 미제국이 대만 문제에 개입해 중국과 전쟁을 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하며, 대만을 방어해주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전략 전체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미제국이 중국과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 대만 방어를 지원해주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4) 2025년 5월 31일 미제국 국방부장관 핏 헥세스(Pete B. Hegseth)는 싱가폴(Singapore)에서 진행된 아시아안보회의(Asia Security Summit)에서 미제국이 중국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제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밀려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동맹국들과 우호국들이 중국에 종속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헥세스는 중국과의 전쟁을 피하면서 중국을 억제하는 전략을 언급한 것이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은 바이든 행정부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과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말해준다. 지난 시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대만 공격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 미제국은 중국과 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대만 공격을 억제하지 못하더라도 미제국은 중국과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차별성은 동아시아 정세의 흐름을 바꿔놓을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3. 역사박물관에서 잠든 태평양 방어선을 다시 불러낸 루비오
2025년 8월 2일 ‘조선일보’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서울의 외교 소식통이 전해준 말을 인용, 보도했다. 보도기사에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가 최근 주한미군 관련 언급을 하면서 애치슨 라인을 거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라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외교 소식통이 말한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는 미제국 국무부장관 마코 루비오이고, 루비오가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언급한 자리는 2025년 7월 31일 미제국 국무부 청사에서 진행된 루비오-조현 회담이다.
2025년 7월 31일 루비오가 외교장관 회담 중에 언급한 애치슨 라인은 1950년 1월 12일 당시 미제국 국무부장관 딘 애치슨(Dean G. Acheson, 1893~1971)이 워싱턴에 있는 전국언론협회(National Press Club)에서 연설하면서 발표한 태평양 방어선(Pacific Defense Perimeter)이다. 75년 전 미제국의 태평양 방어선은 소련의 아시아 진출을 가로막는 저지선이었다. 애치슨은 연설에서 미제국의 태평양 방어선이 알류샨열도, 일본열도, 류큐열도, 필리핀제도를 연결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한국과 대만이 미제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되었음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75년 전 미제국은 왜 한국과 대만을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시켰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1948년 4월 2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채택된, 「코리아와 관련된 미국의 위치(The Position of the United Stats With Respect to Korea)」라는 제목의 전략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전략문서에서 미제국 합동참모본부는 한반도를 아시아 대륙을 점령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미제국 합참본부는 당시 38선 이남지역을 점령한 미제국군 2개 사단이 소련군 6개 사단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고 참패할 것으로 우려했고, 소련군이 전쟁 개시 20일 안에 한반도 전역을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미제국의 비관적인 전망은 전략적 후퇴를 불러왔다. 전략적 후퇴는 철군을 의미하였다. 미제국은 1948년 9월 15일부터 38선 이남지역에서 점령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1949년 6월 30일 주한미국군사고문단 500여 명만 남겨두고 완전히 철수했다.
1949년 12월 8일 미제국 합동참모본부가 채택한 비상전쟁계획 ‘오프태클(OFFTACKLE)’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사고문단의 임무는 참전해 한국군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체류하는 미국인들을 인솔해 일본으로 황급히 도피하는 것이었다.
1949년 12월 30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채택된 「아시아와 관련된 미국의 위치(The Position of the United States With Respect to Asia)」라는 제목의 1급 비밀문서에는 대만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대만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미국의 군사력과 미국의 세계적 의무 사이의 불일치가 존재하는 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미국의 군사행동(대만 방어를 뜻함-옮긴이)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필리핀, 류큐열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어놓았던 태평양 방어선은 2025년 7월 31일 마코 루비오가 조현과 회담하는 중에 다시 거론되었다. 루비오가 역사박물관에서 잠든 태평양 방어선을 현실 속으로 다시 불러낸 것은 한국과 대만이 미제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또다시 제외되었음을 알려준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과 대만이 미제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되었다고 해서 미제국이 한국과 대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제국은 한국과 대만을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했어도 한국과 대만을 조선과 중국에 대한 억제전략의 전초기지(outpost)로 여전히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제국은 한미연합군을 동원하는 전쟁연습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대만군의 전쟁연습에 대한 군사적 지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제국이 한국과 대만을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했다고 해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전쟁위험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며, 되레 더 증폭될 것이다. 위에 인용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1급 비밀문서가 말해주는 것처럼, 1949년 12월 30일 미제국은 동아시아 동맹국들에 대한 소련의 공격을 억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38도선 이남지역의 남조선경비대와 대만의 국부군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면서 전쟁위험을 증폭시켰다.
4. 오늘의 군사 상황과 닮은 75년 전 군사 상황
미제국의 억제전략으로 전쟁위험이 증폭되고 있었던 75년 전 중국의 군사 상황을 돌이켜보자. 1949년 4월 20일 총공격을 재개한 중국인민해방군은 파죽지세로 국부군을 격파하면서 4개월 만에 대만을 제외한 중국 대륙 전부를 해방했다. 미제국의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으면서 간신히 버티던 국민당 정권과 국부군은 대만으로 패주했다. 이것을 국부천대(國府遷臺, Kuomintang’s retreat to Taiwan)라고 부른다. 2009년 중국의 사회과학 전문지 ‘사회과학연구지’ 제3호에 실린 중국의 역사학자 센지화(沈志華)의 논문 「중국공산당의 대만공격작전: 정책변화와 제한적 요소, 1949~1950)」에 의하면, 1950년 상반기에 중국공산당은 인민해방군 16개 군단 675,000명을 대만공격작전에 동원할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그에 맞선 중국국민당은 국부군 300,000명을 대만방어작전에 동원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고 한다. 중국인민해방군역사 연구자인 자오이핑(趙一平)이 2005년 1월 ‘해방군 군사 월간’ 제130호에 발표한 논문 ‘대만해협공략: 신중국 성립 전후 대만해방작전계획 및 준비의 시말’에 의하면, 중국공산당은 1950년 8월에 대만공격작전을 개시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1950년 당시 상륙정을 한 척도 갖지 못한 중국인민해방군은 전투 중에 적진에서 노획한 자동차에서 떼어낸 엔진을 돛단배에 설치하고, 뱃머리에 소구경 야포 2문을 장착한 ‘토포정(土砲艇)’을 타고 대만해협을 건너 대만에 상륙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미제국은 중국인민해방군 군단급 전투부대들이 대만공격작전을 위해 대만해협 인접지역에 집결하고 있는 정황을 파악하고, 전쟁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1950년 1월 5일 당시 미제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은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대만을 방어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제국의 억제전략으로 전쟁위험이 증폭되고 있었던 75년 전 한반도의 군사 상황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당시 38선 이남지역을 장악한 점령군 사령관 존 하지(John R. Hodge, 1893~1963)의 전직 고문은 1949년 2월 25일 중국 홍콩(香港)에서 진행된 커먼웰스클럽(Commonwealth Club) 오찬회에서 한반도의 군사 상황을 “성냥을 기다리는 화로”에 비유하면서 “무서운 참극이 그곳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1949년 4월 13일 미제국 국무부장관 애치슨은 주한미국특별대표부에 보낸 2급 비밀문서에서 “60일 이내에 대한민국에서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정보 보고를 1949년 2월 중순에 받았다. 심각한 사태는 남한에서 시작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군사 상황은 지난 몇 달 동안 더욱 심각해졌다”라고 지적했다. 1949년 5월 31일 당시 국방부장관 신성모는 국방부 출입기자단과 회견하면서 “3일도 걸리지 않아서 (조선을) 정복할 수 있다”라는 호전적 발언을 늘어놓았다. 1949년 6월 27일 미제국 육군부가 국무부에 보낸 1급 비밀문서를 보면, 1949년 5월 30일 현재 한국군은 76,536명이고, 조선인민군은 약 46,000명이다. 당시에는 한국군이 조선인민군보다 30,000명 더 많았다. 그래서 신성모는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을 3일도 걸리지 않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망상했던 것이다.
38선 일대에서 국지전이 계속되었다. 이를테면, 1949년 5월 3일부터 7일까지 제1차 개성전투가 벌어졌고, 7월 20일부터 26일까지 제2차 개성전투가 벌어졌다. 1949년 5월 18일부터 7월 22일까지 옹진전투가 벌어졌다.
주한미국군사고문단(U.S. Military Advisory Group to the Republic of Korea) 보고서에 의하면, 1949년 8월 12일 한국군 제6사단 예하 부대가 38선 이북지역을 공격해 38경비대 35명이 사망했고, 8월 16일 함정 6척을 타고 38선을 넘어간 한국군 특수부대가 황해남도 몽금포를 공격해 민간선박 4척을 격침했고, 1척을 나포했으며, 8월 18일에도 38선 이북지역을 공격해 38경비대 75명이 사망했으며, 10월 25일에는 황해남도 해주에 집중포격을 가해 38경비대 400여 명과 민간인 3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군 작전통제권은 미제국 육군 준장이며 주한미국군사고문단 사령관인 윌리엄 로벗츠(William L. Roberts)가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한국군은 로벗츠의 명령에 따라 38선 일대에서 국지전을 벌인 것이다. 38선 일대에서 끊임없이 벌어진 국지전은 전면전이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미제국은 한국군을 동원해 38선 일대에서 국지전을 감행하고, 그로써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한국을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했다.
미제국이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한국과 대만을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병력이 감축되고, 국방예산이 삭감되면서 미제국의 군사력이 한국과 대만을 방어해줄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제국이 한정된 병력과 국방예산을 최우선적으로 투입한 지역은 유럽이었고, 두 번째로 투입할 지역은 중동이었다. 동아시아는 세 번째로 투입할 지역이었다. 당시 미제국의 시각에서 보면,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일본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중국이었다. 한반도는 주변지역으로 분류되었다.
5. 한국과 대만이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
미제국이 추진하는 억제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필연이다. 왜냐하면, 미제국의 억제전략은 언제나 전쟁위험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한미연합군을 동원하는 전쟁연습을 감행하고, 대만군의 전쟁연습에 군사적 지원을 감행하는 것을 ‘억제’라고 생각하는 미제국의 전략적 사고야말로 전쟁을 억제한다고 떠들어대면서 실제로는 전쟁위험을 증폭시키는 모순과 우매의 극치가 아닌가.
미제국의 억제전략이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 전쟁이 일어난다. 조선과 중국에 대한 억제전략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역사가 그러한 필연성을 입증해준다. 1950년 8월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6월 25일 한반도에서 먼저 전쟁이 일어났다. 미제국이 한국군을 동원해 38선 일대에서 국지전을 계속 감행하면서 전쟁위험을 증폭시켰으니 어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이튿날인 1950년 6월 29일 미제국은 항공모함 밸리 포지호(USS Valley Forge)를 지휘함으로 하고, 중순양함 1척과 구축함 8척으로 편성된 제7함대 항모타격단을 대만해협으로 긴급히 출동시켰다.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 서울이 함락되었는데, 미제국은 항모타격단을 동해로 출동시켜 한국을 방어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은 대만해협으로 항모타격단을 출동시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 상륙을 가로막았다. 미제국이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 상륙을 가로막은 것은 중국과의 전쟁을 피하려는 전략적 방침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당시 미제국은 소련과의 전쟁을 피해야 했지만, 군사력이 약했던 조선과의 전쟁은 피하지 않았다. 소련이 한반도 전쟁에 무력개입을 하지 않을까 하고 눈치를 살피던 미제국은 전쟁이 개시된 후 닷새가 지났어도 소련의 무력개입 징후가 보이지 않자 1950년 7월 1일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규슈 구마모또(雄本)에 주둔하던 미제국 육군 제24사단 제21연대 제1대대를 부산으로 출동시켰다. 이 전투부대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다. 스미스라는 부대명칭은 이 부대를 지휘한 미제국 육군 중령 찰스 스미스(Charles B. Smith)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부산에 상륙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전차와 곡사포를 비롯한 중무기로 무장하고 계속 북상해 1950년 7월 5일 경기도 오산시에서 북쪽으로 3.5킬로미터 떨어진 죽미령에 저지선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조선인민군을 막아보겠다고 겁도 없이 덤빈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6시간 만에 181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참패를 당했다. 죽음의 공포에 질린 패잔병들은 무장 장비를 전부 내버리고 충청남도 천안으로 도망쳤는데, 제34연대장으로 부임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미제국 육군 대령 로벗 마틴(Robert R. Martin)을 비롯한 장병 129명이 천안전투에서 또다시 전사하는 제2차 참패를 당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궤멸되었다.
75년 전 자동차에서 떼어낸 엔진을 설치하고 뱃머리에 소구경 야포 2문을 장착한 500톤급 토포정을 타고 대만에 상륙하려던 중국인민해방군은 오늘 전략폭격기 편대와 항모타격단과 무인기 항공모함의 3중 엄호를 받으며 40,000톤급 강습상륙함과 25,000톤급 상륙수송함과 10,000톤급 상륙바지선을 동원해 대만에 상륙할 준비를 갖추었다. 미제국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대만 상륙을 가로막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정은 미제국이 중국에 대한 억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중억제력을 상실한 미제국에 주어진 양자택일의 선택은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든지 아니면 대만 방어를 포기하는 것인데, 중국과의 전면전을 하면 미제국이 패해 국가 자체가 쇠락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느낀 미제국은 대만 방어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75년 전 주한미제국군이 소련군의 압도적인 공격을 받고 참패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 빠진 미제국은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했는데, 오늘 한미연합군이 조선인민군의 압도적인 전술핵공격을 받고 궤멸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느낀 미제국은 새로운 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지금 미제국은 ‘재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한 미제국군을 일본, 괌(Guam), 하와이(Hawaii) 등지로 분산, 재배치하는 도피 방도를 궁리하고 있으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한국을 방어해줄 수 없다는 전략적 방침을 세워놓은 것이다.
2025년 8월 2일 ‘조선일보’ 보도기사에서 외교 소식통은 2025년 7월 31일 루비오-조현 회담에서 루비오가 애치슨 라인을 언급하였다고 지적하고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이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아직도 설왕설래 논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업무 장악력이 강한 트럼프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한국과 대만이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에 관한 논의를 이미 종결시켰다. 씨나리오는 채택되었다. 트럼프는 2025년 8월 중순에 진행될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를 통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대만이 상상하기 어려운 씨나리오는 머지않아 현실로 전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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