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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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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286회 작성일 22-04-08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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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 회


섬에 남은 세사람

정 철 학

2

좀 있으면 장마가 질거라고 한 광룡의 예측은 옳은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오기 시작한 비는 가늘어졌다 굵어졌다하며 구질구질 내리다가 사흘째에 접어들면서 마침내 대줄기같은 폭우로 변하여 순간도 그침없이 쏟아졌다. 한쪼각의 푸른 하늘도, 한가닥의 해빛마저도 찾아볼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커먼 비구름장들이 낮게 떠돌며 무더기비를 들부었다.

장마가 진지 닷새째만에는 두만강이 범람하여 그 수위가 온성땅에 인총이 생긴이래 처음 보는 최고기록을 돌파하였다. 갈래를 알수 없는 수많은 골개물들이 누런 갈기를 치여들고 사품쳐내렸고 온 천지를 뒤덮을듯 불어만 가는 탕수는 각일각 섬을 좁혀들었다. 게다가 사나운 돌풍까지 물멀기를 일으키며 모든것을 날려버릴듯 기승스레 불어쳤다.

바로 이것이 후날 《태풍10》호로 불리운 파괴적인 폭우와 돌풍이였으며 그로 하여 두만강지구를 중심으로 한 북부의 넓은 지역에는 하나의 전쟁을 치른것과도 같은 파국적인 후과가 초래되였다.

하지만 그때 섬에 남아있던 세사람은 자신들의 앞에 어떤 재난이 닥쳐오고있는가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그날도 극히 례사로운 생활을 보내고있었다.

《에잇, 밥이 또 설었구나. 이거야 어디 먹을수가 있나.》

밥을 입안에 떠넣고 우물우물 씹던 성준이 오만상을 찡그리고 투덜거렸다.

선향은 아래입술을 감쳐문채 말을 못하는데 광룡이 딱해하는 그를 보다못하여 성준에게 한마디 하였다.

《며칠째 비가 와서 나무가 젖은걸 어찌겠소. 참고 먹기요.》

그러나 성준의 부은 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암만 그래두 이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게 어디 밥입니까. 김을 쐬운 생쌀이지.》

광룡의 눈섭이 끝내 곤두섰다.

《동문 언제봐야 불평이 많구만. 정 그렇게 선밥을 먹기 싫으면 선향이한테 마른나무를 좀 해다주면 되지 않소.》

성준은 입술을 삐쭉거렸다.

《몽땅 젖은 나문데 어데 가서 마른나무를 한단 말입니까?》

광룡은 어성을 낮추어 말하려고 애썼으나 생각과 달리 잘되지 않았다.

《동무도 못하는 마른나무를 선향이가 어떻게 한단 말이요. 도와주지 못할바엔 말하지나 말라구.》

성준이 입을 다시고나서 밥을 퍼먹으려는데 선향이 종시 참지 못하고 내쏘았다.

《저 동무가 도와주어요? 흥, 앉아서 타발이나 할줄 알았지.》

성준이 들었던 숟가락을 밥상우에 탕-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뭣이 어찌구어째? 밥을 이따위루 해놓구선 무슨 할말이 있다구 옹알거려?》

광룡이 끝내 참다못하여 꽥 소리를 질렀다.

《됐소! 이젠 그만들 하오!》

광룡의 이 말에 말다툼은 일단 멈추어졌으나 분을 삭이지 못한 성준은 밥을 먹으려다 그만두며 또다시 투덜거렸다.

《에이, 장마가 걷히면 내 교대하고말아야지.》

선향이 그 말에 참지 못하고 또 대들었다.

《동무가 못 가면 내가 가고말겠어요. 내가 애초에 여기 남기가 잘못이였지.》

성이 난 광룡은 다들 와뜰 놀라리만큼 큰소리를 쳤다.

《다들 가오! 내 혼자 남아있고말아야지. 이거야 어디 소란스러워 견딜수 있나.》

마침내 방안은 잠잠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퍼그나 시간이 지나도록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아 방안의 침묵은 오래도록 계속되며 서로에게 어색한 느낌을 자아냈다.

한참만에 광룡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나서 무더기비가 쏟아져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의논조로 성준과 선향에게 물었다.

《이거 비가 억수로 며칠째 내리는데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가.》

성준이 셈평좋게 말하였다.

《일은 무슨 일이 나겠습니까. 그러다 말겠지요.》

늘 성준과 다투던 선향이였으나 그때만은 의견이 같은듯 했다.

《이전에도 비가 많이 온적이 더러 있었지만 별일 없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다른 일이 없겠지요 뭐.》

광룡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긴 이전에도 큰 장마가 더러 있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지.》

하지만 억수로 쏟아붓는 무더기비는 그들의 예상을 뒤집어엎었다. 이번의 장마는 여느때와는 다른것이였다. 그들이 그것을 깨닫기 시작한것은 그날 오후 3시경이였다.

불과 한시간도 못되는 사이에 급작스레 불어오르는 강물에 청년작업반이 맡은 섬의 100여정보의 강냉이밭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그날 너무도 비바람이 세차 합숙안에서 미장을 하기로 하였던 그들은 무섭게 용을 쓰며 내리는 비줄기와 시시각각으로 불어나는 탕수를 내다보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선향이 부엌에서 뛰여들어오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했다.

《부엌이 물에 잠겨요!》

광룡과 성준이 선향을 따라 부엌에 나가보니 차오른 물은 아궁이를 삼켜버리고 문턱가에서 넘실거리고있었다. 성준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건… 부엌이 아니라 수영장이로군.》

여느때라면 성준의 이러한 말에 발끈하였을 선향이였으나 그때는 아무런 응대도 못하고 입술만 떨다가 광룡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잡니까?》

광룡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우선 밖에 나가 형편을 알아보자구.》

문가로 향하는 광룡의 팔을 성준이 붙잡았다.

《내가 나갔다오지요.》

광룡이 어쩔사이 없이 문밖으로 뛰쳐나갔던 성준은 한참만에 물참봉이 되여 돌아왔다.

《배가 없어졌소!》

성준의 말에 선향이 눈이 커져서 따져물었다.

《없어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성준은 흠뻑 젖은 얼굴을 문지르며 성난듯 거칠게 대답하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소. 물살이 굉장히 쎈데다 바람까지 지동치듯 부니 아마 멀리로 떠내려간것 같소.》

광룡은 아연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니, 내가 그 배를 굵은 나무에 든든히 매놓았댔는데 그게 떠내려갔단 말이요?》

《그 나무도 없어졌습니다. 필경 뿌리채로 뽑혀서 함께 떠내려간것 같애요.》

은연중에 시선을 마주친 광룡과 선향은 서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것을 가려보았다.

농장원들이 섬으로 넘나들기 위해 세워놓았던 배는 물에 잠겨드는 이곳에서 떠날수 있는 유일한 운반수단이였다.

강물은 몸서리가 쳐지도록 빨리 불어났다. 그들이 있는 합숙의 문틈으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드는 물은 잠간사이에 발등을 적시더니 얼마 안 있어 무릎까지 차올랐다.

서둘러 합숙안의 호실들마다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들을 안전하게 모신 그들이 청년학교와 작업반선전실로 가기 위해 마당에 나서보니 물은 허리를 쳤다. 분과 초가 다르게 쓸어드는 물과 함께 공포심이 온몸을 엄습하였으나 그들은 이 모든것과 필사적으로 싸우며 위대한 수령님들의 존귀하신 영상이 모셔진 초상화들과 영상작품들을 안전하게 모시였다. 이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명제판까지 물기 한점 스며들세라 안전하게 모신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밖에 나서니 여느때는 그리도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은 마치 미쳐나기라도 한듯 급류로 변하여 사나운 물갈기를 일으키며 사품쳐흘렀다. 그우로는 상류쪽에서 떠내려오는 뿌리뽑힌 나무들이며 별의별것들이 쏜살같이 흘러내려갔다.

그 광경에 선향은 질겁하여 뒤걸음질을 쳤다.

《난… 난 헤염칠줄 몰라요.》

성준은 선향을 흘겨보았다.

《이런 판엔 수영선수라고 해도 헤여나가질 못해. 저 파도를 못봐?》

미간을 모으고 생각에 잠겼던 광룡이 말했다.

《지붕우에 올라가자구.》

그들은 가까스로 합숙지붕우로 올라갔다. 무더기비는 말그대로 바께쯔로 들이붓는것처럼 내리퍼붓는데 그 비줄기를 채찍마냥 후려갈기며 태풍은 금시라도 그들을 날려보낼듯 불어쳤다. 강물은 그들의 발뒤꿈치를 쫒듯 빠르게 불어나 어느새 지붕의 처마를 핥으며 소름끼치는 물갈기를 일으켰다.

미끄러운 철판지붕우에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던 선향이 끝내 태풍에 날려 사품치는 강물우에 빠져들었다.

《엄마-》

처녀의 비명소리를 들은 두 사나이는 거의 동시에 물에 뛰여들었다.

《내손을… 내손을 잡으라구.》

물에 잠겨들어가는 처녀를 붙안은 그들은 안깐힘을 다하여 광란하는 파도를 헤갈랐다. 이때 물갈기 날리는 급류를 타고 내려오며 태질하듯 요동치던 커다란 통나무 하나가 그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그 통나무가 광룡의 잔등에 메워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와 영상작품들을 모신 함에 부딪치려는 순간 성준이 자신의 가슴으로 그앞을 막아나섰다.

《억!-》

통나무가 쿵하고 가슴을 들이치자 성준은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뒤미처 그의 입귀로 울컥 선홍색피가 솟구쳐올랐다.

《성준이!》

《성준동무!》

광룡과 선향은 급기야 파도속으로 묻혀드는 성준을 부둥켜안았다. 입안에 쓸어든 흙탕물을 내뱉은 성준은 힘겹게 말하였다.

《날 놓소. 동무들만이라도…》

《안돼!》

광룡은 요란스러운 폭우와 파도소리를 짓누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맥을 놓지 말아!》

한덩어리가 되여 사품치는 격랑과 싸우던 그들은 주변에 서있는 버드나무에 이르렀다.

광룡은 성준과 힘을 합하여 선향이 나무우에 오르도록 받쳐주고나서 성준을 억지로 떠밀어올리고 나중에야 나무우에 올라왔다.

맨 처음으로 나무우에 올라갔던 선향이 별안간 소리쳤다.

《저것 봐요. 제방이예요!》

그들이 올라간 버드나무의 굵은 줄기 하나가 뻗어간쪽에 제방뚝이 있었는데 그 줄기를 타고가서 힘껏 내려뛰면 그 뚝에 가닿을수 있었다.

선향이 가리키는쪽을 본 성준도 환성을 올렸다.

《야, 이젠 살았구나.》

서둘러 그 제방쪽의 줄기로 가려던 선향과 성준은 꼼짝않고있는 광룡을 돌아보았다.

《왜 그래요?》

선향의 물음에 광룡은 천천히 대답하였다.

《거긴… 국경이야.》

그 말에 선향과 성준은 굳어졌다. 그 뚝은 이웃나라의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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