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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619회 작성일 22-03-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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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회

리 국 철

6


점심이 조금 지나서였다.

아직도 꼭 꿈을 꾸는것 같은 현실이여서 뜨끈한 방바닥에 앉아 집을 둘러보고만 있는데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리였다.

《마침 있는것 같애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덤벼치며 방안으로 달려들어온이는 인민반장이였다.

《남철이 어머니!》

온통 얼굴이 눈물투성이다.

웬일인가 하여 움쭉 일어나는데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섰던 그가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왔어요!》

어리벙벙해서 기웃이 방안문너머에 시선을 던졌다.

문이 활짝 열려져있는데 웬 사람이 성큼 들어선다.

깨끗한 양복차림을 한 남자다.

어깨를 떠는 반장을 놀란 눈으로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숨이 떡 멎었다.

제집처럼 방안으로 그냥 들어오는 사람…

《누구세요?》

제 목소리같지 않은 말을 입속으로 가만히 뇌이였다.

웃고있다. 흔연히… 정복은 소스라쳤다. 뒤로 저만치 물러났다.

웃고있다!

믿기 어려워 정복은 마구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온 사람이 정복을 다정히 그러안았다.

《여보! 나요. 나!》

조용히 한 말이였으나 정복의 귀가에는 우뢰소리처럼 들렸다. 무엇을 찧어대는지 심장이 마구 절구질을 한다. 뒤이어 모진 아픔이 몰려들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스르르 몸이 꺼져내린다. 방안의 하얀 천정이 빙그르르 돈다.

윤식이 급히 정복을 붙잡았다.

《여보!》

그 소리에 다시 두눈을 부릅뜨며 자기를 들여다보는 얼굴을 똑똑히 보려고 애썼다.

눈물때문에 마구 흔들리는 얼굴…

서서히 안개처럼 가리워졌던 앞이 차츰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똑똑히 보인다. 온 심장으로 보았다.

남편은 웃고있었다! 그때처럼 너무도 태연히… 늘 가슴에 새겨지던 그 웃는 얼굴이다. 꿈에도 보이던 그 웃음이다.

숨을 톺기만 하던 정복의 입에서 울음덩어리가 튀여나갔다.

《여- 보!-》

복도가 와짝 떠들어댄다.

인민반장이 눈물을 닦아대며 뛰쳐나갔다.

《아니, 아니, 들어오지들 마세요! 이따가… 아이, 영남이 엄마…》

문이 닫겼다.

복도에서도 환성과 울음이 마구 뒤섞인 소리들이 그냥 터쳐진다.

여보, 이게, 이게… 꿈이요, 생시요?…

품에 안겼다가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얼굴을 묻고…

윤식도 고개를 끄덕여보이다가는 눈물이 그렁해서 정복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두손으로 어루쓸고 그리고는 안아보고…

그렇게 부부는 한참이나 붙어잡고 울었다.

《여보, 살아있으면서 그렇게 애간장을 말리운단 말이예요?》

윤식은 꺽꺽 목멘 소리를 했다.

《사람들이 다들 날 보고 천행이라고 하는데 내가 천행인것이 아니라 우리 사는 이 땅이 천행만복을 주는 땅이요.》

윤식은 인민보안원들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해 구원되였다고 했다. 혼수상태에 처한 윤식은 구급차에 실려 도병원으로 후송되였다.

의식이 없는 그를 살려내기 위해 낯모를 군인들과 의사들, 일군들이 자기 피를 뽑아달라고 찾아들었단다.

미음을 먹을 때에는 빨리 가족한테 알려주자고 했다.

윤식도 안해의 생사여부가 걱정되여 소식을 띄우려고 했다. 그런데 현장치료대로 무산읍에 갔다온 의사가 호실간호원과 주고받는 이야기가 마음을 고쳐먹게 했다.

눈코뜰새 없이 철야전투가 벌어지는 곳, 자는 시간, 식사시간도 아까와하는 군인들…

가슴후덥게 하는 그 이야기속에는 군인들의 군복을 빨아 말리워주고 기워주며 온갖 정성을 다 한다는 유정복녀인의 이야기도 있었다. 2중 26호모범기대마크를 목에 걸고 다닌다는 녀성!

그는 분명 자기 안해 유정복이였다.

윤식의 눈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으나 하얀 이를 드러낸 입가에는 웃음이 비꼈다. 여보! 장하오. 우리 이악쟁이가 아무러면 누구라구… 여보, 날 찾아올 생각을 말고 병사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주오. 그것이 날 위한거요. 우리야 북변땅사람들이 아니요. 백두산밑에서 사는… 항일의 전장을 찾아 원호물자를 이고가던 원군의 첫 세대의 후손들이란 말이요.

윤식의 말을 들으며 정복은 눈을 슴벅거렸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그저 공장, 작업반, 선반… 하긴 그런 성미여서 더 반했던 내가 아니였던가. 그런 남편이여서 때로는 바가지를 긁고 양양대면서도 죽을둥살둥 모르고 기를 쓰고 따라온 자기였다.

이번에는 정복이가 가지가지 이야기들을 펼쳤다.

천만뜻밖에 아들을 만난 소식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말은 퍼내고퍼내도 끝이 없는듯…

그렇게 만리장성을 쌓아놓고는 이번에는 남편의 손을 끌며 집안을 돌았다.

남편이 집구경을 온 손님인듯 하나하나 구경시켰다.

여긴 창고 그리고 이건 세면장, 또 저긴 부엌베란다…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자랑하며 가지가지 그릇들이며 옷들이며를 몽땅 들춰내고 꺼내놓고 큰 성냥곽, 작은 성냥곽까지 들어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땀이 아니라 고마움에 푹 젖은 떨리는 손으로 그저 이것저것 잡히는대로 집어들며…

방바닥은 잠간새 발 디딜 짬도 없이 되고말았다.

감격하고 송구하기만 하여 묵묵히 정복에게 끌려다니던 윤식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나가서 또 선반을 돌려야지… 선반을…》

《여보, 나도 공장에 다시 출근하고있어요.》

부부는 따스한 구들에 나란히 앉았다.

《정복이, 우린 이 땅이 얼마나 고마운 땅인지 다 모르고 산것 같애. 생각해보오. 배 곯을 때 한끼 밥 먹여준 동네사람은 고맙게 생각하면서두 태여나서부터 먹여주고 키워주느라 고생하는 그 고마운 품은 생각 못했거던. 아플 때 약을 먹여준 의사선생은 고마워했어도 병이 날세라 문을 두드려주는 그 손길은 미처 다 생각 못했단 말이요. 이게 뭐겠소. 배은망덕이지… 당신이나 나나 이런 품에서 살고있소. 이게 바로 내나 당신이 사는 땅이야. 이게 바로 우리 집이구… 여보, 우리 이걸 명심하기요.》

정복은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갸웃이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어요.》

환희롭고 행복한 밤이 깊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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