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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의 역사 (6)//잘린 뒷부분 마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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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댓글 2건 조회 13,469회 작성일 10-08-3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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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거기에 제로전투기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종성능때문에 비행

경험이 적은 파일럿들이 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특성 또한 전쟁 후반기 내내 제로가

제 성능을 내지 못한 한 원인이 된거지요.일본의 명운을 걸고 진행했던 아호작전의 결과는

미해군의 압승과 일본 연합함대의 참패로  끝이 났습니다. 3일에 걸쳐서 진행된 필리핀해 해전

내 일본의 제로전투기와 공격기들은 월등한 항속거리를 이용해 미군공격기들은 일본항모

를 공격할 수 없는 위치에서 발진했음에도 불구하고 500여대에 이르는 헬캣전투기들의

압도적인 요격망에 걸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거의 전멸합니다. 공중전이 절

정에 달했던 두 번째 날, 일본해군은 하루에 무려 180여대의 항공기를 상실했을 만큼

무기력했습니다. 이 기록은 공중전 1일 피해로는 2차대전중 가장 많은 피해숫자이기도

합니다. 이 날 어느 헬캣전투기 파일럿은 한 번의 출격에서 무려 9대의 일본함재기를

불과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격추하여 이 역시도 공중전사상 전무후무한 신기록으로 기록

될 만큼 일본파일럿들의 수준은 이미 미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일방적으로

전개되었던 필리핀해 해전이 일명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Mariana's Great Turkey Shot

)"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승자의 입장에서조차 전투가 아닌 사냥에

불과했을 만큼 일방적인 싸움. 다시 한번 러일 전쟁시 대마도 해전의 대승과 같은 기적을

염원했지만 일본의 제1기동함대는 되려 3척의 항모를 잃고 많은 주력전함들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미드웨이 해전시의 두 배가 넘는 병력이었던 450여대의 함재기중 살아

남은 것은 고작 30여대에 불과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돼버린 일본해군은 다시는 항모로

미 해군에 도전하지 못합니다. 불과 2년 전 압도적인 전력으로 태평양은 물론 인도양

까지 거칠 것 없이 휘젓고 다녔던 일본 연합함대와 제로전투기에게 황혼이 다가든 것이

었지요.

 

 

    필리핀해해전의 참패 이후 제로전투기의 운명은 더욱더 비참해집니다. 이제 전투기로써

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고 인간폭탄 카미카제로 쓰이게 되니까요. 44년 11월 미군의 공

격은 어느덧 필리핀까지 이르렀고 이를 저지할 힘이 전혀 없었던 일본해군은 최후의 힘을

모아 활용가능한 모든 수상함대를 미해군 상륙선단이 집결해 있던 레이테만으로 출격시켰

지만 결국 압도적인 미해군(미 항모의 수는 19척으로 늘어나 있었음)에 눌려 사실상 대부

분의 함대를 잃고 또다시 패퇴합니다. 20세기 최대 규모의 함정이 동원된 해전, 레이테

전투에서 일본은 카미카제 육탄 공격으로 소형 호위 항모 1척을 침몰시키고 호위항모

몇 척에 큰 타격을 줍니다. 이미 파일럿의 기량이 너무 떨어져 정상적인 공격으로는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차라리 파일럿들에게 인간폭탄 자살공격을 하라고 강요

한 셈입니다. 44년 11월 이후 더 이상 미 해군에 대항할 수단이 없어진 일본군은 오직

특공이라는 미명하에 이 비정하고도 끔찍한 전술을 강행합니다. 이후 전쟁이 끝나는 8월

15일까지 미 해군은 끊임없이 달려드는 이들 인간폭탄 카미카제로 인해 물적 인적 피해

못지않은 정신적 문화적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곧 대응전술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번

에도 그 선두에는 전투기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주력함대의 외곽에 구축함들과 소형

선박으로 초계망을 설치하고 코르세어와 헬캣전투기들로 하여금 이들 카미카제 특공기

들을 요격하도록 해 큰 효과를 봅니다. 카미카제 특공기들은 무거운 폭탄을 탑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 사전에 발견만 하면 격추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했습니다.

 

  태평양 전쟁 내내 항공력은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미군에게 전투기의 비중은 점점 더 커

져만 갔습니다. 일단 전쟁초기에 비하면 거의 두배의 출력을 내는 대형엔진을 탑재하면

서부터 기존의 공중전 역할은 물론 로켓탄과 폭탄을 적재할 수 있게 되어 지상군에 대한

근접지원과 함선 공격 및 폭격의 역할까지 가능해집니다. 전쟁초 항모에 탑재되는 전투

기의 비율은 3분의 1수준이었지만 전쟁후기에 이르면 함재기에서 전투기의 비중은 거의

70%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이 됩니다. 그만큼 뇌격기나 급강하 폭격기가 하던 역할까지

전투기가 할 수 있게 되었고 전폭기라는 멀티롤이 가능한 항공기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이렇듯 미군의 대응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자 카미카제는 초기의 성공을 능가하는 전과를

이후 단 한 번도 내지 못한 채 무의미한 희생만을 촉진했습니다. 카미카제 자살특공의

성공률은 고작 8.5% 내외에 불과해 일본항공대의 전성기 시절 80%라는 경이적인 명중

률에 비하면 거의 말기적 증상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쇠락해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이

카미카제 특공에 제로전투기는 단골로 사용됩니다. 다른 기종들은 너무 느렸던 탓에

그나마 가장 성공가능성이 높은 기종이었던 셈이죠. 공중전을 위해 제작된 전투기에

폭탄을 달아 그 자체로 인간폭탄이 되는 전쟁. 이미 일본은 망조가 단단히 들고 있었

습니다. 이 비인간적인 전술로 인해 4천여명의 일본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킨다는 미명

하에 사실상 강요된 죽음을 맞습니다. 심한 경우 아예 탈출을 할 수 없도록 캐노피의

덮개를 용접해버리기까지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왕실이나 귀족 혹은 유력집안의 자제들은 단 한명도 이 카미카

제에 지원하지 않아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측면에서도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흔적을 남기

죠. 뿐만 아니라 카미카제 전술은 상대인 미군에게 극도의 혐오와 증오심을 불러 일으

켰고 45년 초부터 본격화된 일본 본토에 대한 무차별 폭격과 전대미문의 파괴병기 원폭

투하의 주요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한마디로 화를 자초해버린 셈이죠.

 

 

 

   대개 무기체계는 그것을 만들어낸 나라의 지향점과 사상을 깔고 있기 마련인데, 그중에

서 제로전투기는 쇼와 일본, 군국일본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과정과 절차

를 무시하고 결과만을 추구했던, 기본을 무시한 편법과 인명경시, 오도된 근대화...제로

전투기는 바로 그러한 굴곡지고 허술한 기초에 세워진 모래성이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의 짧은 영화를 위해서 수많은 인명과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근대화의 성과를 모두 쏟

아부은 일본이 근접 공중전 하나만을 위해서 기체의 내구성과 안전성은 물론 이를 조종

하는 파일럿의 생명까지도 경시하는 컨셉의 제로전투기를 만들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첫 등장에서는 서구세계를 경악시켰지만 곧 쉽게 한계를 드러내고 몰락

하다가 결국은 인간폭탄으로까지 전락해버린 전투기 제로는 쇼와 군국주의의의 필연적

한계와 멸망과 궤를 같이 하며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합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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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

나그네님께서  수고스럽게 또 이렇게 잘린 부분을 따로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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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별말씀을요. 제이엘님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글이 중간에 짤린 걸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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