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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의 역사(9)//초강력 에어파워도 굴복시키지 못한 베트남 민중의 저항(하: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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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그네
댓글 3건 조회 22,023회 작성일 10-09-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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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국의 젊은이들을 투입해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과 지상전을 수행할 의사가

없었던 닉슨 행정부는 B-52폭격기들의 대규모 융단 폭격의 수위를 점차로 17도선에서

위로 북상시켜가며 하노이정권을 압박했습니다. 68년 존슨 행정부시절 이후 중단되었

던 북폭이 다시 재개된 것입니다. 72년에 들어서면서 북베트남은 서서히 북위 17도

선에서도 남베트남 군에 대해서 공세를 강화했고 미국은 계속 지상군을 철수시키는 대

신 더욱 많은 공군력을 투입해 이를 저지하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당시 미지상군의 숫

자는 고작 3만 2천명 남짓이었지만, 대신 괌과 태국의 공군기지엔 180여대에 달하는

B-52 폭격기가 있었고 당시 미공군의 베트남 주둔 항공기 숫자는 무려 1,000여대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초대형 B-52 폭격기들의 융단 폭격은 참으로 견디기 어

려운 시련을 베트콩과 베트남 민주공화국에 주고 있었습니다. 250킬로그램 폭탄 50개

를 한 번에 싣는 이 무시무시한 폭격기는 만 8천 미터가 넘은 성층권 상공에서 날아

와도 그릇에 떠놓은 물 표면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은

이러한 B-52의 특성을 이용해 그릇에 물을 담아 놓고 B-52가 오지 않나 를 살폈고

B-52의 융단 폭격이 시작되면 나무에 철사줄로 몸을 연결해 고폭탄이 일으키는 폭풍

으로 몸이 날아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부상을 최소화하고 생존율을

높인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B-52 승무원들이 하늘에서 떨어트린 자기

들의 폭탄의 색깔과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연기와 구름의 모습에 취해 심지어 시까지

쓰고 있을 동안 지상에서는 폭탄의 파편과 폭풍으로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갈갈이 찢

겨져 나가거나 불구가 되었고 수많은 베트콩들과 북베트남의 병사들은 나무에 몸을

연결한 채 날아가지 않으려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높은 고공의 B-52

승무원들에게는 단추를 눌러 폭탄을 투하하는 일상의 업무에 불과 했지만 그것이 가

져다 준 상처와 후유증은 너무도 크고 깊었습니다. 전쟁이 간접화 기술화 돼가면서

얼마나 사람이 타인의 고통과 비극에 무신경해지고 무관심해지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

조차 느끼지 않을 수 있는지를 드러낸 셈입니다.

 

  72년 초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해진 가운데, 북베트남군이 다시 남베트남군을 향해 지

상공세를 강화하며 남하를 개시하자 닉슨 행정부는 다시 공군력을 동원합니다. 5월부터

미군의 베트남전 마지막 대규모 폭격인 일명 "라인배커" 작전을 개시한 거지요. 미식축구

에서 팀의 중심인 쿼터백을 지키는 수비수인 라인배커(그래서 대개는 커다란 몸집을 가진

)라는 작전명에 걸맞게 미 공군은 7개월에 걸쳐서 사상 최대의 화력을 북베트남 폭격에

투사했습니다. 북베트남군이 공세를 지속할 수 없도록 주요 군수공장과 군기지와 기간

통신망과 도로와 교량과 철도 등 북베트남의 모든 기반인프라 시설들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고 68년 북폭작전(작전명 롤링선더)시와는 달리 민간인들의 피해를 전혀 고려치

않아 북베트남측의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또한 이 작전에서 처음 레이저와 티비 카메

라를 동원한 정밀유도폭격기술(20년후 걸프전에서 빛을 발하게 되는)이 선보였죠.

해군 역시 항모의 함재기를 총동원하여 통킹만 일대와 하이퐁을 집중 공격했고 북베

트남의 항구들은 미해군기들이 뿌려놓은 다수의 기뢰로 인해 사실상 봉쇄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북베트남 공군의 미그기와 대공포와 SAM 역시 필사의 저항을 계속 했고

신형 SA-2 미사일은 초대형 B-52를 라인배커 작전기간에만 8대를 격추하는 등 여전히 끈

덕지게 미공군과 해군을 괴롭힙니다. 엄청난 피해를 하노이정권과 17도 이북의 베트남에

주었지만 미군도 이 기간에 60여대가 넘는 항공기가 격추되는 등 손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후 베트남 민주공화국 정부는 미국이 명목상이나마 베트남에서 모양새 있게 손을 떼

고 싶어 한다는 의중을 간파했고 이 가혹한 미국의 대규모 폭격이 북베트남 정권에게 프랑

스에서의 협상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임을 통일의 대업을 위해 마지막 숨고르기에 나섭니

다. 결국 해를 넘긴 73년 1월 말 파리에 모인 미국과 베트남 공화국VS 베트남 민주공화국,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대표들이 5년여에 걸친 지루하고 긴 협상을 마치고 평화협정에 서

명하면서 미국의 베트남 전쟁은 끝을 맺었습니다. 미군은 65년부터 73년까지 약 8년여에

걸쳐 베트남전에 직접 개입했지만 천문학적 액수의 전비와 6만 명에 가까운 전사자를 낸

채 아무런 소득 없이 베트남에서 물러 나와야 했습니다. 항공분야에서도 공군과 해군, 해

병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모두 3천여대나 격추되는 크나큰 손실을 입었고 의외로 30%가

넘는 숫자의 항공기들이 소화기와 대공포에 의해 추락했습니다. 최첨단의 미사일과 전자

장비로 무장한 초음속의 전투기들이 일견 별효과가 없어 보이는 개인화기에 의해 이토록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큼이나 베트남전의 성격과 특성을 드러내는 예도 없습니다.

작고 약해보이지만, 지혜롭고 끈질긴 다윗이 힘만 세고 오만했던 골리앗에게 어떻게 대

항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겁니다. 이후 2차대전 이후 항공기의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

면서 완전히 무용할 것으로 치부되었던 소화기 중심의 대공화망구성 전술은 베트남전 이

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전술로 여전히 각국의 전술교범(심지어 강고한 반공정책을 쓴

대한민국의 교련교과서에조차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에 남게 됩니다.

 

 

   파리 평화협정이 조인 된 후 미국을 비롯한 베트남 참전국의 병사들은 73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베트남에서 철수를 단행했고 미국은 베트남을 떠나면서도 전후 재건을 위해

당시 미화 40억불에 달하는 거액의 차관을 제공했고 자체적인 방어에 충분한 엄청난

양의 물자와 장비를 남베트남군에 공여했습니다. 특히나 공군력에 비중을 두어 한때

남베트남의 공군력은 세계 4위에 달할 정도였고 미국은 혹여 베트남 민주공화국 즉

북베트남의 재침이 있을 시에는 다시 전쟁에 개입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

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직접

지시한 장본인 중 한명인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파리평화협정을 성사시켰다는 공로(?)

로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레득토 외무장관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레득토는

노벨상 수상을 거절함) 이 협정으로 전쟁을 끝낸 것은 기실 미국 혼자였지, 다른 베

트남의 당사자들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군대가 철수하는 동안

인도차이나는 잠시 평온을 유지하는 듯 했으나, 곧 베트콩과 남베트남 정부군간의 치

열한 교전이 각지에서 재개되었고 74년 재선을 앞두고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면서

닉슨행정부가 커다란 도덕적 위기로 와해직전에 이르자,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지도부는

이제 미국이 다시 개입할 가능성이 거의 전무해졌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해가 바뀐

75년 3월 10일 북베트남군은 이제까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아껴 두었던 탱크를 앞세우

고 일제히 남진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잘 아시다시피 불과 두 달도 채 버티지 못

하고 4월 30일 베트남 공화국은 지상에서 소멸되었습니다. 애초부터 외세에 빌붙어 일신

의 영달만을 알았던 부역세력들이 독자적으로 국가를 유지하거나 민족을 대표할 수는 없

었던 것이지요. 미국이 준 차관을 빼돌려 최고위 대통령부터 자기의 뱃속을 불려대는 남

베트남은 압도적인 장비와 병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대의명분과 기본적인 정신자세에서

도저히 북베트남 민족해방전사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장장 30여년에 걸친 기나긴 그리고 엄청난 피의 대가(30년에 걸친 전쟁으로 최소 200만

이 넘는 전사자 발생)와 상처(고엽제 후유증과 각종 불발탄 피해자)를 감수해야 했던

베트남 민족해방투쟁은 세계 최강 미국을 물리치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로 결실을 맺

습니다. 프랑스의 강압적인 함포와 총칼에 국권을 내준 이후 거의 120년만의 독립, 작고

메마른 볼품없는 사내,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 민족해방 투쟁은 20세기 역사에서 사실

상 유일하게 초강대국 미국을 굴복시킨 특이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비록 형식논리상 베트남에서 명예로운 강화협정으로 손을 빼기는 했으나, 사실상 참

패로 끝난 베트남전은 이후 거의 한세대동안 계속 미국과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커다란

상처와 자존심의 손상으로 남았습니다. 또한 이전쟁의 공과를 둘러싸고 미국 사회 전체

에 걸쳐 심각한 대립과 분열이 지속되었고 그 의문과 해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특히 항공력의 우위로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군의 입장에서 베트남에서의

고전과 실패는 많은 교훈과 성찰을 남겼습니다. 먼저 미 공군과 해군은 미사일의 잘못

된 환상에 빠져 기본이 되는 근접공중전술을 등한시하다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상대

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정보 없이 항공력을 과신한 결과, 매번의 전술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전쟁에서는 패배했습니다. 요컨대 2차대전과 한국전쟁을 통해서 미

국이 확신했던 에어파워 역시도 한계와 적용범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후

미공군과 해군은 베트남전쟁의 교훈을 살려 자신들의 군대를 재편성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무차별 대규모 공습으로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까지 북베트남과

베트콩을 압박하면 전의를 상실하고 결국 손을 들거나 45년 일본의 경우처럼 시설기반을

완전히 잃고 무력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강인한 베트남 민족의 한계과 미국이 생각

했던 한계상황은 분명 차이가 있었고 그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기어이 독립과 통

일을 쟁취하겠다는 베트남민족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누구도 맞설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최강의 항공병기로도 인간의 의지와 저항은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결국 여전히 세상사의 중심은 인간이었습니다. 항공력이 1차대전 이래 전쟁의 승패

를 크게 좌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언제나 모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보여주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최강 미국을 굴복시킨 베트남의 전략은 200여년전

이미 그들의 국부 워싱턴이 영국을 상대로 벌인 전략과 본질적으로 동일했습니다.

7년의 전쟁 동안 독립군의 총사령관 워싱턴은 강의 전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싸움에서

영국에게 지리멸렬 수준으로 연패를 거듭했으나 워싱턴과 미 독립군은 전투에서 패배할

수는 있으나, 결코 전쟁은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과 인내로 7년여의 세월을 버텨냈고 이

미 명분에서 뒤지고 있던 영국은 결국 손을 들고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게 됩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그들의 선조들이 영국을 상대로 벌였던 전략전술에 똑같이 말려들어

체면을 구겼던 것입니다. 2세기 경 남만정벌에 나선 촉한의 명재상 제갈량은 절대로 굴복

하지 않고 저항해오는 베트남을 상대로 크게 이기고도 그들을 직접 통치하는 대신 조공

을 받기로 하고 베트남을 물러나왔습니다. 직접 통치를 권유하던 참모들에게 제갈량은

'저들은 억누를수록 더 치받는 민족이고 절대로 포기를 모른다.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게

현명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떤 민족인지를 너무도 잘 알았던 거지요.

미국은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오래전 제갈양만큼의 통찰력도 없었고 그 결과는

20세기 미국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런 패배였습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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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나그네님의 독파이팅 연재로 베트남 전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쟁과 이후의 전쟁들을 되새겨보면 아무리 힘이 강한 나라라도 민족성이 뚜렸한 다른 민족을 침략하는 전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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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네, 명분 없는 전쟁은 특히나 약소국과 싸운다 해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재삼 확인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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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님의 댓글

평화 작성일

잘 읽고 갑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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