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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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제 1 편 최 첨 단 목 표
6
수자조종장치연구실 사람들은 아침 청소를 끝내고 끼리끼리 둘러앉아 신임실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다행한 일이요. 수현실장이야 우리가 잘 알지 않소.…》
변대식박사가 말했다. 그는 의용군출신 로병으로 조종장치실의 조상격인데 박사원생들을 지도하고있지만 오늘 아침엔 우정 여기에 들린것이였다.
김승길이며 박석훈과 같은 중진들이 입을 모아 새로 오는 실장을 평가하였다. 명석하다느니, 랭철하다느니, 노력가라느니, 고지식하다느니… 공학자들의 표현은 대개 개념적이였다.
《거 한사람한테 미덕이 너무 다채롭게 부여되는감이 있지 않는가?》
한구석에 모여앉은 젊은축들가운데서 최일이가 시틋하니 뇌까렸다. 그는 날카로운 눈매에 이마가 훤칠하고 키가 쭉 빠진 청년인데 고급 향수내를 풍기고있었다. 갓 박사원에 들어간터이지만 신임실장과 인사를 나누자고 이렇게 참석했다.
《그건 그래, 세상에 완전한 인격이 있을수 있는가. 환상에 불과한거지.》 송춘도가 금이를 반짝이며 맞장구를 쳤다. 《듣자니 새 실장이 말수더군 별로 없어도 야심은 보통이 아니라는거야. 근 4분의 1세기전부터 우리 실에 오려고 별러왔다는것 같더군.》
《과학자가 야심이 없으면 발전하는가. 안 그래, 남웅이?》
최일이가 건드리자 리남웅이는 버릇처럼 하품을 하였다. 《글쎄, 실장이 어떻든 관계있나. 각자가 노력할탓이지.》
《무슨 소릴 하는거야. 연구실에선 실장이라는 이 헤드(머리)가 기본이라구. 연구사들에게 어떻게 방향을 그어주고 어떻게 밀어주는가에 따라 실의 성과가 좌우되지 않나. 남웅이, 동무가 이런 리치도 모를 사람인가. 뻔해, 전 실장의 총애를 받던 인물들은 물론 신임실장이 그닥 달가울리가 없을테지.》
《최동문 새 실장이 오는게 기쁜게지?》 송춘도가 느물거렸다.
최일은 기탄없이 대답하였다. 《난 이젠 박사원생이지만 새 실장에게 어쩐지 동정이 가누만. 그가 여러 실들을 맡아오면서 다방면의 실력을 쌓았다고들 하는데 그건 어차피 검증을 거쳐야 하는게고, 어쨌든 〈손〉을 만들던 사람이 여기 와서 〈머리〉를 만드는걸 지도하자면 아마 좀 뻐근할걸. 이 마당에선 실력이 딸리면 관직은 어떻든 인정을 받지 못하거던. 새로 와서 어지간히 애를 먹을수밖에…》
《그나저나 또 들볶이게 됐군. 제 시간에 퇴근하긴 다 틀렸네!》
《하, 그러니 송춘도동무의 그 수공업도 이젠 볼장을 다 본셈이구만?》
《최일이, 당신도 어디 색시를 얻구 제 살림이라는걸 한번 펴보라구. 비로소 생활이란 무언가 하는 리치를 깨닫게 될걸! 그 기초에는 수입대 지출이란 주요 항목이 있지.》
《이봐, 봉황은 주려도 조이삭은 먹지 않아.》
《오, 그건 하늘나라에 사는 샌가?》
《땅바닥만 내려다보는 사람은 알수가 없지.》
《그래, 동문 역시 플라톤이야.》
송춘도는 한수 진 사람처럼 짐짓 누그러졌는데 사실인즉은 라파엘의 유명한 전경화 《아테네학파》중에서 근엄한 손짓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그앞에서 침착하게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빗대고 은근히 최일에게 한꼴 먹인것이였다.
최일은 그 비유가 그닥 싫지 않은듯 춘도를 내려다보며 한쪽 입귀를 쳐들고 웃었다.
구석에 앉은 지학준이는 MP3록음기 레시바를 두귀에 꽂고 선배들의 무익한 한담에는 아랑곳없이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웃몸을 실룽거리고있었다.
드디여 출입문이 삐거덕 열리더니 유연체계실의 임창만이 들어와 벌쭉 웃었다.
《안녕들하십니까? 저는 오늘부터 조종장치실에서 함께 일하게 되였습니다. 많이 배워주십시오.》
모두가 눈이 덩둘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7, 8년전엔가 큰 소자를 《구워먹은》탓에 리윤덕실장의 추궁을 받고 다시는 이 문턱을 넘어서지 않겠노라고 울분을 토하면서 문을 차고 나갔던 어제날의 실험공 임창만이 제법 신수가 멀끔해져서 다시 나타난것이였다. 키는 여전히 작은데 그사이 몸이 부쩍 가로 퍼졌다.
최일이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마치고 갓 연구실로 왔을적에 실험공 임창만이는 파동방정식같은것도 리해를 못하는 까막눈이였다. 최일은 그와 동년배였지만 말귀가 통하지 않아 내놓고 하대를 했었다.
그뒤에 임창만이는 수행장치실로 옮겨가 실험공노릇을 하였고 진수현실장을 따라 로보트실, 유연체계실로 옮기는 과정에 연구사가 되였는데 요즘에는 짬짬이 무슨 론문까지 쓴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는 주요명절때면 연구소적인 예술공연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근본을 알고있는 최일은 복도에서 만나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최일은 지금 임창만이가 년장자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양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랭소를 지었다.
《수현실장이 아직도 저 친구를 옆에 끼고다니는걸 보니 채 키우지 못한 모양이군.》
《그러게 말이야.》 춘도가 비죽이 웃었다.
임창만이 젊은이들쪽으로 다가오자 최일은 그를 외면하고 창문을 내다보았다. 막냉이벌인 학준이가 창만에게 의자를 권했다.
《잘들 있었소?》 창만이 싱글벙글하자 송춘도가 은근히 말을 건넸다.
《창만동문 수현실장이 끌어서 왔소, 아니면 자진해왔소?》
《어쩐지 실장선생하구 떨어지기가 싫더라구. 그래 이렇게 따라왔지.》
《그러니 동문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거요?》
《여- 춘도, 동문 뻔한걸 자꾸 캐물으면서 그래, 피곤하게-》
《하하, 최일동무.》 임창만이 곁에 앉으며 그의 무릎을 두드렸다. 《또 같이 일하게 돼서 반갑소.》
《나 역시…》
최일은 마지못해 대꾸하였다.
잠시후 신임실장 진수현이 작은 손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리윤덕부소장이 데리고 온걸 보니 소장은 또 앓는 모양이였다.
리윤덕이 소개를 하였다.
《유연체계실 실장을 하던 교수, 박사 진수현동무가 오늘부터 조종장치실 실장으로 동무들과 함께 사업하게 되였습니다.》
진수현이 어색한듯 약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리윤덕이 말을 이었다.
《수현실장동무에 대해서는 동무들도 대체로 알고있을것입니다. 소개는 략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실의 모든 성원들이 실장과 합심하여 조종장치실의 영예를 고수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자, 실장동무, 하고싶은 얘기가 있겠는데…》
부소장의 말에 진수현실장이 선자리에서 연구사들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을 한사람씩 만나보고싶습니다. 외출하실분들은 그전에 먼저 만나겠습니다.》
모두의 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진수현실장은 세포비서 리병섭과 의논하여 임창만의 자리를 정해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앞에서 좀 당황한듯 말했다. 《그럼 일들을 합시다.》
부소장은 나갔다.
최일은 무언지 모르게 허전하였다. 그는 조종장치실의 획기적인 전망을 펼치는 새 실장의 뜻깊은 부임연설을 기대했었는데 그 기회가 싱겁게 지나가버리고말았다.
최일이 박사원실로 돌아가 론문의 초를 잡아보느라니 마음은 여전히 싱숭생숭하였다. 좀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새 실장이 첫눈에 반할만 한 인물은 못되는것 같았다. 아, 좋은 실장 만나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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