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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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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961회 작성일 22-04-2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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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제 1 편 최 첨 단 목 표

4

정임이와 정선이는 해질무렵부터 아빠트마당에 내려가 기다리다가 아버지가 나타나자 량팔에 매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오면서도 저마끔 비행기며 도이췰란드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캐묻는것이였다.

진수현이 려행가방을 열고 사탕, 과자곽들부터 꺼낸 다음 은빛 나뉜옷을 꺼내놓자 두 딸은 어머니보고 어서 입어보라고 재촉하면서 경대앞으로 이끌어 옷맵시를 보아주었다. 딸들에게는 열쇠가 달린 두터운 일기장이 하나씩 차례졌다.

이윽고 도이췰란드 문자가 찍힌 진주빛함의 댕기를 풀면서 진수현이 알려주었다.

《이전부터 알고지내던 리흐터할머니네 집에도 들렸댔는데 이걸 기념품으로 주더라.》

진주빛함에서는 인조털가죽으로 만든 자그마한 코끼리와 《뿌-》라는 우스운 이름을 가진 곰이 나왔다.

정임이나 정선이는 이젠 장난감을 갖고 놀 나이는 지났고 또 이것들은 장식용완구였다. 그 애들은 실망을 감추려는듯 코끼리와 곰이 깜찍하다면서 빼앗을 내기를 하더니 인차 경대앞에 세워놓고말았다. 거울에 비쳐 코끼리가 둘, 곰이 둘로 보였다.

이윽고 맏딸 정임이가 저녁상을 들여왔다. 이젠 제법 엄마 일손을 도와주는 모양이였다.

그러자 정선이가 얼른 술병 뚜껑을 따고 잔에 술을 부었다.

《아버지, 먼길 다녀오셨는데 피곤 푸세요. 호호…》

《그래 정선인 요새 공부 잘하나?》

《아버지, 저 애 수학점수가 말이 아니예요. 이번 진급시험두 갈매기(3점)예요.》 정임이가 일러바쳤다.

《흥, 이젠 딱딱한 수학같은건 재미가 없어. 하고픈 애들이나 하라지 뭐.》

《정선이, 넌 부끄러운줄 알아야 해.》

《엄마, 뿌슈낀두 수학은 잘하지 못했대요.》

막내딸의 말에 나머지 세 식구는 기가 막혀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아버지가 조심히 캐물었다.

《그럼 정선인 장차 뭐가 되겠다는거냐, 설마 작가가 되려는건 아니겠지?》

《그건 생각중이예요.》 정선이의 침착한 대답이였다.

《허허, 그래?!…》

막내의 엉뚱한 소리에 아버지는 진정으로 놀란것 같았다.

리란희는 좀더 현실적인 문제를 내놓았다.

《정임인 래년에 교원대학 교양원과에 가고싶대요.》

《저 애야 어릴적부터 그랬지. 이담에 커서 유치원선생님이 되겠노라고 곧잘 외우지 않았댔소.》

그는 노상 흥겨운 기색이였다.

리란희는 정색을 했다.

《거야 철없을 때 소리구요. 웬간한 처녀들에게는 교양원이 좋을지도 몰라요. 우리 정임이야 학교적으로도 1, 2등을 다투는 앤데 응당 큰 대학에 입학해야 하지 않겠어요.》

《큰 대학에 가서 무얼 배운다?》

《그거야 이제 정해야지요.》 란희가 대답하였다.

《내용과 형식이 순서를 바꾸는것 같군. 그래, 정임이 생각은 어떠냐?》

정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글쎄요, 왜 그런지 난 어린애들하구 같이 어울리는게 좋아요.》

《여보, 정임이 마음대로 하게 놔둡시다.》

《저 애가 더 생각해볼 시간은 아직 있어요.…》

리란희는 외국에 갔다가 방금 도착한 남편과 옴니암니 따지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래간만에 깊은 잠에 들었던 리란희가 새벽에 깨여보니 남편은 벌써 책상우에 노트콤을 펼쳐놓고있었다.

란희는 그의 등뒤에 다가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여러 기종의 대규모프로그람론리소자에 대한 자료들이였다. 정보검색전문가인 란희는 그것이 남편의 유연체계실이 아니라 조종장치실에 필요한 최신자료임을 인차 알아볼수 있었다.

리란희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이전에 수행장치실장을 하던 남편은 그곳 일이 좀 펴일만 하자 이웃 부서인 로보트실을 걱정하는 기색이더니 짬짬이 그 부문의 학문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련관부문이기는 하지만 그곳 전문가들을 지도하는 수준에 오른다는것은 조련한 일이 아니였다. 남편은 그것을 해냈다. 그 덕분에 로보트실을 맡게 되였고 다음에는 또 유연체계실장으로 옮겨앉게 되였다. 유연체계실이 제 궤도에 오르게 되자 그는 작년부터 또 무엇이 안심치 않은지 이따금 조종장치분야의 자료들을 란희에게 요구하군 했었다. 그때 란희가 셈을 해본거지만 수자조종장치라는 학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하드웨어적측면에서는 회로, 장치, 제작, 요소, 기계제작 등으로 구분되고 그것들이 다시 15개의 과목으로 갈라져있었으며 쏘프트웨어측면에서도 전공기초로부터 프로그람, 운영, 보수에 이르기까지 역시 15개 과목이 있었다.

남편은 그 련관분야의 학과도 독파한듯 지금은 노트콤으로 조종장치부문의 첨단자료들을 훑고있다. 외국출장길에서도 유연체계뿐아니라 조종장치분야까지 관심해온 모양이였다.

도서관에까지 미쳐온 소문이 옳은것 같았다. 남편이 정말 이번에는 리윤덕이 부소장으로 되면서 내놓은 조종장치실을 맡으려는게 아닐가?

매번 새 연구실을 맡게 되면 2~3년동안은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느라, 새 돌파구를 여느라 여느때보다 더 고생하기마련이였다. 남편은 번번이 그렇게 과로한 까닭에 혈압이 높아지고 시력은 점점 떨어졌다. 그자신은 선천적으로 눈이 나쁘다고 하지만 란희는 후천적인 요인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여기고있었다. 남보다 책이나 콤퓨터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갑절이나 되는 까닭이였다.

리란희는 남편의 새벽작업이 끝나는 눈치가 보이자 그와 마주앉아 이번에 도이췰란드에 가서 눈치료를 받았는가고 물었다.

남편은 안경을 벗고 버릇처럼 손등으로 부석부석한 눈두덩을 문지르며 베를린에 있는 안과전문병원의 암실에서 진찰을 받던 소리를 하였다.

《…치료는 받지 않았소. 거기서도 특별한 처방은 없더군. 역시 보존치료를 권고하는데… 아무래도 나이 들수록 시력이 떨어지기마련이지.》

《의사들이 어떤 점을 주의하래요?》

《음, 그건 여러가지였소. 나중엔 몸을 덥게도 차게도 하지 말고 기압변동에 류의하고 가슴이나 목부위를 압박하는 옷은 입지 말라고 주의까지 주었소. 뭐 그러루한거요.》

《눈을 자꾸 피로하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소린 없던가요?》

리란희가 안타까이 물었다.

남편은 한숨을 지었다. 《그런 말도 하더군.… 여보, 걱정마우. 내 주의하겠소. 주의하면 별일 없다고 했소.》

《정임이 아버지, 이번에 또 새 연구실로 옮기게 될것 같지 않아요? 그런 소문이 돌던데…》

《아직은 생각중이요. 어쨌든 조종장치실 일이 잘돼야 우리 연구소가 허리를 펴겠는데…》

《…》

리란희는 남편이 조종장치실을 맡게 되리라고 직감하였다.

《이번엔 그만두세요, 예? 옛날부터 사람이 천냥이면 눈이 팔백냥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무리하다가 나중에…》

《그렇게 위험한 정도는 아닌것 같소.》

《그게 정말이예요?》

《응…》

이 순간 진수현은 자기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도이췰란드 의사들도 진찰을 하면서 실명위험과 안전의 계선이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긋지 못했었다.

그는 자기가 무리하지 않도록 조절하며 일할탓이라고 여겼다. 연구사업이나 콤퓨터와 멀어진 경한 로동같은건 상상할수도 없었다.

《여보, 내 이제부턴 주의하겠소. 그러면 별일 없다고 했소.》

《…》

리란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이 시점에서 남편을 멈춰세우기 힘들다는것을 느꼈다.

그는 남편이 그렇게 한생을 살려고 태여난 사람이라고 새삼스레 생각하였다. 어쩔수가 없었다.

리란희는 그런 남편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는 근심스러

웠다. 고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는 가정주부로서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는것도 그리고 남편이 집안살림에 어두우면 녀성다운 부드러운 일깨움으로 눈을 틔워주어야 한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남편을 부추겨 살림살이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는건 어림도 없었다.

리란희는 골똘히 무슨 궁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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