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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주신 송이버섯으로 만든 샤브샤브와 미국 경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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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4,760회 작성일 10-09-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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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북미산 송이버섯의 싯가는 파운드당 1백달러 이상을 홋가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쪽 국유림 내에서는 캄보디아 등에서 온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반자동 소총으로 중무장을 하고 자기들의 '나와바리'를 지키며 버섯 채취를 했을 정도로, 버섯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고, 그때엔 이곳에서 송이버섯을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거의 전량 일본인들이 수입해갔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정말 '세월 좋은 때'였지요. 거품이 한참 끼어 있을 때이니, 많은 이들이 그 거품으로 먹고 살았을 터입니다.

그렇게 비싸던 송이버섯 값이 일본경제가 눈에 띄게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확 떨어져 버린 것이 몇년 전 일입니다. 확실히 수요가 없으니 가격은 떨어진다는 자본주의경제 101 과목의 가장 기초 공식은 그대로 유감없이 역사에서 증명된 자기 가치를 보여줬습니다. 그 송이버섯 가격이 파운드당 20달러 정도로 떨어진 것입니다. 한참 잘 나갈때의 1/5 가격이 되었지요. 아무리 그래도 만만한 가격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지역 원주민(인디언)들이 송이버섯 채취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이젠 아무도 총 들고 위협하면서까지 그들의 버섯 채취를 방해할 사람들은 없으니까요. 사실 우리가 이곳에서 먹는 송이버섯의 많은 양이 이곳의 원주민들에 의해 채취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심심찮게 송이버섯들이 눈에 띕니다. 사실 송이를 사게 되면 피어나기 전에 바로 썰어서 먹는 게 가장 좋지요. 향도 너무 좋고... 그런데 이런. 잠깐 사이에 어머니께서 하사하신 맛있는 송이가 피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허걱. 이걸 어쩌면 좋은가 했는데, 딱 생각나는 게 있었습니다. 샤브샤브 해 먹자.

 

송이의 그 향은 너무나 좋아서, 그냥 어떤 와인이든 매치만 하면 되지요. 송이버섯에 어울리는 화이트라면... 향이 너무 아까와서 와인 대신 보드카를 마시는 것도 괜찮고(보드카는 정말 향이라고 할 만한게 없지요), 굳이 매치하는 향을 찾아 마시려면 봄베이 사파이어의 진으로 토닉을 하거나 스트레이트로 맞추기라도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 그 오묘한 향이 너무 좋아서 부케가 화려한 화이트보다는 좀 얌전한 걸로 맞춰보고 싶었는데, 아마 바디감은 조금 떨어진다 해도 이태리 알토아디제의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라던지, 실배너, 혹은 먼젓번에 마셔본 메이들라인 앤지바인 같은 품종도 좋을 듯 하고, 레드를 마신다면 보졸레의 가벼운 레드는 어떨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니면 아예 오리건산의 무게감 조금 있는 피노 느와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와인을 고르다가 해당되는 와인이 없어서... 두 가지를 꺼냈습니다. 하나는 워싱턴주산의 카버네 소비뇽, 그리고 또 하나는 보르도 전설의 빈티지라는 2000년도의 꼬뜨 드 블라이. 아내는 샤브샤브 준비를 쉽게 했습니다. 약간 얼린 고기를 매우 얇게 저며놓고, 국물을 만들고, 장을 만들고, 배추와 이런저런 야채들을 준비하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삼겹살 구이를 통해 대중화되어 버린 이동식 개스 스토브, 소위 '까스렌지'를 가져다가 놓고 국물을 올린 후에... 자. 이제 시작입니다. 하하.

 

먼저 딴 것은 우리 동네 와인. I-82번을 타고서 트라이시티로 들어가려면 하이웨이 12번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그 길목에 보면 눈에 띄는 와이너리들이 몇 개 있는데, 데저트 윈드 와이너리는 바로 그렇게 눈에 확 띄는 몇 개들 중 하나지요. 여기엔 몇번이고 들러본다 본다 하면서도 가보질 못하고 그냥 지나쳐야 했는데, 다음엔 꼭 들러볼 겁니다. 어쨌든, 이 녀석은 향과 맛이 풍부하고 진한 전형적인 카버네 소비뇽입니다. 아쉬운 건 약간 떨어지는 피니시인데, 그래도 이만한 가격에 구하긴 힘들다고 느껴집니다. 버섯의 맛과 굳이 충돌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어울린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샤브샤브에 투하한 고기와는 역시 꽤 괜찮은 궁합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딴 그랑 마레쇼. 허걱... 2000년 산이 죽지도 않았습니다. 이건 10년의 세월에도 꺾이지 않은 괴물입니다. 역시 그 빈티지, 명불허전은 명불허전이더군요. 일단 산도가 받쳐주고 있습니다. 사실 산도야말로 태닌만큼이나 중요한 레드와인의 뼈대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와인을 10년을 더 묵힌 후에 따도 훌륭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보르도 특유의 흙내음과 동물적인 느낌. 그러면서도 섬세한 감이 버섯과 잘 어울려줍니다. 그 새콤하면서도 입안을 가득 채우는 피니시가 오래 지속됩니다. 아, 버섯과 함께 할 와인을 찾은 것입니다. 아무튼 아내도 고개를 끄덕끄덕. 어머니께서 주신 송이버섯이 이렇게 와인과 함께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송이버섯으로 샤브샤브를 해 먹을 정도로 세월이 좋아진 걸까요? 아니면 이것은 또다른 거품 붕괴의 확실한 증거일 뿐일까요? 아직은 와인과 송이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이며, 집 모기지도 문제없이 붓고 있는 제 처지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거겠지요. 송이 가격이 떨어진 것처럼, 부동산 가격들도 떨어집니다. 집 장만의 최적기라는 광고들이 나오고, 숏세일과 차압 매물들을 헐값에 판매한다는 광고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띕니다. 문제는, 집을 떠안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보장하는 직장들이 없다는 겁니다. 아직도 동네를 돌아다니다보면 매물이라는 말뚝을 박아놓은 집들이 줄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시작된 2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무조건 꽁꽁 지갑을 닫아놓고 쓰지 않는다는 쪽에서, 지금은 조금씩 소비는 늘어난 듯 합니다. 하지만 한때 그들의 소비의 든든한 빽이었던 그들의 집은 이미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거나, 눈물을 머금고 내던져 버린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소비는 모기지 포기에서 오는 가용자금의 여유라고 봐야 하겠지요. 이 정도로 어느정도의 소비력이 미약하나마 되살아나는 데도 두 해가 걸렸습니다. 그것도 거품 다 빼고서.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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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parkling님의 댓글

bsparkling 작성일

송이와 와인..제가 좋아하는 피노 느와라..생각만 해도 행복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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