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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생 꿈은 판사, 일반고생 꿈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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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2,931회 작성일 10-10-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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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미영이(가명)의 꿈은 교사다. 미영이는 서울에 있는 한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닌다. 같은 학교 친구 중에도 교사가 꿈인 아이가 많다. 하지만 미영이는 꿈을 말할 때 눈을 반짝거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모르겠어요, 그냥 선생님요.” 왜 교사가 되고 싶냐고 기자가 몇 번이나 묻자, 미영이는 별걸 다 궁금해한다는 투로 시큰둥하게 답했다.

또 다른 열일곱 살 현수(가명)는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이다. 현수의 꿈은 판사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단다. 현수는 ‘구형’(검사의 형 요구)과 ‘선고’(재판부의 형 결정)의 차이도 정확히 구분할 줄 안다. 가끔 기자들도 두 단어의 쓰임새가 헷갈려서 오보를 내지만, 현수네 학교에서는 두 단어 뜻을 구분하는 게 신기한 일도 아니란다.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친구가 같은 반에만 한 손에 꼽고 넘친다.

    
ⓒ시사IN 포토
어떤 고등학교를 가는가가 그 학생의 꿈을 결정할까?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다. 외고 입시를 홍보하는 목동의 학원가 모습.

같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갑내기 미영이와 현수는 꿈에 관해서라면 다른 세상에 산다. 본인들의 꿈도 그렇지만 주위 환경도 그렇다. 미영이가 다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꿈으로 꼽은 직업이 교사다. 법조인은 12위에 머물렀다. 반면 현수가 다니는 외고에서는 법조인이 1위이고 교사는 6위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실은 외국어고, 일반고, 특성화고(옛 실업고) 세 종류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꿈이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지도 대조해봤다. 외고 소재지에 있는 일반고와 특성화고를 골라 외고의 결과와 견주어본 것이다. 그리고 지역별 대조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별로 전문직과 경영·관리직의 비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따져봤다.

     
 
이번에는 비교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을 꿈꾸는 비율은 외고에서 75.6%, 같은 지역 일반고에서 38.2%, 같은 지역 특성화고에서 3.4%로 나타났다(<표 1>). 외고생 넷 중 셋이 당연한 듯 ‘사회 지도층’으로의 진입을 꿈꿀 때, 일반고는 딱 절반만 같은 꿈을 꾸고, 특성화고 학생은 별종 중의 별종만이 같은 꿈을 꾼다.

<표 2>는 세 학교에서 학생이 꾸는 꿈 상위 10개를 추려 비교한 것이다. 외고는 법조인·외교관·학자·언론·방송·CEO·사업가 순서로 사회적 선망을 받는 전문직이 죽 나열된다. 교사와 공무원은 6, 7위에 가서야 등장한다. 8위에 오른 국제기구 전문가는 일반고나 특성화고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직업군이다. 국회의원, 대통령 등 정치인이 12위로 비교적 높은 순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일반고는 교사와 공무원이 단연 ‘투톱’이다. 외고와 일반고 조사 결과를 나란히 놓고 보면, 일반고 위에 교사와 공무원을 정점으로 하는 일종의 ‘유리 천장’이 있는 느낌마저 준다.

특성화고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대단히 ‘현실적’인 꿈이 선두권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헤어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등을 합쳐보니 디자이너 직종이 선두였다. 용접, 전기, 수질관리 기술자가 그 뒤를 이었다. 공무원과 회사원, 교사는 각각 3, 4, 6위.

세 종류 고교에서 교사만 10위권

특성화고에는 외국어고나 일반고와는 결이 다른 꿈이 여럿 보인다. 특성화고 순위표에서 8위를 보자. CEO나 사업가가 아니라 자영업이다. 같은 사업 영역이라 해도, 특성화고에서는 소상공인으로 꿈의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된다. 7위에 오른 연예인, 표에는 없지만 15위에 오른 프로게이머도 마찬가지다. 두 직업 모두 외고와 일반고에서는 순위권 밖이지만 특성화고에서는 주요 직업이다. 주위에서 롤모델을 발견하기 힘든 특성화고 학생들이 TV에서 롤모델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시스
특성화고 학생이 꾸는 꿈은 외고·일반고와 결이 다르다. 한 특성화고의 제빵 실습 장면.

세 종류의 고교 모두에서 10위권에 든 직업은 교사와 공무원 둘뿐이다. 외고에서는 6위와 7위, 일반고에서는 1위와 2위, 특성화고에서는 6위와 3위다. ‘안정적이되 사회 지도층으로 간주되지는 않는’ 두 직종을 두고 외고는 시큰둥했고, 일반고는 선망했으며, 특성화고는 언감생심 겁을 냈다.

꿈의 차이가 크다는 게 뻔한 얘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세 종류 학교의 성적이 너무 차이가 큰 탓이다. 일반고나 특성화고에서는 법조인이나 의료인처럼 최상위권 성적이 필요한 꿈을 ‘알아서 접는’ 현상이 나오는 것은 일견 자연스럽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더 선망받는 직종을 꿈꾸는’ 그림으로만 이해하고 말기에는 문제가 남는다. 고교 입시 과정에서부터 부모의 경제력 변수가 적잖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 대상이 된 고교 학생의 아버지 직업 분포를 조사해봤다. 그 결과 이번 조사에서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한 전문직과 경영·관리직 비율을 각 학교 종류별로 따져볼 수 있었다. 외고생의 아버지 중 사회 지도층(전문직과 경영·관리직)의 비중은 44.8%. 일반고에서 이 비율은 13.1%로 떨어지고, 다시 특성화고에서는 3.7%까지 추락한다. 반면 아버지가 무직인 비율은 정확히 추세가 반대다. 외고 0.5%, 일반고 3%, 특성화고 7.8%다. 고교 진학 경로가 집안의 경제력과 꽤 관련이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편 어머니의 직업 분포를 살펴봐도 재미있는 결과가 관찰된다. 사회 지도층 비중 역시 외고생의 어머니가 가장 높지만(순서대로 8.7%, 3.5%, 2%),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전업주부 비율이다. 외고생의 어머니는 64.7%가 전업주부인 반면 일반고는 49.1%, 특성화고는 31.5%로 단계적으로 처진다. 전업주부 비율은 각급 입시 과정에서 강력한 변수로 평가된다. 전업주부의 존재는 맞벌이를 할 필요가 없는 경제력을 증명함은 물론, 자녀의 ‘입시전략’에 온전히 전념할 수 있는 ‘매니저’가 있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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