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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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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196회 작성일 22-06-03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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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제 4 편 새세대들

4

신록이 짙어가는 6월 초순에 리윤덕이 호기있게 진흥기계공장에 나타났다. 그는 외국에 가서 유연체계도입에 필요한 여러 전자설비와 장치들을 사왔는데 특히 초정밀공구측정장치를 퍼그나 눅게 들여온것으로해서 자못 득의만면한 얼굴로 공장사람들과 연구사들을 대하였다.

원래 생산자측은 이런 초정밀공구측정장치 같은것을 팔 때에는 그것을 설치하고 시동시켜주며 사용법과 안전상문제 등에 대한 실습까지 주는 기술인원들을 친절히 따라보내는것이 상례였다. 기술인원들의 인건비가 비싸므로 이런 기술봉사료금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이였는데 리윤덕이 이것을 절약한셈이였다. 그가 기술봉사인원들은 필요없노라고 사절하자 시틋해진 중개업자는 그 장치를 시동하는데 필요한 자료도 주지 않았다. 장치와 함께 따라온것이란 보수점검일지와 블로크도 비슷한 계통도뿐이였다. 리윤덕은 이 초정밀공구측정장치 같은것은 얼마든지 시동시킬수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는 사올 때 한번 시동하는것을 본데다가 오랜 기간 수자조종장치전문가로 일해온 자기로서는 어떤 첨단장치도 품을 놓고 두루 훑어보느라면 시동방법쯤은 어렵지 않게 알아낼수 있다고 여겼던것이다. 외국과의 첫 거래에서 국가에 리득을 주게 된 리윤덕을 서관범사장은 여간 미더워하지 않았다.

진흥기계공장 지배인과 진수현도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리윤덕은 될수록 겸손하게 처신하였다.

《평가를 받기는 좀 이르지요. 이제 시동을 시켜봐야 하니까…》

그는 공구측정장치를 현장에 설치해놓고 여기저기를 다쳐보며 그 시동방법을 모색하였다. 며칠이 지나도록 시동이 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전자뇌수의 조종하에 움직이는 기구인데 어딜 어떻게 건드려야 그 뇌수가 말단부분에 지령을 하달하겠는지 쇠통 알수가 없었다.

그 내부를 료해하려고 철함을 열고 기판을 들여다본 리윤덕은 그만 놀라서 뒤로 자빠질번 하였다.

3개의 큰 기판에는 기종이 다른 CPU가 무려 4개나 들어있었는데 서로 협동동작을 하게 되여있었다. 그중 제일 중요한 세번째 기판은 소자들의 자호를 칼같은것으로 모조리 긁어 지워버린것이 아닌가! 생산자들은 누가 모방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따금 이런짓을 하기도 하였다.

윤덕은 눈앞이 새까매졌다. 도무지 그 속내를 알수가 없었다.

별수없이 봉사료를 지불하고 외국기술자들을 초빙해야 하겠는데 이제는 그 값이 저쪽에서 부르는대로 올라갈 판이였다. 이건 그야말로 혹을 떼려다가 오히려 한개 더 붙인셈이였다.

날이 갈수록 초췌해가는 옛 동창생을 본 진수현은 그를 따라 현장에까지 나와서 고무를 하였다.

《너무 걱정말게. 멀쩡한 설비인데 시동이야 못 시킬라구.》

《나두 처음엔 만만히 보구 달라붙었댔는데…》

리윤덕은 한숨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긴숨을 토하였다.

《이젠 손 들었네. 이 장치 설계자의 머리속에 들어갔다 나오기 전엔 어림도 없네.》

《그렇게 힘든건가?》

《글쎄 용빼는 수가 없어.》

쓴 입만 다시던 리윤덕의 뇌리에 홀연 한가지 생각이 감돌았다. 혹시 저 사람은 해낼지도 몰라?!…

어려운 이때 수현에게 의지하고싶어지는것이 자기로서도 놀라울 지경이였다.

지금 수현은 장치내부를 찬찬히 훑어보고있었다.

《세번째 기판은 어데 있나?》 진수현이 물었다.

《내가 좀 들여다보느라구 따로 떼놨네. 그래 어떤가, 시동시켜낼것 같나?》

《거야 두고봐야지.》 진수현의 신중한 대답이였다.

《자네가 손을 좀 대보겠나?》

리윤덕이 한오리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물었다.

《생각해보겠네.》

진수현은 어디까지나 침착하고 진지한 태도였다.

물론 윤덕은 그를 크게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덕은 회사로 떠나면서 소자들의 자호를 지워버린 세번째 기판은 수현에게 보여주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갔다. 만약 이 기판을 수현에게 지금 보여준다면 그는 아예 락심하여 이 초정밀공구측정장치에 다가설 엄두도 내지 못할것이였다. 수현이 여기에 일단 손을 붙이겠다고 나선 다음에 그 세번째 기판을 내놓는게 순서일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윤덕은 수현에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것 같지 않아서 한쪽으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회사에 도착하여 주저하던 끝에 사장에게 이 실태를 보고하고 이제라도 봉사료금을 지불하고 외국기술자들을 데려오는 교섭을 시작해야 할것 같다고 제의하였다. 서관범사장은 소태 먹은 상이 되여 그에게 퉁을 주었다.

《여보, 돈도 돈이거니와 대외적으로 망신이 아닌가 말이요. 괜히 희떱게 나서서 자체로 시동한다 어쩐다 하더니 이젠 코를 떼서 주머니에 넣게 되잖았소!》

서관범은 한참 그를 닦아세웠다. 사장도 무슨 신통한 다른 안이 있는것은 아니였다.

진흥기계공장에서는 진수현이 초정밀공구측정장치를 짬짬이 들여다보면서 절망속에 떠나간 옛 동창생을 생각하고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다는 알수 없었다.

지학준은 요즘 신바람이 났다. 프로그람작업에서 그의 발전이 제일 빠르다고 실장이 공정하게 평가했기때문이였다.

학준은 이젠 탐구하는 재미를 알게 되였다. 이곳 생활도 재미있었다. 그를 선망속에 바라보는 공장의 이쁜 처녀들도 있었다. 이편의 위치가 너무 높아보여선지 선뜻 가까이 다가올 엄두는 못내는것 같았다.

젊은 연구사들은 짬시간에 모래불에서의 배구처럼 2명이 한편이 되여 배구를 하였다. 공장 설계연구소 사람들이 시합을 걸어올 때면 학준네는 다섯명뿐이라 모자라는 선수 한명을 어디서 데려와야 하였다. 학준은 설계연구소의 오은경의 손목을 잡아 자기네 편에 제꺽 끌여들인다음 최일동지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만큼 애인이 대리하는게 응당하지 않은가고 론거를 세웠다. 배구 주장노릇은 이젠 학준이가 하게 되였다.

리과대학 교원들을 데리고 공장에 찾아왔던 지형원교수는 손자가 배구하는것까지 구경하였다.

학준은 둥둥 뜬 기분이였다.

오늘도 지학준은 MP3록음기 레시바를 두귀에 꽂고 빠른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거리며 프로그람을 짜나갔다. 한 젊은 기대공이 가까이 오자 학준은 《아, 이거 또 헝클어지겠군.》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더니 그를 못 본척 하며 계속 건반을 쳐나갔다. 그는 고도로 긴장된 작업을 하고있었다. 한편으로 음악을 듣는것도 무슨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돌격전의 군악을 듣는것처럼 마음을 앙양시키자는것이였다.

그에게 가까이 온 기대공은 재작년에 군대에서 제대된 후 단기강습을 받고 가공중심반을 돌리며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고있었다. 그는 작업하다가 또 무슨 조언을 청하자는것 같았다. 상냥하고 애교도 있는 《막냉이》학준에게 제일 말을 붙이기가 헐한 모양이였다.

《저, 학준선생…》

조심히 불러보던 기대공은 지학준이 들은척도 하지 않자 우두커니 서있다가 그저 돌아갔다.

이것을 곁에서 본 리남웅이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그 기대공의 뒤를 따라 가공중심반까지 갔다. 그 기대는 멎어있었다.

《고장입니까?》

리남웅이 친절하게 물었다. 야간강의때 이따금 출연하는 학자선생의 질문에 기대공은 무기의 고장을 퇴치 못하고 상관앞에 선것처럼 몸이 굳어져서 보고하듯 기대의 《증상》을 알려주었다. 원점복귀가 안된다는것이였다. 정말 기대가 행정말단에 이르러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웅이 그에게 수동방식으로 기대를 움직여보라고 하였다. 움직이는것을 보니 이상이 없었다. 프로그람도 정상이였다.

리남웅이 기대공에게 기대조작이 잘못된것 같지는 않다고 안심시키자 그는 오히려 더 초조해하였다. 무엇이 원인인지 더욱 알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때 뒤미처 나타난 지학준이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기대안에 숨어있는 말단스위치에 손을 넣어보라고, 아마 눌리운채 솟아나지 않았을거라고 기대공에게 귀띔하였다. 그의 진단이 옳았다.

기대가 다시 돌게 되자 학준은 새물새물 웃으며 기대공에게 소리쳤다.

《형님두 참, 날 찾으려면 더 큰 소리로 부르라요. 그래두 듣지 못하면 잔등에 한대 먹이구요.》

《허, 내가 선생님을 어떻게…》

《그렇게 높이 부르지 말라요. 우린 직종이 다를뿐 일한다는 면에서는 같구같아요.》

《선생은 창조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럼 형님은요?》

《난 일하지요. 물론 앞으로는 창조하려고 배우고있지요.》

그들을 쳐다보며 리남웅은 싱긋 웃었다. 그는 과제부책임자답게 동무들을 관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실장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여러모로 마음을 썼다.

어느날 아침이였다. 식탁에 앉은 진수현실장이 물그릇과 그 물면에서 반사된 해빛이 벽에 어룽거리는것을 번갈아보다가 중얼거렸다.

《참 신통한 원리거던. 〈자연은 가장 제약된 진로를 위한다.〉, 빛의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으니 그 경로가 제일 짧을수밖에…》

《당구알이 벽에 맞고 튀여나는것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촉기 빠른 지학준이 참견하였다.

진수현과 학준은 빛이나 운동하는 물체들의 공통적인 속성을 한참 론했다. 그것들은 어떤 평탄한 매질에 부딪쳐 운동방향을 돌릴 때 《목적지》와 제일 가까운 효률적인 길로 가는것이였다. 과학사에서 한세기동안 론쟁을 불러일으켰던 최소작용의 원리였다.

학준이 자기 견해를 덧붙였다.

《이상합니다, 실장선생님. 세상에 조물주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연은 마치도 어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것 같단 말입니다.》

《비유적인 표현이구만. 하지만 자연을 깊이 인식한 인간들의 사고는 틀림없이 합리적이고 서로 일치하는 수가 많지.》

《그렇습니다.》

지학준이 맞장구를 쳤다.

리남웅은 수현실장의 말이 오래동안 귀전에서 맴돌았다. 어째서 그런 소리를 했을가?

실장은 며칠째 공구측정장치를 살펴보고있었다.

리남웅은 그곳으로 찾아갔다.

진수현은 옛 동창생을 걱정하고있었다.

《그 사람 일이 참 안됐소.…》

리남웅은 리윤덕이라는 인간을 이젠 알고도 남았다.

《응당한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윤덕부사장은 국가자금을 아끼려다가 그렇게 곤경에 빠지지 않았소.》

《…》

리남웅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남웅동무, 바쁘지만 우리가 좀 도와줘야 할것 같소.》

진수현의 말이였다.

《그렇게 합시다.》

리남웅은 자기가 또 옹졸한 사람이 될번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래, 난 아직 멀었구나!…

문제의 초정밀공구측정장치에 연구사들이 드디여 손을 대려 한다는 기별을 받자마자 송화기계무역회사 서관범사장이 리윤덕을 대동하고 한달음에 공장으로 내려왔다.

리윤덕은 그새 두눈이 어웅하게 꺼져들어간것이 신색이 말이 아니였다.

서관범사장이 이전과는 다른 곰살궂은 소리로 《실장선생, 시동시켜낼것 같습니까?》 하고 물으며 두손을 마주 비볐다.

《리남웅동무한테 짐작이 있을겁니다. 이번 일을 주관하게 됩니다.》

진수현이 대답했다.

서관범은 어쩌면 자기 사위가 될번 했던 리남웅에게는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여러 공장사람들도 둘러서서 리남웅을 지켜보았다.

리남웅은 진수현에게 세번째 기판을 보아야겠다고 말했다.

진수현이 돌아보자 한켠에 서있던 리윤덕이 얼른 트렁크를 열고 그 기판을 꺼내놓았다. 생산국에서 소자들의 자호를 모조리 긁어버린 기판이였다.

그걸 보자 리윤덕이 그랬던것처럼 진수현도 남웅이네도 깜짝 놀랐다.

《이걸 왜 이제야 내놓소?》 진수현이 기가 막혀 윤덕에게 물었다.

《그새 내가 좀 연구하느라고…》

리윤덕은 소자들의 자호를 지워버린 기판을 선뜻 내보이지 못한 사연을 차마 입에 올릴수가 없었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진수현도 리남웅이도 모두 락심한 기색이였다. 소자들의 자호가 다 밝혀져있는 온전한 기판을 놓고도 그속의 프로그람을 해득하고 조작법을 알아내기가 어려운데 무슨 소자들을 썼는지도 모르는 이 기판을 놓고 대체 무엇을 알아낼수 있단 말인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당장 무슨 기적이 일어나는가 하고 둘러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그 자리를 떴다. 리윤덕은 현기증이 나는지 그 자리에 오금을 꺾고 주저앉았다. 그래도 서관범사장이 주인답게 연구사들을 위로하였다.

《실장선생, 너무 걱정마시오. 우리가 저질러놓은 일인데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지요. 외국기술자들을 부르겠소.》

《좀 의논해봅시다.》하고 진수현은 리남웅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포기하겠소?》

《…》

리남웅은 대답이 없었다.

《우리가 한다고 손을 댔다가 못하는 날엔 어떻게 합니까? 유연체계도입에 도리여 혼란이 생기겠는데… 일없을가요?》

송춘도가 걱정스레 말하자 리정철이 은근히 나무랐다.

《송동문 벌써부터 두렵소?》

《아, 매사에 신중해서 나쁠게 있는가.》

《한번 해봅시다. 이것두 다 코가 하나고 눈이 둘인 사람들이 만들었겠지요 뭐.》

지학준이 사뭇 선드러진 소리를 하였다.

리남웅은 말이 없었다.

며칠전에 실장이 하던 말이 돌이켜졌다.… 자연을 깊이 인식한 인간들의 사고는 틀림없이 합리적이고 일치하는 수가 많지…

하긴 이 장치를 만든 전문가의 생각도 우리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것이다.

남웅은 실장이 자기를 줄곧 지켜보는것을 느꼈다.

《시동시켜봅시다.》

그가 말하자 진수현실장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소. 신심을 가지고 착수합시다. 남웅동무, 이제부터 재창조를 해야 할것 같은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장치를 설계한 사람의 위치에 서서 사고실험을 해봅시다. 먼저 기계어들을 해득해야 할것 같습니다.…》

리남웅이 리정철, 송춘도, 지학준에게 분담을 주기 시작하였다.

그의 신중하면서도 여유있는 태도를 이윽토록 지켜보던 서관범사장은 진수현에게 귀속말로 새삼스레 물었다.

《저 사람이 꽤 시동시켜낼가요?》

《기다려봅시다. 나도 여러 나라 연구기관들을 좀 다녀보았지만 저 남웅동무처럼 뛰여난 젊은 실력가는 얼마 보지 못했습니다.》

《후유― 우리 딸년이 눈이 멀었지!》

《나두 처음엔 남웅동무를 별치 않게 보았댔지요. 정말 사람은 지내봐야 알겠습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오해나 다툼이 없겠습니까. 문제는 제때에 깨닫는거겠지요.》

《실장선생은 아직 모릅니까. 둘사이가 아주 갈라진걸?…》

《그러니… 사실이였군.…》

진수현은 자기 예감이 확증되자 낯색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우리 편에서 무슨 체면으루…》 서관범은 거듭거듭 한숨을 지었다.

그는 남웅이 ROM안에 있는 프로그람을 읽고 쓰고 할 빈 소자를 요구하자 한달음에 달려가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갔다가 철야전투를 하는 연구사들에게 공급할 후방물자들을 가지고 다시 공장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서관범은 남웅이네가 작업하는 곳을 조심히 엿볼뿐 방해될가봐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뒤전에서 빙빙 돌아갔다.

연구사들은 드디여 외국사람들이 짜넣은 0101과 같은 기계어를 아쎔블러어단계를 거꾸로 거쳐 원천코드로 전환시켜놓았다.

소자자호들을 긁어버린 기판과 그속에 들어있는 프로그람을 해득하는것은 여전히 난문제였다.

얼핏 보면 리남웅이 기판주위를 공연히 오락가락하며 그저 일없이 노는것 같지만 그의 머리속에서는 복잡한 사고실험이 진행되고있었다. 그는 건반들과 디프스위치들로부터 시작하여 가능한 조합 수천가지를 헤아려보고 그 순차를 변경시켜 다시 수만가지의 조합을 상상하며 이 장치설계가의 의도에로 접근하고있었다. 그는 이따금 진수현실장과 토론하며 암중모색의 고비를 넘기군 하였다.

진수현은 한구석에 성 쌓고 남은 돌처럼 우두커니 앉아있는 리윤덕을 론의에 끌어들였다.

《부사장동무,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석할수 있을가? 뭔가 떠오르는게 없소?》

그러나 리윤덕은 그답지 않게 소심한 태도를 보였다. 아주 맥이 빠진것 같았다.

진수현이 거듭 물었다.

《이 측정장치를 넘겨받을 때 시동하는걸 봤겠는데?…》

《보기야 봤지. 한데 조작법이 묘하더란 말이야. 그 사람들이 나를 앞에 세워놓고 어떻게 홀림수를 쓰는지…》

리윤덕은 자기가 목격한것과 생각되는 점들을 두루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얼굴에 약간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점차 그는 이 일에 팔을 걷고 달라붙었다.

진수현은 그가 실천으로 떳떳한 자기를 찾게 되기를 바랐고 그가 나날이 활기를 띠게 되자 제일처럼 기뻐하였다.

그런데 이전의 그 성미는 어쩔수가 없는 모양이였다. 리윤덕은 이전처럼 젊은 연구사들에게 해라를 붙이며 이것저것 지시하고 추궁하기까지 하였다.

원래 윤덕을 시답지 않게 보던 리정철이 어느날 저녁모임때 진수현에게 볼부은 소리를 하였다.

《윤덕동지가 끼여드니 도리여 불편합니다. 어찌나 들볶아대는지 생각을 집중할수가 없습니다.…》

《정철동무…》

남웅이 슬그머니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그만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정철은 한마디 더 하였다.

《이거야 남의 잔치상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는격이 아닙니까.》

《정철동문 뭔가 좀 착각을 하는것 같구만.》

진수현이 빙그레 웃으며 튕겨주었다. 《그게 어째서 남의 잔치상이겠소?》

《예?! 그럼… 아, 정말 윤덕동지 잔치상이군요?!》

정철이 진정 놀라서 하는 소리에 청년들은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내가 착각을 했습니다.》

리정철이 시원히 자신을 뉘우쳤다.

그 일이 있은 뒤 남웅이 윤덕에게 앞으로 K방식론문을 합작하자고 정식 제의하자 그는 만시름이 풀린 기색이였다.

시동하는 날이 가까와올수록 리윤덕은 더욱 사기왕성해서 《전반사업을 틀어쥐고 내미는 역할》을 했다. 하여 땅에 떨어졌던 위신을 어지간히 회복할수가 있었다.

실제로 큰 문제를 해결한것은 리남웅이였다. 그는 한달간의 고심어린 노력으로 사고실험을 끝내고 외국제작자의 장치설계를 완전히 파악하였다. 너무 무리하게 일한탓인지 얼굴은 해쓱하게 여위고 퀭한 두눈만 남은것 같았다. 다리를 끌며 비청비청 걸어다녔다. 뇌수는 체중의 약 2프로에 불과하지만 피가 온몸에 공급하는 산소량의 거의 20프로를 받으며 활동하는 까닭에 그의 체력소모와 피로가 그만큼 더 컸던것이다.

드디여 초정밀공구측정장치를 시동하는 날이 왔다.

진수현은 리윤덕이 시동을 주관하는 일을 의례히 남웅에게 양보할줄 알았다. 윤덕은 그런 눈치를 못 챈듯 솔선 나서서 기판들을 다시 조립하고 시동하는 조작을 해나갔다. 하긴 그가 이 일에서는 주인이라고 할수있었다. 연구사들과 공장 일군들, 기술자들이 둘러서서 시동작업을 주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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