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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2-17. 세네갈, 친미에서 친북반미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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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364회 작성일 22-05-0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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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류태영 박사

세네갈, 친미에서 친북반미로 전환

 

세네갈은 아프리카대륙의 서쪽 맨끝에서 대서양을 면하고있는 나라로서 인구는 1 253만명, 넓이는 19만 6 720㎢이며 감비아, 모리따니, 말리, 기네 등의 나라들과 린접하고있다.

세네갈에는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가 있으며 세네갈의 수도 다까르에서 배로 약 20분 걸리는 거리에 Goree섬(노예섬)이 있다.

15세기부터 300년동안 수많은 흑인노예들이 아메리카대륙으로 끌려갔는데 그들이 떠나기 전에 최종적으로 갇혀있던 곳이 바로 이 노예섬이였다. 여기에서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으로 1 000만명의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갔다.

노예무역의 비극적악행을 파헤친 영화 《뿌리》의 주인공인 쿤타 킨타도 감비아에서 붙잡혀서 세네갈의 이곳 노예섬에 갇혀있다가 미국으로 팔려갔다고 한다.

노예섬안에 있는 력사박물관에는 비참한 노예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유물들이 전시되여있는데 유네스코는 이 노예섬을 세계력사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세네갈은 인구의 94%가 이슬람교도이며 세네갈의 이슬람교는 중동지역과 아프리카 다른 지역들의 이슬람교와는 달리 토착화되고 세속적인 특이한 민족종교이다.

 

세네갈의 간추린 력사

 

력사기록에 의하면 세네갈땅은 B. C. 400년경부터 A. D. 120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력사속에서 손닝케족이 세운 가나제국의 령토에 속해있었다. 11세기경에 이르러 이 지역에 이슬람교가 전파되여 사람들이 이슬람교도로 개종됐다.

13~14세기에 말리국가가 세네갈을 지배했고 14~15세기에는 프리니족의 왕국이 세네갈을 통치했으며 15세기 중엽에 이 지역에 침입하기 시작한 뽀르뚜갈인들은 16세기초에 무역의 기득권을 획득하고있었다.

하지만 뽀르뚜갈의 뒤를 이어 네데를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렬강들이 침입함에 따라 이 지역을 둘러싼 치렬한 경쟁이 벌어지게 되였다.

1636년-1659년에 프랑스는 세네갈강어귀에 있는 작은 섬을 점령하여 《생루이》섬이라고 명명하고 프랑스군의 요새를 건설했으며 1677년에 네데를란드의 소유였던 노예섬을 탈취하였다.

그후 영국과 프랑스사이에는 17~18세기초에 세네갈지역 전역에 대한 령유권을 놓고 치렬한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세네갈은 1815년에 프랑스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되였다.

프랑스는 총독정치를 실시하여 여러 부족들의 소왕국들을 정복하고 지배령역을 확장하였으며 락화생재배와 수출을 위해 세네갈의 다까르항을 처음으로 개항했다. 그 당시 락화생은 《세네갈의 황금》으로 불리우고있었다.

1886년에 아프리카에 대한 동화정책을 확립한 프랑스가 1895년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를 하나의 통치단위로 만든데 이어 1902년에 행정수도를 세네갈의 다까르로 정함으로써 세네갈은 명실공히 서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식민지통치의 중심지가 되였다.

 

세네갈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국가창건

 

세네갈의 독립운동은 1928년에 프랑스 빠리 소르본느대학 류학생이였던 레오뽈드 쎈고르의 독립정신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쎈고르는 아프리카의 고대문화유산의 우수성이 현대의 유럽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발견하고 식민지인 세네갈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각을 갖게 되였으며 빠리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결합하여 독립운동의 핵심체를 만들었다.

서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의 식민지통치와 동화정책에 항거하는 길을 선택한 쎈고르는 아프리카인의 존엄성을 재발견하고 자주독립의 길을 열어나가는데 있어서 정치적문화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쎈고르는 정치적문화운동조직체를 창설하고 그 지도인물로 되였으며 세네갈민중의 독립운동을 더욱 격앙시켰다.

식민주의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이 고조되는 속에 1956년에 세네갈에는 내부자치정부가 수립되였으며 1957년에는 프랑스령 반자치공화국으로, 1958년에는 자치공화국으로 되였다.

그후 1959년 1월 세네갈은 말리와 통합하여 말리련방을 형성하였다가 1960년 4월 말리련방의 한 성원국으로 독립하였으며 8월 20일 련방에서 떨어져나와 독립하였다.

독립된 세네갈의 초대대통령으로는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레오뽈드 쎈고르가 되였으며 20년동안 집권하였다.

그가 20년동안 집권할수 있은것은 세네갈민중의 자주적삶을 귀중히 여기면서 민중들의 상호존중정신을 세워나아가는 정치풍토속에서 사회주의적생활제도에 기초한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세네갈이 아프리카에서 제일 평화로운 나라로 될수 있는 기초를 튼튼히 닦아놓았기때문이였다. 세네갈은 독립후에 아프리카에서 단 한번도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로서 지금까지 그 기록을 유지하고있다.

집권기간 쎈고르대통령은 아프리카문화의 전통주의와 아프리카의 사회주의리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문학작가로서 창작활동도 많이 진행하였다. 그는 노벨문학상수상자이기도 하였다.

쎈고르대통령은 극히 례외적인 지도자였다. 아프리카의 대부분 나라들이 권력이양을 쿠데타의 방법으로 진행하였지만 쎈고르대통령은 스스로 정권교체를 결정하고 20년동안 평화적으로 집권한 후에 역시 평화적으로 스스로 퇴임을 결정하였다.

쎈고르대통령의 정치적통치리념은 한마디로 세네갈국가의 자주적존엄과 민족애에 기초한것이라고 평가할수 있다. 그는 민족의 대단합을 지향하여 여러 부족들과 《이슬람교-그리스도교의 평화공존》의 대원칙을 통치리념으로 삼고 자기자신이 솔선 실천하여 민중들의 절대적호응을 받았던것이다.

쎈고르대통령은 아브두 디우프에게 20년 전통의 사회주의정권을 평화적으로 이양해주고 1980년에 권좌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쎈고르대통령으로부터 평화적으로 사회주의정권을 계승받아 세네갈의 제2대대통령이 된 아브두 디우프대통령은 1981년 1월 1일에 취임을 하였다.

하지만 세네갈 제2대대통령으로 취임한 아브두 디우프대통령의 정권은 집권초기부터 평화롭지 못하고 예상외로 많은 난관에 봉착하고있었다.

 

아브두 디우프대통령의 무원칙 절충과 제3의 길

 

세네갈에는 쎈고르대통령이 건설한 풍요로운 사회주의 20년시대가 있었지만 그뒤를 이은 아브두 디우프는 이른바 《제3의 길》을 택하고 무원칙한 절충을 시도함으로써 많은 혼란과 난관을 자초하였다.

디우프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무원칙절충으로 인하여 영국의 토니 블래어가 되고있었다. 쎈고르 전임대통령이 건설해놓은 사회주의국가의 라침판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헤매고있었다.

아브두 디우프대통령이 봉착한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그 원인과 해결책이 어떠했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디우프대통령은 집권초기에 헌법을 개정하여 복수정당제를 도입하였는데 그 결과 세네갈에 두개에 불과했던 정당이 갑자기 10개로 늘어나게 되였다. 서방의 제국주의자들은 이른바 《다당제선거전략》을 다른 나라에 대한 간섭과 지배수단으로 리용하고있는데 디우프대통령은 이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지 아니면 이미 미국에 매수된 상태였는지 모를 일이였다.

디우프대통령은 세네갈의 주요작물인 락화생수출에서의 부정부패로 하여 국민들의 신임도 잃었다.

디우프대통령의 집권기간 세네갈에서는 이전에 있어본적이 없는 내전도 일어났다.

카자망스주가 그 대표적인 지역이였다.

세네갈 남부에 위치하고있는 카자망스주는 아주 작은 주이지만 력사적으로 졸라족의 본거지이다. 그리고 졸라족은 세네갈에서 유일한 카톨릭교도들이다. 바로 이들이 이슬람교국가인 세네갈에서 독립을 주장하면서 무장투쟁을 선포하였던것이다.

사실 세네갈에서 극히 작은 지역인 카자망스에서 또 극소수에 불과한 졸라족출신 카톨릭교도들이 독립운동에 일제히 떨쳐나섰다는것은 의문을 자아내는것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개입, 세네갈이 사회주의정치로선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한 미중앙정보국의 공작이 없이는 불가능한것이였다.

실지 카자망스주의 독립운동은 아무 성과도 없이 다만 디우프대통령의 집권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서로 밀고 당기는 혼란속에서 수십만명의 사상자와 많은 리재민들만 발생시키였다. 카자망스주의 독립운동은 독립이 목적이 아니라 내전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였던것이다.

세네갈에서 오래동안 지속된 이 내전의 주동인물은 아브둘라이 와드였다. 디우프대통령은 큰 골치덩어리인 와드를 체포하여 감옥에 수감해놓았으나 서방의 압력에 따라 와드를 석방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와드는 서방이 세네갈의 차기대통령으로 지목하고있던 인물이였던것이다.

이렇게 서방은 세네갈이 사회주의로선에서 완전히 탈선하도록 졸라족의 카톨릭교도들을 내세워 《분리독립》이라고 하는 분쟁의 씨를 뿌렸으며 이에 추종한 디우프대통령은 쎈고르대통령이 세운 사회주의를 완전히 망쳐놓았다.

쎈고르대통령시기에 이루어놓은 종교들간의 평화와 공존의 력사를 완전히 무너뜨린 서방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초래된 분쟁과 리재민문제는 세네갈의 어제와 오늘, 미래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칠것으로 전망되고있다.

 

세네갈의 제3대 와드대통령은 앞으로 어디로 갈것인가?

 

2000년 3월에 실시한 선거에서 디우프대통령은 아브둘라이 와드에게 참패를 당했다.

세네갈의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아브둘라이 와드는 1974년부터 세네갈민주당의 당수로서 쎈고르대통령의 사회주의정권을 반대해온 인물이다.

그는 집권초기부터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을 자주 방문하고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는 등 친서방외교로선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친서방적인 외교에 대하여 아프리카나라들이 따거운 눈초리를 보내자 와드대통령은 이른바 《오메가 플랜》을 제창하여 선진국의 자본을 아프리카에 공동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선진국과 함께 개도국들모두에게도 리익이 된다는 괴이한 주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헌법을 개정하여 3선을 허용하는 법을 채택하게 한 와드대통령은 2007년 3월에 재집권하게 되였으나 그동안 쌓이고쌓인 부정부패와 부정선거에 대한 민중과 야당들의 항거와 반발에 직면하게 되였다.

그러한 가운데 2009년 11월 세네갈의 수도 다까르에서는 매일같이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거리에 밀려나와 반정부시위를 벌리였다. IMF대표가 임기를 마치고 세네갈을 떠나갈 때 와드대통령이 35만US$의 뢰물을 비밀리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폭로된것이다.

당시 와드대통령은 자기가 속해있는 부족과 친인척들에게 과도하게 치우치는 정치를 실시하고있었으며 정권의 부패는 극도에 이르고있었다.

이러한 세네갈에 갑자기 《이변의 징조》가 나타나고있다.

와드대통령이 사면초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친서방적인 외교에서 벗어나 아랍국가들과 우호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는 자기의 정치적행태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있다. 자연과학의 진화론자들의 말을 빈다면 진화과정에서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이른바 《돌연변화》가 발생한셈이다.

대표적인 변화들을 살펴보면 우선 2005년에 중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타이완과의 외교관계를 전격적으로 끊은것이다. 또한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반미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의지를 표현하고있는것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인 결단을 내리는것과 같은 이러한 행동은 이전에는 볼수 없던것이였다.

또한 와드대통령은 2010년 4월 4일 TV방송에서 세네갈에 주둔하고있는 프랑스군을 완전히 철수시키겠다는것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외세에 의존해온 력사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단호한 《돌연변화》적결단의 선언이였다.

한편 세네갈은 독립 50돐을 기념하여 수도 다까르주변에 뉴욕의 자유의 녀신상보다 더 높은 대형조형물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술진이 제작한것이다.

세네갈이 《아프리카 르네쌍스》의 상징이라고 자랑하는 이 조형물은 독립기념일을 계기로 제막되였는데 제막행사에 아프리카 20여개국의 수반들 특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표단이 참가하였다.

와드대통령은 제막식에서 기념조형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원과 조선기술자들의 노력으로 훌륭히 건립된데 대하여 깊은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이렇게 놓고볼 때 세네갈의 와드대통령이 늦게나마 쎈고르대통령이 선택하였던 사회주의로선으로 선회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렇다면 세네갈에도 희망의 밝은 빛이 찾아들것이다.

세네갈에서의 자주국가의 재건을 기원하면서 그 실현을 위한 세네갈민중들의 투쟁에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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