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연합이 모욕했지만 문성근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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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기온 영상 11도. 서울에 봄기운이 완연했던 23일 오후 영화배우 문성근(58)씨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나타났다. "국민 화났거등? 야(野) 합쳐!" 피켓을 든 채로.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무려 6개월간 전국을 돌며 야권단일정당운동을 펴고 있는 그는 이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서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곧 환갑을 맞이하는 나이였지만 청년처럼 웃으며 기자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말고도 '국민의 명령 백만민란' 회원 100여 명은 국회 앞에 저마다 형형색색 피켓을 들고 나타나 1인시위를 벌였다. 어떤 이는 '미친 등록금'의 문제를 제기했고, 또 어떤 이는 '구제역 파문, 정부는 침묵하느냐'고 따졌으며, 올바른 역사교육과 조중동 방송의 허가를 취소하라는 주장도 들고 나왔다. 슈퍼스타K 방식의 공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정치권에 대고 국민이 직접 지른 셈이다. 집회의 형태로 늘 같은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했던 양상과는 자못 다른 분위기였다. 자유로워 보였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고. 서고 싶으면 서고, 앉고 싶으면 '사알짝' 앉았다 일어나기도 하면서.
출입하는 문만도 여럿 되는 '광활한' 국회 앞에서 각자 서로 다른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든 '점(사람)'들이 '선'과 '면'을 이루며 '야권연대'를 주문하고, 단일정당으로 2012년 선거국면을 돌파해 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새는 꽤 이채롭게 보이기도 했다.
물론 문성근씨 같은 주연급 배우의 출연엔 조연과 단역이 함께 받쳐줘야 영화가 힘을 받듯이 이날 시위에는 수많은 조연과 단역이 함께 뒤엉켰다.
"저들이 획책하는 게 이런 거다. 2012년 대선에서 보수진영이 친이·친박 후보 2명으로 분열됐을 때 야5당은 단일후보, 빨갱이를 대변하는 단 한 명의 후보를 내서 승리하자는 거다. 만약 선거에 지면 '부정선거'라 주장하면서 '백만 민란'이 폭동으로 변질될 게다."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열변을 토했다. "김일성 일가에게 대를 이어 충성! 죽창과 횃불로 반란을 선동하는 문성근, 내란목적 선동혐의로 즉각 구속하라"고 적힌 현수막 뒤에 줄지어 선 80여 명의 노인들은 "옳소"를 연호하며 추임새까지 넣었다.
같은 시각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벌어진 살풍경이다. 야권단일정당 창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백만 민란'에 발끈한 수구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란'의 자유로운 1인시위를 훼방할 태세를 갖춘 게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남침용 땅굴을 찾는 사람들'·'납북자가족모임'·'자유북한운동'·'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 등 5개 수구보수단체 회원들은 "무상급식 반대" 등의 1인용 팻말들을 들고 나와 무작정 시위를 방해하려 들었다. 의도적으로 노인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고 그 과정에서 화가 난 민란 측 노인들은 수구단체 관계자에게 침을 뱉기도 했다.
둘 다 모두 임의동행 형식으로 서울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까지 갔지만 결국 욕을 해댄 50대 남자가 민란 측 노인들에게 사과해 일단락됐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날 수구단체들은 작정하고 민란을 훼방할 목적으로 나섰다. 실사출력으로 사진을 크게 뽑아 약 1m 높이의 플래카드를 만든 그들은 문씨의 부친 고 문익환 목사와 모친 박용길 장로가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모습을 걸고 보란 듯이 비난했다. 욕설과 삿대질은 기본이었다.
"백만 민란은 제2의 빨치산 만들기... 문성근은 북에서 기쁨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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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문성근이 백만 민란 퍼포먼스에서 죽창과 횃불을 든 것은 유혈 폭동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려는 술책"이라며 "명백한 내란목적 선동 혐의로 즉각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수구보수단체인 '라이트코리아'와 '녹색전국연합'은 지난 1월 문 대표를 내란예비·음모·선동·선전 및 국가보안법·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시대착오적인 '색깔론'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들은 "문성근, 이 자가 대한민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인기 연예인이라는 직함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며 "종북좌파 세력을 하나로 규합하여 이 땅에 다시 종북좌파 정권을 세우려는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정일이 그리도 좋으면 북괴로 가서 기쁨조 활동을 하면 문익환(문 대표의 부친)에 이어 자신까지 영웅 칭호를 받지 않겠냐"며 문 대표 개인에 대해서도 조롱을 퍼부었다.
이 기자회견을 주도한 추 사무총장도 노골적으로 적대심을 드러냈다. 그는 "백만 민란은 대한민국을 1950년대로 되돌리려는 운동이다, 쓰레기 같은 문성근 등을 정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문성근의 아버지는 김일성에게 충성했고 어머니는 김일성 죽은 1년 뒤 김정일을 찾아갔고 문성근 본인도 김정일과 악수하며 웃었다"며 "이런 ××가 대한민국 국민 맞냐"고 비난했다.
2008년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도 그가 '백만 민란'을 재구성하는 주요 소재였다. 그는 "백만 민란을 하는 이들이 광우병 폭동을 일으켜 광화문과 시청광장을 장악했던 이들"이라며 "북한이 천안함을 피습했을 때도 이명박 정권과 오바마 정권의 합작품이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문성근과 같은 노빠"라고 주장했다.
추 사무총장은 이어, "우리는 문성근의 정체를 모르는 순진한 민간인들을 위해 나왔다"며 "저들은 제2의 빨치산을 만들려한다"고 주장했다.
"저 할아버지들, 제대로 된 역사교육 받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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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민란' 회원 일부는 이들과 격렬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웃으며 넘기는 쪽을 택했다. 때론 "여러분들, 친일인명사전을 한번씩 읽어보시라",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든다고 애국자가 아니다"고 '충고'를 건네는 이도 있었다.
'조·중·동 방송'을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을 걸고 나온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런 모습도 민주주의"라며 "다만, 저분들이 동원되지 않았길 바란다"며 여유롭게 현 상황을 받아넘겼다.
또 "조·중·동이 비정상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종편을 따내고, 소·돼지가 1천 마리 이상 생매장되고, 국가정보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을 불법사찰하는 상황에서 세상이 너무 조용하지 않냐"며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스타K방식으로 야권단일정당 단일후보를 내자"는 구호를 목에 건 김두수 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는 "단순한 퍼포먼스였던 '죽창'과 '횃불'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상상력이 대단하신 듯 하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또 "저분들만큼의 상상력을 야권이 발휘했으면 좋겠다"며 "덕분에 무미건조할 수 있었던 이 행사가 나름 주목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경기도 오산에서 온 이다미 학생(고3)은 "저 할아버지들은 친일파들의 득세 속에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지 못해 그런 것 같다"며 "학생만 역사교육을 받을 게 아니라 어른들도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사회교육 차원에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처구니 없는 모욕을 당한 문성근씨는 상당히 화가 났을 법도 한데 그냥 웃었다. 웃지 않으면 뭘 어쩌겠느냐는 표정으로. 그렇게 오후의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김해을, 야권단일정당 필요성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 [현장인터뷰] 문성근 '백만민란' 대표 | ||||||||
"정당 합치는 운동이라고 설명하면 '아! 합치기만 하면 얼마나 좋아!'라고 하신다. 그런 국민적 요구를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제는 알아야 한다. 김해을 문제는 야권단일정당의 필요성을 확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 아닐까?"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야권단일정당 창출을 호소하는 배우, 문성근 '백만 민란' 대표는 23일 오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국민 화났거등! 야(野) 합쳐'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있었다. '1인 시위'였지만 주변엔 '응원군'이 가득했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 중 일부는 그에게 싸들고 온 도시락을 전달하거나 따끈한 음료수를 건넸다. 문 대표는 여전히 야권단일정당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의 마음이 '야(野) 합쳐'로 쏠려 있고 각 진보정당 지역위원회도 '백만 민란' 운동에 호의적이란 평가다. 무엇보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4.27 김해을 재보선 후보 공천을 두고 갈등을 빚은 사례가 야권단일정당이 필요한 결정적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음 선거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지도부 간 지분 나누기식 단일화 협상으로 불출마를 종용받는다면 양보가 쉽게 되겠나"라며 "그래서 더욱 단일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단일정당 안에서 경선을 하면 (김해을과 같은 상황이)아무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야권의 정당구조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아울러, "이제는 직접적으로 정당과 국회의원에게 요구할 때가 온 것 같다"며 "앞으로 야권단일정당을 만들라는 호소를 담은 이메일을 각 지역구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에게 보내는 운동을 펼 생각"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문 대표와의 일문 일답이다. - 현재 '백만 민란' 회원 수가 7만 명이 넘었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우리로서는 (회원 수가)7만3천명이 넘었으니까 이제는 직접적으로 정당과 국회의원에게 요구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내가 전국을 2-3바퀴는 돈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야권단일정당을 만들라는 호소 이메일 보내기 운동을 펼 생각이다. 회원들 중 자기 거주지역에 지역구 의원이 있다면 그 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에게 직접 이메일로 호소하는 운동을 할 것이다." - 요즘 길거리에선 주로 무슨 얘기를 듣나. "정당 합치는 운동이라고 하면 '아, 합치기만 하면 얼마나 좋아!' 하신다. 그런 국민적 요구를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제는 알아야 한다. 또 지역에 가면 진보정당 지역위원회가 협조를 많이 해주신다. 직접 나오셔서 수고 많다 격려도 해주시고, 우리 운동의 진정성에 대해 시민들에게 전달도 해주신다. 그렇게 직접 나서주시는데 왜 못 합칠까 하하하." - 김해을 문제는 어떻게 봤나. "야권단일정당의 필요성을 확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 아닐까? 정치에는 당연히 경쟁이 필요한 것이고, 정당끼리 자유경쟁하는 걸 뭐라 할 수도 없거니와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것이지만... 여하튼 좀 그랬다." - 친노는 김해에서 단결할 수 있을까. "우리(백만 민란) 입장에서는 단일후보가 만들어지면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일화 과정에 개입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우리 운동의 정신에 맞지도 않고." - 김해을 사건을 친노의 분열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뭐 그렇게까지 볼 거 있나. 그냥 섬세하게 잘 얘기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경험은 쌓은 게 아닌가 싶다. 그만큼 단일정당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이런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만일 지구당위원장이라면, 다음번에 나한테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잇는 상황이 됐을 때 뭘 도울 수 있을까? 내가 출마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도부 간 지분 나누기식 단일화 협상으로 출마하지 말라고 했을 때 대의를 위해서는 당연히 누군가를 위해 양보해야하지만, 그게 될까? 그리고 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단일정당이 필요한 거다. 단일정당 안에서 경선을 하면 (김해을과 같은 상황은)아무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야권의 정당구조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승산이 있는 단일정당 방법이 있는데 왜 자꾸 승산이 떨어지는 후보연대 전술만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요즘엔 조승수와 정동영도 연대를 하는데 못할 사람이 어디 있나. 지난 20년간 진보정당이 주장한 정책, 민주당이 다 받으면 된다. 그렇게 다수당이 돼서 제대로 된 진보민주정치 해보자는 건데 그런 게 왜 안 될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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