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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향해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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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013회 작성일 11-04-0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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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 님의 글

정의를 향해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글쓴이 : 스나이퍼                   날짜 : 2011-04-05 (화) 11:49 조회 : 1031 추천 : 85 비추천 : 0 btn_singo2.gif btn_prin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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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기 위한 사색의 글이다. 어떤 정답도 없는, 명쾌함도 없는 그런 글이다. 인간의 삶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는 글이다.

정의를 향해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정의에 벗어나는 길을 갈 수가 있다. 예외는 없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잘못된 판단, 용기의 부족, 의지의 결여로 거짓과 불의에 타협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인간이 있다면, 그가 바로 살아 있는 신이다.

김대중의 길

김대중은 87년 양김 분열에 책임이 있다. 불의가 승리하는 데 기여를 했다. 92년 대선이 끝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갔다가 국내로 돌아오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었다. 통합민주당은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이건 분열행위였다. 동교동계가 국민회의로 모두 당적으로 옮긴 뒤에 남았던 통합민주당 사람들에게는 원한이 생겼다. 분열의 상처다. 그러나 김대중이 향했던 길은 정의로 가는 길이었다. 비록 길을 벗어나기도 했지만, 정의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을 향했다.

완고한 교조주의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군부독재세력의 주역이자, 부정축재의 부패와 지역패권을 휘두른 김종필과 연합정권을 출범시킨 김대중의 행위는 불의로 비판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김대중을 존경한다면서 타인을 향한 비판에는 뾰족한 잣대를 들이대는 그 이중성이야말로 불의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대중의 삶은 총체적으로 정의를 향한 길이었다. 그러나 때로 불의와 타협하기도 했던 꾸불꾸불 걸어간 길이었다.

인간의 삶은 직선이 아니다.

노무현의 길

97년 국민회의에 입당하기 전 노무현의 길은 외로운 길이었다. 통합을 외치면서 3김청산을, 그리고 지역주의 청산을 외쳤다.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김대중의 길만이 정의라고 외치는 지역주의자들에게 노무현은 이단의 길을, 불의의 길을 걸었던 사람일 뿐이다.

그런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전적으로 시민들의 힘 때문이다. 후단협이 흔들고, 김민석의 배신으로 흔들고, 그렇게 사방에서 노무현을 흔들었다. 노무현이 걸었던 길은 작은 오솔길이었고, 그 길은 자갈투성이의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정의를 향하는 길은 결코 편안한 길이 아니다.

독수리 오형제

김대중이 국민회의를 만들었을 때 김부겸, 김홍신, 박계동, 이철 등은 '3김청산'을 목표로 신한국당으로 갔다. 이들은 충분히 김대중을 미워할 근거를 갖고 있었다. 국민회의를 만들어서 통합민주당을 박살낸 사람이 김대중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을 미워했던 이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김원기, 노무현, 원혜영 등은 '정권교체'를 목표로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단지 판단의 차이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질 때 독수리오형제는 다시 민주진영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김부겸을 향해서 신한국당으로 갔던 사실을 근거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되돌아온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삶을 일관되게, 직선으로, 정의롭게 살았냐고 묻고 싶다.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되돌아온 사람은 결코 불의를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정의를 향하는 길은 단 하나의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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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길

92년 김대중이 압도적으로 뒤지고 있을 때 유시민은 조순대안론을 이야기했다. 아직도 이걸 들먹이면서 유시민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노무현도 유인태와 함께 조순을 찾아갔었다. 나 역시 그 시대에는 유시민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면 유시민과 나는 정의롭지 않은 사람인가? 오직 김대중만이 선이라고 외치는 그대들은 항상 정의로웠는가?

노무현이 위기에 빠졌을 때 개혁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개혁당 간판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민주진영 단일후보였다. 그리고 개혁당 문을 닫고 열린우리당을 향했다. 아직도 개혁당을 해산한걸 두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 쫌스럽다.

열린우리당이라는 전국정당, 국민통합정당을 건설하자는 대의가 있었다. 그래서 천신정이라는 민주당 탈당파, 독수리오형제의 한나라당 탈당파, 개혁당이 함께 건설한 정당이 열린우리당이다. 개혁당을 해산하고 우리당에 들어가는게 시대정신이었다. 유시민은 그 길을 따라갔을 뿐이다.

열린우리당이 해체될 위기에 처했을 때 유시민은 끝까지 당을 사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창당 주역 천정배가, 다시 정동영이 나가고, 김두관이 나가고, 마지막에는 이해찬 마저 탈당해버렸다. 대세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 노무현은 유시민을 불러 대세를 놓치지 말고 따라가라고 권유했다. 늘 소수파의 설움을 겪었던 노무현에게 유시민이 같은 고생을 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유시민도 노무현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우리당 해체에 동의했다. '대의'가 '대세'에 고개 숙였다.

과연 정의로움을 이야기하면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끝까지 우리당 사수를 외쳤던 그들은 정의로웠다. 그러나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일 뿐이다. 정의를 향하는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유시민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해 해산했던 개혁당의 꿈을, 열린우리당이 박살난 지금 참여당을 통해 잇고 있다.

정의를 향하는 길은 잘 닦여진 길이 아니다. 물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 고난의 길이다.

천신정의 길

정동영은 희망이었다. 천정배도, 신기남도 우리들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용기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극구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혁정당을 건설하겠다며 깃발을 들었다. 나는 기꺼이, 그리고 즐겁고 달뜬 마음으로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응원했다. 그리고 천신정이 쳐든 깃발에 한나라당의 독수리오형제가 모이고, 유시민의 개혁당이 모였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건설됐다.

그러나 신기남을 제외한 정동영과 천정배는 자기 스스로를 배신했다. 자신들이 주도해서 창당했던 전국정당 우리당을 해체하는 데 앞장섰다. 전국정당 우리당이 있는데, 거기에 또 무슨 통합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87년 김대중이 획득했던 표를 얻고 이명박에게 박살이 났다.

정동영은 전혀 정의롭지 않았다. 최소한 자기가 내걸었던 명분을 자기 스스로 짓밟는 행위를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동영이 노무현을 배신했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해체에 앞장선 정동영은 명백한 불의다. 그런 정동영이 자신의 선택을 반성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잘못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자기 반성이 결여된 정동영은 그래서 여전히 불의의 길을 걷고 있다..

신기남만이 길을 잃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그러나 시련의 길이다. 정의를 향하는 길은 원래 시련의 길이다.

손학규의 길

인간은 누구나 잘못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되돌아오기도 하고,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김문수 이재오는 한 때 정의로운 길에 섰으나 지금은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불의롭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강자의 힘을 빌리거나 스스로 강자로 행동하는 그 자체로 정의가 아니다.

이인제가 신한국당이라는 강자의 품에서 안락한 정치를 하다가 경선불복을 거쳐 민주당으로 왔다. 당시 민주당은 집권당이었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건너온 이인제는 명백한 철새다. 정의롭지 않다. 그는 노무현에 의해 심판을 받았고, 초라한 늘그막 정치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손학규는 이인제와 다르다. 그가 신당으로 건너왔을 때에는 먹을 것도 별로 없는, 다 망해 쓰러져가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누추한 민주개혁이라는 깃발을 든 세력이 있었을 뿐이다. 오랫동안 강자의 길을 걸어갔던 손은, 자기가 원래 서있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경포대'를 반성했고, 노무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아직 그가 명백하게 정의를 향하는 길을 걷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또한 그는 정의의 길섶에서 서성거리고 있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서있는 뒤에는 낭떠러지가 있는지도 모른다.

정의를 향하는 길은 용기와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이인영, 임종석, 김민석의 길

배신자의 상징 김민석은 명백하게 불의의 길을 선택했다. 그 모든 비극은 삼국지의 계략과 술수의 정치를 너무 일찍 배워버린 386시대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김민석과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이인영도, 임종석도 너무 일찍 권위주의가 체화되었고, 그 시대의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패권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전국적 조폭이든 동네조폭이든, 정의롭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강자의 횡포는 그 어떤 형태도 정의롭지 않다.

때로는 자신이 정의의 길을 걷는지, 불의의 길을 걷는지 분간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해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때도 있다.

정의를 향하는 길은 충분한 휴식과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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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의 길

98년 노무현이 이봉수를 불렀다. 함께 일을 하자고 그랬다. 그래서 이봉수는 지역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경상도 땅에서 국민회의 깃발을 들고 도의원에 출마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다시 민주당 깃발 들고 김해시장에 나섰다가 떨어지고, 열린우리당 깃발로 총선에 나섰다가 떨어졌다.

이런 그가 2007년, 그 혼돈스럽던 시절, 누구도 자신의 길을 정의롭다고 감히 말하기 힘들었던 시절, 창조한국당에 몸을 실었다. 그 시대 정치를 했던 사람치고 노무현 욕하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누가 있으랴?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을 빼놓고 노무현을 욕하지 않았던 정치인은 누가 있으랴?

큰 바람이 불면 정의를 향하는 길은 잠시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길을 잃고 숲을 헤매기도 하고, 잘못된 길을 걷기도 한다.

단 한번 잘못된 길을 갔다가, 그러나 다시 고난의 길로 포장된 정의를 향한 길로 돌아온 이봉수를 향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봉수가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민주당의 모든 정치인은 죽어 마땅할 것이고, 그 누구도 민주개혁을 떠들 수 없을 것이며, 모든 입을 봉해버려야 마땅할 것이다. 한나라당 일당 독재 국가를 만들어야 마땅할 것이다. 참여당 일당 독재 국가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이봉수를 비판하는 당신은 얼마나 정의로운 삶을 걸었는가?
단 한번의 실수도 없는 직선의 길로 정의를 향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이봉수를 외면하고, 대의를 외면하고,
유시민과 참여당이 향하는 고난의 길을 외면하고 뒷짐지고 있는
모든 참여당원들과 시민광장 회원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무엇하러 참여당 당원이 되었으며,
무엇하러 시민광장 회원이 되었는지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이봉수를 비토하고 외면하는 당신이 걷고 있는 정의의 길은 직선인가?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정의를 향하는 길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울퉁불퉁하게 생겨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걷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용기가 없어서, 의지의 부족으로 정의의 길을 쳐다보기만 했었고,
때로는 정의롭지 않은 행위를 묵인도 했으며,
때로는 정의를 외치기도 했으며,
그렇게 여전히 비틀거리며 정의를 향하는 길을 찾고 있을 뿐이다.

(큰 틀에서 명백하게 정의롭지 않은 세력은 한나라당이다. 나머지 정파는 연대해야 할 세력이다. 작은 틀에서는 경계를 너무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내 비록 민주당 세력과 사안에 따라서 싸우지만, 우리가 큰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과 손잡고 가야하는 것 역시 명백하다. 비록 하나의 정당에서 함께 존재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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