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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암살과 그의 UFO 기밀문건 요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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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UFO1
댓글 0건 조회 1,778회 작성일 11-04-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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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케네디 UFO기밀문건 요구로 인해 암살당했나?

관련 외신보도에 대해

 

 

 

 

 

                                       -글.카페지기 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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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9일자(현지시간으로 18일)AOL뉴스와 미국과 영국의 주요언론들은 미국역사에서 왕족으로 통했고 카멜롯의 전설로 불리우는 존.F.케네디(1917-1963) 미국 대통령의 암살이 UFO에 대한 기밀문건 열람을 요구한 원인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CIA기밀 해지 문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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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과 국내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이 기밀문서는 케네디 전기 작가 윌리엄 레스터가 ‘정보공개법’(FOIA)에 따라 공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레스터는 ‘JFK and the New Frontier’책의 집필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요구했고 문제의 타다남은 기밀문건을 법원을 통해 받았는데 이 문서에는 대통령인 케네디가 암살 10일전 미 CIA에게 UFO관련 기밀문건을 요구한 대목이 나온다.

 

문서에는 불에 타다 만 서류상에 랜서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케네디’를 뜻하는 암호로 당시 미 CIA국장은 문제의 “랜서가 CIA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해왔다”고 적고 있어 UFO기밀문건 자료 요구를 한 케네디에 대한 미 CIA의 다시 의도와 정황을 엿볼 수 있게 했다.

 

UFO기밀문건 요구를 한 케네디는 이후 10일 뒤 텍사스 댈러스에서 의문의 암살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은 미국 음모론의 정점에 서 있는 음모의 사건이다.

 

 

 

 

 

왜 그는 UFO에 관심을 가졌을까?

 

 

케네디가 암살되던 1960년대 시기는 미-소 냉전시대로 쿠바를 놓고서 심각한 대립이 한창이었던 때였고 결국 이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존 F.케네디였다. 그는 전쟁(戰爭)보다는 평화(平和)를 주장했으며 이후 월남전에 참전한 미군의 조기 철수을 주장하게 된다.이는 전쟁으로 막대한 돈을 벌고 있던 유대인 군수업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냉전시기 구 소련의 후르시초프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핫 라인을 통해 미국과 소련 영공을 향해 날아오는 핵미사일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시도했는데 그 와중에 핵미사일로 오인돼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UFO를 ‘피너클 누크 플래시’(Pinnacle Nucflash)라는 암호로 양국 핫라인 정보기관이 상호 관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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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냉전이 쿠바사태로 격화되던 시기 존 F.케네디는 미국과 구소련 영공을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UFO가 핵미사일로 오인해 3차대전이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을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우려는 다시 미 CIA에 UFO기밀문건을 요구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케네디가 UFO에 대한 관심보다는 미-소 냉전 시기 쿠바위기로 격화돼 3차대전의 우려가 터져나오던 당시에 냉전상황에서 핵미사일로 오인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크게 우려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케네디의 진심은 미 CIA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요청이었던 것이 이번 기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누가 미국의 왕을 죽였나?

 

 

미-소 냉전과 월남전 전쟁 반대가 한창이던 시기에 미국 역사상 가장 더러운 공모살인이 존 F.케네디에게 일어난다. 그 이후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 킹 목사가 연달아 암살되었으며 케네디의 아들 마져도 몇해전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케네디의 한때 연인이었던 마를린 먼로도 의문사를 당했다.

 

왕실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존 F.케네디 가문은 영국의 왕실(王室)과 같은 존재였고 카멜롯의 전설로 불리우는 명문가였다. 물론 케네디 암살이후 재클린이 세기의 디바였던 마리아 칼라스를 배신한 이탈리아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잠시 결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녀는 남편 사망 후 오나시스의 자녀들과 법정싸움을 해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과연 누가 미국의 왕을 죽였는가?

 

 

 

 

 

음모의 땅 댈러스

 

 

1963년 11월 22일 미 남부 텍사스 댈러스에서 존 F.케네디는 부인 재클린과 주지사가 함께 탄 차에서 암살 당했다. 당시 이 암살 사건을 공식 조사한 위렌 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리 오스왈드가 건물 위에서 저격용 소총을 6초내에 세 번 역속 쏘아 존 F.케네디를 암살 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이 보도를 그대로 믿는 미국 사람은 25%도 안된다.

 

'위렌 보고서'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 정신 이상자가 세발의 총탄으로 미국의 대통령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발의 총탄으로 명중시켰다는 주장은 실제 FBI조사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래된 구식 소총으로 6초내에 세발을 연달아 쏘아 모두 명중시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위렌 보고서 대로라면 오스왈드가 쏘았다는 첫 번째 총탄은 빗나갔고, 두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목에 명중했으며, 세 번째 총탄이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한 다음, 다시 우회전해 지그재그로 날아간 다음 달라스 주지사의 어깨와 갈비뼈 사이를 지나, 다시 우회전해서 그의 오른손목을 관통한 다음 여기에서 다시 역회전해 그의 왼쪽 다리를 명중시키고 박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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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명으로도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럼 케네디가 복부에 맞은 총탄은 누가 쏘았단 말인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 바로 '마탄론'(마술 총탄론)이다. 오스왈드가 세 번째 쏘았다는 총알 한개가 쏜 사람은 한 사람인데 두 사람을 관통하고 지그재그와 역회전 우회전으로 날아다닐 수 있었단 말인가? 무슨 총알이 헤리포터의 빗자루 라도 된단 말씀인가?

 

그래서 등장한 것이 다수의 공모에 의한 공개처형설이 제기되고 음모론이 나온 것이다.

 

 

 

 

 

상식적인 암살 시나리오

 

 

 

이 사건을 공식 조사한 위렌 보고서는 이 사건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불과 세발의 총탄으로 끝난

 사건이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럼 상식적인 암살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영화 [JFK]의 감독 올리버 스톤은 영화에서 캐빈 코스트너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존 F.케네디의 자동차 행진이 있던 몇분전 그날 달라스의 휴스턴가에는 갑자기 한 간질환자가 길거리에 쓰러진다. 그는 가짜 간질환자로 경찰들에게 혼란을 주었는데 앰블런스에 실려 응급실로 가지도 않았다. 존 F.케네디를 암살하려던 세력은 조직적으로 그의 암살을 음모했다. 그들은 오스왈드가 저격했다는 공사중인 건물에 여러조로 나뉘어 들어갔고 이미 여러번 사전 답사를 마쳤으며 정찰조와 저격조로 나누어져 있었다.

 

저격은 케네디의 자동차가 휴스턴 대로를 지나 문제의 삼각지점 곧 좌회전시 속도가 느려지는 지점에서 일어났다.

오픈카에 있던 케네디와 재클린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시 오픈카에서 환영 나온 군중 사이를 오른쪽 어깨를 들면서 지나가던 케네디 대통령은 건물에서 쏜 제 1탄의 빗나가자 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제 2 탄이 케네디의 목에 명중한다. 케네디는 이때 들고 있던 오른손을 내려 목을 감쌌다. 이와 동시에 뒤에서 다시 세 번째 총탄이 날아들었고 이것이 케네디의 등에 명중했다. 제 4탄은 당시 모자를 쥐고 있던 달라스 주지사의 어깨를 관통시켰고 그는 외쳤다. "다 죽인다!"라고. 이와 동시에 발사된 제 5탄이 오발되어 그 앞을 지나가던 시민이었던 태그 씨를 맞추어 중상을 입힌다. 그 다음 제 6탄이 케네디의 정면 머리를 관통해 그의 목이 왼쪽 뒤로 저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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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케네디.마법의 총탄이 난무함에도 진실이라고 말하는 회의론자들은 과연 상식적일까?)

 

 

이 모든 화면이 사건 이후 약 5년간 철저하게 비공개되었던 래프 루더의 필름에 담겨져 있었고 문제의 필름은 라이프사에 철저하게 감추어져 왔었으며 이 주장을 증언한 목격자만도 51명이나 된다. 그들은 평범한 달라스의 시민들이었다.

 

이 사건이후 많은 자료들이 공개 거부되었다. 케네디의 검시 사진과 검시 결과서 X-레이 사진 결과 주요 신체부위의 정보들이 철저하게 비공개 되었고 지금도 비공개 상태이며 그가 사망한지 불과 14분 뒤 용의자 오스왈드가 미 대통령에 보고되었고 사건 뒤 오스왈드와 사건의 진실에 대해 증언해 줄 증인들은 대부분 자살과 심장마비 교통사고라는 이름으로 의문사 했다.

 

가장 엽기적인 것은 케네디의 뇌가 해군 병원을 지나오면서 사라진 사실이다. 총탄의 흔적을 없애기 위한 음모로 보인다. 대통령의 뇌를 없애버리는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런데도 이 사건이 아무런 의심이 없는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인가?

 

이상의 시나리오만 봐도 그를 죽인 것은 오스왈드 혼자가 아닌 여러명이었으며 조직적이었으며 위렌 보고서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 케네디 암살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음모의 희생양

 

 

사건 당일 대통령 암살이 있기전 주변에서 경호를 하던 스미스 경관은 문제의 대로변 나무 뒤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신분증을 내어 보이면서 자신들을 비밀 요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짜 비밀 요원은 케네디가 암살된 뒤 25분 뒤에야 나타났는데 문제는 이들 비밀요원에 대한 FBI와 경찰조사 기록이 모두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암살자라는 오스왈드에 대한 주장부분도 그렇다. 오스왈드는 문제의 건물에서 이날 12시 15분경 식당 한쪽에서 여직원들에 의해 목격된다. 문제는 그 시각에 오스왈드가 저격했다는 문제의 건물층 유리창에서 두명의 수상한 남자가 목격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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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위렌 보고서에는 오스왈드가 불과 5~6초만에 세발을 명중시키고 탄피를 그냥 둔채 총을 구석에 처박은 뒤 건물을 황급히 내려왔다고 했지만 오스왈드가 이 시간대에 저격을 했다면 불과 90초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가 건물의 상층부 저격대에 올라갔다는 시간대에 이 건물의 직원들은 그가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위렌 보고서에 의하면 오스왈드는 90초 동안에 저격에 성공한 황급히 도망쳤다고 했지만 오스왈드는 이 시간에 콜라를 마시면서 1층에 있었고 느린 걸음으로 후문이 아닌 경찰들이 있던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나갔다. 범행을 저질렀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오스왈드는 약 30분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얼마뒤 경찰차의 경적 소리를 듣는다. 이후 그가 집 근처의 1.6km를 지나갔지만 그를 보았다는 주민은 없었고 그 와중에 그가 경찰을 총으로 살해했다고 했지만 목격자들은 그가 오스왈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문제의 경관을 살해한 탄피 또한 오스왈드의 것이 아닌 아무런 기록이 없는 탄피였다는 것이다.

 

경관을 죽이고도 오스왈드는 다시 극장에 표를 구하지 않고 들어간 다음 이를 신고한 직원에 의해 극장에서 체포된다. 사실 그는 CIA 정보원들과 접촉하고자 그곳에 갔었다. 그는 경관 살해 혐의로 붙잡혔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튿날 대통령 암살범이 되고 말았으며 경찰과 결탁한 한 애국시민이 그를 다시 살해했다.

 

 

 

 

 

 

짐 개리슨의 투쟁

 

 

이 사건이 터진 후 몇 년 뒤부터 1969년 3월까지 미 뉴올리언스에서 짐 개리슨 검사가 이 사건의 중요 용의자인 클에이 쇼를 기소해 법정에 세운다. 클레이 쇼는 당시 CIA의 지역 정보요원으로 존 F.케네디의 조직적 암살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69년 3월 1일 최종 재판에서 짐 개리슨은 패소했고 클레이 쇼는 배심원들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클레이 쇼는 그 자신이 CIA와 결탁해 존 F.케네디를 암살했다는 사실을 모두 부인했고

사건 용의자들과의 관계 또한 모두 부인했다.

 

1979년 리챠드 헬름즈는 쇼가 CIA를 위해 일했다고 증언했으며 1974년 클레이 쇼는 폐암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부검 정보는 이전에 의문사한 그들의 동료들처럼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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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법조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 사건에 소송을 제기한 짐 개리슨 검사는 이후 승진을

거듭해 1988년 루이지애나 주 상고법원에 재선된다.

 

존 F.케네디 관련 문서는 CIA의 비공개 비밀 자료만 51건이 넘고 그의 죽음과 관련된 중요 자료들이 대부분 비공개 되었으며 오는 2038년 경에야 비밀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아직 미지수다.

 

짐 개리슨 검사는 1969년 3월 1일 있은 법정 진술에서 존 F.케네디 암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전쟁을 반대해 월남 철수를 주장한 케네디에 반대하는 정부고위층과 중앙정보국(CIA) 미 국방성내 전쟁지지자들과 유대인 군수복합체와 시온주의자들, 기독교 근본주의계 CIA의 정보요원들이 일으킨 것이며 FBI와 달라스 경찰이 사건 은폐를 도왔다고 주장했다.

 

짐 개리슨 검사의 진실을 찾기위한 법정 싸움이후 1996년부터 약 3년간 미 의회에서 케네디 암살의 공모여부에 대한 조사를 확대수사를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대부분 거부해 왔고 이 사건을 조사한 미 의회의 조사보고서는 2029년 이후에나 공개가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의 진실은 상당부분 감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필로그

 

 

다소 비공식적이지만 1960년대 초 존 F.케네디가 조지 아담스키를 조용히 불러 자신의 휴양지에 초대해 담소를 나누었다는 미국의 UFO연구가들의 주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케네디는 CIA가 들려주지 않는 UFO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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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케네디와 재클린 부비에. 누가 미국의 왕족을 살해했는가? 그들이 살해 것은

미국의 왕족과 UFO의 진실은 아닐까? 이번 기밀 문건은 UFO비밀주의와 우주워터게이트가

실재함을 오늘날 UFO회의주의 과학계가 이들과 한패임을 반증하고 있다)

 

 

이번에 알려진 CIA기밀문건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세간에 회자되었던 UFO나 외계인 정보공개로 인해 케네디가 암살당했다는 설에 힘을 실어주게 되었고 이는 곧 <UFO비밀주의>와 <우주워터게이트>가 미국 백악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반증해 주는 좋은 사례로 보인다.

 

UFO연구가인 스탠튼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 <잘못된 과학>에서 지구상에 잘못된 과학자들이 우주워터게이트의 일원으로 UFO의 진실을 덮는데 나선 것은 16세기 마녀사냥 시대의 중세과학자들의 악행을 되풀이하는 천동설 시대의 과학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의 왕이자 카멜롯의 전설이라는 케네디의 뇌까지 사라지게 할 정도로 그들이 은폐시키고자 했던 것이 UFO와 외계인에 대한 정보라는 것을 이번 해지된 기밀문건은 다시금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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