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2-22. 내전과 빈곤으로 신음하는 니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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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기의 리익을 위해 자작극으로 다른 나라의 혁명을 무참하게 무너뜨리고 그 나라에 친미독재정권을 세운다. 그리고 그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또 다른 자작극을 일으킨다. 미국이 윁남에서 일으킨 통킹만사건과 《한국》에서 일으킨 《천안》호사건들도 다 그러한 자작극들이였다.
지금 고찰하고있는 니제르에서도 미국은 온갖 모략과 사기극을 꾸며왔으며 또 꾸미고있다.
이라크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니제르에게 전가시킨 미중앙정보국의 공작
9. 11사건이후에 미국의 네오콘과 부쉬행정부가 중동의 반미세력인 알 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그 방법을 고안해낸것이 바로 이라크전의 개시였다. 하지만 이라크전을 개시하려면 그 구실을 먼저 찾아야만 했다. 미국이 이라크전의 구실로 리용한것이 니제르 우라니움사기극이였다.
미국이 고안해낸 이 사기극의 사건과정을 순서로 정리하면 대체로 이러하다.
첫째, 2001년 2월 24일에 미국무장관 포웰은 중동의 모든 정보들을 종합하여 이라크는 핵과 관련된 자그마한 능력도 전혀 없으며 이웃나라들에게 위협으로 되지 못한다고 대통령 부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2001년 9. 11사건이후 미중앙정보국은 모든 책임은 이라크에 있다고 단정하고 그 증거를 만들기 위한 조작극을 꾸미기 시작했다.
둘째, 2002년초에 미중앙정보국 국장 터네트는 유럽에서 영국, 이딸리아 등 여러 정보기관과 정계인물들을 만나고 돌아와 니제르가 이라크에게 우라니움을 대량으로 제공했다고 발설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부대통령 체이니는 그의 참모들을 대동하고 미중앙정보국을 극비밀리에 10여차나 찾아가 모의를 했다. 이라크전쟁을 개전할 구실을 조작하는 과정이였다. 2002년 2월 12일에 체이니는 미중앙정보국의 허위보고에 근거하여 이라크는 우라니움 500t을 니제르에서 제공받았다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다.
셋째, 2002년 2월 26일 미국은 특사로 윌슨을 니제르에 보냈다. 3월 5일에 니제르에서 돌아온 윌슨은 미중앙정보국의 최종결론은 허위이며 니제르가 이라크에 우라니움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무근거한 소리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윌슨의 보고를 뒤받침할만 한 정황들이 유럽 등 여러곳에서 계속 나타나고있었다.
넷째,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2002년 7~8월경 백악관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들은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이미 보유하고있고 핵무기프로그람은 진전되고있으며 우라니움을 니제르에서 보급을 받았다는 등 매우 심상치 않은 기사들뿐이였다.
7월 23일 영국의 블래어총리도 백악관의 보도에 동의하고있었다. 8월 26일에 체이니는 성명을 발표하여 이라크가 핵무기를 소유하는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라크전을 지지하여 CNN과의 회견을 했다.
다섯째, 2002년 9월 12일 부쉬는 만일 유엔이 행동하지 않으면 미국은 단독으로 이라크를 침공하겠다는 폭언을 하였다. 9월 24일 영국은 미국에 동조하면서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니움을 대량 획득한것이 확실하다고 발표하였다. 2002년의 한해가 질 때까지 미국내 여론과 세계의 여론들은 량분되여 미국의 이라크침공에 대하여 찬반으로 들끓고있었다.
여섯째, 2003년 1월에 백악관에서는 대통령의 년두교서에 《니제르 우라니움획득》이라는 문구를 넣을것인가, 넣지 말것인가 하는것을 놓고 론쟁이 벌어졌다. 결국 넣는것으로 락착되였으며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드디여 이라크침공을 선포했다.
일곱째, 이라크전과 관련하여 백악관, 미중앙정보국, 국무성과 국방성 등 내부에서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정보와 정치적비밀들이 줄줄이 새여나오고있다. 미중앙정보국의 요청으로 니제르를 찾았다가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니움을 구입했다는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던 윌슨은 2003년 7월 6일 《뉴욕 타임스》에 글을 기고하여 진실을 밝혔지만 이라크전을 막지 못했다. 부쉬행정부는 윌슨의 보고는 묵살해버리고 조작된 미중앙정보국의 보고를 수용했던것이다.
니제르의 우라니움문제와 관련하여 이딸리아의 수상은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부쉬대통령은 사실에 있어서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니움을 정말로 획득했는지에 대하여 미국은 정확히 아는바가 전혀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이 말은 이라크전개시에 비낀 검은 그림자의 주인이 다름아닌 미국이라는것을 암시해주고있다.
최고 빈곤의 나라 니제르의 간추린 력사
니제르는 고대로부터 북쪽 아랍세계의 베르베르족과 남쪽의 아프리카 여러 종족들과 접촉하면서 여러 세기를 살아오는 과정에 북과 남사이의 대상교역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 뚜렷한 국가조직은 성립되지 않고있다가 14세기말에 이르러서 서쪽에 송가이왕국과 남동쪽에 하우사족의 여러 왕국들이 설립되였다.
그후 16세기말-18세기초 동쪽에 보르누왕국이 건설되였고 18세기-19세기초 오늘날의 나이제리아와 더불어 하우사족의 왕국에 속해있으면서 광대한 이슬람교봉건국가를 이루고있었다.
1805년-1830년 영국인들에 의하여 니제르강이 처음 탐험되였고 1854년-1870년에는 도이췰란드인들이 오늘의 니제르땅을 탐사했다. 1891년 니제르강을 건너 니제르땅에 이른 프랑스인들의 보고를 받고 프랑스정부는 1897년 이 지역에 프랑스군을 주둔시켜 령유권을 주장했다.
1906년에 영국과 프랑스는 협정을 맺고 저들의 마음대로 나이제리아와 니제르사이에 국경선을 설정하여 두개의 나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니제르와 부르끼나파쏘를 하나로 묶어 프랑스에 소속된 령토를 만들었다. 하지만 부르끼나파쏘는 1947년에 따로 떨어져나가 독립국이 되였다.
그후 1960년 8월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유엔의 회원국이 된 니제르는 면적이 126만 7 000㎢로서 세계에서 22번째로 면적이 큰 나라이며 인구는 약 1 600만명이다.
독립후 니제르에서는 1960년부터 1974년까지 디오디 하마나가 대통령이 되여 집권하였는데 그는 남쪽 아프리카계의 그리스도교세력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통치기간 극심한 가뭄과 북쪽 이슬람교뚜아레그족의 거센 반발로 고전을 겪다가 1974년에 일어난 쿠데타에 의해 결국 퇴진당하였다.
1974년에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쎄이니 꾼체는 13년동안 지독한 친서방독재를 실시했다. 꾼체대통령 역시 북쪽의 이슬람반정부세력과 고전을 겪으면서 한때 타협책으로 민간내각을 구성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으나 폭력정치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1987년에 사망했다. 집권기간 그는 니제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우라니움에 대한 독점권을 프랑스에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꾼체가 사망한 후 니제르에서는 군총참모장 쎄이부가 국가수반으로 집권했고 1992년에는 민선으로 우수만대통령이 집권을 했다. 그후 1996년에 니제르에서는 또다시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여 마이나싸라가 군정으로 집권을 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1999년 4월에 암살당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마마두 딴쟈가 니제르의 제7대대통령으로 집권을 시작했다.
5년 임기를 마치고 2004년에 재선된 그는 막강한 권력으로 장관들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제도를 만들어놓았으며 서방나라들과의 관계를 밀접히 하는 길로 나갔다.
오늘 니제르의 무력상태를 보면 소규모의 륙군과 공군이 있을뿐인데 그나마 프랑스의 군사원조를 받고있을뿐만아니라 니제르의 군인들은 프랑스에 가서 군사훈련을 받고있는 실정이다. 또 니제르에는 수십명의 프랑스군사전문가들이 체류하고있다.
현재 니제르에는 우라니움이 풍부히 매장되여있는데 그 생산 및 수출은 세계3위라고 한다. 이밖에도 니제르에는 귀중한 지하자원이 많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이러한 니제르가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최하의 빈국으로 알려져있는것이다.
어느 한 구제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니제르에는 기아로 당장 굶주린 아이들이 37만명이 있다고 한다.
니제르정부도 현재 780만명이 식량난으로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있다고 한다. 유엔도 니제르가 세계 182개 국가들중에서 182위를 차지한 최빈국이라고 하고있다.
그러나 수백년동안 종주국노릇을 해온 서방국가들은 오늘도 여전히 아프리카나라들에서 서방에 무조건 복종하는 친서방정권을 유지하는데 만족해하고있을뿐 그 정권이 자국의 인민들에게 무슨 나쁜짓을 하고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미국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남아메리카에서와 아프리카에서 반미정권만 들어서지 않는다면 어떤 독재자라도 친구로 삼고 그 독재자들이 안전하게 장기집권할수 있도록 비호조장해주고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도 례외일수 없다.
니제르의 쿠데타와 내전에 대하여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쿠데타와 내전의 몸살이 마치 류행처럼 일어나고있다.
세계에서 최빈국의 나라인 니제르에서도 1974년-2010년 2월사이에 4차례나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러한 쿠데타는 내전과 항상 련쇄반응으로 련결되고있다.
니제르에서 생산되는 우라니움은 이 나라 수출의 74%를 차지하는데 이것은 니제르에 있어서 하나의 행운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이 행운은 진정성이 전혀 없는 정치인들때문에 오히려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불행의 화근이 되고있다.
니제르의 부정부패와 이로 인하여 발생하고있는 내란과 쿠데타에 대하여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이 설명해볼수 있다.
니제르에서 1970년대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우라니움은 국가발전의 잠재력으로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절망의 화근이 되였다.
니제르의 정권을 군부가 잡았을 당시 반란의 조짐만 보여도 관련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북쪽의 뚜아레그족의 반란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다른 부족들도 반란에 가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뚜아레그족이 반란을 일으킨데는 우라니움과 주요하게 련관되여있다.
니제르국가경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라니움이 생산되는 곳은 다름아닌 북쪽사막지대의 뚜아레그족이 옛날부터 살아온 거주지역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원의 리득은 뚜아레그족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뿐이고 오히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라니움독소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있다.
그런데도 니제르의 력대 정권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모든 리권을 다 내주면서도 자국민 특히 뚜아레그족에게는 심한 오염과 질병을 줄뿐 아무러한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이것은 뚜아레그족의 불만을 자아냈고 반란이 일어나는데까지 이르게 되였다.
뚜아레그족의 반란을 처음 일으킨 인물은 마노 다약이였는데 그는 1995년에 비행기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으로 인하여 반란이 내전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프랑스는 재빠르게 반란그룹과 니제르정부사이에 중재자로 등장했으며 량측사이에는 평화협정이 잠정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였다.
그런데 니제르에서 계속 일어난 쿠데타에 의해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오히려 뚜아레그족에게는 압력이 더 가해지였다. 이전에 량측이 맺은 평화협정은 완전히 무시되고있을뿐이였다.
이렇게 되자 마노 다약의 뒤를 이어 뚜아레그족의 새로운 지도자로 나선 아갈리는 비상한 각오로 평화협정보다는 앞으로 무장투쟁만이 정의를 위한 싸움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드디여 뚜아레그족은 정의를 위한 니제르운동(MNJ)을 창설하고 뚜아레그반군의 이름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정부군의 병영까지 습격했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반군의 무장투쟁에 가담하고 지원했다.
이러한 가운데 1999년에 집권한 마마두 딴쟈대통령은 중국이 니제르의 우라니움과 석유에 대한 개발에 동참하는것을 허락하였다. 프랑스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것이다.
그때까지 니제르의 우라니움과 석유개발에 대한 독점을 노리고있던 프랑스는 화가 나 마마두 딴쟈대통령에게 뚜아레그반군을 지원해준다는 신호를 보내였다. 이것은 니제르에 있어서 뜻밖의 일이였다.
일이 이렇게 번져지자 뚜아레그반군은 의기양양해 정부군에 대한 공격의 도수를 더욱 높이고있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지금 사람들속에서는 이러다가 니제르라는 나라가 갈라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있다.
또 놀라운것은 2010년 2월 18일에 니제르에서 또다시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여 마마두 딴쟈대통령이 축출되고 지보 쌀루가 군사정권인 민주주의회복 최고리사회의 위원장으로 집권한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쌀루는 2011년에 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정권을 세우겠다고 주장해나섰다.
이것이 막대한 부를 가지고있으면서도 끊임없는 내전과 빈궁속에서 신음하는 니제르의 실상이다.
니제르의 현실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민중의 리익을 무시한다면 아무리 자연부원이 풍부하더라도 빈궁과 내전의 소용돌이속에서 벗어날수 없다는 교훈을 새겨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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