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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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10
서쪽하늘에 비꼈던 락조의 잔광마저 스러지자 대지는 거뭇한 강철빛으로 변하였다. 그것은 용광로의 붉은 쇠물이 강철로 굳어지는 모양을 련상케 하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창밖을 내다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두팔을 엇결으고 천천히 창가를 거니시였다.
지금 그이께서는 방금전에 읽으신 외국에서 귀국한 《HM기》기술참관단 성원들의 반영을 머리속으로 더듬어보고계시였다.
복잡한 정치사변들로 하여 어수선해진 먼 외국땅에 들어가있던 기술참관단은 이날 아침 전원 무사히 평양에 도착했었다. 다만 5월10일종합공장 기술부기사장 오성오가 외국체류기간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 돌아오자바람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말로는 유럽의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아 반달남짓이 거의 굶다싶이 하여 종당에 쓰러지게까지 되였다고 하지만 그이께서는 어쩐지 그렇게만 생각되지 않으시였다.
오성오는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하고 기름기있는 음식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니 유럽의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을수 있지만 아무렴 쓰러질 정도로 쇠약해질수 있으랴싶으시였다. 닭알이나 기름기없는 음식들을 청해 영양을 보충할수도 있었겠는데 음식을 전페하다싶이해서 가뜩이나 핼쓱한 얼굴이 아예 피골이 상접해졌다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성오가 그 어떤 정신적번민에 휘말려든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것은 그의 반영문이 심상치 않기때문이였다.
《HM기》기술참관단성원들은 외국체류기간 보고 듣고 느낀 점들에 대한 반영들을 당중앙위원회 해당부서에 제기하였는데 그 내용들은 모두 엇비슷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반영이 김정일동지께까지 올라가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은듯 글자를 그어버린것도 있고 앞장이 모자라 뒤장에까지 여백이 없이 빼곡이 내용을 채운것도 있었다.
당중앙위원회 해당부서로부터 기술참관단성원들의 반영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그것을 한자도 고치지도 정리하지도 말고 그냥 그대로 올려보내도록 하시였었다.
참관단성원들은 한결같이 사회주의가 무너져버린 동유럽나라들의 실태를 목격하고나서 우리 식 사회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각오와 결심이 한층 더 굳어졌다고 피력하였다. 그중에도 병원에 실려가기전에 육체적, 정신적고통을 참으며 쓴것 같은 오성오의 반영만은 남다른것이 있었다.
창문가를 거니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앞으로 걸어와 선 자리에서 오성오의 반영문을 다시 읽으시였다. 하얀 종이장에 까만 원주필로 획이 고르롭지 못하게 쓴 글이였다.
《미제는 오늘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치군사적공세와 경제봉쇄만을 하고있는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봉쇄를 악랄하게 감행하고있습니다. 미제는 북조선의 손에는 새로 개발되는 그 어떤 과학기술자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서방나라들에 강요하고있습니다. 저는 내 나라 사회주의를 지키자면 우리자체의 힘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것을 이번 외국방문에서 더 깊이 알아가지고 왔습니다.》
이렇게 쓴 반영문의 서두는 다른 사람들의것과 내용상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것이였다. 그 뒤에 이어진 글에 문제가 있었다.
오성오는 외국에 체류하는 기간 어느 총화모임에서 《HM기》설계도를 개조하느냐, 그대로 리용하느냐 하는 문제로 서정후부부장과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하여 집단의 분위기를 흐리게 한데 대해 반성하였다.
그는 《HM기》설계도를 공장의 실정에 맞게 100프로 개조하겠다고 주장하는 자기더러 서정후가 당신은 자기를 모르는 과대망상증환자라고 비난한데 대해 내가 과대망상증환자라면 설계도를 1미리메터도 고치지 못하게 강요하는 당신은 서방나라들에 환장을 한 몽유병환자라고 대들었다고 하면서 《이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경거망동이였습니다.
저는 외국에 가서 경거망동을 한데 대해 앞으로 공장당위원회에 솔직히 보고하고 검토를 받겠습니다. 제기할것은 앞으로 〈HM기〉를 개발하는데서 직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자기 견해와 주장을 내려먹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직위가 높거나 학위가 높은 사람의 견해가 언제나 옳은것은 아닙니다.》라고 썼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글을 읽고나서 서정후의 반영문을 다시 훑어보시였다. 그는 체류기간 느낀점들을 실감있게 쓰고 마감에 《HM기》를 개발하기 위한 사업에서 담당자들에 대한 엄격한 당적, 행정적통제가 있어야 되겠다고 하였다.
그는 오성오가 《HM기》에 대해 전혀 파악이 없으면서도 경험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고 제 고집만을 부리면서 책임성없는 발언들을 하여 첨단설비개발사업에 지장을 주고있다고 하였다.
《저는 오성오가 5월10일종합공장 〈HM기〉제작단 단장이라는데 대해 심히 우려하게 됩니다. 저는 앞으로의 사업을 위해 도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치명적결함을 가지고있는 그를 단장의 직책에서 해임시키도록 해당 당위원회에 권고할것을 제기합니다.》
이것이 서정후의 반영문에 적혀있는 마지막글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사람의 반영문을 가지런히 놓고 이윽히 들여다보시였다.
과학기술의 력사는 론쟁의 력사라고도 말할수 있다. 기술론쟁이 없이는 과학이 발전할수 없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이들이 기술론쟁의 계선을 벗어나고있다고 생각되시였다.
그들의 반영문에 스쳐버릴수 없는 문제점들이 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전화로 리명국부부장을 부르시였다.
얼마후 리명국이 긴장한 얼굴색을 하고 조심스레 집무실로 들어섰다.
《앉으시오.》
그이께서는 리명국에게 자리를 권하고 말씀하시였다.
《기술참관단 성원들의 반영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외국에 갔다와서 모두들 우리 식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나가겠다고 새 결의들을 다지였는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에 간 오성오동무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의사들의 말은 인차 회복될것 같다고 합니다.
특별한 병은 없고 순전히 먹지 못해 생긴 허탈증이라고 합니다.》
자리에 앉았던 리명국이 다시 일어나서 말씀올렸다.
《먹지 못해 생긴 허탈증이라?》
《유럽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아 보름 가까이 굶다싶이했으니 그럴수 있습니다. 그래 모두들 웃는 소리로 오성오는 조선땅에서만 살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리명국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그전에 정밀기계설계도를 복사해올 때에도 그가 외국에 장기간 체류해있었는데 허탈증이 오도록 음식을 먹지 못하지는 않았소. 그가 이번에 심리적인 무슨 타격을 받은것 같소. 이 반영문들만 보아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소?》
김정일동지께서 반영문 두장을 한손에 집어들어보이시였다.
서정후와 오성오의 반영문이였다. 그이께서는 서정후보다도 오성오에 대해 아는것이 더 많으시였다. 라남땅을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그를 직접 만나보군 하셨고 채취기계생산문제로 전화상으로 담화를 하신적도 여러번 되시였다. 그에 비하면 서정후는 아직 한번도 이야기를 나누어보신적이 없는 일군이였다.
《부부장동무, 정치적지도라는게 무엇이겠소. 사람들을 따뜻이 보살펴주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것이요. 그러자면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아파하며 무엇을 고민하고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저 유럽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밥을 못먹었다고 그렇게만 생각해선 안됩니다.》
리명국은 고개를 수굿한채 두손을 비비며 서있었다.
《반영문을 보니 서정후부부장과 오성오동무가 기술론쟁을 하던 끝에 서로 인식공격까지 한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서정후동문 오성오를 단장직에서 해임시키자는 의견까지 제기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걱정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벌써 어둠이 깃들어 정원숲을 비치는 희벗한 외등빛이 창문너머로 은하수처럼 흐르고있었다.
《기술견해상차이가 있을수 있습니다. 또 론쟁을 하며 얼굴을 붉힐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첨단설비개발에 대한 관점과 립장에서는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기술견해상 차이뿐아니라 첨단설비개발에 대한 립장과 관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것 같습니다. 이걸 바로잡아서 그들이 모두 같은 관점과 립장에 서게 하여야 합니다.
당중앙위원회일군들이 하여야 할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자면 〈HM기〉에 대한 과업을 맡은 일군들과 기술자들에게 우리 당이 왜 그런 첨단설비들을 개발하려고 하는지 우선 그것부터 정확하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앞벽에 걸려있는 세계지도를 향해 돌아서시였다.
《오늘 우리가 왜 최첨단설비개발에 힘을 넣고있는가?》
그이께서는 지도앞으로 걸어가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인류력사를 돌이켜보면 계급사회가 출현한 첫 시기부터 지배주의자들은 군사무력에 의한 강도적인 침략수법으로 다른 나라 인민들을 예속시키였습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이후시기부터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수법이 보다 교활해졌는데 그것은 무력에 의한 침략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러가지 허울을 쓴 경제〈원조〉를 통하여 다른 나라를 경제기술적으로 지배하는 신식민주의수법을 적용한것이요.
정보산업시대에 이른 오늘에 와서는 어떤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세계지도 한복판에 붉게 새겨있는 조선지도에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오늘에 와서는 제국주의, 지배주의자들이 첨단과학의 우세를 리용하여 다른 나라를 예속하려고 합니다. 보다싶이 미제는 우리 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정치적으로 공격하고 경제적으로 봉쇄할뿐아니라 과학기술적으로도 장벽을 쌓아놓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오성오동무를 비롯한 기술참관단 성원들이 대체로 인식하고있는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국에 가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도우에서 그 나라를 손으로 짚고나서 화살표를 긋듯이 주먹을 내뻗쳐 대륙과 대양을 가로질러 미국령토에 와서 멈추시였다.
《바로 미제가 오늘 첨단과학기술의 우세를 리용하여 다른 나라들을 예속시키기 위한 책동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고있습니다. 경수로를 가지고 롱간질을 하여 우리 나라의 원자력발전소건설을 방해하고있는것도 그 하나의 실례입니다. 사실 오늘날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에 대한 과학기술적지배는 무력에 의한 지배나 자본에 의한 경제적지배 못지 않게 위험합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번쩍이는 눈길로 세계지도를 쭉 훑어보고 미국령토를 주먹으로 두드리시였다.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지배도 위험하지만 과학기술발전속도가 더욱더 가속화되고있는 오늘 과학기술에 의한 예속은 민족의 장래발전의 견지에서 볼 때 보다 엄중한 후과를 빚어낼수 있습니다. 21세기가 눈앞에 박두한 오늘에 와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자 민족의 자주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우리의 힘, 우리의 손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첨단설비들을 개발하는것은 오늘에 와서 민족의 생사운명을 결정하는 문제로 됩니다. 그 어디에도 우리를 도와줄 나라가 없습니다. 더우기 사상과 과학은 별개의것이라고 하면서 서방나라들의 기술에 의존해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첨단설비를 개발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먹으려고 하는 나라들이 우리를 왜 도와주겠소.
〈HM기〉도 이런 관점에서 개발하여야 합니다.
설계도를 개조하느냐, 그대로 리용하느냐? 개조할수도 있고 리용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그것이 내 손으로 만들수 있는 내 물건이 되게 하고 우리 인민에게 리익을 주는 조선식물건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설계도를 개조하든 리용하든 모두가 이 관점에 서야 합니다.
내가 여러번 말했지만 집을 지을 때 기둥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집이 인차 무너지는것처럼 모든 일에서 관점을 바로세우지 못하면 일을 망칩니다. 그리고 혁명을 망칩니다. 〈제국주의자들의 과학예속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말라! 우리의 힘, 우리의 머리로 우리 식의 첨단설비를 개발하라!
무슨 물건이든 그것이 철저히 내 물건이 되게 하라!〉부부장동문 우리 동무들이 철저히 이런 립장과 관점에서 첨단설비들을 개발하게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리명국은 그이를 경건히 바라보며 힘있게 대답을 올리였다.
《무슨 다른 의견이 있거나 물어볼것이 있으면 말하시오.》
《없습니다.》
《그럼 그만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세계지도를 등지고 집무탁앞으로 걸어나오시였다. 그리고 집무탁밑에서 고추장단지를 넣은 흰 비닐주머니를 들어 리명국에게 내미시였다.
《오성오한테 문병을 갈 때 이걸 가지고 가시오. 함경도고추장인데 아마 이 고추장냄새만 맡아도 입맛이 돌아설거요.》
리명국이 눈을 슴벅이며 두손으로 비닐주머니를 소중히 받아들었다.
《이틀 있으면 10월 10일인데 그사이에 오성오동무가 일어날수 있을가? 그도 당창건기념행사에 참가하고 돌아가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이께서는 집무탁에 놓인 일력장을 내려다보며 말씀하시였다.
《무슨 다른 병은 없다니 인차 회복될겁니다. 그러지 않아 주혁민동문 오성오가 언제 돌아오는가고 매일 전화를 했습니다.》
《그 동무 그렇게 성질이 급합니다.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을 사람이요, 허허허.》
김정일동지께서는 라남땅에서 분주히 뛰여다니고있을 주혁민의 모습을 잠시 그려보고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주혁민이가 5월10일종합공장에 내려간 다음부터 일이 잘된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일상적으로 그의 사업에 대해 관심을 돌리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고 눈을 치뜨시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갔군. 한참 이야기했더니 출출하구만.》
갑자기 시장기를 느끼신 그이께서는 집무탁아래 빼람을 뒤지시였다. 거기서 과자봉지 하나를 꺼내여 리명국이 서있는 응접탁앞으로 가시였다. 과자봉지를 터쳐놓고 창문가의 원탁으로 가시여 주전자와 고뿌가 담긴 까만 나무쟁반을 들고오시였다.
《자, 부부장동무 앉소. 함께 요기나 합시다.》
그이께서는 고뿌에 물을 따르시였다. 쪼르륵하고 흰고뿌에 물이 와닿는소리가 유난스러웠다.
저 과자 한봉지로 저녁을 때고 또 밤을 새우시려는가? 하고 리명국은 생각하며 엉거주춤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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