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FTA 반대하는 본질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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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이나 가디건 입고 다니기엔 땀 나고, 그렇다고 벗자니 쌀쌀한, 그런 11월입니다. 모처럼 햇볕 내려쬐는 시애틀엔 어제의 비바람 때문인지 낙엽이 굴러다니고 있고, 아직은 꽤 남아 있는 잎사귀들은 단풍으로 붉게 노랗게 물들어 거리에 알록달록 색깔을 입히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아우르는 담론은 자유무역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나서 붙은 댓글들을 보니, 이것을 찬성하는 쪽들을 보면 특별한 논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정부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줄 아는 식이랄까. 아니면 정부와 여당, 그 외곽단체에서 푼 알바들의 인신공격 정도밖엔 되지 않습니다. 뭘 제대로 토론하려고 해도 그 주제를 감정으로 헤쳐모여 해 버리려는 심보들이 괘씸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들 주장대로 이게 되면 또 어떻게 할까 하고. 글쎄요. 한국이 그렇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분명히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닐텐데. 아마 이 자유무역의 사다리는 우리보다 더 못사는 나라들로 뻗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국과 해서 잃은 부분 동남아에서 채우겠다는 그런 식의 무차별한 자유무역의 확산... 저는 사실 그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1세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 욕망이 다시 무한확산되고 나서 우리도 남 등쳐먹고 살아야 겨우 사는 세상이라면 이건 희망이 더더욱 없어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우리가 뜯기기 때문에 남들을 뜯어먹는 것도 그냥 합리화된다면, 이 세상은 더욱 살기 힘들고 슬픈 곳이 될 것 같아서.
FTA와 관련해서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게 힘의 논리의 관철이라는 것입니다. 정글의 법칙을 합법화하자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게 뭡니까? 대기업들이 내 놓는 숫자는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닙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그들은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나오지만 사실 그것은 극소수만 의미를 공유하는 숫자일 뿐입니다. 그러잖아도 세계는 이미 분업화되어 있고, 삶의 수많은 부분부분들을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화장빨 세게 분칠하고 덕지덕지 묻은 분가루들이 추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내가 잘 살기 위해 남에게 빈곤을 강요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한미 FTA의 본질입니다(그 내용으로 보면 한-EU FTA보다도 훨씬 나쁘죠). 사람 위에 사람있고 사람 밑에 사람있다는 사실을 인정시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국가 단위로 확대한 것. 아마 그것이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의 아찔한 현실일 것입니다.
얼마 전 봉급명세서를 들여다보니 원래 매 두주마다 봉급 받을 때 57달러씩 원천징수하던 의료보험 수가가 160달러가 넘어 있는 것을 알고 무척 화가 났었습니다. 그리고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은 축소되었습니다. 사실 삶의 이런저런 부분에서 이런 식의 '삥뜯기'가 이미 '이윤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나마 공무원이기에 이 보험수가의 많은 부분을 우체국에서 커버해줍니다. 미국에서 전기료와 난방용 가스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또 올랐어?"란 말이 나옵니다. 민영화된 적지 않은 공공서비스들은 결국 사용자, 즉 '우리'에게 그 부담을 전가합니다. 아침에 추워 죽겠는데도 불 안 켜고 옷을 꽁꽁 입고 지낸다는 이웃의 이야기가 씁쓰레하게 들려옵니다.
사람이 사회를 만든 까닭은 약한 구성원들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잉여 생산물과 불평등한 분배, 그리고 더 가지겠다는 탐욕이 결부되면서 사회에서 힘있는 자는 더욱 효율적으로 힘 없는 자의 것을 가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탐욕이 국가 단위로 커진 것이 바로 지금의 '자유무역'을 내세운 힘의 논리의 관철, 바로 FTA 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에 대해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왜 FTA를 막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더욱 큰 이유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사회를 만들어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지키려 했었던 인간의 지혜에 반하는 것이며, 욕심으로 인해 함께 공멸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도,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균등한 발전과 자원의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되기 위해서도, 지금과 같은 시스템의 한미 FTA는 있어선 안 됩니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들이 모두 '자기의 안락'과 '자기 자신의 편안함'과,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들을 FTA와 같은 장치로 더욱 자연스럽게 합리화시켜버릴 경우, 우리가 정말 잘 살게 될까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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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미국과 한국의 일부 재벌들만을 위한 FTA라는 것이 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그걸 하자고 나서는 자들은 모두 매국노다.
허허허님의 댓글
허허허 작성일
이런 내용들을 제대로 알릴 수만 있다면 국민들 대부분이 당연히 반대할 터인데
일부 기득자들의 감언에 속아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어 그냥 찬성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살기가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