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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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편
8
밤 10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채탄기직장옆에 걸어놓은 확성기에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절절한 노래가 흘러나오고있었다.
오성오는 걸음을 멈추고 북두칠성을 바라보았다. 은하수비낀 하늘에 큰곰별자리가 뚜렷이 새겨져있는 별밝은 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씨비리철길 어느메쯤 와계실가?》
그는 중얼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기였다.
이날은 8월 18일 토요일, 3위1체 모임을 하는 날이였다.
오성오가 책임비서의 방에 들어섰을 때 주혁민은 책상옆에 서서 전화를 하고있고 최강철은 창문곁 쏘파에 앉아 김정일동지의 로씨야방문에 대한 국제통신자료를 보고있었다.
오성오도 호기심에 차서 그의 옆에 다가앉아 큼직큼직하게 찍혀있는 인쇄문을 들여다보았다.
《김정일위원장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북조선정세가 자신이 로씨야의 시골을 장기간 려행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안정되여있다는 강한 메쎄지를 보냈다…》
《김정일열풍이 온 로씨야를 휩쓸었다…》
《김정일위원장은 우주와 전자의 세계를 비롯하여 과학의 모든것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한것으로 인정되고있는 현대정치가…》
《…김정일위원장은 걸어다니는 대백과사전… 흐루니체브 우주과학쎈터에서 우주과학지식에 대한 실력을 과시!… 해설원이 필요없었다… 김정일위원장은 손수 격실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이것은 우주조종관이고 저것은 우주비행사의 생활실이며 또 이것은 다른칸으로 가는 련결복도이고 저것은 우주공간으로 나가는 탈출구라고 내부구조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였다.…
노보씨비리스크 로씨야 과학원분원에서 김정일위원장은 전문가들도 잘 모르는 도표를 순간에 리해하고 친히 설명해주시였다.
김정일위원장은 외국어실력도 보여주고…》
오성오가 입을 벙글써하고 정신없이 통신자료를 들여다보고있는데 최강철이 문득 《지배인동지, 그런데 말입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씨비리방문을 하시면서 라남의 로동계급을 높이 평가하시였다.〉왜 이런건 여기에 없습니까?》하고 짐짓 정색을 짓고 오성오를 돌아보았다.
《여보, 기사장동무. 웃기지 마오. 우리가 어디 자랑할 체면이 됐소? 거 3분짜리 시험에서 아직 전진이 없지요?》
오성오는 기사장의 롱담에 오히려 심각한 자극을 받았다. 이날 종일 주물직장에 붙어있은 그는 하루사이에라도 수봉작업장에서 무슨 기적이 있기를 바라서 묻는 말이였다.
《없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큰 설비에만 관심을 돌리고 작은 부분들을 홀시한것 같습니다. 왕복대밑에 있는 크랑크의 구조와 재질을 개조해보자고 합니다.》
오성오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제부터 기사장의 말대로 기계의 작은 부분품들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차근차근 먹어들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장군님의 로씨야방문기간 그걸 완공시키자고 했는데 이젠 틀린것 같소.》
오성오는 아쉬운 생각에 한숨을 쉬였다.
도안의 많은 기관, 기업소들에서는 로씨야에 계시는 김정일동지께 기쁨과 자랑을 담은 편지를 올린다고들 하지만 오성오는 아직 올리지 못하였다. 그이께서 제일 기다리고계시는 소식이 3분짜리 《93기》인데 그것을 성공시키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기사장에게 지시하였다.
《어쨌든 8월중으로는 죽으나사나 완공시켜야 하겠소. 8월이 불퇴의 선이요.》
《지배인동무, 그만 속을 태우고 오늘은 머리를 좀 쉬시오. 5분짜릴 성공시켰는데 뭘 그리 바글바글 끓소. 장군님께서는 나더러 후방사업을 책임지라고 하셨으니 〈3위1체〉에서도 후방을 담당해야지. 하하하… 우선 멋진 청량음료를 대접하겠소.》
전화를 하고난 주혁민이 원탁옆에 놓인 5리터짜리 빨간 비닐통과 흰 사기고뿌가 얹혀있는 나무쟁반을 량손에 들고오며 하는 말이였다.
주혁민은 쟁반을 앞탁에 올려놓고 바닥에 놓인 비닐뚜껑을 열어보이였다.
《그게 뭐요?》
오성오는 노르끼레한 밥알이 동동 떠도는 걸쭉한 액체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게 가마치에 길금과 사탕물을 넣어서 삭힌 식혜라는건데 우리 로친네가 이 조선식청량음료 하난 잘 만든다니… 자, 맛이 어떤가 보시오.》
주혁민은 사기고뿌로 식혜를 떠서 지배인과 기사장앞에 놓아주고 자기도 한고뿌 떠가지고 두사람새짬에 앉았다.
오성오는 고뿌의 물을 한모금 마시였다. 상큼한 향기, 입안을 자극하는 달콤하면서 짜릿짜릿한것이 참으로 별맛이였다.
《거 참 달고 새콤한게 맛이 좋구만요.》
지배인은 식혜를 맛스럽게 마시지만 단음식보다 맥주나 술을 좋아하는 기사장은 식혜가 구미에 맞지 않는지 별로 입을 대지 않았다.
《어째 기사장은 식혜가 좋지 않은 모양이군.》
《아니 좋습니다. 그런데 맥주나 청주라면 더 좋겠습니다. 허허허… 그러나 어쨌든 이 식혜를 보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아마 책임비서동지도 그렇고 지배인동지도 집에 사모님들이 없었더라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지 못했을것입니다.》
《하긴 그래, 이번 〈고난의 행군〉을 통해 조선녀성을 알게 됐지. 참 이악하단 말이요. 저 지배인도 로친네가 없었으면 거꾸러진지 오랬을거요.》
주혁민이 맛스럽게 식혜를 떠마시는 지배인을 보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오성오는 불현듯 눈굽이 쩌릿해졌다. 그것이 사실이기때문이였다.
이 한고뿌의 식혜에도 부인의 따뜻한 사랑과 이악한 성미가 깃들어있는것이다.
《이악할뿐만아니라 아름답지요.》기사장이 식혜가 담긴 사기고뿌를 들여다보며 말하였다.
《유럽의 어느 문필가는 〈녀자여, 너는 질투로 뭉쳐진 악마다.〉, 또 〈약한자여, 너는 녀자다.〉라고 했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를 밤마다 몰래 세여보군 했다는 해학담도 만들어냈지만 조선녀성은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정말 생활의 꽃이지요. 허허허.》
《여보 기사장, 이브가 왜 매일밤 몰래 아담의 갈비뼈를 세여보았소?》
그때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오성오는 해학담의 의미가 잘 리해되지 않아 웃으며 물었다.
《아니, 세상 박식한 지배인동지가 왜 그걸 모르십니까. 서양사화에 씌여있기를 남자의 갈비뼈로 녀자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녀자 하나를 또 만들가봐 밤마다 몰래 세여보았지요. 말하자면 질투지요.》
《하하하.》
책임비서와 지배인은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저 기사장이 이따금 웃기는 소릴 잘하거던. 옳소. 오늘밤은 좀 웃읍시다. 래일 일요일은 수봉작업장에 가서 야유회를 하자고 하는데 거기서도 좀 웃기시오. 해학가인 강충현소장을 아예 무색하게 만들란 말이요. 참 래일 8월 19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들 있소?》
주혁민이 두사람을 번갈아 돌아보며 물었다.
(8월 19일? 이날이 무슨 날이더라?)
오성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기념일이나 명절도 아닌 평범한 날이였다.
《모두 모르고있구만. 래일이 김경복동무의 생일이요. 45돐 생일이지. 그리구 윤현덕령감네 결혼 31돐이 되는 날이요. 윤현덕령감은 10년세월 〈93기〉때문에 수골 많이 하고 우리곁을 떠났소.》
오성오는 책임비서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그는 8월 19일이 김경복의 생일이라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고 윤현덕의 결혼식날이라는것은 더욱 몰랐다. 그는 자기 결혼식날도 잘 모르고있었다.
오성오는 종업원들의 생일날은 물론 결혼식날자까지 기억해두고있는 책임비서의 인간성에 머리가 수그러졌다.
《우리 래일은 다 같이 수봉으로 올라가서 〈93기〉개조작업도 조력해주면서 김경복의 생일을 쇠줍시다. 윤현덕의 부인이 요즘 집에 와있다는데 데리고 갑시다. 아들은 군대에 나갔지, 령감은 없지, 빈방에서 얼마나 고독하겠소.》
《그런데 현덕실장네 로친네가 수봉엘 가겠다고 할가요?》
오성오는 미타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기사장한테 과업을 줍시다. 기사장이 무조건 래일 새벽 그 로친넬 데리구 수봉으로 올라가오.》
주혁민이 기사장의 어깨를 치면서 래일 조반을 먹고 인차 가라고 하였다.
《예, 내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그 라숙경부인님이 지금 우리 말을 엿듣고있지 않습니까?》
《엿듣다니?》
주혁민이 기사장의 말뜻을 몰라 눈을 꺼벅거리였다.
《영화에서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꼭 화제에 오른 사람이 문밖에서 엿듣더군요.》
《하하하… 이 사람이 정말 오늘은 웃기는 소리만 하는군.》
주혁민은 크게 소리내여 웃다가 문득 출입문쪽으로 고개를 돌리였다.
문기척소리가 들렸던것이다. 주혁민은 량옆에 앉은 지배인과 기사장을 돌아보았다. 과연 라숙경이 문밖에서 엿듣지 않았는가 하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
또다시 문기척소리.
《예, 들어오시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후방부지배인 고영춘이였다. 환갑을 넘긴 그는 8월 31일이면 년로보장으로 사업을 인계하고 집으로 들어가게 되였으나 마지막날까지 맹렬한 활동을 하고있었다.
《룡림수산사업소에 가서 정어리를 한톤 실어왔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모르겠습니다.》
후방부지배인은 군소리없이 용건부터 말하였다.
《한톤밖에 못실어왔소? 그걸 누구코에 바르겠소. 합숙에다 다 들이미시오. 한 300키로정도 떼서 〈93기〉제작단성원들과 〈93기〉소재생산을 하는 기사, 기능공들에게 두어키로씩 돌아가게 나누어주고.》
지배인이 하는 말이였다. 그는 지배인과 기사장도 《93기》제작단 성원이지만 물고기공급에서 제외시키라고 하였다.
오성오는 무엇이든 생기면 《93기》제작단성원들과 핵심기사, 기능공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특별대우를 하도록 기강을 세웠다.
《전번에 무기능로동자들까지 나누어줄 때 관리일군들을 빼버렸는데 이번에 한 반키로씩이라도 주지 않겠습니까?》
후방부지배인이 물고기 비린내를 풍기며 지배인곁으로 걸어왔다.
《글쎄 고기가 많으면 그들에게도 주었으면 좋겠지만 한톤을 가지고 여기저기 다 떼면 뭘 먹을게 있겠소. 관리일군들한테서 의견이 제기됐습니까?》
오성오가 눈을 똑바로 뜨고 물었다.
《특별히 제기된건 없습니다. 여기 앉아계시는 세 책임일군들이 늘 양보하시는데 누가 의견을 제기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뒤소리들을 못하게 제가 눌러놓군 합니다.》
《아니 그러면 안돼!》
주혁민이 일어서며 손을 내저었다.
《당정책에 대해서 뒤소리를 하는것은 나쁘지만 기업소일군들의 사업작풍과 사업방법에 대해 말하는것을 막아버리면 되겠소? 우리는 완성된 인간이 아니요. 대중의 의견과 여론을 들어봐야 하오.
룡림수산사업소라는게 참 린색하구만. 한톤이 뭐요, 한톤이. 늘 봐야 소금손이야.》
주혁민이 혀를 차면서 쏘파에 도로 앉았다.
이때 주혁민의 탁상우에서 흰색전화기가 신호를 울리였다. 주혁민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그쪽으로 가서 송수화기를 들었다.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책임비서 주혁민이 전화를 받습니다.》
얼마동안은 침착하게 전화를 받던 그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예,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심히 앉아있던 방안의 세사람은 별안간 흥분하는 주혁민에게 시선을 돌리였다.
도대체 무슨 전화인지 예, 예 하고 숨가쁘게 대답하는 주혁민의 량볼이 실룩거리였다.
얼마후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주혁민은 세사람을 둘러보며 흥분에 뜬 소리로 말하였다.
《동무들, 위대한 장군님께서 귀국하신다는것 같소.》
《그래요?! 언제 오신답니까?》
오성오와 최강철은 거의 동시에 손으로 앞탁을 치며 일어섰다.
후방부지배인이 고기비늘이 묻은 손으로 주혁민의 남방샤쯔자락을 잡아당겼다.
《글쎄 그건 정확히 모르겠는데 귀국하신다고 합니다.》
주혁민은 진정을 못하고 방안을 왔다갔다 하다가 오성오를 향해 돌아섰다.
《모실 준빌 해야겠소. 혹시 모르오. 장군님께서 귀국하시는 길로 우리 기업소에 들리실지. 로씨야방문기간 라남의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니까… 〈93기〉상탤 다시 보아야겠소. 3분짜린 못만들었으니 할수 없고 5분짜리라도 보여드릴수 있게 준빌 잘해놓읍시다.》
《예, 그렇게 합시다.》
오성오는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한편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3분짜리 《93기》를 완성했더라면 5만여리 려행길에 쌓인 그이의 피로를 다소라도 풀어드릴수 있을것이 아닌가. 안타까왔다.
기사장이 책임비서와 지배인을 돌아보며 《제가 이제 당장 수봉에 가서 모실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두분은 여기서 준비하십시오. 저는 장군님께선 못오셔도 리명국비서든지 어느 간부든지 우리 기업소에 들려서 실태를 알아보고 갈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 절대로 거저 지나가실것 같지 않습니다. 로씨야로 가실 때에도 렬차를 멈추고 오래동안 우리 기업소쪽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습니까.》하고 말하였다.
오성오도 같은 생각이여서 기사장더러 빨리 수봉에 올라가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후방부지배인이 설레발을 쳤다.
《지배인동지, 그럼 저도 준비하겠습니다. 합숙창고에 뭘 좀 진렬해놓아야지요. 마침 정어리도 가져왔으니 잘됐습니다. 기록영화에서도 보면 장군님께서 군대시찰을 하실 때에는 꼭 후방창고를 보십디다.》
《후방부지배인! 진렬하지 마시오!》
오성오가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우리가 합숙생들을 잘 먹이지도 못하면서 잘먹이는척하겠다는건가요? 우리는 언제나 장군님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후방부지배인은 나무처럼 굳어진채 지배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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