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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금요일, 어둠속에서 기다리는 민주주의화 노무현 정신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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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1,637회 작성일 12-04-0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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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합니다. 점심 싸 오는 걸 깜빡해서 브로드웨이의 타이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할 겸 해서 조그마한 커피 전문점을 찾아들어왔습니다. 아메리카노의 진한 향을 맡으며, 정신이 깨야 하는데 오히려 나른하며 졸려 옵니다.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이 여유로운 봄날의 아름다운 하늘 아래 펼쳐진 꽃들의 향연 속에서, 내 삶을 이렇게 가꾸고 있음에 문득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은 성 금요일. 오늘 전례에서 수난복음 봉독을 맡았습니다. 일 끝나자마자 얼른 집으로 가야 합니다. 좀 씻고, 옷 갈아입고 나서 성당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 가장 깊은 슬픔이 짓누르는 날인 셈입니다. 해마다 부활 전례를 할 때마다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예수는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는 왜 지금까지 그의 죽음을 이렇게 슬퍼하고 있을까.


2천년 전 로마의 제국주의와 헤로데의 파쇼 압제 체제 아래서 신음하던 유대의 민중들은 그들의 신앙 안에 녹아 있는 구원의 존재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갈릴래아 지방에서 기적을 행하며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한 청년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민중은 그에게 모든 기대를 겁니다. 유대의 이 지역 저 지역을 다니며 구원의 소식을 전하던 그에 대해 지배세력은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그를 민족해방운동으로 이끌었을 예언자이자 당대의 스승이기도 했던, 역시 그렇게 나이 많지 않던 개혁의 상징 요한은 지배세력의 정점에 있던 헤로데의 손에 목을 잘립니다. 그를 몰래 연모했던 살로메가 그의 목을 원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신화화된 이야기일 것이고, 정확히는 지배세력의 정치적 암살이었을 겁니다.


그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민중의 해방 의지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당시 유대아 정치 1번지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당나귀를 타고 오는 '반란의 수괴'는 민중들의 '칼의 환영'을 받습니다. 손에 손에 성지가지, 즉 팜 트리(종려나무)의 잎사귀를 든 사람들이 그를 맞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잎은 휴식과 해방의 상징인 동시에, 숏 소드를 감출 수 있는 칼집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민중은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한 예수의 선언에 아연실색합니다. 현실에서 헤로데를 무찌르고 로마 제국주의 세력을 유대 지방에서 축출하고 기적의 힘으로 '저들을 쓸어 버릴 줄 알았던' 예수가 비폭력 노선을 견지한다는 것, 아마 그것은 분명히 민중들에겐 '배신'으로 비쳐졌을 겁니다.


열혈 혁명당 당원이었던 가롯 유다는 아마 그 당의 지도부로부터 예수의 노선으로는 그들이 꿈꾸는 혁명이 가망이 없으니 제거하라는 명을 받았을 겁니다. 명을 실행한 가롯 유다는 그동안 예수와 함께 쌓아 왔던 인간적인 동지애 때문에 고민했고,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맙니다. 그때 유다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를 환영했던 그 군중은 바로 예수의 사형을 원하는 군중이 됩니다. 빌라도의 광장에서 "저 자를 못박으시오!"라고 외쳤던 군중은 배신당했다는 생각으로 더욱 그렇게 소리쳤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저 고문을 받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리고 있는 저 남자가, 저 힘없이 넘어져 있는 저 자가, 바로 우리가 왕으로 세우려 했던 자라고? 하면서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를 제거하고 다시 해방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했었을 혁명당원과 함께 웃었던 것은 당연히 로마 제국주의에 빌붙어 그들의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유지하려고 했던 헤로데, 그리고 그의 권력의 축이 되어 주었던 지식인인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계층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였던 그 서른 세 살의 남자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들이 희망을 걸었던, 그러나 그의 참뜻을 모르고서 그들 스스로 단죄해 버린 그가, 진정한 구원이 되어 살아난 것입니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 생각이 납니다. 그가 청와대에 입성했을 때 우리가 가졌던 기대, 그리고 우리가 느꼈던 그 배신감들. 그리고 우리 모두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했던 이들도, 그리고 바로 나도... 그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던져댄 돌을 맞았던 그가 퇴임하고 나서야, 우리에게 새로운 헤로데가 된 그 후임자가 자리를 차지했을 때야 우리는 한때 우리의 희망이었던 그를 다시 바라보며 무거운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무게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그 모든 것을 지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노무현의 부활을 보고 싶습니까? 그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가 다시 살아오는 것을 바랍니까? 그도 인간이었기에 실수가 있었을겁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 민주주의는 우리가 늘 지켜보고 가꿔야 하며, 그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그의 예언. 이제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총선의 당일까지 며칠 남지 않은 시간동안은 바로 성 금요일이 상징하는 그 암흑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어둠을 견뎌내고 부활의 찬란한 아침을 맞는 것처럼, 우리도 노무현 정신의 부활을 꿈꾸며 그가 가장 남기고자 했던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부활의 새벽을 맞을 수 있습니다. 4월 11일, 진정 우리 모두의 부활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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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님의 댓글

부활 작성일

예수정신의 부활과 노무현 정신의 부활
아주 좋은 예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부활을 이루어내느냐 아니면 계속 어둠 속에서 사느냐
이제 민중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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