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별의 세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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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전쟁당사국의 군사성원 및 그 군대에 소속된 민병 또는 그 지원부대, 군대성원은 아니나 종군하는자, 비점령지역주민으로서 자발적으로 무장을 든 자는 전쟁포로의 대우를 받는다.》 (1948. 8. 12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정》 제4조) 《포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감옥, 구치소, 도형장 등의 구치시설에 이동하여 징계, 벌을 받게 해선 안된다.》 (우의 협정 제97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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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독교병원 제3호동 331호실에서 고통받고있던 김진서에게 그날은 류달리도 방문객이 많았다. 오전엔 그의 입원치료비문제를 의논하고저 광주무진교회 강진석목사가 왔다 갔고 뒤이어 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에서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 송환추진본부의 활동정형을 알려주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고무하기 위해 두사람이 왔었다.
오후 첫 시간엔 김진서를 취재하려 잡지 《시사져널》의 기자가 찾아왔다. 심한 발음장애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와 하는 그를 대신하여 병실의 환자 두명이 많은것을 말해주었다. 서로 앞을 다투며 아는껏 말해주는데 진서가 머리를 끄덕이는가 젓는가 하는데 따라 확실한가 아닌가를 판명받군 하였다.
《김선생님 감옥생활 몇년이냐구요? 몇년이 뭐나요. 자그만치 34년이 되네요.》
《옳아요 34년. 첨엔 광주포로수용소, 그담 대전교도소, 대구교도소, 청주보안감호소, 또 광주… 왔다갔다했죠뭐, 몇년씩?… 그런것도 필요하세요? 앞서 왔다간 기자선생들이 다 적어갔는데.》
《출소후엔 농장포도밭을 지키는 고용일했구요. 선생님, 맞지요?… 그담 2년동안 채석장에서 인부노릇 했네요. 그러니 허해진 몸 견딜탁이 뭐예요.》
《병명말이죠?… 뇌출혈로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여 휠체어(3륜차)에 의지하는 처지죠. 뇌졸중후유증, 만성C형간염, 역류성식도염, 거기다가 심장질환 또 신경통! 만신창이죠. 온통 누덕누덕한걸요. 살아있는게 기적이죠.》
《병원에선요… 간호부들외에도 우리가 돕죠. 목욕이나 세탁, 병상의 시트를 가는거랑… 난 선생님 소피보러갈 때마다 부축해줘요. 그러면 선생님 머쓱해하지만… 일없어요. 난 좋아서 웃네요. 푸하하!… 좋구말구요. 유명한 비전향장기수선생님 모시는걸요. 그렇게 해서나마 나두 조국통일운동에 한발작 들이밀고있다는 자부감 갖구요. 그렇지요, 선생님?… 보세요, 옳다고 하시죠? 야호!…》
수다스러운 그 환자들의 이야기를 《시사져널》의 기자는 죄다 록음하였다. 그 환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기자들의 출입이 잦고 운동권의 인사들, 강목사, 진관스님까지 찾아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으므로 사실상 그 환자들이 귀동냥해 들은 말만해도 한두개 기사의 내용을 담기엔 넘쳐날 지경이였다.
《시사져널》기자가 간후엔 조금 숨돌릴새도 없이 일본인 문객이 들어섰다.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진서는 병상에 누워 응대조차 하지 않으려했는데 그가 한 첫 인사말에 두귀가 번쩍 트이였다.
《남주야선생의 인사를 전하려왔습니다.》
낮게 속삭인 말이였으나 어느새 진서는 몸을 일으켜앉았다.
남주야선생?!…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총련녀맹부부장 남주야는 그의 생활의 벗이였고 안내자이기도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 등 출소장기수들은 그 미모의 녀성이 보내준 편지와 위문품 그리고 어려운 생활에 보탬이 될 적지 않은 돈까지 받군 했었다. 그 녀성은 그들이 조국과 자녀들과 호흡할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이어주고있는 은인이였다.
벅찬 흥분으로 하여 말보다 먼저 굳어진 혀를 굴리려 애쓰고있는 그를 여겨보며 이마가 벗어진 일본사람은 소리없이 웃었다.
《일본말을 아시죠?… 좋습니다. 나는 조선의 통일지지일본위원회 사무국장 와까바야시 히로시입니다. 선생을 만나도록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았습니다. 병원측에서도 한식경쯤 외출을 승인했구요.》
《고맙습니다.… 차- 찾아와주셔서…》
《인사말은 차차 하기로 하고 우선 저와 같이 빛고을탕제원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남주야선생이 그렇게 부탁했습니다.》
진서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남주야는 곧 딸자식들인 화순이나 정순이를 대신하므로 그가 인사말만을 가지고오지 않았다는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서둘렀다. 갈아입을 옷을 찾고 또 무엇인가 꼭 필요할것 같은 수첩이며 원주필, 베개밑에 두고 매일 꺼내읽군 하던 딸들의 편지를 꺼내들었다가 도로 놓았다. 생각은 엇갈리고 손과 발은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같은 호실의 열성적인 동거자들이 달라붙어 거들어주어서야 옷과 신발, 모자와 지팽이까지 제대로 갖출수 있었다.
산수동의 빛고을탕제원에 이르자 벌써 그곳에서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진서를 위해 달려온 류은혁과 한제완이 김병택과 같이 기다리고있었다.
차소리를 듣고 김병택이 먼저 달려나왔다.
김진서를 부둥켜안으며 《령감님!》 하고 여느때없이 울먹이는것이였다. 느닷없이 령감님은 또 뭔가. 안대를 댄 한쪽눈에서 초물같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또 무엇이란말인가?… 류은혁과 한제완이 뒤따라나와 그를 거들어주었다. 뒤쪽에서는 와까바야시 히로시국장이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희끗희끗한 입술을 바르르 떨고있었다.
진서는 여전히 말한마디 못하고 끌리다싶이 했다. 무엇인가 흉벽을 치는 예감이 있었으나 그것을 말할수 없었다. 남주야선생이 직접 왔는가. 그래서 동료들이 친자식을 만난듯 흥분한것일가!…
방에 들어서니 상이 차려져있었다. 김병택이 늘 약초를 다듬고 썰던 탁자우에 천을 씌우고 갖가지 현란한 상표를 붙인 약품갑들과 병들을 세워놓았다. 마치 그 누군가의 70돐 생일상이라도 차려놓은듯 했다. 그러나 김진서의 70고희는 동료들과 운동권인사들의 성의있는 노력으로 이미 지났었다.
동료들이 그를 상앞에 끌어가며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그는 두 눈을 슴벅이며 상우에 차려놓은것들을 넋잃은듯 둘러보았다. 이채로운 상, 진귀한 선물상이였다. 거기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귀한 약품들로 차린 상도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선물상인가?…
누군가 말했다. 김병택이였는지 류은혁이였는지 울면서 말해주고있었다.
《조국에서 멀리 유럽과 일본을 거쳐 보내온 약품들이라오.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께서 진서동지 병치료에 쓰게 하라고 친히 마련해보내주셨소.》
《뭐,김정일장군님께서?…》
《예, 진서형.》 김병택이 그를 붙안았다. 《이게 정말 꿈이요, 생시요. 예?!…》
그 순간 진서는 흉곽이 터져나갈듯 거세게 울리는 자기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그의 살눈섭이 떨리고 웃옷깃을 주물러대는 강마른 손가락들도 눈에 띌 정도로 떨리고있었다.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
그는 울부짖었다. 생기없이 누렇게 뜬 그의 얼굴에, 이마우에 내밴 땀방울들이 미처 면도를 못한 턱우에 미끄러져내렸다.
팔을 벌려 진귀한 선물상을 정신없이 쓸었다.
산삼과 인삼곽들, 록용, 뇌심향, 사향봉지, 솔꽃가루꿀, 향간환, 우황청심환, 경옥고, 인진고, 안궁우황환, 아직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간보생환… 그는 상을 쓸며 손을 움직이다가 손가락으로 울긋불긋 단장을 한 보약곽 하나를 다쳐보았다.
감히 만지거나 끌어안을 념을 못했다. 너무도 값진, 희한한것들이여서 자신에게 차례진것이라는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끊임없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뜨거운 경련에 숨이 막혔다. 무어라고 인사를 올려야 한단말인가. 정말 이럴 때엔 어쩌면 좋단말인가!…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께서 참말 이 미거한 존재도 알고계신단말인가. 어떻게, 어떻게 나를 아시고… 이 김진서가 다 뭐란말인가?!…
맨처음 머리를 친것은 감옥에서 처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 높이 추대되시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감격에 목메여 울던 그날의 추억이였다. 그러자 저도모르게 또다시 《친지김동!》 하고 목메여 속삭이였다.
가슴속에 꽉 들어찬 뜨거운 격정과 한없이 고마운 그 은정에 대한 인사를 소리높이 웨치고싶었지만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것이 미칠 지경이였다.
《친지김동》이라는 그의 속삭임에 동지들이, 하나같이 백발이 된 류은혁, 김병택, 한제완이 일시에 달려들어 그를 부둥켜안았다. 그들도 역시 철창속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존함을 부르며 용기백배해 싸우던 그날을 상기하고있은듯 싶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던지… 그들 네 로인은 목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라기보다는 눈물어린 웨침에 더 가까왔다.
아십니까 아십니까
친지김동 아십니까
그 이름은 우리 행복
그 이름은 통일조국
친애하는 지도자김정일동지
그 이름은
아- …
마지막엔 눈물의 흐느낌소리뿐이였다. 동료장기수들이 진서에게 보약들을 안겨주었다.
《진서동지, 어서 안아보시우.》
《진서형!》
《진서동지, 어서요.》
가슴에 안았다. 하나 또 하나 어루쓸고 눈물로 적시며 안아보았다. 조국에서 멀리 이역땅을 거쳐보내온 사랑의 불사약들을 받아안을만치 내가 큰 일을 해왔단말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 무거운 짐만 더해드리고 근심만 끼쳐드리지 않았단말인가?!…
눈을 감았다. 또다시 머리에 떠오르는 대전교도소의 먹방, 사납고 횡포한 교도관 《안목고채》(별명)가 그의 목에 바줄을 걸고 눈속으로 끌어내던 몸서리치는 기억…
《그 노래 누가 배워줬어. 누가 책임자야, 응? 불지 않았다간 목매달아 죽일테다!》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이번엔 교회사가 화끈화끈 불을 땐 온돌방에 앉혀놓았다.
《몹시 추웠지요. 뼈속까지 얼어들지 않았어요?… 에- 에 〈안목고채〉 그 자식, 몽둥이밖에 몰라. 자 한잔 들어요, 속이 뜨끈하게. 〈친지김동〉이 무슨 의민지 우린 다 알죠. 헌데… 모를 일이란말예요. 한번도 보지 못한 〈친지김동〉, 어떤 사이죠? 국홍씨한테 례물이라도 주신적 있어요?》
《주셨어.》 진서가 말했다. 《매일같이… 힘이 되구 의지가 되구 희망을 주셨소.》
그렇다. 용기를 주시고 희망을 주셨다. 세계에서 제왕노릇을 해대는 미제놈들도 벌벌 떨게 하시는 젊으신 령장,김일성장군님과 꼭 같으시다는분, 한번도 뵌 일이 없다구?… 아니다. 우린 매일같이 그분을 뵙는다. 지어 꿈속에서까지도!…
이렇게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얼어든 볼을 움씰거리며 웃음을 띄우기까지 했다. 아마도 그러는 그의 표정에 장년의 교회사도 진저리를 치지 않을수 없은것 같다.
《그건… 그건 무슨 뜻이죠? 뭘 말하자는거지?…》
《그저 웃는거요. 그분을 생각하면서.》
그날밤 온돌방은 무섭게 달아올랐다. 살이 익어 문드러지는것 같았다. 바싹 말라든 육체가 마지막한방울 땀까지 짜냈을 때 그는 손톱이 찢기도록 바람벽을 허비다가 또다시 의식을 잃고말았다.
…그러한 추억의 화면들이 련이어 눈앞에서 얼씬거렸다.
이윽고 그는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 한마디 말도 없이 목메인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경모하는 장군님, 위대한 령도자님께 올리는 인사, 그것을 말로써는 다 표현할수 없으리라.
그들은 생각했다. 오늘의 이 크나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간 동지들… 어찌 그 수를 다 셀수 있으랴. 1952년 초의 광주포로수용소에서는 매일 수십명씩, 때로는 100여명이나 죽어나갈 때도 있었다. 수용소안에 리질이 돌아 100명씩 들어있는 천막들에서 굶주리고 허기져 쓰러지던 사람들이 또 곱똥을 싸며 배를 끌어안고 신음하다가 무리로 죽어간것이다. 그때 진서도 배앓이로 쓰러져 죽어가고있었다. 눈까풀이 뒤집혀진 그가 100여명 사람들이 열흘나마 세수를 하고 땀에 젖은 옷까지 헹구어낸 나무통속의 구정물을 정신없이 손바닥으로 떠먹을 때 그는 이미 죽음의 문지방에 들어선 사람이였다. 고열로 허덕이며 물, 물만을 찾았다. 물 한모금- 그것만이 마지막소원이 되였다. 물 한모금, 그것도 깨끗한 물 한모금만 있었으면!…
포로수용소에서 약을 바란다는것은 허황한 잠꼬대였고 정신나간 희망이였다. 그러나 동지들은 가만히 앉아 그가 죽기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김국홍(김진서)이 죽는다!-》
방봉연이 맨처음 소리친것 같다. 장흥지구사시절에 안면을 익혔던 애젊은 전투원, 그는 마치 그 울부짖음소리로 죽음의 선고를 중지시키려는듯 했다. 그러자 군정대학에서 진서가 배워준 사람들, 장흥지구사 3련대출신들, 남부군에서 싸우던 빨찌산동지들이 그를 떠메고 의무소로 몰려갔다. 그들 역시 리질로 고통받고있었지만 숨이 꺼져가는 동지를 위해 떨쳐나섰던것이다.
란투가 벌어지고 방봉연과 몇사람은 총탁판에 맞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대신 구아니찡 몇알이 진서의 입에 들어갔다. 폭동을 두려워한 수용소측이 당장 숨져가던 몇사람을 형식적으로나마 치료하는척 했다.
피로써 얻어낸 구아니찡 몇알!… 그때부터 약이란 곧 피라고 생각해온 진서였다. 생명을 구하는 약이 생명을 대가로 요구했던것이다.
그래서 진서는 화려하고 희한한, 값으로는 계산할수 없는 사랑의 약품들을 보면서, 구아니찡 몇알을 먼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 아 인간도살장, 생지옥이였던 광주포로수용소… 눈물속에, 온몸을 떠는 흥분속에 진서는 생각한다.
어찌 광주포로수용소뿐이랴. 그곳에서 보다 더 참혹한 죽음이 기다리고있던 교도소들… 놈들의 전향테로가 제일 극악했던 70년대초와 80년대에 《전향공작전담반》과 극악범, 강력범들까지 달려들어 사등뼈를 분지르고 살가죽을 벗기고도 최후의 숨을 몰아쉬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약봉지를 내대며 전향을 회유하고 강요할 때 많은 동지들이 그것을 거부하고 최후를 마쳤다.
김규호동지, 그는 위장이 걸레쪼각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여서 약이 없이는 대두박 한점도 소화시킬수 없었으나 전향의 요구가 든 약을 거절하고 그대신 강제로 쏟아넣은 소금물을 삼키던 끝에 숨지고말았다.
최한석동지, 그는 심장병환자였다. 언제 어느 순간에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갈지 알수 없는 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온몸을 발가벗기우고 물에 적신 바줄이 뱀처럼 휘감고(바줄을 물에 적셔 때리면 겉에는 상처가 나지 않고 속만 터진다.) 손톱, 발톱을 다 뽑히면서도 약을 거절하였다. 마지막으로 동지들이 그를 본것은 미이라처럼 뼈와 가죽만 남고 새까맣게 타버린것같은 그가 소지의 잔등에 업혀 사체실로 옮겨지던 모습이였다. 끝내 심장발작을 일으켰는데 마지막으로 악소리를 쳤으나 시작되던것처럼 급기야 뚝 그쳐버린 약한 소리였다고 한다.
강동찬동지, 적들에게는 호랑이로, 동지들속에서는 강장군으로 널리 알려져있던 인민군출신 비전향장기수, 고혈압이 극기점을 넘어 혈압계의 눈금이 다 차고도 남아 의무관들조차 믿지 못할 지경이였다. 그에게도 약을 내놓으며 전향공작을 들이댔으나 꺾지 못했다. 결국 그는 운동시간에 혈압이 튀여 식물인간이 되여버렸다. 잡범들속에서 오줌똥도 가림없이 먹는다는것을 알고 분노한 동지들이 집단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강동찬동지를 내놓으라!》
《동지들속에 있게 하라!》
끝내 동지들곁에 옮겨왔으나 이미 살이 다 문드러진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 이른 그도 《전향공작전담반》만 보면 황소처럼 울부짖었다. 끝내 그는 36년간의 옥살이끝에 눈을 감고서야 철창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 진서가 직접 보았거나 소문에 들은 동지들을 다 꼽자면 끝이 없을것이다. 교원출신 빨찌산이였던 손문기동지, 결핵으로 말라가던 박정대동지, 얼마전에는 또 김재성동지…
약이란 무엇인가. 육체적생명은 구할수 있으되 사상을 전향시킬순 없다. 고통을 덜자고 만들어진것이지 고통을 더하자고 만들어진것은 아니다.
약 한알도 입에 넣어보지 못하고 간 동지들, 생명을 내던지면서도 그것을 차버렸던 동지들, 그들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가슴은 터질듯 했다. 불거져 나온 광대뼈어름이 꺼멓게 죽어가고 혀가 말라드는 입에서는 거쉰 소리가 새여나왔다.
동지들, 먼저 간 동지들,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께서 이 보약들을 보내주셨소.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해서 보내주셨는데 이걸 어쩌문 좋소. 동지들은 다 어디 가구 우리만 남았으니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하오. 동지들, 내 말을 들으시오?…
단 한번만이라도 눈을 뜨고김정일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이 약들을 좀 보시오. 이 사랑의 보약들을 좀 보란말이요!…
그의 소리없는 웨침을 김병택, 한제완, 류은혁도 들었을것이다. 한쪽 눈에 안대를 댄 김병택도 눈물에 젖어있다. 말로는 다 표현할길 없는 사랑과 은정에 목메여, 풀길없는 아픔의 추억에 가슴이 저려 울고있다. 70살이상의 로인들이건만 어린애처럼 서로 붙안고 울고있다.
눈물을 잊은지 오랜 그들이였다. 뼈가 으스러질 때에조차 《안된다. 우린 굽히지 않는다!》 하고 끝까지 버텨온 그들이였다. 진서는 또 정대천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옥살이로 심해진 취장염을 고쳐보려고 이를 사려물던 강인한동지, 교도소에서 안기영동지로부터 침술을 익힌후 못을 갈아서 침대까지 만들었다.
그가 오늘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가. 그처럼 모진 고문에도 끄떡없던 동지, 그처럼 생을 사랑했던 동지가 출소후 저 거제도에서 자살했다니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 정대천동지, 어쩌문 그렇게 갔소. 한달만 더 지탱했어도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보내주신 불사약을 받아안았을게 아니요. 장군님께서 이 김진서도 잘 아시는데 인민군중대장이였고 용감한 빨찌산, 비전향장기수인 정대천이라고 왜 모르시겠소. 아 대천이, 정말 이런때 난 어쩌문 좋소?!…
히로시사무국장도 온통 눈물에 젖어있었다. 난생처음 이처럼 울어대는 로인들을 보았으리라.
가슴뜨거운 그 사연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것이리라.
그는 처음 김진서를, 다음은 류은혁, 김병택, 한제완로인들을 부둥켜안고 뼈마디가 앙상한 그들의 손을 마구 쓰다듬었다. 흐느낌소리같이 무어라고 되뇌이고있었지만 한마디도 분명치 않았다.
그들은 어느새 날이 저물고있는것도 알지 못했다.
어데선가 수닭의 목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스러져가는 황혼이 유리창에서 희미해졌다. 밤과 어둠을 싫어하는 로인들이였지만 누구도 불을 켜려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엔 벌써 파아란 새벽이 선명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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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물보약들이 전해지도록 적극 노력한 총련중앙녀맹부부장 남주야의 편지가 세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의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국가보안법》이 살판치는 남조선으로 보내는것만큼 남주야는 여러 인사말들중에 가끔 의미심장한 문구도 써넣었는데 그중에는 옛 지리산빨찌산경력자 최동환에 대한것도 있었다.
《최동환을 잘 아시는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알고싶어한다고요.…》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알고싶어한다?!…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 짧은 질문에 대답하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것인지 과연 그들이, 그의 아들이 짐작이나 할수 있겠는가?…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있어서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추억이란 없다. 아픔과 슬픔… 고통이라고만 하기엔 그 말이 담고있는 의미가 너무도 부족한것만 같다.
추억은 고통을 낳고 고통은 또 새로운 비애를 가져온다. 하여 김진서는 또다시 잠 못 드는 괴로운 밤을 보내야 했다.
최동환의 이름은 오랜 세월 차일평과 련결되여왔다. 변절자 차일평, 변절자 최동환… 이제 그의 아들에게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준단말인가?…
광주의 밤, 밤은 언제나 괴롭다. 어둠은 언제나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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