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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냉전 중에도 미국에 유학생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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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중
댓글 0건 조회 1,637회 작성일 12-04-2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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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냉전 중에도 미국에 유학생 보냈다
북한, 1960년대부터 미국 대학에서 배우게 해…양국 대학 간 직·간접 교류로 학생 선발
기사입력시간 [1164호] 2012.02.08  (수)노진섭 기자 | no@sisapress.com  

  
2011년 현재 3명의 북한 유학생이 있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 얼바나샴페인 캠퍼스 전경. ⓒ일리노이대 홈페이지

미국에서 공부하는 북한 유학생들이 있다. 특히 미국·소련 냉전 시대였던 1960년대부터 북한 국적의 학생이 미국 대학에서 유학했던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1990년 이후의 재미 북한 유학생 수만 간간이 알려져왔다.

북한 유학생이 많은 대학으로 알려진 미국 일리노이 대학(UIUC· 얼바나샴페인 캠퍼스)에 1967년부터 2011년까지 등록한 북한 국적의 유학생은 모두 1백87명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대학 학적 자료를 보면, 지난 45년 동안 이 대학에 유학한 북한 출신 학부생은 1백29명, 대학원생은 57명, 연구원 1명 등이었다.

1967년에는 남학생 한 명, 여학생 한 명 등 모두 두 명이 이 학교 학부생으로 등록했다. 1960년대에 이 대학을 거쳐간 북한 유학생은 모두 여섯 명이고, 대학원생으로 등록한 북한 유학생은 없었다. 1970년대에는 학부생이 여덟 명으로 집계되었다. 1974년부터 1977년까지, 그리고 1979년부터 1984년까지는 북한 국적의 유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1980년대에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서, 1985년에는 남학생 한 명만 학부생으로 등록되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이 대학을 다닌 북한 유학생은 없다.

1990년대부터 크게 증가…대학원생도 등장

  
그러나 1990년대부터 미국으로 향한 북한 유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학원생도 이 시기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1993년 이 대학에 등록한 북한 유학생은 모두 10명인데, 학부생 아홉 명, 대학원생 한 명이다. 1990년대에는 모두 67명이 이 대학에서 학부생 또는 대학원생으로 공부했다. 2000년대에는 북한 유학생 수가 더욱 늘어나 2011년까지 모두 1백5명이 이 학교에서 유학했다. 처음으로 10년 동안 누적 유학생이 100명을 넘은 셈이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학부생과 대학원이 골고루 섞여 20명 이상이 해마다 이 학교에 등록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단 한 명도 없다가 2011년 학부 과정에 남학생 한 명, 여학생 한 명과 연구원 한 명 등 모두 세 명이 등록했다.

지난 45년 동안 이 대학에서 공부한 북한 유학생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학부생 1백29명 중 남학생은 57명, 여학생은 72명이었고, 대학원생 57명 중 남학생은 22명, 여학생은 35명이었다. 북한에서 유학생을 선발할 때 여학생은 제외한다는 그동안의 추정을 뒤집는 결과여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미국 전체 대학에 분포하고 있는 북한 유학생은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이 미국 기관과 현지 언론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로는 2011년 현재 16명의 북한 국적 학생이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국, 국무부, 국제교육연구소(IIE) 등에 따르면, 이들 중 13명은 대학의 학부생이고, 나머지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원 등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 유학생은 100명 이상이었다. 특히 2000년과 2004년에는 각각 2백1명, 2백19명으로 2백명을 넘기기도 했다. 학위 취득 목적 외에 단순 연구원 등으로 유학한 북한 학생까지 포함하면 이 수는 더욱 늘어난다. 미국 국무부가 2001년 한 해 동안 북한에 발급한 유학생 비자가 3백건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2009년부터 북한 유학생이 43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2010년 57명에 이어 2011년 16명으로 많이 감소했다. 국제 사회의 경제 봉쇄 조치 등으로 북한 경제가 악화된 데다 김정일 사망 등이 그 배경으로 분석된다.

리나 소만 IIE 공보팀장은 이메일을 통해 “미국 전역에 있는 대학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부 대학에 북한 학생이 등록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들 중 일부는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 살다가 왔을지도 모르지만 북한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다”라고 밝혔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까지 강제 소환 등으로 학업을 포기한 북한 유학생은 100여 명이다.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한 북한 유학생은 68명에 이른다.

1990년대 들어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에 북한 유학생이 급격히 늘어난 배경은 1984년 김일성의 동유럽 국가 방문과 무관하지 않다. 동유럽 여러 국가를 순방한 김일성은 북한 경제가 낙후된 원인을, 선진 기술을 도입하지 못했고, 인재를 양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유학생을 해마다 6백명씩 외국으로 보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 외국 유학 출신자는 현재 북한 사회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잇기 위해 지금까지도 외국으로 유학생을 꾸준히 보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유학생 수가 늘어났지만 아무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당국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미국 내 북한 유학생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현지 대학생, 언론인, 미국 기관의 조사 방식 등을 통해 북한 유학생의 실체를 알 수 있다. 그들은 김일성·김정일 친인척 자녀 또는 당 고위 간부의 자녀일 가능성이 크다. 또 유엔대표부 등에 파견된 북한 공관원의 자녀일 수도 있다. 일본에 살면서도 북한 국적을 유지해온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학생도 있다. 이들은 비자를 발급받을 때 ‘일본 여행증’을 사용하면 일본인 유학생으로 분류된다. 물론 학위 취득이 목적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과 정책 등을 분석할 전문가를 양성할 목적으로 보낸 유학생도 섞여 있을 수 있다.

북한의 유학생 선발은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특히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 친인척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당 고위 간부의 자녀이고 사상 교육을 투철하게 받았더라도 긴 시간 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고, 현지에 친인척이 있다면 도움을 받아 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에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학하던 북한 학생 중 일부가 망명한 사례도 있었다. 

또 북한에서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부모의 출신 성분도 좋아야 한다. 8촌 이내 친인척 중에 당 정책이나 법에 따라 처벌받은 사람이 없어야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군인 출신과 기혼자는 유학생 자격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북한 교육부, 각 대학, 정무원(북한 국민경제 담당 부서) 산하 교육위원회 등이 유학생 후보를 선발한다. 유학생 최종 결정권은 중앙당 국제사업부에 있다. 유학생으로 선발되면 평양외국어대 등에 있는 유학생 강습소라는 곳에서 6~14개월 동안 어학과 사상 교육을 받는다. 출국 12주 전에는 중앙당 국제사업부에서 출국 선서를 한다.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을 보내준 당에 보답하자는 내용이다.

현지에서 상호 감시하고 비상연락망도 갖춰

  
북한의 여권.
북한 학생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미국 대학과 북한 대학 사이의 직·간접 교류로 미국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있다. 남캘리포니아 대학(USC) 등 일부 미국 대학은 북한의 김일성대, 김책공대 등과 학술 교류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쿠바 등 제3국으로 유학을 간 후 교육 교류 프로그램에 따라 교환 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향하기도 한다. 2002년 미국의 한 방송인이 쿠바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미국 대학으로 유학 왔다는 북한 국적의 학생을 만난 일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미국 현지 대학생들에 따르면, 북한 유학생들은 대외적인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노출된 북한 유학생을 북한 당국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북한 유학생들이 북한 체제에 의심을 품지 않도록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자 유학생들이 민주주의 사상에 노출될 것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5백여 명 전원을 긴급 귀국시켰던 적이 있다. 지금도 대학 또는 지역별로 북한 유학생들은 비상연락망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6시간 이내에 연락할 수 있어야 하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치 학습을 한다.

또 여권을 당에 반납해서 유학생은 다른 국가로 이동하지 못한다. 학교 성적이 낙제 수준이면 강제 송환되므로 유학 생활 초반에는 성적이 상위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상 교육의 ‘약발’이 떨어지면서 점차 성적도 중·하위권으로 밀린다. 방학 중에는 미국에 남지 않고 전원 북한으로 일시 귀국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한은 고질적으로 경제 문제가 심각하므로 무역·경제·경영과 같은 경제 분야에 대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미국에 있는 북한 유학생 중 상당수는 경제 관련 분야에서 공부할 것이다”라고 추정했다.

북한 교수 중 미국 석사 유학생 출신도 있어

미국에 유학하는 외국 학생의 65%는 자비로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한다. 미국 대학의 장학금을 받는 외국 학생은 23%이다. 나머지 12% 정도는 자국의 국비 장학금, 미국 정부의 장학금, 재단의 장학금 등을 받는 부류이다. 북한 유학생들의 유학 자금은 이 12%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북한 당국이 유학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초 북한은 외국 유학생에게 매월 80달러를 지급했는데, 이는 기숙사비와 식사비로 쓰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따라서 북한 유학생은 미국 정부나 재단으로부터 유학비 등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유학을 마친 후 북한으로 돌아가면 유학생들은 3개월 동안 사상 교육을 받고 혁명사적지 등을 답사한다. 이른바 ‘귀국 학생 상호 분리의 원칙’에 따라 3년 동안 외국 유학 출신 학생은 분산 배치되며 당의 관리와 감시를 받는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초청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북한 학생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제3세계 국가의 인재를 육성한 경험이 있는데, 이런 조치는 미국의 전략적인 행보로 보인다. 미국과 캐나다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북한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북한 유학생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 외국 유학을 마친 북한 학생들은 전문가 또는 외교관으로서 활동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생뿐만 아니라 북한의 교수도 자본주의 국가로 유학을 떠난다. 지난해 북한 김일성대와 정준택경제대의 거시 경제·조세·국제 통상·금융 통상 분야 교수 여섯 명이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사례가 있다. 북한 교수들이 캐나다 유학길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지난해 7월부터 6개월 동안 캐나다 서부의 명문 대학인 브리티시컴럼비아 대학(UBC)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이들은 국제 경영, 국제 경제, 재정, 무역 등을 공부했다. 교수 유학생들은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유학 비용은 캐나다 지원 단체가 모금으로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와 북한은 2001년 외교 관계를 맺었지만 북핵 문제로 인해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양국은 교육계 교류가 먼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번에 북한 교수들을 초청했다.

이 프로그램에 미국의 일부 대학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북미 지역 국가에서 공부하는 북한 유학생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국적으로 미국 유학 떠난 ‘탈북자’도… 

김상희씨(가명·여성)는 20대 초에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서 7년을 살다가 201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북한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김씨는 석·박사 과정에 도전한 것이다.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부해야 시야도 넓힐 수 있다는 생각에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김씨처럼 국내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 가운데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국적이 한국이므로 개인적으로 유학길에 오르기도 하지만 양국의 교류 프로그램에 따라 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지난해 5월 영국 정부는 국내에 있는 탈북자 한 명을 영국 유학생으로 초청했다. 영어 교육, 인턴십, 영국 유학 기회를 제공하는 ‘미래를 위한 영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아, 2002년 한국에 정착한 오세혁씨가 지난해 9월부터 1년 동안의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통일부 정책지원과 관계자는 “탈북자가 개인 부담으로 외국 유학을 떠난 건수는 파악하지 못한다. 다만 정부나 재단의 지원을 받아 외국 유학을 떠난 탈북자는 현재 10여 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탈북자 출신이기 때문에 신변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있다.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외국 현지 정부와 한국 대사관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도록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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