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정치적 결단과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에게는 신앙과 같은 대원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당개혁’이다. 이 원칙에 입각해서 유시민을 바라본다면 그의 선택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매우 명료하다.
어줍잖게 유시민과 대권, 유시민과 국회권력을 연결해서 바라보니까 복잡하고 못마땅한 거다.
딱 한번 노무현대통령과 글로서 소통한 적이 있다.
노무현대통령께서 나와 ‘확신범’이라는 사람의 글을 공유하고자 추천하셨는데 댓글 형식으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셨다.
“저(노무현대통령)나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확신범’이라는 사람의 글에 “저보다 저를 잘 그린 글”이라고 화답하셨다. 다음은 ‘확신범’이라는 사람의 글의 일부다.
<노무현은 액면 그대로이다. 소통이 정말 쉽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저 말 뒤에 다른 저의가 있을 꺼야 하는 기대 때문이다. 제일 심오하게 오해할 수 있는 비법은 조중동으로 필터링된 노무현을 보는 것이다. 반면 직접 글을 보면 이보다는 동영상을 접하면 그 보다는 현장의 노무현을 대하면 바로 통한다. 노무현은 쉬운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사람이라고 느끼는 점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처럼 살수 있지?라고 느낄 때이다.노무현은 말도 쉽지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을 삶으로 보여준다.노무현은 행동으로 이해하면 무지무지 쉬워진다.>
(원문: http://www.knowhow.or.kr/rmh_rohbest/view.php?start=20&pri_no=999999778&mode=&search_target=&search_word=)
유시민의 정치적 신념은 ‘정당개혁’이다. 정권창출이 아닌 정당개혁이 우선이다.
개혁당을 통한 실험을 열린우리당을 통해 국가 저변으로 확산시키려다가 기간당원제 폐지와 해체로 좌절했다.
국민참여당을 창당했다가 세가 부족하여 좌절했다.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합류해서… 좌절로 내몰리고 있다.
유시민은 왜 하필 진보통합을 선택했을까?
민주당으로 갔다면 지금 그의 상황은 크게 달랐을 텐데, 그리고 그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데도 왜 진보통합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진보진영에는 있고 민주당에는 없는 진성당원제(주권당원제, 기간당원제) 때문이다.
정당개혁의 기본토대인 진성당원제 없이는 유시민의 정치적 꿈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당연하고 명료한 선택이 진보통합이었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왜 민주당과 함께 할 수는 없을까?
이 또한 답은 같다. 진성당원제든 주권당원제든 기간당원제든 이름은 어쨌든 당원이 주인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따라서 민주당은 당원이 주인이 되지 못한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민주당으로는 당원이 주인 되고, 정당이 기득권 세력이 아닌 국민의 대의기관으로 자리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시민은 다시 선택의 기회가 와도 진보통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아주 간단명료하다.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 폐지, 열린우리당 해체,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의 운명…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은 정당개혁 없이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토양 자체가 정당개혁 없이는 대통령 혼자 성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유시민의 선택은 그가 정치를 떠나지 않는 한 늘 변방일 수 밖에 없다. 제 3의 반듯한 정당에 그는 진심으로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노무현대통령의 운명을 통해 ‘반듯하면서 일정수준 이상의 힘을 갖춘 정당’ 없이 권력을 잡을 경우의 한계를 뼛속까지 각인했다.
민주당은 정권창출이 목적이다. 유시민은 반듯한 정당창출이 목적이다.
장담하건데 유시민은 문재인이 민주당을 통해 야권의 대선후보가 된다면 기꺼이, 즐거이 나설 것이다. 정동영, 손학규가 되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노무현科 정치인 유시민式 정치다.
유시민에게는 ‘대권’ 보다는 ‘정당개혁’이 비교 불가한 우선과제다.
아직도 그에게 ‘대권에 대한 탐욕’이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억지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면, 장담컨대 유시민에게는 별로 해가 되지 않겠지만 정권창출을 염원하는 쪽에게는 해가 될 것이다.
같은 정당의 가족은 아니지만 신뢰할 만 하고 힘까지 갖춘 이웃을 추잡스런 탐욕으로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유시민은 진심으로 통합진보당의 재건에 올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망이 반드시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정말 당권, 대권 따위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국민참여당을 출발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제 2의 노무현이 아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는 그분처럼 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자신을 던져야 할 때 던질 줄 아는 정치인이 되겠다."
그는 자신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어쩌면 국민은, 특히 진보 시민들은 유시민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유빠로서의 작은 바램이지만, 나는 그러한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고 본다.
이건 어설픈 전략이나 처세로 될 일이 아니다. 오직 진심이어야 한다.
유시민의 바람은 아직 불지 않았다.
ps.
부질없는 짓이지만, 나는 아직도 자주 ‘만일 열린우리당이 노무현대통령을 출당시키지 않았다면, 열린우리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역사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노무현대통령을 출당시키고, 열린우리당을 해체시킨 후에 도대체 민주진영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해체는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의 첫 단추였다.
다음은 노무현대통령이 당시 청와대브리핑에 직접 올린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라는 글의 일부다.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
(전략)
'실패한 대통령’. 참으로 싫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했고, 누가 실패한 대통령이라거나 국정실패라는 말만 하면 논란거리가 되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참 어려웠으나 다행히 이제 한고비를 넘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에 빠지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표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절박한 때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그것도 당적을 정리한 대통령이 왜 자꾸 정치에 대해 얘기하느냐고 합니다. 지지율이 좀 올라 교만해진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지금처럼 절박한 때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지지율이 한자리 수까지 떨어졌다는 잘못된 언론보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성공하는 것 말고 정치인 노무현이 무슨 다른 꿈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열린우리당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묻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한 전직 기자를 만났더니 그 기자가 당선자 시절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선 직후 저를 인터뷰 했는데, 대통령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저에게 물었더니, 저는 한 30초나 생각하고 나서“정-계-개-편” 이 한마디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도 잊고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까? 87년 통일민주당의 분열과90년 3당 합당으로 일그러져버린 한국의 정당 구도, 그 이후 지금껏 한마음으로 매달려 왔던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 이것이 ‘정치인 노무현’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굳이 저만의 소망이었을까요? 목이 터져라 “구-웅민 토-옹합”을 외치고 박수를 치던 지지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말한 ‘정계개편’은 그동안 우리 정치에 자주 있어 왔던 정계개편과는 그 뜻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하여, 국회의 다수를 만들기 위하여 원칙 없이 편의에 따라 정치를 왜곡시킨 그런 이합집산이 아니라, 일그러진 우리의 정당구도를 바로잡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정치를 정치답게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은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열린우리당이 다시 표류하고 있으니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다시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정치인 노무현’의 꿈이 표류하고 있는데 불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역사의 대의가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략)
2007년 5월 7일
이 글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으로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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