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다가오는데 야권의 고민은 깊어간다. 4·11 총선으로 우뚝 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견제할 대항마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야권 연대의 한 축을 담당해온 통합진보당 사태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월9일로 예정된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 경선은 이른바 이-박(이해찬-박지원) 연대의 후유증으로 신선한 바람을 못 일으키고 있다. 이런 야권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게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지난해 10·26 재·보선으로 당선된 박 시장은 보궐인 데다 취임 7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속도감 있게 각종 성과물을 내놓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실현, 서울시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희망온돌 프로젝트, 뉴타운 출구전략 마련 등이 대표 성과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미리 등록금을 내고 휴학했다가 복학하는 서울시립대 학생의 경우 차액을 돌려받거나 그 다음 학기 등록금이 0원이 된다”라는 ‘행복한’ 뉴스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SNS상에는 “시장 한 명 잘 뽑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서울시민들은 좋겠다. 이런 시장 두어서” 같은 찬사가 쏟아진다. | | | ⓒ시사IN 윤무영 |
반응이 좋으니 야권은 ‘박원순 모델’을 다음 대선의 주요 홍보 포인트로 삼을 작정이다. “박원순 시장을 만들어낸 게 야권이다. 올 대선에서도 이런 대통령을 야권이 만들어내겠다.” 이런 논리다. 박지원 원내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통합당은 이런 구상을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박 원내대표는 5월15일 열린 시도지사 민생협의회에서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제1호 법안으로 반값 등록금 법안을 상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립대에서 반값 등록금을 시작한 것은 선각자적인 일”이라는 평가도 곁들여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 시장은 ‘쿨한’ 반응을 보였다. “상식과 기본에 기초해 시정을 운용하면 이런 결과물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전임 시장들이 그렇지 못해서 내가 과대 평가받는 것 같다”라는 겸양이다. 취임 7개월째를 맞는 박 시장을 5월13일 서울 서소문에 있는 시청 별관 시장실에서 만났다. 평일에는 업무 일정이 빠듯해 인터뷰는 주로 휴일에 잡는다고 했다. 부지런한 시장 ‘탓’에 관련 공무원들도 줄줄이 휴일 업무에 나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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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구
5월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원탁회의를 열기에 앞서 시청 회의실에서 직원들과 몸을 풀고 있다.
트위터도 주로 밤에 하던데, 휴일에까지 일을 하면 공무원들이 너무 혹사당하는 것 아닌가?(트위터를) 매일 생각날 때마다 하고 싶은데 그것도 참았다가 일요일 저녁에만 한다(웃음). 공무원들이 트위터를 열심히 봐줘서 맨홀 뚜껑, 잠실야구장 펜스 고치기, 버스회사 체불임금 등이 바로바로 해결됐다. 내가 일부러 지시한 것도 아니다. ‘아, 그런가요?’ ‘언제부터 (임금이) 밀렸어요?’ 예컨대 이렇게 트위터에서 한마디하면 공무원들이 곧바로 ‘지시 사항’이라고 받아들인다. 확실히 시민사회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상임이사였는데도 말 안 듣는 경우가 허다했다(웃음). 사실 공무원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있다. 옛날 같으면 비자금도 좀 쌓아놓고 고생하는 부서에 도움이 되게 하고 싶은데 요새는 그럴 수도 없잖은가.
트위터에 민원이 폭주할 텐데, 답변할 때 딱히 고르는 기준이 있나?다 답하지는 않는다. 그냥 재미로 하거나 정치적인 건 빼고,
개인적인 어려움인데도
공공성이 있다거나 하면 반영한다.
7개월차 시장인데, 어디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느끼나?그건 시민들에게 물어보셔야 하지 않나?(웃음) 시민들은 오히려 사소한 것 같고 때로는 예산도 안 들어가는 일에 매우 큰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에 음식점 주변에서 주차 단속을 안 하기로 한 것은 정말 반응이 뜨거웠다. 음식점 주인이나 손님이나 상당히 불편했는데 그걸 해결했기 때문이다. 또 전통시장에 주차장을 새로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대신 버스정류장을 하나 더 만들거나 정해진 시간에 주차를 좀 허용하니까 많은 문제가 풀렸다.
사실 전임 시장들이 벌여놓은 일이 워낙 많아서 새로 뭘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그래서 전임 시장이 한 것 중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그대로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하이 서울’, 이런 명칭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거 하나 고치면 작은 인쇄물부터 어마어마하게 많은 걸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이해 못하겠다 싶은 대목이 전임 시장들이 시민의 이익보다 개인이나 특정 정파의 이익을 우선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공무원 인사, 특히 출연기관 인사의 경우에는 새누리당과 관련된 사람들이 기관장이나 이사, 고문 식으로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 일을 가장 잘할 사람을 임명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그건 사익이 작동한 것이다.
ⓒ뉴시스
민생 탐방에 나선 박원순 시장(오른쪽)이 5월2일 남대문시장에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하철 9호선 문제가 불거졌다. 이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계약을 한 것이 논란거리인데, 그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다 파악했나?9호선에 투입된 민자는 6000억원으로 사실 적은 부분이다. 그러면 지방채를 발행한다거나, 저 같았으면 시민투자 같은 걸 받았을 거다. 은행 이자보다는 더 받고 주식보다는 안전하니까 하나의 투자상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걸로 보면 분명 로비가 있었고, 그것 때문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계약으로 특정 인사가 이익을 보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와 친한 사람, 내 친인척이 이해관계 속에 있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사업권을 주면 안 되는 게 기본이다. 공직자의 기본 윤리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던 게 오늘의 비극까지 오게 된 거다. 모든 시정에서 기본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비가 있었다고 하는데, 책임 소재가 서울시에 있는 것 아닌가?서울시 쪽에서 여러 가지 확인을 하고 있지만, 수사권이 없는 상황이라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민자 사업이 2000년대 초반에 집중됐다가 요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집행하는 처지에서 볼 때 민자 사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공공자금이 부족해서 민자를 유치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민자는 결국 기업의 이익을 최대한 늘리려는 것이라 당연히 공익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그건 이미 세계사적으로도 증명이 돼 있고, 당장 서울이 그러고 있다. 따라서 지하철 9호선 문제는 비록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앞으로 저지를지도 모를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반면교사가 됐다고 본다. 우면산터널도 그렇고…. 앞으로 민자가 어떤 기업의 탐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산이 부족하면 3년 안에 할 걸 5년에 하는 식으로 좀 더 여유롭게 가면 된다. 필요하다면 시민기금도
고려해볼 일이다. 투자도 시민이 하고 이익도 시민에게 돌아가면 더 바랄 나위가 없잖은가.
재협상이 가능한가?쉽지는 않다. 협약이라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는 없다. 이번에 실제로 9호선 측이 요금을 인상했으면 오히려 사장 해임과 계약 파기도 고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이 단계에서 계약 해지까지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사IN 조남진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서울역 노숙인 20명을 선발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웬만한 건 그대로 간다고 하셨지만, 뉴타운이나 서해뱃길 등 전임 시장의 정책이 너무 많이 뒤집히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굉장한 오해다. 서해뱃길 사업의 경우 오세훈 시장 시절에 이미 상당 부분 정리가 됐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수익성이 없다, 채산성이 없다고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국토부가 왜 안 되는 걸 가지고 자꾸 주장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박 시장은 여러 번 ‘기본’을 강조했다. 시민단체를 꾸리든 서울시를 운영하든, 나아가 나라를
경영하든, ‘상식’과 ‘합리’에 기초해 판단한다면 큰 무리가 없으리라는 주장이다. 박 시장은 그 방식으로 소통을 강조했다. “시장이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알겠느냐. 많은 전문가와 함께 어떤 경우에는 공무원이 피곤해할 정도로 회의를 해서 결론에 도달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때는 여러 번 회의를 해도 긴가민가 할 때가 있죠. 어떤 때는 회의 한 번으로 정리될 때도 있고. 아무튼 몇 차례 회의를 하다보면 서로 지쳐서라도 결론을 내더라고요.” 5월21일 발표하는 서울시내 홍수 대책도 그런 1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쳐 도출된 결론이다. 광화문은 빗물 배수를 위한 대심도 터널을 뚫지 않고 다른 방향을 찾기로 했다. 대심도 터널을 안 뚫어도 실제 주민에게 가는 피해가 적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신월동 같은 경우는 폭우가 내릴 때 워낙 주민에게 가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대심도 터널을 뚫기로 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반대를 했던 박창근 교수(관동대)를 시민감사관으로 임명해 모든
공사 과정을 지켜보도록 했다.
ⓒ시사IN 포토
박원순 시장은 안철수 원장(왼쪽)에 대해 “공동체 이익을 생각하는 자질을 갖췄다”라고 평했다.
소통이 중요하긴 한데, 회의를 10여 차례씩 하다보면 그만큼 업무 처리가 더딘 것 아닌가?오히려 그게 훨씬 빠르다. 뉴타운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서울에 1300개나 되는 뉴타운을 지정해놨으니 얼마나 아비규환이었겠나. 살던 사람 중에 80%가 축출당했다. 모든 분을 다 배려해야겠지만 갈 곳 없는 사람, 쫓겨나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던 월세 세입자들의 이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집주인들도 내가 뉴타운을 안 하겠다는 것으로 오해 안 했으면 좋겠다. 뉴타운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확한 분담금 등을 제시하고 주민들의 찬반을 명확히 물어서 주민이 원하는 쪽으로 하자는 것이다. ‘OS 요원’이라고 찬성 비율 높여서 무조건 뉴타운 쪽으로 끌고 가는 식의 사기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서울시는 5월14일 뉴타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265개 뉴타운 지역의 분담금 실태를 정확하게 조사해 제시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30% 이상이 반대하면 뉴타운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재깍재깍 ‘뉴타운 폭탄’ 무사해체될까 기사 참조). 이에 앞서 주민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된 18곳은 즉시 해제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다음 날 발표될 뉴타운 가이드라인에 대한 질문이 미리 오갔다.
뉴타운을 해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정법(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서 반대가 30%면 해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것 말고도 법적인 문제가 좀 보완되어야 하는데, 19대 국회가 구성되면 그런 부분도 제안할 생각이다. 이젠 공무원도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에 공무원은 ‘3불(不) 타령’만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전례가 없다’ ‘법령에 없다’ ‘예산이 없다’. 하지만 이 3불은 이제 서울시에 없다. 법령도 고치면 되는 것 아닌가. 중앙정부는 정책 결정기관이고 서울시는 집행 부서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보고 안 되면 법령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바꿔야 한다.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이 됐는데, 야당 시장 원하는 대로 법령 개정이 될까?법령 개정은 여야를 떠나 서울시민의 삶과 생존과 닿아 있기 때문에 국회에 적극 요청해서 바꾸도록 할 생각이다. 저는 새누리당이라고 꼭 반대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시민의 이익, 공익을 외면한다면 여당 스스로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자초하는 거다.
정부의 5·10 부동산 대책은 어떤가? 시장이 이미 평가하고 있지 않나? 별 반응이 없으니…. 기본적으로 인위적 부양책은 임시 대책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은 펀더멘털이 제대로 되어서 자연스럽게 살아나든지 해야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은 무리수다. 경제를 잘 모르지만 현재 경제적 어려움으로 보나 시대의 추세로 보면 부동산 가격은 지나치게 오를 수도 없고 올라서도 안 된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안 한다고 보면 되나?그것도 오해다. 낙후된 곳은 당연히 해야 한다. 다만 한꺼번에 너무 몰리지 않게, 소형과 중대형이 조화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과거 아파트처럼이 아니라 생태와
경관을 갖춘 공동체적 주거 형태가 될 수 있도록 지도력을 행사하는 건 당연하다. 주민들이 당장은 눈앞의 이익을 강조하지만 우리와 대화하면서 다 조정이 되고 있다. 개포동 재건축 단지들하고도 상당 부분 협의가 됐다. 지난번에 내가 예고 안 하고 몰래 그 지역에 갔는데, 10m마다 ‘박원순 물러나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더라. 그래서 “제대로 잘되면 ‘서울시장 잘한다’고 다시 써달라”고 말했고, 그러마고 주민들이 약속했는데 지켜졌는지 모르겠다(웃음).
파이시티 건도 내부 검토를 했을 것으로 본다. 사업상 필요했던 건가, 권력형 비리인가?아직 충분히 검토할 수는 없었다. 검찰 수사도 안 끝났고. 그래서 이 과정은 전부 복기를 해서 백서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기본적으로는 부당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과정만 봐도 우리 직업 공무원들은 대체로 반대했거나 굉장히 곤혹스러워했던 것 아닌가. 거기에 외부 압력이 가해졌던 것이고. 아무튼 서울시가 결정하는 여러 정책을 보면 비리의 그늘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많고. 그걸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중요한데, 그래서 공무원들에게 ‘누구에게든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시장의 역점 사업이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노’라고 해라. 그래서
공공투자관리센터를 만들었고, 위원을 선정할 때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노’라는 얘기를 들어봤나? 실무진에서 안 된다고 하는 건 제가 확실히 접는다. 실무진 판단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거 무시하고 밀어붙였다가는 사고 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배석자들을 둘러보며) ‘노’를 잘 안 하는 것 같다(웃음). 한 번은 ‘이거 하면 좋겠다’ 했더니 담당 과장이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 밤에 가만 생각해보니 아닌 듯싶어서 다음 날 ‘어제 말한 건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했더니 그분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더라. 다음엔 그러지 말고 처음부터 의견을 얘기해달라고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는데, 그런데도 참….
취임할 때 서울시 재정이 말이 아니었다. 빚이 좀 줄긴 했는데, 올해도 여러 사업을 해야 하니까 확 줄이기가 쉽지 않다. SH공사의 부채가 15조원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 중에서 임대주택 보증금으로 받아놓은 건 사실 갚을 필요가 없는 안정적인 부채이고, 나머지 여러 은행에서 빌린 돈을 빨리 갚아야 하는데, 이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SH공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무조건 팔아서 될 일은 아니다. 마곡단지의 경우도 땅이 100만 평 넘으니까 지난번에 LG가 요구한 대로 다 팔았으면 부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 지역은 R&D 단지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특정 기업이 다 차지해버리면 융·복합이라는 기본 취지가 퇴색하게 된다. 융·복합이라는 건 큰 기업, 작은 기업 등 온갖 생물이 모여야 자생력을 가지니까. 그래서 ‘박 시장이 저거 안 팔아서 하루에 얼마씩 손해 본다’ 이런 공격을 받으면서도 절반만 판 거다. 또 임대주택을 많이 지으려면 서울시가 어느 정도는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임대주택을 지으면서 빚도 줄여야 하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역할을 서울시가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든다.
그래도 성과를 내야 할 텐데….모든 분야에서 창조적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를테면
공유 시스템을 만드는 게 그렇다. 서울시에 시립병원이 13개인데 한쪽은 비싼 의료기기를 사놓고 비닐도 안 뜯은 상태로 놔두고, 다른 쪽은 그 기계를 비싼 임대료를 주고 임대해 쓰는 일이 벌어지고 있더라. 지하철 양 공사도 그렇다. 사실 제가 봤을 때는 통합하는 게 가장 경제적인데, 그게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노조가 반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공유 시스템을 만들어서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눠 쓰고 있다. 혁신인 셈이다. 또 서울시 광고매체가 어마어마하다. 버스, 지하철 등 그거 제대로 활용하려면 서울시가 아예 광고공사를 하나 만들어도 될 판이다(웃음). 중앙정부가 내놔야 할 것도 많다. 지하철이 매년 2000억원 적자인데, 주요 원인이 어르신 무임승차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생색은 다 내고 돈은 한 푼도 안 내놓는다. 0~2세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도 다른 지역은 5대5로 부담하는데, 서울의 경우 중앙이 2, 서울이 8로 부담한다.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물론 서울시가 지나치게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보지만, 이런 건 매우 불합리하다.
시장실에는 각종 정책이나 현안을 도표나 그림으로 정리해 패널로 제작해놓은 자료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박 시장이 언급한 ‘광고수입’을 가늠해보려는 듯, 서울시가
관리하는 각종 매체를 정리한 자료도 눈에 띄었다. 정부 정책 때문에 서울시가 부담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불평한 박 시장은 하지만 지난 3월29일 전국 시장·도지사들이 “영유아 보육비용을 중앙정부가 전액 부담하라”고 촉구한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가고 싶었는데, 지나치게 중앙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처럼 비칠까봐” 일부러 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따로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따로 만난 적이 있나? 안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두 번이나 ‘만나자’고만 하고는 감감무소식이다. 내가 첫 국무회의에 갔을 때 ‘한번 뵙시다’ 하더니 그냥 넘어갔고, 얼마 전 여수에서 시도지사 협의회를 했을 때도 한번 뵙자고 얘기했더니 ‘아유, 당연히 봐야죠’ 해놓고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웃음).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나?서로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완결되려면 서울시가 협력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서울시가 뭔가 일을 하려고 하면 중앙정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국토부 장관이나 이런저런 부서 장관들이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강둔치에 거대한 공원이 많은데, 여기에 부분적으로 도시 농업이나 숲을 조성하려면 국토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안 해준다. 또 용산공원만 해도 이게 천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서울의 얼굴을 바꾸는 프로젝트다. 이걸 어떻게 꾸밀지 서울시와 정부가 긴밀하게 협의를 해야 하는데 권한을 모두 국토부가 가지고 있고 서울시는 발언권이 아예 없다. 그러는 와중에 용산공원 내 캠프 세 곳을 (민간에) 팔아서 평택 이전 비용으로 쓰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용산 주변은 엉망이 된다. 뉴욕 센트럴파크 주변에 자연사박물관이나 구겐하임 등 여러 문화시설이 있는 것처럼 용산공원 주변도 그렇게 꾸며야 한다. 이런 논의들을 좀 해야 하는데….
서울시장 자리가 사실은 엄청난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적인 자리다. 정치 경력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해보니 어떤가?정치인의 자질이 훈련되고 육성되는 다양한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은 경제인으로서, 노무현은 인권변호사로서, 김대중은 전형적인 정치지도자로서 살아온 이력이 다르다. 나는 현실정치는 안 했지만 시민사회의 경험을 통해 늘 공익적 관점에서 정책을 발굴하고 사회적 현안으로 만들어내고 정책 결정자들을 설득하는 훈련을 해왔다. 그런 면에서 시민사회 사람들은 이미 정치를 해온 것이고 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안 할 뿐이지.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기업 운영은 효율적이어야 하지만 기업이 소비자들의 커뮤니티 이익을 챙기지 않고 수익에만 몰두하면 오래갈 수 없다. 반대로 또 비영리단체는 ‘논프로핏(non-profit)’이지만, 이익을 생각하지 않으면 조직에 한계가 생긴다. 제가 어떻게 하면 서울시 재정을 안정시킬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도 다 공익적인 거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안철수 원장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 자질을 나름 갖췄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인이지만 이분은 ‘논프로핏’이나 ‘커뮤니티(공동체)’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이다. 효율성이나 혁신이나 이런 건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프로페셔널 정치인들이 제일 안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미세한 테크닉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비전과 공동체 이익을 수호하는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공허하다.
문재인 상임고문이 안철수 원장에게 공동정부를 제안했다.그건 두 분이 좀 알아서 하시길…(웃음).
정치 얘기가 나오니 배석했던 공무원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박 시장도 정치 이슈에는 가급적 말을 아끼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두어 번 오간 질문과 답변에서도 박 시장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박원순은 이번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 안철수 원장은 기업인이지만 비전과 공동체 이익을 생각하는 자질을 갖췄다. 프로페셔널 정치인들이 가장 문제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현장’을 중시하면 대선의 길도 보인다고 야권에 조언했다.
민주당 당원인데, 민주·진보 진영의 대선 전망이 불투명하다. 총선 후에 다들 우울해한다.우리나라 정치는 국민이 만들어내잖는가. 재미있고 역동적인 면들이 있으니까, 아직은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가 자기 혁신과 성찰을 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면 시민은 다 보고 있다가 이를 평가한다.
“반MB로는 대선을 치르는 데 한계가 있다.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라면서 야권에서 ‘박원순 모델’을 거론한다.그런 모델이 된다면 즐거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도 특별한 모델이 있다기보다는 시민들의 이익을 위한 일이고 그것이 합리적 예산의 범위 안에 있다면 과감하게 결정하고, 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 중장기 과제로 미루는 식으로 취사선택을 한다.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 당파성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의 최종 목적은 공익, 국익, 시민의 이익이어야 한다. 그걸 확인하려면 현장으로 내려와야 하고, 시민의 삶을 하루만 돌아보면 뭘 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나는 현장을 굉장히 강조하는데,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거버넌스·집단지성의 시대는 ‘현장’이 답이다. 앞에서도 트위터 얘기가 나왔지만 과거에 세종대왕이 평생 삼천몇백 건 백성의 소리를 들었다는데, 나는 매일 저녁 수백 건 국민과 소통한다. 이런 좋은 제도를 왜 정치권이 활용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에 인터넷 정당 만들어라, 생활 정책을 일상적으로 다루는 생활 정당이 되어라, 기업이나 시민사회 인사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운영해라 이렇게 제안했는데, 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원순 시장 둬서 서울시민은 좋겠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아예 대선에 나설 생각은 없나?안 된다. 서울시민과 약속한 게 있는데 보궐선거로 들어와서 지금 사임한다고? 당장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안 된다. 내 목적이 대통령이 아니잖은가. 그랬으면 진작 나갔지(웃음). 다만 ‘정치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한번 보여주고 싶은 거다. 이렇게 하면 시민의 사랑도 받을 수 있다는 걸 정말 보여주고 싶다.
진행·녹취 도움/ 천관율·장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