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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그 날이 돌아오면 생각나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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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1,622회 작성일 12-05-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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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 18일이 되면 여러가지 상념이 겹칩니다. 광주민주화항쟁은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커다란 사건임과 동시에, 제 개인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1980년,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집이 누하동이었기 때문에 늘 산을 넘어 날아들어오는 매캐한 최루탄 내음 말고는 크게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에 와서 광주 최후의 망명자, 합수 윤한봉 선배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 삶과 생각도 그전까지 생각했던 방향과는 크게 달라지게 됐습니다.

재수를 하고 나서 들어간 대학에서 처음 접했던 광주의 진실은 물론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른바 386 세대의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배들에게 '불의 세례'를 받듯, 그렇게 전해들은 진실은 단순히 '충격' 이상이었습니다. 총상이나 자상으로 숨진 시신들의 사진들은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받은 가장 큰 충격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3학년 초에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갖게 된 '재미한청련' 분들과의 인연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저는 반은 미국 땅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났다는 반가움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해외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나름 역사와 조국의 사회, 또 동포사회에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실감은 바로 윤한봉 선배님을 만난 것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해박한 정세분석과 강인한 의지,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궂은 일들을 손수 하시는, 연배차도 많이 나는 저에게도 전혀 권위의식 같은 것 없이 말을 경청해주시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시는 형님의 모습 앞에서, 저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구루'였던 예수를 만난 무식한 어부 베드로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인연이 이어지면서, 합수 형님은 제가 따라야 할 롤 모델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마당 쓸고 설겆이도 먼저 나서고 고칠 것 있으면 손수 고치고, 그러면서도 그 불같은 열정으로 동포사회와 조국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하신 합수형님. 아내와 함께 형님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우리 부부는 갓 결혼해 깨가 쏟아질 때였고, 그 모습 보기좋다 하시며 너털웃음을 웃으시던 것이 엊그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형님의 부음을 전해들은 것은 지호와 지원이를 데리고 여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가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둣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세상 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 놓은, 제 삶의 스승 한 분이 떠나가신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바라보며, 그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나아진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형님께 지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린다면, 아마 호되게 질책이라도 들을 것 같습니다. 늘 가장 아래, 풀뿌리부터의 변혁을 꿈꾸던 형님. 우리에게 변혁에의 의지가 있다면 그 시작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하찮아 보이는 일부터 내가 먼저 하는 것이 옳다 하셨던 형님은 지금 세상을 보시고 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때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만큼은 이루지 않았는가 생각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정부 들어 4년간 어떤 식으로 망가졌는가 하는 것을 보면, 합수형님과, 또 이제는 또다른 오월의 상징이 되어 버린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남겼던 말씀들이 이렇게 절절할 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그것이 늘 마음에 담고서 지켜야 하는 가치라는 것을. 만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금방 훼손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오월에 부여된 이 의미를 굳이 애써서 무시하려는 저들의 '오월 부채의식'은 우리가 가진 부채의식과는 완전하게 다른 듯 합니다. 우리는 오월에 숨져간 그 꽃다운 넋들이 이루고자 했던 것을 못 이룬 것에 대해 가책과 회한을 갖지만, 저들은 그 오월에 부여된 의미를 폄하하고 무시함으로서 자기들이 가져야 할 죄책감을 아예 무시합니다. 아니, 저들은 할 수만 있다면 오월이란 달 자체를 없애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아니,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저들에겐 오월은 '부채'가 아니라, 그냥 '부담스러움'일 뿐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댓가를 지금 받고 있다는 것은 오월의 빛이 이렇게 바래지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권 들어서 대통령이 한 번도 광주를 찾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오월 부담감' 혹은 애써서 그 의미를 폄하하려 하는 것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월은 그래서 참 아픕니다. 광주에 피가 흐른 그 오월, 그리고 4.19로 갓 피워낸 민주주의의 새싹을 총칼을 앞세운 군부 세력이 짓밟아 버린 오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저들 거대 자본과 결탁한 수구세력들의 음모 앞에 무참히 정치적으로 타살되어버린 바로 그 달이 오월입니다. 이 오월을 우리가 망각 속에 묻어버릴 수 없는 것은, 그 오월의 열기 속에 자신을 던져버려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지금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또 아직도 수구세력들이 내뿜고 있는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의 망령들의 저주를 떨치고 일어나야 할 우리를 위해서도 늘 되짚고 다시 되짚어나가야 합니다.

다시 그 오월입니다. 합수형님, 노무현 대통령님, 참 보고 싶습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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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님의 댓글

두분 작성일

윤한봉 씨도 노무현 대통령도 좀 더
오래 살았어야 했습니다.  오월은 그래 참 슬픈 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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