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서용보, 도그 재오의 봉하마을 방문단상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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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18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 마재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뜻밖의 사람이 그에게 사람을 보내 안부인사를 전해왔다. 고향 마재 근처로 은퇴한 전재상 서용보였다. 처음 천주학쟁이로 몰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을때, 서용보는 벽파가 장악한 정권의 삼정승중 하나였고 그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려고 갖은 짓을 다했던 노론중의 노론이었다. 악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일 정약용의 무죄함이 드러나 노론의 조정에서조차 석방이 공론화되었을 때에도 영상의 자리에 있던 서용보가 악착같이 반대와 훼방을 놓아 정약용의 귀양살이는 한없이 늘어져야 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다산은 동기간 중 누구보다 더 의지하고 가까웠던 손윗형 손암 정약전의 부음을 들어야 했다. 죄인이 아니라고 명부에서 삭제하고도 무려 4년간이나 귀양지에 해배공문을 보내지 않았을 만큼 노론일파 특히 서용보와 변절 남인 이기경의 정약용에 대한 증오와 저주는 끝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서용보가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고 귀양살이의 고됨을 위로하다니... 놀랍게도 이후 서용보는 틈만 나면 그에게 안부를 묻는 인사를 보냈고 마치 다시 등용이라도 할것처럼 정약용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하지만 서용보의 시커먼 속은 곧 다시 마각을 드러냈다. 그가 다시 재상으로 등용되어 환로에 나가자, 전제 개혁에 대한 인재를 뽑아 올리라는 순조의 명에 따라 조정의 공론은 다시 한번 이분야에서 조선최고라는 정약용에게 기울었다. 그러나 재상 서용보는 이번에도 결사 반대하여 다산의 출사길은 또 한번 좌절하고 말았다. 후일 효명세자가 위독하자, 그제서야 노론들은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정약용을 부호군이라는 직책을 주고 세자의 병을 시료케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술수였다. 이미 세자는 살아날 가망이 없었고 그들은 다산에게 허울좋은 벼슬자리를 내주고 세자가 죽으면 그 죄를 덮어씌워 그를 영원히 나락으로 내몰 속셈이었다. 이를 눈치챈 다산이 약첩을 써야한다며 집으로 다시 돌아갔기에 망정이지 다산은 하마트면 세자를 죽인 죄인으로 또다시 몰렸을 것이고 아마도 그랬다면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노무현 대통령 탄핵때, 회심의 미소를 짓던 이재오가 봉하 마을을 찾았단다. 쥐바기의 똥개가 되어 노무현을 절대로 용서못한다고 뇌까리던 도그 재오놈이 거기까지 갔단다. 어익후... 그리고서 감히 참배까지 하고서 방명록에 '사람사는 세상이 올거라고' 써갈기셨단다.
그런데 이 가증스러운 재오놈을 보면서 왜 난 서용보가 생각이 났을까?
재오야....사람 사는 세상이 오면 너같은 인버러지들은 바싹 눌러서 터트려 죽이거나 강철군홧발로 피곤죽이 될때까정 짓이긴다는 것은 알고서도 그따위 요설을 처갈겼댔니?
가증스러운 인간버러지 재오놈 색히 듣거라! 만약 인간이 죄값을 다 치러야 죽을 수 있다면 네놈은 향후 천년은 더살아야 할거다~~~ 거기가 어디라고 너따위 인버러지색히가 기어처들어가서 참배를 하냐?
사람사는 세상이 오면 네놈의 몸뚱이를 그 가증스러운 혓바닥 크기로 잘게 썰어 오늘의 원한을 풀어도 분이 다 안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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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님의 댓글
청산 작성일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백수 젊은이들은 모두 잡아다가
농촌 봉사작업을 시켜야 한다고 언젠가 말하던 놈이지요?
자기 꼴리는대로 마구 씨버리는 놈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놈들이 적지아니 존재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래서 때로 정확한 청산작업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