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석 탄생 90돐과 장울화렬사가
장렬하게 희생된 65돐을 맞는 2002년에
즈음하여 삼가 이 책을 드린다. 《사랑에 국경이 없고 과학에 국경이 없는것처럼 혁명에도 국경이 없다. 장울화와 노비첸꼬, 체 게바라, 베쮼의 실례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장울화와 노비첸꼬는 국제주의자의 세계적전형이며 에스빠냐인민전선운동을 지원한 세계 여러 나라 공산주의자들의 지원과 중국인민지원군의 항미원조운동은 국제주의의 세계적모범이다. 장울화의 이름은 그 모범우에서 거성처럼 빛나고있다.
오늘 장울화는 조선인민들속에서 조중친선의 상징으로 불리우고있다. 우리 인민은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그가 조선혁명앞에 세운 업적을 경건한 심정으로 추억하고있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4권)
차 례머리말 …………………………………………………………………………
1. 어린시절의 동창 …………………………………………………………
2. 친형제 ……………………………………………………………………
3. 항일의 전우………………………………………………………………
4. 만고에 길이 빛날 서사시………………………………………………
5. 옛정을 잊지 못하시며…………………………………………………
6. 유자녀들을 끝내 찾아내시여…………………………………………
7. 호요방이 편지를 전해드리다…………………………………………
8. 첫 조선방문………………………………………………………………
9. 두번째 조선방문…………………………………………………………
10.세번째 조선방문…………………………………………………………
11.불원천리 보내주신 기념비 ……………………………………………
12.평양류학 …………………………………………………………………
13.네번째 조선방문…………………………………………………………
14.영생하시는 위인…………………………………………………………
15.은정깊은 화환……………………………………………………………
16.청사에 길이 빛날 이름…………………………………………………
17.맺는말 ……………………………………………………………………
후 기 ………………………………………………………………………
머 리 말 도서 《김일성과 장울화》는 하나의 력사책이다.
이 력사책에는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중국인민의 친근한 벗이신 김일성주석과 중국인민의 훌륭한 아들이며 국제주의전사인 장울화렬사사이의 혁명적우정에 대하여 수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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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울화열사 아들 장금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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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울화렬사의 아들로서, 김일성주석을 큰아버님으로 모심으로써 한토막의 력사와 떼여놓을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였다.
반세기전 나는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하여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사이의 혁명적우정에 대하여 알게 된 이후부터 그처럼 위대한 우정에 대하여 깊이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나는 무송고향사람들의 회상과 문헌기록들을 통하여 김일성주석과 우리 아버지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며 중조 두 나라 인민들사이의 전통적인 친선의 력사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나는 그 한토막 력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다.
17년전 호요방총서기가 나의 편지를 김일성주석께 전해드리고 또 김일성주석께서 중국대외련락부를 통하여 우리 집식구들을 초청해주시여 처음 조선을 방문한 때로부터 나자신이 그 한토막 력사와 관련되게 되였다.
17년동안에 나는 열다섯번이나 조선을 방문하였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큰아버님이신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았다.
그리고 조선의 삼천리금수강산을 다 돌아보았으며 180여곳에 달하는 조선의 명승지들을 참관하고 유람하였다.
나는 조선의 수령, 지도일군들, 각계층 인민대중과 두터운 친선의 정을 맺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또한 그 한토막 력사에 관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 나이도 어느덧 70고개를 바라보고있다.
우리 장씨일가와 큰아버님이신 김일성주석 일가분들과의 전통적인 친선의 력사도 근 70년세월 5대에 걸쳐 오늘까지 발전하여왔다.
그리하여 오늘 나와 관련한 이야기는 우리 아버지와 관련한 이야기와 융합되여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사이의 친선의 력사의 떼여놓을수 없는 한 부분을 이루고있다. 그 친선의 력사가 끊임없이 발전하여오고 계속 이어지고있을뿐아니라 작가들이 쓴 책을 통하여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지고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나는 또한 그 력사의 연구대상이 되였고 기재대상이 되였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력사란 바로 그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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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대표는 작년말 중국 무송에 있는 그의 자택을 방문하여 취재한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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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는 언제나 우선 사람들을 력사밖에 있게 하고 그다음은 점차 력사의 흐름에 발을 들여놓게 하며 또 그다음에는 사람들을 력사와 융합시켜 영원히 한덩어리로 되게 한다.
김일성주석은 조선의 현대력사를 수놓아오신 위대한 인간이시며 몇대에 걸친 장씨일가사람들의 력사를 수록해오신 우리의 일가분이시다.
지난날 김일성주석의 발길이 무송에 와닿지 않았더라면 우리 할아버지 장만정의 의로운 행동이 없었을것이고 우리 아버지 장울화의 장렬한 희생과 영광도 없었을것이며 나와 나의 녀동생 장금록이 조선에서 받은 그런 영광도 없었을것이며 우리 장씨가문 후손들이 받아안은 그런 배려도 없었을것이다.
우리는 김일성주석의 신상에서 조선인민이 표현하고있는 그런 《어버이》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하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사이의 우정이 있음으로 하여 후날 호요방총서기가 편지를 전달하는 일이 있게 되였고 《길림성정부 장울화렬사사적고찰단》이 조선에 가서 고찰할수도 있었으며 조선대표단이 기념비를 무송까지 가져오고 화환을 진정하는 행사도 있게 되였으며 조선인민이 장울화렬사를 추모하고 렬사유가족들의 조선방문을 환영하는 여러가지 감동적인 화폭도 있게 된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주석과 장울화렬사사이의 친선의 력사는 곧 생명과 붉은 피로 맺어진 중조 두 나라 인민들의 전통적인 친선의 상징이고 그 축도이기도 하다.
오늘 비록 경애하는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시였지만 그이의 빛나는 전투적로정과 위대한 인품, 풍부한 감정세계와 숭고한 혁명적의리는 우리 장씨가문에게 물려준 귀중한 정신적재부이며 또한 영웅적조선인민과 함께 싸워온 중국인민에게 물려준 고귀한 정신적재부로 된다.
려명휘는 나의 오랜 벗으로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작품도 많이 내놓았다.
이 책을 집필하기 전에 벌써 10여부나 되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국내독자들속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있다.
뿐만아니라 장편소설 하나는 이미 번역되여 국외에도 소개되였다. 지금 그는 바야흐로 세계문단에로 진출하는 중년작가로 활약하고있다.
명휘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정말 감동적이다.
그는 김일성주서과 장울화렬사사이의 혁명적우정에 완전히 감동되고 그이의 숭고한 의리에서 충동을 받아 스스로 그토록 방대한 력사책을 쓰기로 결심한것이다.
그자신의 말대로 한다면 《이 책을 집필할 때 나는 모종의 력사적인 사명감을 느꼈는데 그 력사적인 사건은 내가 쓸것을 기다렸고 또 그것은 반드시 내가 써야 한다고 생각하였다》는것이다.
명휘는 집필에서 아주 신중하고 빈틈이 없었다.
그는 단순히 력사를 기록한것이 아니라 력사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력사의 흐름속에서 금싸래기를 골라내였으며 력사의 안개속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면서 지난날 해명하지 못하였던 수많은 문제들을 밝혀냄으로써 당시를 보는듯이 재현하였다.
그리하여 그자신이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일가사이의 친선의 력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로 되였던것이다.
그의 사업에 대한 책임성은 사람들이 탄복할 정도이다.
취재대상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파고들었으며 사소한 소감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그가 집요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유도하였기때문에 기억에 삭막하던 지난날의 사실들을 되살릴수 있었다.
명휘의 집필속도는 그야말로 놀라운것이다.
그는 지난해 10월에 조선을 한번 방문하고 두번 베이징에 다녀오고 세번 장춘에 갔다오고 여덟번에 걸쳐 무송에 갔다오는 열달동안에 벌써 수십만자에 달하는 방대한 초고를 완성하여 내앞에 가져다놓았다.
그것은 오늘 현재까지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일가사이의 친선의 력사에 대하여 연구하고 쓴 책가운데서 내용이 가장 풍부하고 가장 상세하고 정확한 책이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원고를 다 읽었다.
명희가 문학적으로 묘사한 글줄마다에서 나는 큰아버님이신 김일성주석의 인자하신 영상과 자애로운 모습을 다시 뵈옵게 되였고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그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였으며 마치도 큰아버님이신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에 대하여 무송에 대하여 중국과 조선사이의 전통적인 친선에 대하여 또다시 이야기를 나누는것만 같았다.
눈물은 더욱더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리였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비오듯 쏟아져내린다》고 해야 할것이다.
내가 당사자여서인가?
(만일 그렇다면 나의 눈물은 어느 정도 가벼운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아니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그 이야기를 듣는 중국사람치고 김일성주석과 장울화렬사사이의 혁명적우정에 감동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진정에 넘친 눈물이였고 리성적인 눈물이였으며 정의로운 눈물이였고 친선적인 눈물이였다.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는 《울음홀》이 있다.
그것은 당시 조선인민이 그곳에서 김일성주석을 추모하면서 흘린 눈물이 강을 이룬것으로 하여 그렇게 불리우게 된것이다.
나는 이 책이 하나의 이동 《울음홀》로 될것이라고 믿어의심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중국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리게 될것이다.
그것은 조선인민과 어깨겯고 싸우면서 붉은 피와 생명을 바친 중국인민이 친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력사이야기를 다 썼다고 하여 결코 력사가 종결된것은 아니다.
그 력사는 계속되고있다.
내가 기쁨과 위안을 느끼는것은 김일성주석과 장울화일가사이의 친선이 이미 김정일총비서와 장씨일가의 후손들에 의하여 이어지고있는 사실이다.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우리들을 만나주시였을뿐아니라 줄곧 배려를 돌려주시면서 해마다 우리일가가 조선을 방문하도록 불러주시였고 김일성주석께서 생존해계실 때와 똑같이 우리들로 하여금 친척집을 찾듯이 조선에 머무르면서 두 집사이의 전통적인 친선의 새로운 장을 수놓아가도록 해주시였다.
바로 이 책이 방금 탈고되였을 때인 2001년 7월 29일에도 김정일총비서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대표단이 무송을 방문하여 장울화렬사의 묘소와 지난날 김일성주석께서 생활하고 공부하고 전투를 진행하신 곳들을 찾아보게 하시였으며 장씨일가의 옛집을 찾아 우리 일가식솔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도록 해주시였다.
얼마전에는 강택민총서기가 조선을 방문하여 김정일총비서와 친선적인 담화를 진행하였다.
김일성주석과 모택동주석, 등소평동지 등 오랜 세대의 프로레타리아혁명가들이 마련하신 중조친선을 강택민총서기와 김정일총비서께서 계승하시였으며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고 계신다.
중조친선은 만고에 길이 빛날것이다!
이 책의 출판에 즈음하여 김정일총비서께서 건강하고 장수하시기를 축원한다!
영웅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부강번영을 축원한다!
김일성주석은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계신다.
장 금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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