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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되던해 나왔던 "조선행진곡"-김원규작사 작곡-리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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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0건 조회 10,499회 작성일 12-05-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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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시간 2012.05.28 12:42:13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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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3]북 음악예술 통해 북을 알아본다

노래《조선행진곡》은 김원균 작사 작곡



리준무 선생(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겸 지휘자)은 <<음악예술을 통해 북녘을 알아본다>>의 연재글
64번째로 이북노래 《조선행진곡》을 선택하여 소개한다. 이 노래는 이북의 유명한 음악가 김원균 작사 작곡으로
1945년 만들어졌다. 이 노래 가사에서도 힘이 솟는다. "꽃동산 삼천리에 새 동이 튼다/새로운 아침에 광명이
왔다/나가자 앞으로 삼천만 동포여/앞으로 나가자 민주조선 만만세..."[민족통신 편집실]



[연재-63]북 음악예술 통해 북을 알아본다

노래《조선행진곡》은 김원균 작사 작곡




*글: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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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리준무 지휘자
이름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어떻게 싸웠으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하였는가를 생생하게 그려 논, 여명기의 영화 한편을 감명 깊게 본적이 있다. 영화에서 야학 선생님으로 나온 김형직선생은 글을 배우러 온 아이들에게 공부를 배워주기 전에 이 ‘조선행진곡’부터 가르치는 것이었다. 소박한 노래였지만 선율도 아름다웠고 퍽 짜임새가 있는 노래라고 생각하였다. 그 노래가 바로 김원균이 지은 ‘조선행진곡’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김원균 하면 이북에서는 물론 남이나 해외동포들 사이에서 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음악가 이다.’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 영생불멸의‘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애국가’를 지은 작곡가인데다가 2006년에 최고인민회의 정령에서 평양음악대학에 “김원균명칭”이라는 은정어린 칭호까지 붙여진 다음에 그의 이름은 더욱더 유명해 졌다.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이라는 칭호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4년 뒤인 2006년의 일이었다.

평양의 풍치수려한 대동강가에 자리잡은 음악대학교정에 들어서게 되면 먼저 눈에 띄는 두 건물을 만나게 된다. 첫번째 건물은 교향악단이 상주하는 공연장(Concert Hall)이고 두번째 건물이 현대적 시설을 갖춘 음악대학의 본관이다. 이 음악대학 정문에 있는 선생의 동상에는 1917년 출생하여 2002년에 떠나갔다고 쓰여있다. 선생의 공적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민족의 얼을 깨워주는 노래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1946년에 나오고 애국가가 1947년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조선행진곡은 벌써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창작 되었던 것이다. 이 노래는 옛날에 먹던 보리밥에 된장국 같은 티없는 친근함이 있었다. 많은 양념을 넣을 수 없었어도 꿀맛이었던 그때 그 맛과 같이 소박한 선율에서였지만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는 노래였다.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인데 이 노래가 바로 80년대에 나를 크게 감동시킨 영화의 그 노래가 아니었겠는가! 편곡이 달라서 그런지 몰라도 유튜브에서 울려오는 ‘조선행진곡’은 그 때 야학에서 풍금소리에 맞춰 흘러나왔던 그 노래와 또 다른 진한 맛이 우러나오고 있었다.

조선행진곡의 작사와 작곡을 김원균 자신이 다 하였다. 창작 년도는 1945년이다. 선율은 부드럽게 되어 있었으나 노래에 내재되어 있는 힘은 말할 수 없이 큰 것 이었다. 작곡자도 행진조로 힘있게 부르라는 당부를 악보의 첫머리에 써놓았다.

노래는 1절과 2절로 되어 있다.

조선행진곡



1. 꽃동산 삼천리에 새 동이 튼다
새로운 아침에 광명이 왔다
나가자 앞으로 삼천만 동포여
앞으로 나가자 민주조선 만만세

2. 자유와 평화의 기를 날리며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리라
나가자 앞으로 삼천만 동포여
앞으로 나가자 민주조선 만만세



김일성주석은 사회주의문학예술론에서“우리의 음악은 우리인민의 감정과 정서에 맞고 새 조국 건설에 일떠선 우리나라 인민의 혁명적 지향에 맞아야 하며 민족해방을 이룩하고 새 생활창조에 일떠선 우리인민의 환희와 기쁨, 긍지와 자부심, 혁명적 열정을 반영한 참말로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음악으로 되어야 합니다.”라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창작에 관련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었다.

“예술은 사상과 열정의 산물이다 독자성이 없으면 새것을 창조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가사는 한편의 시로 되어야 한다”고 짧게 이야기 하였지만 여기에는 그냥 스쳐 지나나갈 수 없는 철학적 교훈이 담겨있다. ‘조선행진곡’에는 명언에서 제시한 내용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잘 나타나 있다.

김일성주석이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부터 예술은 이미 투쟁과 깊은 관련속에 있었고 상호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투쟁이 생활이었던 그 시기에 나온‘피바다’와 ‘꽃파는 처녀’같은 불후의 명작도 항일의 불길이 타오르는 속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김원균은 민중을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우고 민중을 위해 참다운 새 조국을 건설하려고 온몸을 던져 실천하는 김일성주석의 위대한 풍모에 감화와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참다운 문화유산을 세우기 위하여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역할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수긍하는 부분이다. 영화에서도 보았듯이 일제치하의 엄혹한 시기에도 교육은 한 순간도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을 소홀히 하게 되면 올바른 후대도 없고 나라와 사회의 휘황한 미래도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북의 교육은 고유한 민족적 정신의 바탕 위에 자주적 창의성을 고도로 발양시킬 수 있는 교육제도를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있으며 의식의 주체가 살아있는 교육을 변함없이 시행해 오고 있다.

어디처럼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학교나 가정 국가가 정체성을 잃고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과오는 절대로 범하지 않는다. 부자들의 이익과 행복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정부, 권력은 있으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선거철만 되면 서민들의 민생을 살리겠다고 악을 쓰며 떠들어대지만 결국 부자들의 편이 되어버리고 마는 정치가들, 오늘도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인생들의 원한은 쓰디쓴 한숨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런 암담함 속에서 나오는 예술이란 바로 정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광란과 소음이거나 한탄과 절망이 뒤엉킨 몸부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우리정부나 당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에 대해 물어본다면 민중들에게서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자랑스럽고 긍지에 넘치는 대답이 나와야 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이북은 어린이로부터 늙은이까지 자기들의 영도자, 자기들의 당, 군대와 정부에 대해서 긍지 넘치는 대답을 힘있게 한다. 그들은 자기의 영도자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환히 꿰뚫고 있다. 그래서 영도자와 당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안고 있고 자기가 나라와 영도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 할 일들을 지체 없이 실천해 나가고 있다.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나라


이북을 인민의 나라라고 한다. 나라이름도 빛나는 아침의 나라, 애국가에도 인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것이 특별히 강조 되어있다. 그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백두산이 닳아 없어지지 않아도, 동해의 물이 말라버리지 않아도 나라의 위상은 날로 높아가고 민중은 영도자를 노래하며 끝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어떻게 나라이름을 인민공화국이라 하려 하였고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징표인 민주주의를 국호에 까지 새겨 넣으려고 하였을까?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인 김일성주석은 항일투쟁에 뛰어든 처음시기부터 ‘인민사랑’의 고귀한 정신이 건국이념에 흐르게 하려는 구상을 하였을 것이다.

김일성주석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일제의 치하에서 비참하게 살며 신음하는 우리민족의 모습을 수없이 보아 오면서 다시는 나라 없는 설움을 민중에게 주지 않고 그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수없이 하였을 것이다. 식민지치하에서 굴욕적으로 살아왔던 백성들에게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다’라고 한 혁명적인 선포는 그들의 삶에 의욕을 불어 넣게 되었고 무슨 일이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계기로 되었다.

이제 민중들은 주체의 태양을 바라보며 인간중심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게 된 것이다.

승리를 알리는 조선행진곡


새 조국건설의 대열에 참가했던 근로자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켰던 조선행진곡과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앞으로!’라고 한 태양절 아침 세계를 진감시킨 김정은제1위원장의 우렁찬 연설은 해방이 되었던 1945년에 우리 선조들이 듣고 느꼈던 감동과 그날 김일성광장에 모여 김정은최고영도자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동하였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문에 실린, 김일성주석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손님들의 인상기를 보면 한결같이 ‘이제 조선은 힘차고 한없이 젊어졌다’고들 말한다. 실지로 이북을 방문해 본 사람은 누구나 이 사실을 체험했을 것이다. 나라가 젊어졌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이것은 실제 나이를 말한다기 보다는 노도같이 억센 조선의 기상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인민들은 하늘같이 믿고 살았던 김정일위원장을 통한의 후회 속에서 이별을 하였다. 그분 “생전에 왜 더 많은 기쁨을 드리지 못했던고”하는 자책감에 빠져있는 천만 근로자들은 결심을 다지고 또 다진다. 김정은최고영도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자고.

이러한 결의에 김정은제1위원장은 근로자들에게 분명한 대답을 보내었다.


《동지들! 우리의 위업은 정당하며
진리로 뭉쳐진 조선의 힘은
무궁무진합니다.

……………..중략……………

나는 성스러운 선군혁명의 길에서
언제나 동지들과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전우가 될 것이며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과 혁명 앞에 지닌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도 조선행진곡은 삼천리 강산에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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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행진곡 공연 동양상 보기--여기를 짤각해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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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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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리준무 지휘자 2012-05-28]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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