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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초기생활 험난 했던 독일동포들(1): 애국열은 뜨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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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0건 조회 4,056회 작성일 12-06-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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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시간 2012.06.19 11:01:42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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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초기생활 험난 했던 독일동포들(1)

"애국열은 그 어느 해외동포에 못지않다"



[독일=민족통신 노길남/손세영 특파원]독일 동포사회는 미국동포사회와 달라서 이민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파독 광부와 파독간호원 역사가 40여년이 되었어도 독일거주 동포들의 숫자는
4만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의 애국열은 그 어느 지역에 못지 않게 뜨겁다. 초기 독일동포사회는
유학생들과 계약직 광부와 간호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가장 탄압의 화살을 쏟아
부은 곳이 바로 독일이기도 하다. 60년대의 동백림사건을 비롯하여 70년대, 80년대, 90년대로
이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바로 한국군사정권이 만들이 놓은 결과라고 볼 수 있고, 그 결과는
또 민족분단의 비극에서 비롯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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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 제12주년 행사를 진행하는 독일동포들


[기획]초기생활 험난 했던 독일동포들(1)

"애국열은 그 어느 해외동포에 못지않다"




[독일=민족통신 노길남/손세영 특파원]독일 동포사회는 미국동포사회와 달라서 이민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파독 광부와 파독간호원 역사가 40여년이 되었어도 독일거주 동포들의 숫자는 4만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의 애국열은 그 어느 지역에 못지 않게 뜨겁다.

초기 독일동포사회는 유학생들과 계약직 광부와 간호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가장 탄압의 화살을 쏟아 부은 곳이 바로 독일이기도 하다. 60년대의 동백림사건을 비롯하여 70년대, 80년대, 90년대로 이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바로 한국군사정권이 만들이 놓은 결과라고 볼 수 있고, 그 결과는 또 민족분단의 비극에서 비롯되어 왔다.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원의 초기생활이 험난했던 것도 다름 아닌 한국정치의 부조리에서 비롯되었다.

파독 간호원 역사는 1957년 종교단체와 민간인에 의하여 서독부속병원 간호학교에 한국학생 150여명이 입학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간호사자격 시험에 합격하여 독일병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후 1965년 4월 마인츠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부족하여 민간인 주선으로 소수의 한국간호원들이 독일에 취업이주가 시작되었다.

1966년 1월31일에 최초의 간호사들 128명이 후랑크후르트 시내 병원에 근무하기 위해 보건사회부의 허락에 의해 독일에 온 것이 파독 간호원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근면, 친절함이 독일언론에 보도되면서 라인란트-팔츠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베를린주에서도 한국 간호원들의 취업을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의 해외개발공사가 1965년 11월3일 개설되어 파독간호원 취업문제를 이곳에서 전담하게 되어 제2차 파독간호원은 한국의 보사부가 관장하되, 그 실무를 해외개발공사가 하기로 협약(1966년 1월26일)이 이뤄져 실시되었다.

1966년부터 1년동안 민간인에 의해 서독에 취업된 한국간호원들은 1천8백여명으로 집계되었다. 그후 10년동안에는 간호사만 5천8백여명, 보조간호원이 4,232명으로 총10,032명이 독일에 취업이주 하였다.

1963년 12월 파독광부 5백명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고 무려 4만6천명 가량 응시했다. 한국에 실업률이 28%가 될 정도로 일자리가 없었던 것을 반영한다. 첫 파독광부로 247명의 한국인 청년들이 서독에 왔다. 그 후 매년 파독광부들이 취업이주가 계속되어 1977년까지 14년 동안 7,936명의 한국광부들이 독일에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지하 1천메터내지 1천5백메터에 온도 섭시35도의 뜨거운 막장에서 고생하며 일해 왔다. 광산이 무너져 죽은 동포들도 있고, 몸이 상하여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광부출신 동포들도 있다.

이들은 그러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70~76달러였을 때에 독일에서 번돈을 아끼고 아껴서 가족에게 송금해 주었다. 그 돈은 가족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가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최근에 이들과 광부들을 국가유공자로 신청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통신 특파원들은 이렇게 고생한 재독동포들 가운데 이역만리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동포들을 만나 이들의 생활 이모저모를 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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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선생
■최영숙선생(68): 1944년 11월1일 경북 성주태생으로 성주여고를 졸업하고, 경북의대 간호학과 졸업한 이후 1966년 파독 간호사로 취업이주하여 살면서도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운동에 참여해 왔다.

그는 1986-87년 재독한국여성모임 총무, 87년 독일 녹색당 베를린지역 국제부 활동, 89년 독일 진보적 재정후원단체 “함께하는 세계를 위한 재분배단체, 여성부에서 활동, 1990년 범민련 유럽본부 초대 사무국장, 92년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 의장, 한독문화협회 회장, 현재 한민족유럽연대 3대 의장(1대 이종현의장, 2대 윤운섭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재유럽 오월민중제를 주최하는 활동에 이종현선생, 김진향선생, 윤운섭선생과 함께 수고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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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석선생
■선경석선생(64): 1948년 9월27일 전남 보성출신으로 광주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67년 7대 신민당 보성지구당 청년당원, 이중재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지원활동, 그리고 토목관계 일과 건설회사에서 일하다가 1977년 9월 독일 광부로 취업하게 되었다. 3년계약직이 끝나자 1980년 9월 그만두고 광부일은 그만두고 그 때부터 간호원으로 취업하여 일해왔다.

1989년 한겨레신문 독일지국장을 맡아 일하면서 여행사/식품/서적판매 등 전자제품 유통사업을 경영하며 경제기반을 만들었다. 한편 1996년 ‘재도이치란트 동포협력회’에 가담하며 활동하다가 지금 이 단체의 사무국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북녘 음악예술단의 독일공연을 추진하는데 기여했다.

그는 충남 성환출생의 부인과 1981년 12월 결혼하여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은 독일회사에 근무하며, 딸은 5개국어에 능통해 최근 여수엑스포의 독일관에서 통역으로 활동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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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선생
■최태호선생(64): 1948년 5월7일 충남 예산출생인데 1976년 광부로 독일에 왔다. 자녀들은 2남으로 큰 아들은 베르린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작은 아들은 아직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대에는 보흠지역 한인회 회장도 했고, 평통12기로 활약도 했다. 지금 보흠지역에 ‘한국의 집’을 마련하여 이곳의 책임자로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풍물패 연습, 서예관, 그리고 동포사회 각종 회의를 이곳에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동포사회에 혜택을 주고 있다.

그는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대에는 남북화해와 협력시대가 펼처졌으나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는 그런 업적들이 모두 망가졌다고 지적하며 안타까와 했다.


*동영상 보기- 파독광부 이야기(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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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해 왔습니다. 남측 당국은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이 보도 자료들을 볼수 없도록 인터네트 열람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한국 독자들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주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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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보도자료(아래 것이 안되면 www.minjok.com 으로 들어가 열람하세요!


*[기획-17]독일 이종현선생과 부인 우즈-라 여사 방문

*[기획-16]스위스 최기환박사 건강 좋아졌다

*관련보도-[독일]이영빈목사와 부인 김순환여사 방문

*관련보도-[독일]고 정규명박사 사모, 강혜순여사 매일 남편 묘소방문


*관련보도-[기획-1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독일 김대천선생 뇌수술후 회복중


*관련보도-[유럽]독일 보흠서 6.15선언 12주년 기념행사

*관련보도-러시아동포들 특별대담

*관련보도-독일의 리준식 민족시인

[출처 : 민족통신 특파원 201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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