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별의 세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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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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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2000년 6월 15일, 김진서는 언제 날이 밝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강력한 마취제를 흡입한것처럼 입을 벌리고 비몽사몽간을 헤매고있었다. 태양이 눈부신 빛을 뿌리는가 하면 먹구름이 휘감고 불길이 충천하는 속을 손더듬하기도 했다.
모든것이 뒤죽박죽이였다. 누군가 자꾸만 하느님의 부름을 상기시키는것도 놀라왔다. 차츰 그를 끌고가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당신 뉘기오. 날 어데로 끌구 가는거요?》
그는 안깐힘을 쓰며 버티려했으나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그들은 시꺼먼 구름속을 헤쳐가고있었다.
《이보시오. 지금 어데로 가는거요?》
《가만 있어.》 알수없는 사나이가 그의 팔목을 움켜쥔채 거칠게 소리쳤다. 《하느님께서 부르셔!》
그는 더이상 앙버틸 힘도 없었다. 우악스러운 사나이에게 끌려 구름의 바다를 헤염치며 물고기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도대체 하느님께서 나는 왜 부른단말인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느님은 참으로 멀고 또 먼곳에 있었다. 구름우를 날고 또 하얀 구름을 헤쳐갔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33천이 현실로 믿어지기 시작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드디여 그는 하느님을 보았다. 하늘의 광대한 구름궁전에서 구름옥좌에 앉아있는 우람한 거상이였다.
김진서를 끌고간 사나이가 뭐라고 소리쳤는데 광주포로수용소장 헌병대위 송인섭 같기도 하고 악착한 교도관 안목고채 같기도 했다. 그자는 하느님께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싶어하는 비전향장기수를 한명 또 끌어왔다고 아뢰이고있었다.
진서는 눈보라를 들쓴것처럼 병약해진 몸을 옹송그렸다. 정말이지 그곳은 지독하게도 추웠다. 턱을 떨고 이발을 떡떡 맞쪼으며 그는 웨쳤다.
《인생을 새로 시작하다니, 누가 그따위 소릴 했어?》
그러자 송인섭과 안목고채 둘의 모상을 가진 사나이가 그의 귀를 잡아 비틀었다.
《인생을 새로 시작하면 좀 좋아? 이 짜식,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거야. 새로 태여나서 감옥도 고문도 모르고 살게 돼. 어서 하느님께 빌란말이야!》
진서는 하늘의 구름궁전이 드렁드렁 울리게 고함을 쳤다.
《내가 살아온 삶을 왜 바꾼다는거야. 절대로 안돼. 바꾸지 않아!》
피에 절어든 바줄이 휙- 날아들며 그의 몸뚱이를 찢었다.
《감히 하느님앞에서 소래기를 질러. 이 빨갱이새끼, 죽어봐라. 죽어봐!》
진서는 잔등에 휘감기는 바줄을 나꾸어채고 그 사나이에게 덤벼들었다.
그런데 돌연 모든것이 구름속에 잠겨버렸다. 사나이는 종적을 감추었다. 구름장사이를 뚫고 들어온 한줄기 해빛에 옥좌에 앉아있는 하느님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하느님은 비전향장기수 김진서가 불리워와 있는것도 알지 못하고있는듯 했다. 무표정한 낯빛으로 해빛을 향하고있는데 거대한 몸전체에 퍼리끄레한 이끼가 올라있었다.
별안간 숨길을 딱 멈추었다. 우람한 거상, 돌로 깎아만든것 같은 회색의 얼굴, 우묵하니 패운 눈확으로 기여다니는 개미들, 실로 몸서리치는 광경이였다. 개미들이 눈알을 파먹었는가? 시꺼먼 그림자가 드리운 그 눈확에서 번득이는것은 눈알이 아니라 주먹만한 얼음덩어리였다.
비로소 그는 하느님께서 벌써 오래전에 《별세하셨다》는것을 깨달았다. 며칠전인지 몇달전인지는 알수 없으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죽어계시는것》만은 확실하였다. 그것은 화석이 된 하느님이였다.
그는 부르짖었다.
《하느님께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목소리는 입안에서만 뱅뱅 돌뿐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정신없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뇌졸중후유증때문에 마비가 온 왼쪽다리를 끌며 구름속을 헤치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지리산도 날아넘었다. 그것이 지리산이라는것을 누군가 귀띔해주었다.
《불갑산, 지리산은 이미 다녀왔구요.》
도대체 누가 귀띔해주는것일가. 조용히 울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지리산출신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 말이죠. 벌써 세번씩이나 지리산을 밟았어요.》
발밑의 릉선과 계곡들, 그러니 옛 싸움터 지리산에 내린것 같다. 천왕봉, 반야봉 그리고 저 은빛댕기오리처럼 늘여진것은 섬진강이 분명하다.
하여 그는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방금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리산은 더욱더 크고 장려했다. 서쪽으로는 구례와 남원, 북으로는 함양, 동쪽엔 산청, 남으로는 하동군에 펼쳐진 무수한 산봉우리들과 계곡들, 잊을수 없는 옛 싸움터, 잊을수 없는 빨찌산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설처럼 전하며 물살빠른 강들이 사품쳐내렸다. 섬진강, 림천강, 화개천, 횡천강, 덕천강… 문득 시인 조기천이라면 이 격렬한 충동을 어떻게 읊었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홀로 옛 전우들의 혼령을 부르며 강가에 앉아, 흰 바위우에 앉아 용서를 빌가.
나 혼자 살아있는데 대해 죄스러운 마음을 눈물로 쏟을가?… 하느님이야 별세하건 말건 그에겐 상관없었다.
《제주행이 어떨가요? 선생님들 좋아하실거예요.》
제주행이라니?… 도란도란 옆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차츰 또렷해졌다.
《최남규선생 돌아가신 소식 들으셨죠?》
《예,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서요. 88살의 고령으로 숨을 거두면서 함북 명천의 고향과 안해, 자식을 그리며 우시더라죠. 최남규선생까지 벌써 비전향장기수들 14명이 세상을 떠났어요. 한사람같이 조국통일의 념원을 웨치시던 그분들의 모습을 우린 언제든 기억에서 지워내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요.》
《참, 이 땅에 비전향장기수라 불리우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우린 이 이름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거예요.》
《옳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짐합니다만…》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자주 반복된 모양이다. 그래서 비몽사몽간을 헤매이던 진서의 환영속에 하늘의 구름옥좌와 하느님이 떠올려진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침대머리맡에 앉아있는 강신석목사와 정동년, 리명자부부, 이들은 언제부터 여기서 담론하고있은것인가?… 광주무진교회의 강신석목사는 물론 정동년부부도 김진서의 생활상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방조를 아끼지 않는분들이다.
정동년은 20년전 5. 18광주봉기때 대학생으로서 김대중을 만나러 갔다가 기념수첩에 이름만 써놓고 돌아온것이 《내란음모죄》에 걸려 지독한 고문끝에 허위자백까지 했던 사람으로 감옥과 고문의 참상도 어지간히 체험했다.
따라서 한생의 거의 전부를 굴함없이 싸운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존경도 남달리 곡진했다. 그의 부인 리명자도 전남녀성단체련합회와 《송추위》(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사업에 발벗고 나서고있다. 지금 그들은 뜻밖의 충격에 견딜수 없어 환각상태에 빠져있는 김진서가 념려되여 침상을 떠나지 못하는것 같았다. 더우기 온 세상을 들었다놓은 북남수뇌분들의 평양상봉이 벌어지고있는 때인것만큼… 가만, 가만 있자,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그래, 7천만겨레를 흥분시키고 울게 한 평양상봉, 꿈이 아닌 현실, 아무리 살을 꼬집고 눈섭을 잡아뜯어봤어도 생생한 현실이였다.
점차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력사적인 상봉이 생중계되고있던 텔레비죤앞에서 갑자기 벼락을 맞은듯 했었다. 그때 남조선의 거의 모든 신문과 소리방송, 텔레비죤들이 평양비행장에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대리인》이나 《장관급의 관계부문역원》이 마중나올것이라고 보도했다.
그중에서도 《조선일보》는 《김영남상임위원장이 공항에 마중나온다.》고 자신있게 찍어서 말했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기다렸다.
그런데 돌연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어엎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순간 모두 뜨끔한 충격에 입을 벌리고 굳어져버렸다. 소리없는 번개가 눈을 때리고 가슴을 찌른듯 숨도 쉬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잡은채 구붓하게 휘여든 눈섭을 흠칫거렸다.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의 밝으신 모습이 화면에 꽉 찼다. 그이를 뵙는 순간 진서의 뇌리에 파고든것은 번쩍하는 섬광이였다. 숨을 쉴수가 없었다.
놈들의 전향테로가 절정에 달하던 70년대중반에 이를 때 공화국북반부에서김일성주석님과 함께김정일장군님께서 정사를 펴시여 우리 혁명의 장래가 창창해졌다는 희소식이 감옥안으로 흘러들며 사람들을 격동시키던 일들이 한꺼번에 사진처럼 찍혀졌다. 최동환동지도 마지막으로 그이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웃으며 갔다. 비전향장기수들모두의 신념과 의지의 전부였고 생명이였던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 그분께서 활달한 걸음으로 나오신다. 김진서- 바로 그를 향하여 미소를 보내시는듯 곧추 앞으로, 그리도 가까이 나오고계신다.
환호를 올리는 군중, 물결치는 꽃바다, 목메인 만세의 웨침, 진서는 단 한순간도 그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20세기를 마감짓는 오늘 그이께서 거침없이 찍으시는 발걸음, 정녕 그것은 조국통일의 대통로를 여시는 걸음이 아닌가. 뜨거운 용암이 가슴에서 끓고있었다. 그는 저도모르게 흐느껴 울고 사무친 격정에 발작적으로 몸을 떨다가 그만에야 천천히 모로 쓰러졌다. 너무도 과중한 심리적충격에 피페해진 몸을 더이상 지탱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강신석목사와 정동년부부의 대화는 계속되였다.
《비전향장기수선생들 제주행말이죠. 어느새 인터넷신문도 보도를 했어요. MBC팀과 KBS도 스케치(취재)를 신청했구요. 헌데말이죠.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 생각은 어떠실지.》
《동의하지 않아요. 자꾸 비틀리게 오보한다구. 전번 불갑산려행때도 김병택선생님이나 김동길선생님도 〈조선일보〉를 돌려보냈잖아요.》
《글쎄…》
《김선생님 일어나시면 물어보지요.》
《이제 일어나시면 말예요. 또 쇼크를 당하지 않게 주의합시다. 정상회담소식두 조금씩 알려드리는게 좋을것 같아요.》
《그래야죠.》
《참 얼마나 파격적이예요. 정상회담이 열린 사흘사이 혁명이란 이런것일가 싶을만큼 세상이 어마어마하게 바뀌였네요!》
드디여 김진서는 자기가 충격파의후과로 어제부터 계속 환각속에 헤매였음을알게 되였다. 어쩌면 옹근 하루씩이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약들을 받아안고 급격히 몸을 추세우고있었는데 그만에야 《세상이 어마어마하게 바뀐》사변에 접하여 다시 경련을 일으킨것이였다. 기쁨도 너무 급작스레 들이닥치면 견디기 어려운것이다. 하물며 그 사변을 그저 기쁨이라고 표현해야만 하겠는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맡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것 같았다.
《봅시다.》하고 그는 덤벼치며 말했다. 《빠- 빨리 그 소식… 어제부터 벌어진 일들을 보- 봅시다. 예?!》
그는 사정하다싶이 했다. 강목사의 손을 부여잡고 정부부쪽에도 간절한 눈빛을 던졌다.
《신문이랑… 이- 있겠지요? 록화물은… 어서요,김정일장군님의 모습을 다시 뵈옵게 좀 도- 도와주십시오. 빠- 빨리요!》
어느덧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지기까지 했다. 병약한 한 늙은이로부터 어린애로 변신한듯 싶었다.
강목사가 난색을 보였다.
《아 김선생님, 너무 조급해마셔요.》
정동년도 머리를 끄덕이였지만 리명자만은 녀성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가 완전히 회복되였음을 알아차린듯 했다.
《걱정마셔요. 도와드리고 말구요.》 그 녀자가 웃으며 말했다. 《신문, 록화물 다 있어요. 하지만 너무 흥분을 앞세우지 마셔요.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하지 마셔요. 예?!》
《아- 알아요. 내 꼭… 그리 하리다.》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벌써 온몸을 부르르 떨고있었다. 리명자가 가방을 열었다.
《자, 여기 신문들을 가져왔어요. 비데오카세트는요 통일의 집에 계신 선생님들이 종일 돌리고있지요뭐. 빛고을탕제원 김병택선생님도 거기에 눌러계셔요. 그러니 먼저 신문부터 보시구요. 천천히 숨을 돌려 통일의 집에 가도록 하지요.》
《아 조- 좋습니다.》
《재삼 부탁하는데 엄청 흥분이 빠르시다는걸 잊지 마셔요.》
그들은 김진서를 위하여 여러 신문들의 사회면만을 뜯어서 가져왔다.
진서는 먼저 평양상봉을 찍은 대형사진들부터 눈밝혀보았다. 텔레비죤화면앞에서 벅찬 충격에 쓰러지던 때 뇌리속에 새겨두었던 력사적화폭… 그는 《한겨레》, 《동아일보》, 《조선일보》들을 일일이 번져갔다. 누군가 특보기사들밑에 줄까지 쳐놓아 꼭 찾아야 할 기사들이 한꺼번에 들어왔지만 그것도 성차지 않아 한눈에 서너줄씩 겅정겅정 뛰여넘으며 훑기도 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는것을 깨닫자 이번에는 줄친 기사의 글줄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따라 읽고 그 의미를 조급히 음미해보느라고 갑자르기도 했다.
…
6월 13일(화)
김대통령 첫날 일정
관저에서 부인 리희호녀사, 장남, 차남, 손자, 손녀들과 아침식사… 청와대본관으로… 집무실에서 잠시 회담성공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린 뒤 서울공항에 도착하여 출발성명을 발표… 전용기《공군 1호기》타고 서해상공으로 1시간 비행…
6월 14일(수)
섭섭잖게 해드리겠습니다(특호활자)
(공군1호기가 평양순안공항 도착은 오전 10시 27분)
※ (특대형사진-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과 김대중대통령 상봉)
우리 언론에 처음 공개된김정일국방위원장의 언행은 거침이 없었다.
13일 영빈관에서 열린 1차남북정상회담에서 시종 자신있는 어조로 대화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섭섭치 않게 해드리겠다.
김대통령의 용감한 방북… 장관들도 힘든, 두려운 길을 왔다고 평가하고… 격식없는 대화를 하자.
김대통령뿐아니라 장관들도 기여해주기 바란다.
이것이 핵심내용.
정상회담 11시 45분부터 27분동안 영빈관에서 진행.
김대중-김정일국방위원장을 비롯해 많은 평양시민들이 환영해준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
김정일국방위원장-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다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김대통령의) 방북을 지지하고 환영하는지 똑똑히 보여드리겠다.
이어-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있다. 김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 김위원장이 왜 승낙했는지에 대해 2박3일동안 대답해주어야 한다.
또~6월 13일은 력사에 당당히 기록될 날이다라고…
눈 떠보니 통일이 오다(특호활자)
14일 오후 3시부터 남북정상 마라톤회담, 중간휴식까지 취해가며 총 3시간 50분동안 회담했다.
밤 11시 20분 두 정상 공동성명 12시 언론에 그 내용 공개
샴페인(샴팡)으로 축하건배, 특히김정일국방위원장은 샴페인을 《원샷》(한번에 밑굽을 냄)으로 건배, 우리 수행원들도 이를 따라 한꺼번에 들이키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2차정상회담은 영빈관 대통령숙소를 찾는 형식으로 오후 3시 시작.
…
김대통령과 나란히 식탁중앙에 자리를 잡은김정일국방위원장은 리희호녀사가 김대통령과 멀찌기 떨어져 자리를 잡자 림동원특별보좌역에게 귀속말로 《리녀사를 이쪽으로 모시고 오라》고 부탁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리녀사가 자신과 김대통령사이에 앉자 《만찬장에서까지 리산가족을 만들자는겁니까. 그래서 김대통령이 리산가족문제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지요.》라고 롱담을 던져 대통령내외의 폭소를 자아냈다.…
낮은 단계 련방제 그리고김정일쇼크(충격)
자고 일어나 보니 통일이 저만치 다가왔다.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은 통일방안에 합의했다. 텔레비젼속의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새로운 《통일시대》가 열리고있다.
…이날 남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는 장면은 7천만겨레를 울렸다.(사진해설)
·이번 정상회담이 남긴 사변중 하나는 미국의 CNNTV방송에서 지적했듯이 《수수께끼의 지도자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이미지》이다.
·-정상회담 최대화제《인간김정일》… 이같은 대중적충격은 《김정일쇼크》라는 형상을 만들어냈다.
·…김정일국방위원장… 스스럼없이 거론하는 여유와 분위기를 휘여잡는 유머감각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특대형사진)
2000년 6월 14일 밤 11시 10분 영빈관에서 남북의 두 정상은 력사적인 《남북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눈 떠보니 통일이 오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6. 15공동선언 2항의 통일방안합의라 할수 있다. 이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애 배경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것은 량 정상이 평양비행장에서 영빈관까지 달리는 차안에서 55분동안 나눈 담화내용이다. 이 담화내용이 결국 6. 15공동선언의 모태가 되였다고 본다면 당시김정일국방위원장이 김대통령에게 모종의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남측의 주요 관심사인 리산가족상봉, 경제협력 등을 전폭 수용할것을 약속하면서 비전향장기수북송을 포함한 련방제통일방안문제를 해결하자는 내용이였을것으로 보인다.…
박준영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6월 14일 두 정상은 3시간 50분간의 회담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통일방안합의문제에 할애하였다고 한다.…
그밖의 반향기사들까지 살핀다면 하루종일 신문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랄것이다. 진서는 서둘렀다. 속히 경애하는김정일장군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뵙고싶은 생각뿐이였다. 우의 기사들에서 특별히 강조된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의 내용도 아직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대결단을 내리시였다는, 그리하여 통일의 그날이 눈앞에 오고있다는 감격에만 취해있었다.
달리는 차안에서야 비로소 공동선언을 한조항 한조항 따져가며 음미하고 가슴에 새겨넣었다. 그리하여 통일의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마주 달려나오는 김병택, 김동길, 리성찬, 리홍순, 리세룡을 붙안고 울기 시작했다. 조국통일의 대강을 밝히는 공동선언에 비전향장기수문제까지 명기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에 울었다.
눈물을 모르던 비전향장기수들, 영영 눈물이 말라버린것 같던 로인들이 비데오로 장군님의 영상을 뵈오며 왕왕 소리내여 울었다.
《장군님께서 우릴 다 불러주시는거야.》
《너도 나도 다 불러주셨지. 안그래?!》
《보라. 여길 봐, 응?! 여기 우리 장군님의 친필서명이 있잖아!…》
이렇게 너나들이로 불러보기도 처음이다. 가장 엄혹했던 전향테로의 나날에도 동지로만 부르며 싸워온 사람들이 애들처럼 너, 나 하면서 공동선언의 글줄들을 눈으로 빨아들일듯이 읽고 또 읽는다.
마침내 서로 얼싸안고 꺼칠한 볼을 비벼대는 비전향장기수들, 목메는 기쁨과 감격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다. 눈물만이 그것을 말하고있다. 크나큰 기쁨속에 부지중 아픔도 스며든다. 오늘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동지들을 생각하니 뻐근한 아픔에 몸을 떨지 않을수 없다. 지난 날의 참혹한 추억이, 희생된 동지들에 대한 추억이 가슴을 허비고 심장 한끝을 물어뜯기때문이다.
이렇게 그들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은 기쁨에 겨워 울고 쓰라린 아픔에 허덕이며 울었다.
울자, 소리내여 맘껏 울자. 눈물을 사랑하게 된 우리들이 아니던가. 아픔과 헤여질수 없는 우리들이 아닌가!… 눈물을 탓하지 말자. 아픔을 잊으려 하지 말자. 우리 언제든 그것을 고이 지니고 사랑하자!… 이렇게 진서는 눈물의 흐느낌속에 생각하고있었다. 동료장기수들도 꼭같이 생각하고있을것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다.
이 세상 가장 깨끗한 눈물, 눈물을 사랑한다. 울자, 울자. 동지들, 울자!…
×
그날부터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은 한시도 편할 새가 없었다. 김진서 역시 다를바가 없었다. 그의 생활상 편의를 돌봐주던 서강대학의 성렴교수, 그의 부인 정순란, 민가협과 NCC인권위원회 인사들, 진관스님, 기자들, 대학생들은 물론 도청과 구청장들까지 전화를 걸어오고 만찬에 초대하고 끊임없이 찾아왔다. 그러던중 또 하나의 충격이 소리없이 찾아왔으니 그것은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가 조직한 제주도방문을 앞둔 새벽에 있은 일이였다.
하정례의 편지가 날아온것이였다.
《광주시 동구산수 3동 508 김진서선생님께.》
봉투에는 발신인의 주소가 없이 TEL 3575-4056 하정례 라고만 씌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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