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별의 세계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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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저자의 말-
199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비전향장기수라는 말을 모르고있었다. 사전에도 그런 올림말은 없었다. 1992년 3월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낸 《조선말대사전》에조차 《비전향장기수》, 《교도소》, 《보안감호소》, 《독거》, 《앞수정》 《뒤수정》, 《교정대상》 등의 낱말들이 올라있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의 언어학자들을 탓해야 하겠는가?…없는것이 좋았다. 그러한 말들조차 모르고 살아온 우리들, 그러한 제도적, 물리적장치와 폭압수단과 멀리 떨어져 살아온 우리의 삶을 자랑하는것이 더 좋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말들을 잘 알고있다. 인제는 그 말들을 떠나서 우리의 현대사를, 조국통일투쟁사를 생각할수 없게 되였다. 알아야 한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삶과 투쟁이 불가사의한것도 아니고 기적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과 같은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을 키워낸 위대한 사랑과 믿음에 대하여, 그 사랑과 믿음을 지켜낸 신념과 의리에 대하여 세계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우리 인민을 알수 있고 오늘과 래일의 조선을 알수 있는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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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 광풍이 몰아치고있었다. 눈보라가 태질하며 숨결도 가쁘게 아우성쳤다. 승용차들이 눈에 묻혀 더는 전진하지 못했다. 하얗게 성에 불린 차창에 눈가루들이 련속 덮씌워졌다. 하늘도 땅도 눈보라에 묻혀 아무것도 가려볼수 없었다. 오직 지동치는 눈보라의 무시무시한 노성뿐… 혹한이 울부짖고있었다. 잠을 깨는 백두산이 기지개를 하며 서리발치는 눈보라소리로 한껏 숨을 내뿜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였다. 그러자 곧 수행원들이 달려왔다. 솜옷자락이 찢어질듯 펄럭이고 누군가의 털모자가 짚검불처럼 날려갔다.
《장군님!-》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의 웨침소리마저 연기처럼 순시에 날려가버렸다.
《위험합니다. 장군님!》
《눈보라가 멎은 다음… 지금은… 안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손으로 눈앞을 가리며 큰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일없소. 백두산엔 이럴 때 올라야 제격이요.》
그이께서는 칼날같은 눈보라속을 헤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마루로 먼저 오르시였다. 자칫하면 광풍에 날려 아찔한 계곡의 눈더미에 파묻힐수 있다. 사람들이 허겁지겁 따르며 아직도 뭐라고 울부짖고있다. 그이께서 손을 뻗쳐 그들을 힘껏 끌어주시였다.
《서로 꽉 잡소. 떨어지지 말구… 힘을 내시오, 힘을!》
김하천대장이 그이의 제일 가까이에 붙어있었다. 권형일비서가 자기의 우람한 체구로 누군가를 감싸고 떠밀며 뒤쪽에서 씨근거렸다. 무수한 불찌들이 눈앞에서 맴돌이치고 룡트림하듯 꼬리를 길게 끌며 솟구치군 했다.
뾰족뾰족 날을 세운 얼음알갱이들이 사정없이 살을 찌르며 덮쳐들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신다. 지금은 2000년 1월이다. 세기를 마감하는 이해의 정초에 백두산을 찾으시고 바로 여기에 첫걸음을 찍으시는 그이의 마음은 매서운 칼바람속에서도 마냥 뜨거우시다. 5년전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격장을 찾으시였던 그이이시다. 만장탄한 자동보총과 기관총의 맹렬한 련발사격으로 피눈물의 그해를 전송하고 시련에 찬 새해를 소리쳐부르시였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고향이며 용암처럼 뜨겁고 이 산정의 광풍처럼 격렬한 성격을 키워준 백두산으로 오르신다.
또다시 삼단같은 눈의 타래가 오불꼬불 회오리치며 눈앞에서 솟구쳐오른다. 격한 휘파람소리, 백두산은 지동치는 눈바람소리로 숨쉬고있다. 미처 솟지 못한 해가 저 멀리 눈보라의 장막너머에서 벌거우리한 빛을 가까스로 던지고있다. 그 빛이 얼씬거릴 때마다 하얀 눈가루들이 불찌같이 반짝이며 맴돌이친다.
드디여 그이께서는 산정에 오르시였다. 한덩어리로 뭉쳐 따르던 사람들이 비로소 눈을 떴다. 사납게 후려치는 칼바람에 숨이 꺽꺽 막혀 괴롭게 몸을 비트는 사람도 있다.
김정일동지께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늘가 저 멀리를 가리키시였다.
《보시오, 해가 솟습니다.》
시뻘건 태양이 지평선 한끝에서 높이 솟고있었다. 백설의 광야에, 눈과 얼음에 덮인 백두산정에 불타는 노을이 파도쳐왔다.
《얼마나 장쾌한 백두산의 해돋이요.》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세상천하를 한가슴에 다 안는것 같지 않소!》
사람들모두가 벅찬 환희에 몸을 떨었다. 얼얼해진 뺨을 문지르고 하얗게 성에 불린 눈섭을 비벼대며 흐느낌소리처럼 부르짖었다.
《장군님, 정말 장관입니다.》
《예, 막 가슴이 터지는것만 같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어쩌면 이렇게 장엄하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포연처럼 입김을 내뿜으며 감동에 겨워 부르짖는 그들을 소리내여 웃으며 둘러보시였다.
《그런데도 동무들은 눈보라가 멎은 다음에 오르자고 했지. 그랬으면 이처럼 벅찬 환희는 느껴보지 못했을거요. 광풍을 뚫고온 사람들만이 이런 기쁨을 알수 있단말이요.》
《그렇습니다, 장군님!》 권형일이 부르짖었다. 《막 만세를 부르고싶은 심정입니다.》
김하천대장도 입술을 찌긋하며 이상하게 웃는데 단단하고 뾰족한 턱이 경련을 일으키는듯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에 한손을 짚고 점점 높이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시였다.
어느새 눈보라가 숙어들고있었다. 천지호반에서 마지막으로 솟구쳐오른 눈가루의 회오리가 해빛을 받아 무지개빛으로 흐트러지며 눈앞에서 아물거렸다. 금빛의 해살이 살얼음처럼 투명하고 퍼렇게 열린 하늘에서 아낌없이 쏟아져내렸다. 무시무시하게 노호하던 백두산에 놀라운 정적이 깃들었다.
아니 그것은 장엄한 정적인지도 모른다. 눈이 부시여때끔거릴 지경으로 찬란히 빛나는 해살속에 느닷없이 찾아든 정적,김정일동지께서는 사무치는 격정에 눈시울이 떨려나는것을 느끼시였다. 멀리 해빛에 번쩍이는 정일봉이 안겨오시였다. 그곳에서 백두의 아들,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신 그날로부터 광풍을 맞받아 헤쳐오신 멀고 먼 길이 벅차게 추억되시였다. 그러나 아직도 가셔야 할 길은 멀고 또 멀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길이 그처럼 시련에 찬 길이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험난한 수천만리길을 또 헤쳐갈수도 있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세기를 마감짓는 이 해의 정초에 여기 백두산에 오르신것이다. 이태전 7월말 적들의 악랄한 공세와 군사적도발이 더욱더 우심해질 때 그이께서는 공화국창건 50돐을 앞두고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하여 민족의 존엄과 국력을 온 세상에 과시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였다. 하여 1998년 8월 31일 12시 07분 《광명성 1》호가 발사되여 온 세계를 진감시켰다. 그때처럼 20세기의 마지막 이 해도 세계를 들었다 놓아야 한다.
몇해전에 벌써 《조선이 없는 지구는 없다!》고 선언하신대로 존엄높고 기개높고 위세높은 조선의 힘을 떨쳐야 하며 온갖 원쑤들이 무릎꿇게 하여야 한다. 온 세상이 선망의 눈으로 우리를 보게 하여야 한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고계시였다. 끓어번지는 생각이 그이의 마음속에서 불덩어리처럼 꿈틀거렸다. 벅찬 환희에 목이 잠기는것을 느끼신다.
마침내 그이께서는 수행원들에게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올해는 20세기의 마지막해입니다. 이 해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말하여 무엇을 총적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그것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짓고 새로운 21세기의 총진군을 위한 활로를 열어나가는것입니다.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한 전환적국면도 바로 올해에 마련해야 합니다. 나는 몇해전에 벌써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오고 고난의 행군을 총화짓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엄혹한 시련을 박차고 굴함없이 싸워온것이 결코 단순한 경제복구가 아니라 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위업수행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투쟁이라는것을 말해주는것입니다. 지난 5년간 가슴아픈 시련도 많았지만 우리는 이겨냈습니다. 그랬던것처럼 올해에도 기어이 목표를 점령해야 합니다. 이자 동무들도 체험한것처럼 날밝기전이 제일 추운 법입니다. 행군길도 마지막고비가 제일 힘든 법입니다. 가고 가고 또 가고 더는 움직이지 못할것 같이 힘들고 지쳐있을 때 목표는 눈앞에 있는 법입니다. 이걸 잊지 맙시다. 다시한번 신들메를 꽉 조이고 계속 전진해나갑시다.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공장들을 가지고 21세기에 들어설수는 없습니다. 반세기이상 소원해온 조국통일인데 통일대문의 빗장도 열지 못하고 새 세기를 맞이할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겠는가!… 비전향장기수들을 생각해보시오. 한생도 다 기울어 초불처럼 꺼져가는 그들을 그대로 철창속에 둔채 새 세기를 맞을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백두산에 올라있습니다. 겨울의 백두산을 유람하러온것이 아니라 백두의 기상과 정신으로 최후돌격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더 굳게 다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수행원들모두가 눈빛을 번득이며 서있었다. 살을 콕콕 찌르는 맵짠 추위도 느끼지 못하는듯 했다. 눈부신 해빛에 눈시울만 떨고있을뿐… 다시 그이께서 쇠소리가 섞인 음성으로 계속하시였다.
《지금 우리는 두 세기의 령마루에 서있습니다. 20세기를 총화짓는 령마루이자 새 세기의 출발점으로 되는 령마루- 바로 백두산의 높이와 기상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금 찬란한 해빛을 마주하시였다. 땅땅 얼어붙은 천지를 배경으로 이윽토록 멀리 백설에 덮인 광야를 바라보고계시였다. 흰 눈의 세계가 멀리 아득히 펼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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