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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군사정권에 의해 조작된 1967년 동백림사건 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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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민족통신 노길남/손세영 특파원]독일 동포사회는 초기부터 한국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물리적으로 납치하고 탄압한 희생자들이었으며 전두환 폭력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위협받아 온 희생자들인 동시에 분단역사의 희생자들로 간주되어 왔다.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멀쩡한 학자들을 간첩으로 몰아 허위조작하여 백주에 강제납치해 세계여론에 오르내렸던 사건으로 공포의 역사를 지녀 온 희생자들이기도 하다.
한 희생자는 이른바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은 허위 조작된것”이라고 폭로하며 지난 날의 악몽을 되새기고 있다.
그 당시 독일에서 모두 16명의 서독동포들이 박정희군사정권 산하의 한국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강제 납치되었는데 대체로 한 번에 독일 땅에서 3~4명씩 연행되여 한국으로 끌려갔다. 이들 대부분은 나중에 신변안전을 위해 독일에 귀화하여 독일시민이 되었다. 이들은 이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과거사를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점차 지난 이야기들을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무모한 서독에 대한 주권침해이며 동시에 관련사건 희생자들에게는 잔악한 폭압 사건이었다. 윤이상선생이나 정규명박사 등은 간첩으로 몰려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한국 정보부 요원들은 60년대 뿐만 아니라 70년대, 광주항쟁이 터진 80년대, 그리고 90연대에 이어 2000년대에 들어 와서도 끊임없이 현지 동포들이나 유학생들, 그리고 상사지사 기업인들 등 독일거주 동포들을 간섭하며 사사건건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한 행위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일에는 남한의 대사관도 있는가 하면 북조선의 대사관도 함께 존재하고 있어 이들 양측은 상호 신경을 곤두세우며 서로 견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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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민중제의 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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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이른바 민족민주운동 단체들은 이러한 배경조건 때문에 다른 지역 해외동포들에 비해 한층 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을 펼쳐 온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들 독일동포들은 악조건 속에서 운동을 전개해 왔다. 게다가 이민이 없는 나라에서 사는 관계로 이곳 동포들이 운동권 성원들을 영입시키고 육성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유럽동포사회 민족민주운동 인사들은 그 어느 지역에 비해 귀한 존재들이라고 보여진다.
독일에 거주하는 애국동포들은 지난 시기의 참혹한 역사적 배경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악조건에 구애되지 않고 꿋꿋하게 투쟁하는 모습을 볼 때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애국동포들은 60~70연대의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고 1980년 광주항쟁의 물결이 파도칠 때 독일동포들은 그 사건을 계기로 ‘오월민중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왔다. 한국의 재야인사들, 한국의 진보인사들도 초청하여 지난 32년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오월민중제를 통하여 이곳 운동권 단체들의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들의 발자취를 담은 ‘독일에서 5.18과 함께해 온 30년-재유럽 오월민중제 30년 기념자료집’이 250쪽 두께로 발행되었다. 이 자료집에는 귀한 사진들과 함께 그 동안의 운동역사들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대중선생이 대통령이 되기전 탄압받던 시기에 그의 구출운동에 관한 자료를 비롯하여 1990년 제1차범민족대회 전후의 자료들, 그리고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발표를 전후하여 각종 행사들에 관한 자료 등이 수록되어 있다.
독일서 열린 ‘오월민중제’는 또 독일과 유럽동포들의 1세와 2세를 잇는 가교역할도 해 왔다. 이에 대해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시대에는 곱게 보여 왔으나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오월민중제’는 또다시 민간파쇼 정치세력으로부터 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5.18민중항쟁의 정신을 존중하는 기초위에서 6.15선언과 10.4선언 정신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정권은 5.18정신과 6.15선언, 10.4선언 정신을 정면으로 배격해 왔다. 그래서 독일동포사회 민민진영은 이명박 정권과 함께 외세개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 한국은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한국이 IT산업을 비롯하여 조선산업 등 일부분야에서 그 내부구조가 어찌되었던 외면으로는 두각을 나타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이 미치도 경제강국처럼 선전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구조가 식민지 모순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들의 주식이 외국자본이 압도적이라는 사실도 이해되어야 한다. 한때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맞아 하루 아침에 쫄당 망하는 지경에서 그 당시 대통령 후보들이 국제자본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처참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은 또 정치 낙제생이다. 알자유, 만날 자유마져 탄압하는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국이 바로 한국이다. 제 동족을 적으로 보며 만든 국가보안법이 반세기 넘도록 악용되고 있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지금 진보당이 당하고 있는 현실도 그 배후에는 국가보안법을 악용하는 반민족세력이며, 남북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는 세력도 다름 아닌 미지배세력과 그 일등 하수인 이명박정권과 새누리당세력이다.
독일동포 ▲송두율박사(68)가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당했던 고통도, 그리고 ▲임민식박사(70)는 1969년 덴마크로 망명하였다가 해외생활 43년동안 아직도 그의 고향에 갈 수 없는 한국의 상황은 세계적 인권유린의 최악의 나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순간도 한국에서는 할말하는 언론인들이 감옥에 잡혀가고 있다. 자주민보는 그 대표와 기자까지 공안당국에 의해 구치소에서 재판준비를 하고 있고, 대표적 통일운동 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의장을 비롯하여 이경원, 최동진 간부들은 구치소에서 감옥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그리고 독일과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동포사회 민족민주운동 세력은 그 어느 해외동포지역에 못지 않게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민족통신 특파원들이 제한된 일정때문에 충분하게 취재하지 못했다. 아쉬운 것은 독일의 ▲이지숙박사(6.15선언유럽지역위원회 상임대표겸 재도이치란트동포협력회 회장)를 포함하여 ▲송두율박사,▲장일중선생, ▲이한경선생, ▲김성수박사, ▲박소은선생, ▲오복자선생, ▲최건국선생 등을 취재하지 못한 점이다. 그리고 유럽동포사회 통일운동 지도자들로서 활약하여 온 인근 프랑스의▲이희세선생과 덴마크의 ▲임민식박사, 스웨덴의 ▲임원섭선생 등과도 만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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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의 선생 안내로 러시아동포, 미주동포들이 라인강변 구경을 하고 기념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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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의 선생은 위 사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네번째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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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의선생(70):1942년 11월16일 충남 부여출생이다. 그는 1974년 7월 두이스부르크 발쥼 광산광부 노동일을 시작했다. 38년동안 독일에 살면서 어려운 조건에서도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 운동에 참여해 왔다.
그는 민주사회건설협의회 회원으로 이영빈 목사와 함께 기통회에도 참여하여 활동했고, 노동자연맹 창립회원으로 활약도 했다. 지금은 재도협 회원으로 그리고 6.15유럽지역위원회 회원으로 참가하면서 운동에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번 6.15선언 제12주년 유럽지역행사에 참가한 러시아동포들과 미주동포들을 그의 자책에 숙소로 제공하는 등 행사추진 배후에서 수고를 많이 한 인물이다.
그는 23년 동안 병 간호를 해온 부인과 지난 2000년 사별하고 12년 동안 아들과 함께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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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운섭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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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운섭선생(64):1948년 6월17일 전남 장흥출생이다. 그는 고향인 장흥에서 소학교, 중고등학교를 나와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71년 광부로 파독, 1986년 독일녹색당 베를린지역 외국인문제 분과에서 활동, 1991-92년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 총무, 베를린 노동교실 회장 역임, 그리고 한민족유럽연대 제2대의장으로 활동한바 있다.
2010년 5월에 발행된 재유럽오월민중제 30년기념자료집을 만드는데 김진향선생과 최영숙선생과 함께 편집위원의 한사람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몸이 좀 아픈 관계로 잠시 휴식을 취해 왔으나 이제는 많이 나아서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유럽동포사회 민민운동진영에서 오랜동안 활동해 왔으나 조용히 일하는 성격과 자세로 평가 받아 왔다. 그러나 유럽운동의 발자취에는 어디든지 그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유럽‘오월민중제’30년 자료집 구입문의는 전화: 49-30-8033964 로 주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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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유럽지역위원회 대표를 역임한바 있는 오복자선생 댁에서 저녁만찬을 초대받아 잠시동안 대화를 나눴다. 남편 월터씨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적이었다. 6년된 인삼주를 내오고 고기를 구으며 진보정치인 권영길 의원 등을 만난 이야기 하며 한국 민주화를 소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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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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