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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제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한데 모여 고인을 기렸다. [사진-통일뉴스 장수경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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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이하 전민특위) 사무총장 정유미 열사의 4주기 추모제가 26일 오전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한국진보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전국여성연대가 주최한 ‘자주통일열사 고 정유미 동지 4주기 추모제’는 고인을 기억하는 동지들이 모여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추도사가 진행됐다.
범민련 서울연합 김규철 명예의장은 고인을 추모하면서 “현재 남측에서 종북 소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자주통일운동가은 이에 굴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통일광장 권낙기 대표는 “열사가 어릴 때 일찍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어렵게 성장하고 생활하면서도 남북을 드나들며 ‘민족의 한을 풀겠다, 조국을 하나 되게 하겠다’고 헌신했던 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스스로 터득하고 단련된 것”이라고 고인을 추억했다.
또한 권 대표는 “국내외 정세는 반세기 전부터 계속 어려웠는데 우리는 항상 수구세력, 제국주의 탓만 해왔지 우리가 무엇이 모자랐는지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며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전국여성연대 손미희 공동대표는 “정유미 열사의 남편 쟈니 클라인(Johnny Kline)이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며 내년에 목사안수를 받을 예정”이라고 소식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공동대표는 “고인을 1997년 미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조국을 위해 생을 걸자고 서로 굳게 결의했는데 유미는 그야말로 생명까지 다 바쳐서 투쟁했다”고 회고하며 “열사 앞에서 나는 진정성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겸허해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는 “내년에는 정유미 열사의 남편과 전민특위 활동을 같이 했던 정기열 목사도 초청해서 5주기 추모제답게 치르자”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이 흰 국화꽃을 바치고 정유미 열사의 진정성 있었던 삶을 기억하면서 묵념을 하는 것으로 4주기 추모제를 마쳤다.
한편, 정유미 열사는 1962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7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장하고 생활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했으며 2000년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 2005년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2001년 코리아 국제전범 재판이 뉴욕에서 열렸을 때 남쪽에서도 미군학살 피해자와 유족들이 방문했었다. 그때 참가자들은 정유미 열사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눈물을 흘리며 연설했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정유미 열사는 미군의 범죄를 폭로하고 분단된 남북의 상황을 알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서울, 평양, 유럽 등 그 어디에라도 방문하여 진정성을 갖고 열정적으로 호소하였기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이지만 열사의 활동을 이해하고 적극 지지해준 남편 쟈니 클라인을 만나 아름답게 사랑을 하고 2006년 위암 말기 진단 이후 남편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2년 여 투병 끝에 2008년 7월 26일 운명하였다.
정유미 열사는 활짝 웃는 웃음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 웃음이 소박하지만 생명력 있는 들꽃을 닮아 그의 영결식에서 고인을 ‘꺾이지 않는 들꽃 같은 혁명가’라고 불렀다.
2012년 07월 26일 (목) 21:57:09 장수경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