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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별의 세계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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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410회 작성일 22-11-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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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3

차바퀴밑에서 눈가루들이 회오리치며 날아올랐다. 눈덮인 외통길에 전조등의 불빛이 휘딱휘딱 번져지며 뽀얗게 날리는 눈가루들을 비치였다. 고속으로 달리는 승용차들, 순간이라도 멈칫하면 얼음강판우에서 지치며 눈깜박할사이에 벼랑에서 굴러내리거나 눈무지에 처박힐수 있다.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가 맨 앞장에서 눈보라를 헤치며 내닫고있었다. 발동기가 앙앙- 용을 쓰며 울부짖고 무거운 차체에 짓눌린 차바퀴들은 얼어붙은 눈덩이와 조약돌들을 세차게 걷어찼다.

돌연 뒤따르던 차가 굽인돌이에서 지치며 길섶의 눈무지속에 틀어박히는것이 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크게 놀라시여 차를 멈추시였다. 어느새 문짝을 열고나서며 소리쳐 물으시였다.

《누구요. 어데 다치지 않았소?》

눈더미속에서 기여나오는 사람은 부부장이였다.

《장군님, 일없습니다. 비행기처럼 날아본다는게 그만…》

눈사람이 되여버린 그가 모자를 벗어 옷의 눈을 터는것을 띄여보자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다행이요. 얼음물속에 들어가지 않은게… 그랬으면 아마 너스레를 떨지 못했을거요.》

급히 달려온 수행원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안도의 숨과 함께 웃어대고는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누군가는 소란스럽게 한숨까지 뿜어댔는데 가슴속에 꽉 들어차있던 불안과 근심이 흐느낌소리처럼 새여나오는듯 했다.

그이께서는 그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다. 험준한 령길, 어둠과 눈보라… 하지만 잠시도 지체해선 안된다. 우리의 걸음이 순간이라도 늦어진다면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이 그만큼 늦어진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그들의 불안을 가셔주시려 우정 롱조로 말씀하시였다.

《비행기속도를 내는건 좋은데 제 나라, 제 땅에 든든히 발을 붙이고 달려야 합니다. 우리 인민이 걷고있는 이 강행군길에선 더욱 그렇소. 그러지 않다간 왕청같은데로 날아갈수 있습니다.》

눈에 빠진 일군도 스스럼없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자강도땅에 딱 붙어서 달리겠습니다!》

《좋소, 그럼 또 달려봅시다.》

눈무지에 틀어박힌 차는 뒤따르던 군대차가 꺼내게 했다. 시간을 아껴야 했다. 현지지도의 일정은 아직도 멀고 추위는 시간이 갈수록 더 사나와졌다.

령마루에서 쓸어내리는 뽀얀 눈가루들이 비좁은 외통길을 메우고있었다.

마침내 새로 세운 발전소에 이르시였다. 북천강을 막아 갑문식으로 건설한 발전소였다.

도당책임비서가 그이를 안내해드렸다. 발전소의 능력과 발전설비들의 가동상태에 대하여 말씀드리며 저으기 죄스러운듯 망치로 두드려 만들다보니 볼품없다고 했다. 그이께서는 웃으시였다.

《모양이야 어쨌든 전기만 꽝꽝 나오면 됩니다. 전기야 모양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절실한건 빛과 열입니다. 모양은 차차 내기로 합시다.》

그이께서 지금 가장 기쁘게 보시는것은 이 발전소들을 일떠세우고 기계설비들을 만들어 전기를 일군 사람들이였다. 눈물도 많았고 아픔도 컸지만 당의 부름에 거연히 일떠선 자강도사람들, 칡뿌리를 씹고 벼포기, 강냉이뿌리를 갈아먹고 니탄까지 파먹으면서도 끝끝내 공장을 돌린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 무엇인들 못해내겠는가, 이 사람들속에 있으면 그 누구인들 심장이 커지지 않겠는가!…

리수진이도 이 사람들속에 있었다. 과오를 범하고 자강땅에 내려와 자신을 단련하는 일군, 친아버지의 일로 아직까지 가슴을 펴지 못하고있을 그였다.

그를 빨리 만나고 싶으시였다. 그런데 수행원들은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있었다. 권형일비서가 도의 한 일군에게 금속공업부에서 국장을 하던 동무라고, 일전에 그의 사업과 생활을 잘 돌봐주라고 하지 않았는가 귀띔해서야 건설을 끝내고 자기 소속공장에 돌아갔을것이라는 그닥 자신없는 대답이였다.

그때 발전기실의 전압계쪽에 서있던 처녀운전공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장군님께서, 또 다른 수행원들이 바라보자 흐느낌소리처럼 속삭이였다.

《아버지장군님, 제가… 제가 좀 압니다.》

발전기의 동음속에서 울린 그 목소리는 가냘픈 떨림소리 같았으나 그이께서는 반갑게 물으시였다.

《동무가?… 그래 그가 여기서 일했소?》

《예, 장군님.》 어느새 처녀의 두볼은 확 타오르고있었다. 《그분이 여기 발전기며 기계들을 조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조작방법까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수진동무가 말이지?》

《저… 우린 그저 아바이라고만 불렀습니다.》

《그렇다?!…》 그이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바이라고만 불렀단말이지…》

웬일인지 그이께서는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르는것을 느끼시였다.

아바이!… 비전향장기수들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삶을 버티여가던 불굴의 전사 최동환의 아들이 어느새 아바이로 불리우고있다. 하지만 그것은중로배년장자에 대한 허물없는 부름, 따뜻한 존경과 친밀한 혈육의정이 담긴 부름이 아니겠는가!… 그이께서는 꼭 그렇게만 믿고싶으시였다. 하여 처녀운전공의 가늘고 잰 말씨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그윽한 미소를 담고계시였다.

오랜 세월 소식을 모르던 자식들의 소식을 받게 될 때 흔히 어머니들이 그렇게 한다.

될수록 조용히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강구며 기쁨의 미소속에 소리없이 눈물을 삼키는 법이다.

×

김정일동지께서 숙식하시는 렬차칸에 늦어진 저녁식사가 차려져있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윽토록 수저를 들지 않으시였다. 성에 불린 차창에서 눈보라가 아우성쳤다. 아니, 그것은 그저 그이의 마음속에 몰아치고있는 눈보라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헤쳐가야 할 멀고도 험난한 최후승리의 길, 그 길우에 휘몰아치는 시련의 눈보라를 그이께서는 보고계시였다. 그렇지만 우리 인민은 굴함없이 가고있다. 웃으며 가고있다. 인민군대가 앞장서고 자강도사람들이 홰불을 높이 들었다.

채칵거리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난스러워졌다. 어느덧 밤 9시가 가까왔다.

이윽고 그이께서 기다리시는 사람들이 도착했다. 권형일비서가 리수진을 데리고 들어서는데 수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밝은 불빛이 눈을 때려서인지 아니면 크나큰 충격에 감각이 마비되였는지… 그이께서 그를 손잡아주시였다.

《리수진동무, 기다렸습니다.》

《장군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목을 졸라매운듯 가까스로 부르짖고는 그만 허리굽혀 인사를 드린다는것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이께서는 그의 손을 놓지 않으시였다. 돌덩이같이 딴딴해진 손, 긁히고 찢기지 않은데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 손을 따뜻이 감싸쥐고 식탁에로 이끄시였다.

《그새 고생이 많았겠소.》

그이의 이 말씀에 그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경애하는 장군님,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지 마시오. 여기 자강도사람들속에서 량심껏 일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자, 식전이겠는데 같이 듭시다.》

그이께서는 강냉이가루로 만든 몇개의 남새빵과 남새장국 한사발씩 차려놓은것을 가리키시였다.

《어려운 때인것만큼 이것뿐이요. 자 어서 듭시다.》

수저까지 쥐여주시였으나 수진은 차마 그것을 입에 가져가지 못하였다.

이토록 수수한 식탁을 그는 상상할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볕에 타고 산바람에 그을은 얼굴이 고통스럽게 움씰거렸다.

그이께서 거듭 권하시여서야 빵을 뜯고 남새장국을 입에 떠넣는데 굵다란 눈물이 국물우에 떨어져내렸다. 그이께서도 수저를 드시였다.

《오늘 자강도사람들이 일떠세운 발전소들을 돌아보아서 그런지 부쩍 입맛이 당기는구만. 권비서도 어서 드시오. 하루종일 달렸는데.》

그이께서는 자신의 몫으로 차례진 강냉이가루를 섞은 남새빵 하나를 수진의 그릇에 옮겨주시였다.

《많이 드시오. 허물하지 말구.》

그 이상 더 권하실것도 없다. 하지만 진수성찬이라야 배부르고 만족하겠는가. 죽 한그릇이라도 뜨거운 정을 쏟으면 되는것이다.

수진은 자기가 무엇을 먹고있는지도 알지 못하는듯 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입에 문 빵을 적시고 가슴을 적시고있었다.

이윽고김정일동지께서는 그간 자강도로동계급과 함께 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고 물으시였다.

《장군님!》 수진이 대답올렸다. 《저는 지금에 와서야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였습니다. 인정많은 이곳 사람들이 과오를 범하고 내려온 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것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고된 나날이였지만…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는것이 제일 큰 삶의 기쁨이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이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단말이지… 그거면 되오. 우리 로동계급이 사랑해주었으니 그 이상 뭘 더 바라겠소. 제일 큰 표창을 받은셈이지.》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가 놓여있는 창턱으로 가시였다. 전화번호를 누르자 곧 《현철무 듣습니다.》하는 웅근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책임비서동무, 래일 아침 평양으로 갈 차를 한대 준비해야겠습니다. 아침일찍… 길이 험하니 경험많은 운전사를 붙여주시오.》

전화를 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시며 엉거주춤 허리를 펴는 리수진을 손짓으로 눌러앉히시였다.

《수진동무와는 처음이지만 나는 동무를 키운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고있습니다. 한가지 묻고싶은데 어머니가 불치의 병으로 사망한것을 알고있습니까?》

수진은 깜짝 놀라며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예, 오늘… 전보를 받았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왜 떠나지 않았습니까?》

《저… 당장 가고싶었지만…》

그이께서는 더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시였다. 시퍼렇게 얼고 꺼칠해진 그의 얼굴을 아프게 보실뿐이였다. 심한 가책과 무서운 번민속에 모대기였을 그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죄를 지은 몸으로 어떻게 어머님령전에 나서겠는가고 가슴을 쥐여뜯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이라는 요란스러운 구호속에 부모도 가정도 인정도 다 묻어버리고 투쟁만을 부르짖는 무뢰한들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 없인 혁명도 없다. 혁명이란 그자체가 가장 뜨겁고 진실한 사랑에 기초하고있는것이다.

《가야 하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가서 어머님령전에 술을 부어드리며 말하시오. 지리산빨찌산의 영웅전사 최동환의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돌아왔다고, 자기를 키워준 양부모의 친아들이 되여 돌아왔다고 말씀드리시오.》

《예?!…》

수진의 휘우둠히 굽어들었던 눈섭이 떨리기 시작했다.

터갈린 입술을 감빨고 금시 용수철처럼 튕겨날듯이 허리를 곧추 폈다. 타는듯 한 기대와 흥분이 그의 두눈에서 숯불처럼 이글거렸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마주 서시였다. 유리창너머는 시꺼먼 어둠, 강추위가 옥죄이는 어둠이다. 랭혹한 겨울, 길고 긴 겨울밤과 끝없는 어둠, 살가죽을 에이는 추위… 한생의 거의 전부를 그러한 어둠속에서 피어린 삶을 지탱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속에서 형언할길 없는 고통을 이겨가며 싸우다 숨진 사람들이 있다.

《동무의 아버지 최동환은》하고 그이께서는 갈리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켜싸운 영웅전사였소. 오랜 세월 변절자의 루명을 쓰고 배척받고 모욕받고 치욕을 들쓰면서도 전사의 의리를 지켜냈소.》

혀를 깨무는듯 한 신음소리, 그것은 리수진, 아니 최수진이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너무도 크나큰 충격에 입을 벌리고 공기를 빨아들이며 흐느끼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여전히 그린듯 서계시며 창밖의 어둠을 향하여, 력사에 묻힌 령혼들을 향하여 격정에 겨워 말씀을 이으시였다.

《오랜 세월, 아니 장구한 세월 캄캄한 먹방에서 버림받고 몸부림쳐온 그 수난자의 신음소리가 지금도 귀전에 울려오는것만 같소.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 무서운 고통도 이겨내게 하였는가. 실로 참혹한 인생이였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 동지들의 무릎을 베고 눈을 감으면서 자기는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하오.》

목멘 울음소리, 최수진이 울고있다. 어려움도 다 잊고 혀를 깨물며 흐느끼고있다. 울게 하자. 고통받던 아버지, 끔찍한 고통에 신음하며 언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마음껏 울게 하자.

밤은 깊어가고 장자강에서는 얼음장이 터지군 했다. 수난많던 민족의 아픔을 터치는듯, 지금도 철창속에서 새날, 새 아침을 목터지게 부르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웨침소리인듯… 어느덧 그이께서도 뜨거운 심정에 목이 메이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숙명이였던가, 진정 우리 인민은 수난자의 숙명을 타고난것인가?… 아니다. 외세에 의하여 강요된 이 시련을 이겨내기 위하여 오랜 세월 피흘리며 싸우고있다. 지금도 역경을 헤치며 나가고있다. 여기 자강도사람들을 보라. 눈물을 삼키고 웃음을 날리며 최후승리의 밝은 래일을 불러오고있다.

《수진동무.》 그이께서 또 말씀을 이으시였다. 《아버지를 자랑하시오. 동무의 아버진 최후를 앞두고 감방벽에 피로써 지리산빨찌산의 영웅들의 이름을 썼다고 하오. 뭣때문에 그렇게 했겠소? 그 자랑스러운 동지들과 영원히 함께 있고싶어서 그랬을거요. 그말을 들었을 때 난 눈물을 참을수 없었소. 영원히 동지들과 함께 있고싶어한 그를 생각하면서…》

격한 충격에 목이 잠기는것을 느끼시였다. 진정 동지들과 함께라면 흔들릴것도 무서울것도 없다. 뜻을 같이 하고 생사를 같이 한 동지들과 함께 최후의 순간 《김일성장군 만세!》를 웨친 그의 한생은 행복하였다. 가장 참혹한 한생이면서도 행복한 한생이라는것을 그는 믿어의심치 않았다.

바로 그러한 불굴의 전사이기에 그이께서는 뜨거운 눈물속에 추억하시는것이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창가에서 돌아서시였다. 그는 비록 오래전에 갔지만 그의 뜻을 이은 아들이 있다. 오늘도 철창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처럼 굴함없이 살며 싸우는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있다. 그이께서는 오열에 떠는 최수진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시였다.

《수진동무, 동무를 키워준 양부모도 참으로 훌륭한분들이요. 지리산빨찌산의 정치위원이였던 양아버지 리재명, 전쟁로병인 서산옥어머니… 나는 처음 리재명동무가 쓴 수기를 보면서 생각하였소. 어째서 그는 세상이 다 아는 최동환의 변절에 대해서만은 쓰지 않았을가 하고말이요. 우리는 그것을 그저 스쳐보내지 않았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정치위원까지 한 사람이 어느 전투에서 적 몇명 살상, 로획한 무기와 탄약 얼마 하는것까지 다 밝히면서 자기가 먼저 지리산에 보낸 최동환이 변절했다는것은 왜 밝히지 않았는가. 생명의 은인이여서 그랬겠는가, 아니면 자기한테 미칠 후과가 두려워그랬는가?…

아니요.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소. 자기까지 그렇게 수기에 쓰면 최동환이라는 사람은 영영 변절자로 력사에 락인된다는것을 생각하고 미지수로 남겨두었던것이요. 생각해보시오. 이게 쉬운 일인가. 변절자로 소문난 사람의 아들까지 데려다 키우면서 침묵을 지킨다는것이!…

그때부터 우리는 력사의 무덤에 묻혀버린 최동환을 다시 살려내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것을 다해왔소. 여기 권비서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해외에까지 줄을 놓고… 나중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의 확인까지 받았소.

왜 그렇게 했겠소. 우리는 조국통일을 위해 몸바쳐 싸운 모든 애국투사들의 투쟁과 위훈을 찾아 빛내주려고 한것이요. 최동환과 같은 수많은 영웅전사들의 이름을 저 하늘의 별들처럼 력사에 새겨주려고!…》

수진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막 몸부림치는듯 했다. 그이앞에서 소리쳐 울수도 없고 누구와 붙안고 가슴을 두드려댈수도 없는 처지여서 피가 나도록 주먹을 깨무는가 하면 험하게 터갈린 그 주먹으로 눈언저리를 마구 문질러대기도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러는 그의 잔등에 다시금 손을 얹으시였다.

《우시오. 여기선 맘껏 울어도 돼.》

웬일인지 그이의 마음도 뜨겁게 젖어들고있었다.

눈굽도 젖어들고 음성도 젖어들고있었다.

《일없소. 소리내여 울라니까. 그새 마음고생이 컸겠는데… 하지만 인젠 자랑스러운 통일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의 아들이요. 비전향장기수의 아들!…》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또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의 아버지도 이런 날이 오리란것을 굳게 믿었을거요. 그건 틀림없소. 수령님과 당을 믿고 자식들의 장래까지 다 맡겼으니까… 그래서 나도 잠을 이룰수가 없었소. 제때에, 좀 더 일찍 통일애국투사를 찾아주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려서말이요. 이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의리가 아니겠소. 수진동무, 언제 어느때든 의리를 귀중히 여기시오. 충심으로 동무를 키워준 양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오. 또 제일 어려운때 동무를 아껴주고 사랑해준 이곳 로동계급을 잊지 마시오.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이요. 어제는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하여 피흘려 싸웠고 수십년간 옥중에서 신념과 의리를 지켜싸운 사람들, 지금은 우리 식 사회주의를 지켜 모진 고난과 시련도 웃으며 뚫고나가는 사람들,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시오. 내가 제일 귀중히 여기는것이 바로 이 동지적사랑이요. 뜻을 같이 하고 생사를 같이 하는 사람들사이의 혈연적인 사랑, 이것이 식으면 혁명을 못하오. 그래서 부탁하는건데… 어머님령전을 찾는것이 자식된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는것을 명심하시오. 영웅전사 최동환의 아들을 키워온 어머니가 아니요.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리고 내 마음까지 담아서 꼭 술잔을 올리며 인사를 드리시오.》

《장군님!-》하고 수진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듯 목메여 부르짖으며 넙적 엎드렸다. 《고맙습니다. 어버이장군님!-》

그이께서 일으켜주시였으나 그는 오열을 걷잡지 못하고있었다. 눈물이 끓고 심장이 끓는듯… 사무친 격정의 흐느낌소리는 이윽토록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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