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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별이 세계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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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621회 작성일 22-10-3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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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5. 조아라의 이야기

미안해요. 꼭 하고싶었던 얘긴데 왜 갑자기 힘들어지는걸가요?… 어쨌든 어머니로부터 시작하죠. 그게 더 편할것 같군요.…

나의 어머니 조규심은 제주도에서 나서자란 해녀출신의 미인이였다. 당시 제주도녀자들은 8~9살이 되면 벌써 바다에 나가 잠수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13살때쯤이면 얕은 바다에서, 15살때이면 벌써 한사람몫을 맡은 해녀로서 본격적인 생업을 시작하는데 50살이 될 때까지, 다시말하여 기력이 쇠진해질 때까지 하루도 쉼없이 물속에서 산다고 한다.

수십년후엔 제주도해녀들이 잠수경과 배도 가지게 되였지만 우리 어머니가 바다에 몸을 잠글 때까지만해도 속곳만 입은 알몸에 끝이 꼬부라든 호미모양의 칼, 대바구니가 로동도구의 전부였다. 물우에는 태왁(박통들과 줄망태들을 하나로 묶어 떼처럼 만든것)을 띄워놓고 휴식할 때엔 거기서 잠간씩 숨을 돌리군 했다.

조금 빗나가는 얘기지만 그 녀들의 잠수력은 보통 7~8길의 수심에서, 드물게는 13길이나 되는 깊은 바닥에까지 들어가 전복, 소라, 조개나 미역, 감태(김)를 채취하는데 무리를 지어 잠수했다가 일제히 솟구쳐 올라 숨을 내뿜을 때엔 고래처럼 분수를 뿜어올리고 휘파람소리같이 새되고 애처로운 음향이 바다의 절벽에 메아리친다. 언젠가 해녀들의 생활을 취급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였고 불우한 한생을 보낸 기박한 어머니의 운명을 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화의 화면들은 그처럼 이채롭고 해녀들 역시 발랄하고 랑만적인데다가 야생적인 미를 지니고있었지만 나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바로 나의 어머니가 그처럼 생신하고 남달리 어여뻤었다.

어머니는 노래에서도 명창으로 알려져있었다.

조금 거치른 목소리였지만 숨도 쉬는것 같지 않게(해녀들의 잠수능력과 습관에 따라) 길게 민요가락을 뽑을 때엔 놀라운 매력을, 요정과도 같은 이상야릇한 매력을 풍겼다고 한다.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제주도민요를 나도 적지 않게 알고있는데 그중 두곡을 나는 특별히 사랑했다.

앞강의 배는 낚시질배여

뒤강의 배는 님실은 배여

이것은 사랑의 노래이고 두번째는 제주도해녀들의 고달픈 생활을 노래한것이다.

슬픈 시집 난 울멍가난

시아방도 생가령소리여

시어멍도 생가령소리여

외아덜에 단똘며느리

저 가령에 뉘 들어가리

어머니의 그 야생적인 미모와 노래소리가 사람들의 주위를 끈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왜놈들도 눈빗질해보더니 어느날 감쪽같이 홀쳐서 정신대(지금말로는 《종군위안부》)로 끌어갔다. 해군배에 실어서 다리엔(대련)항(중국)에 팽개쳤는데 다행이랄가 숱한 처녀들속에서 어머니만이 해군장교구락부에 떨어졌다고 한다. 역시 그 야생적인 미모와 노래때문이였다.

그곳에서 매일같이 반라체로 해녀의 조가비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 곤욕을 치르게 되였다.

길게 말하진 말자. 다만 내가 어떻게 김진서선생을 알게 되였고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숨어살게 됐는지 그것을 말하는데 필요한것들만 추려보기로 하자.

1년후 어머니는 병에 걸려 거의나 죽게 되였다. 중국 진황다오(진황도)라는데서 기차에 실려가다가 어느 산기슭에 버려졌다고 한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한 조선인농민이 집에 업어갔다. 한해후엔 병이 나아 그집 아들과 혼례를 치르었고…

그러나 왜놈들의 《공비숙청》때 남편되는 사람을 잃었다. 왜놈기병대가 달려들어 온마을 청장년들을 다 잡아죽이고 집들을 불태웠다고 한다.

어머니의 류랑생활이 시작되였다. 그러다가 나의 아버지되는 사람을 만났다.

젊고 씩씩하고 리론수준도 있는 공산주의운동가 차일평…

그런 이름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세요?… 다행이군요. 하지만 이제 다 알게 될거예요. 무서운 비밀을… 지금껏 숨겨왔지만 말하지 않을수 없는 비밀을…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거의나 아는것이 없다. 어머니조차 그에 대해선 말하기를 꺼려했다. 차일평에게 정실부인과 자식들이 있었으므로 입에 올리기를 싫어했는지 아니면 그가 요구한것처럼 비밀사업때문에 일체 관계를 숨기고 나에게까지 입을 봉하고있은것인지…

나는 중국 동북의 펑티엔(봉천) (오늘의 선양)에서 태여나 두살나던 해 광복을 맞고 서울로 옮겨갔다.

아버지되는 사람이 그렇게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 어머니는 그 차일평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했다. 그가 자기를 구원해주었고 사랑을 주었고 자식을 주었다고 고마와했다. 집에 들리는 사람들이 《차일평동지의 인사를 전합니다.》 혹은 《차일평동지께서 곧 오시겠다고 했습니다.》라고 할 때면 그처럼 뜨르르한 공산주의운동가의 사랑을 받게 된 운명을 두고 감격해했다.

그 차일평이 어머니한테 몇번이나 들렸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보고싶다고 어린 내가 졸라댈 때면 어머니는 백번, 천번 당부하군 했다.

《이제 아버지가 너를 꼭 찾는다. 그때까진 절대 아버지소릴 입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알겠지? 누가 아버지에 대해 물어도 그저 모른다고 해야 돼. 그러지 않으면 우린 다 죽는다.》

어릴 때였지만 나는 그것을 신과의 약속처럼 절대시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아버지를 잊으려했다.

6. 25전쟁이 터진 다음부터 아버지의 그림자가 자주 얼씬거렸지만 웬일인지 내가 잠든후에야 왔다가군 했다. 어느날 한밤중에 나는 웬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리승엽동지, 그건 차후에 결정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아니요. 그럴수 없소. 리승엽동지, 그걸 제게 맡겨주십시오.》

《리승엽동지, 그 일에 적임자는 차일평동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리승엽동지》가 《좋소, 차일평동무에게 과업을 줍시다.》라고 한후엔 목소리들이 낮아졌다. 수군거리는 밤사나이들의 목소리가 산울림처럼 웅ㅡ 웅 귀전을 도닥이며 나를 다시 잠들게 했다.

아침에 깨여나보니 손님들은 온데간데 없고 어머니는 화장이 지워진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떠올리고있었다. 불쌍한 어머니, 어머니는 자기의 청춘을 훔쳐가고 일생을 망치게 한 그 사나이를 끝까지 사랑했었다. 그 사랑을 품에 꼭 껴안은 이 딸과 함께 고이 지니고 죽었다. 그 누군가의 련락을 받고(조직의 지시라고 했다.) 광주로 가던 도중 미군비행기의 기총탄에 치명상을 입고 숨졌던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아버지가 꼭 찾을게다. 얘야…》하는 말만을 남겼다. 그러니 차일평이 어머니를 광주로 불렀던것이다. 무엇때문에 그 란리통에 부른것인가? 《유엔군》도 인민군대도 다같이 한쪽은 대도로를 따라 다른쪽은 산발을 따라 북상하는데 우리만이 남쪽을 바라고 떠났던것이다.

결국 차일평이 어머니를 죽게 한것이다. 달리는 말할수 없다. 그가 무엇때문에 우리를 광주로 불렀던지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였다.

홀로 남은 나를 전북도당에서 데려갔다. 또 얼마후에는 최동환이라는 얼굴에 흉터가 난 사람이 업고갔다. 그리하여 군정대학 책임강사인 김진서선생을 알게 되였다.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이름도 모르고있었다.

잠결에 들은 《리승엽동지》, 《차일평동지》라는 사람들과 함께 비밀사업을 하는 사람들속에 있으리라고 짐작했을뿐이다. 어머니가 끝까지 비밀을 지켰던것이다. 아버지가 지어준 나의 이름도 사실은 차수옥이였다. 아명으로 (혹은 비밀때문에) 아라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지리산빨찌산들속에 널리 알려졌으므로 지금까지 나는 이 이름을 쓰고있다. 성도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었다. 조아라… 그렇다고 내가 변절자의 딸이라는것을 숨길수 있겠는가?… 미리 말해두지만 차일평은 변절자였다. 지리산빨찌산(남부군까지 통털어)의 제2부정치위원인 그가 지리산의 운명을 건 중대한 일을 앞두고 변절하여 수천명 동지들의 생명을 앗아갔고 그들의 출로를 막아버렸다. 그가 변절하기 며칠전 김진서선생이 나를 업고 지리산의 달궁골이라는 곳으로 갔다. 김선생은 리재명이라는 제1부정치위원과 극비의 담화를 하고 나는 동굴같이 벼랑을 파고 들어간 무선실에 들어가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다. 7살밖에 안되던 나였지만 그 사람이 아버지라는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말없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눈을 들여다보는데 그 눈빛이 이상했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것을, 그것도 애끓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는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쳐버려 막 잠들려던 때였다. 별안간 졸음이 사라지고 더럭 겁이 나서 온몸이 떨려났다. 그는 분명 나의 두눈에서 어머니의 검푸른 눈동자를 보고있었겠지만 (이것도 물론 후에 생각해낸것이다.) 그 시각 나는 그 사람이 나를 끌어안고 왕왕 울것만같아 무서워졌다. 그렇듯 그의 얼굴은 이지러져있었고 나의 누데기같은 치마며 짚신을 쓸어보는 크고 두툼한 손은 눈에 띄게 떨리고있었다. 그는 나의 가느다란 종다리도 만져보고나서 무선수에게 소리쳤다.

《이 애한테 뭘 먹을거 좀 줬소?》

무선수처녀는 그때 구석쪽에서 레시바를 끼고앉아 무엇인가를 급히 적고있었다. 그가 다시 소리치자 《차일평동지, 잠간…》하면서 또 무엇인가 급히 갈겨썼다. 차일평은 화가 난듯 했으나 더 묻지 않고 훌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를 위해, 사랑하는 자기 딸을 위해 전리품과자라도 얻으러나갔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올가봐 겁이 났다. 아버지를 애타게 찾고 그리워하던 나였지만 정작 나타나니 두렵게만 느껴졌다. 그가 남달리 흉하게 생겼거나 얼음같이 차고 조야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점잖고 잘 생기고 더없이 살틀했다. 그러나 그한테는 무엇인가 속을 터놓지 않는, 숨겨진데가 있는것 같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그것을 느꼈다. 내가 바로 그의 친딸이였기에 나를 딸이라고 부르지 않고 어머니에 대해서조차 묻지 않고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는 그의 표정과 귀방울이 푸들푸들 뛰는 모양을 두려움없이는 볼수 없었다.

그를 대신하여 하정례가 왔다. 리화녀대 프랑스문학과를 다니던 인테리로서 겉보기엔 매섭고 칼날같았으나 사실은 불같이 뜨겁고 매력적인 21살의 처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다는것을 나는 후에 알게 되였다.

비록 그녀가 형편없이 여위여 풀대같이 말랐지만 그리고 따벌같이 쏘고 맵짜게 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녀가 진실하고 정열적이기에 나도 대뜸 친혈육과 같은 정을 느꼈다.

우리는 리재명정치위원의 지시로 서울에 갈 준비를 했다. 그때 나는 하정례의 달라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인테리녀성에 어울리는 외투와 목도리, 모자까지 쓴 그녀의 모습은 오페라극장무대에 나선 오필리어를 련상시켰다.

나는 그녀의 양딸로 차비했다. 그러나 우리가 서울로 떠나려던 때 비상사건이 일어났다. 차일평이 변절했던것이다. 그때문에 극비로 꾸려진 무선통신대가 미제놈들의 폭격에 박산나고 지리산과 최고사령부와의 련계는 완전히 단절되고말았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차일평의 딸이였다. 저주로운 그 인간쓰레기가 바로 나의 친아버지였다. 그런데… 매일같이 차일평이 하늘에서 나를 괴롭히였다. 자기가 잘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투항하라고 설교했다. 그때의 내 심정이 어떠했겠는지 상상해보시라. 비록 7살나이였지만 엄혹한 환경이 나의 머리를 일찍 틔워주었다. 나는 리재명, 김진서, 정대천 같은분들과 친언니같은 하정례를 사랑하고 따랐는데 차일평은 그들에게 투항하라고 불어댔다.

내가 제일 믿고 따르는 그분들이 부득부득 이를 갈며 기어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칠 때 내마음 과연 어떠했겠는지 상상해보시라.

무서운 나날이였다. 발길닿는 곳마다 적들이 피워올린 모닥불천지였다. 지리산에 대한 제1차대공세가 한창이던 때였다.

김진서선생이 그처럼 무섭게 변한것을 그때 나는 처음 보았다. 다짜고짜 나를 들어 벼랑턱에서 내던질 때 벌써 나는 의식을 잃은, 거의나 죽은 목숨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수 없으나 누구인가 나의 꽁꽁 언손을 가슴속에 품고있는것을 느꼈다. 따스한 체온이 나를 녹여주고있었다. 알고보니 나는 하정례언니의 젖가슴에 손을 밀어넣고있었다. 얼어든 두발도 어머니같은 그녀의 허벅지짬에 끼워져있었다. 사위는 흐릿하고 고요했다. 어찌보면 얼어붙은 우유통속에 우리 둘이 잠겨있는듯 싶었다. 하지만 하정례의 두볼에 얼어붙은 눈물이 나를 놀라게 했다. 어째서 언니가 울고있는가? 혹시 내가 죽은것으로 생각했는가?… 나는 손발을 꼼지락거렸다. 그러자 그녀가 흠칫 하더니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것이였다.

《살았구나, 응? 아라!-》

나의 귀전에 퍼부어지던 후더운 입김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녀가 나를 힘껏 껴안았다.

《김진서선생이 우릴 둘 다 살렸구나. 나와 아라 너를!…》

그때에야 나는 김진서선생이 나를 살리려 눈구뎅이에 내던졌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면 선생님은?… 선생님은 어데 갔는가?… 나는 다시금 그녀의 젖가슴속에서 녹은 두손을 꼬무작거렸다.

《김진서선생님은…》 별안간 이렇게 묻기가 무서워졌지만 힘들게 계속했다. 《선생님은 어데 갔어요, 예?》

《…》

그녀는 까딱하지 않았다. 그녀의 두볼에 얼어붙어있던 눈물이 다시 녹아 흘러내리는듯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김진서선생이 죽은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아, 끔찍하던 그 나날, 7살난 소녀로서 그처럼 많은 죽음을 목격한 례가 또 있을가?… 나는 벌써 숱한 사람들이 피흘리고 창자가 터지고 팔다리가 잘리워죽는것을 보았고 통나무와 같이 얼어붙은 주검들을 타고넘군 했었다. 그때 벌써 죽음에 대한 체념이 생겼다. 하지만 김진서선생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치지 않을수 없었다. 선생님이 우리를 구원하고 죽은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무서워 엉엉 울었다. 하정례가 울고있는 내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때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세요?… 차일평을 생각했어요. 어째서 나한테 김진서선생님같은 아버지가 없는지, 하필이면 진저리나는 차일평이 아버지로 됐는지… 사랑하는 어머니를 망쳐놓고 이 딸의 장래마저 구겨놓은 그 더러운 변절자, 그때문에 얼마나 많은 빨찌산들이 붙잡히구 환자트에서 날벼락을 맞구 몰살됐겠어요. 김진서선생도 그자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니 억이 막히구 복장이 터지겠지요.

하정례언닌 내 입을 틀어막고 속삭이였어요.

《아라- 좀 더 참아야 해. 김진서선생이 뭐라구 했는지 아니? 기어이 살아야 한다구 했어. 지금 놈들이 그냥 우에 있어. 어두운담에 빠져나가자. 그때까진 참구 견뎌야 해.》

그때까지만 해도 하정례도 내가 차일평의 딸이라는걸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그녀가 그런줄 알았더라면 어찌했을가요? 무서운 일이죠. 나를 버리진 않았겠지만 뱀새끼를 가슴속에 싸안고 녹여줬을가요?… 아 뱀새끼라니… 정말이지 나는 왜 그런 운명을 타고났을가요. 예?!… 사람이 태여나면서부터 유죄선고를 받을수야 없지 않나요. 그렇지요? 쉴러의 《도적들》에 바로 그런 말이 나오죠. 기억나세요?…

눈구뎅이속에서 낮과 밤을 견디여낸다는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이였다. 나는 자꾸만 졸아드는것만 같았다. 몸이 얼고 마음도 시간이 갈수록 싸늘해졌다. 그렇게 날이 어두울 때까지 박혀있었다. 머리우의 바위벼랑에서는 그때까지도 쑤왈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숨은 벼랑밑으로 오줌을 싸갈기는 놈들도 많았다. 요소요소에 진을 치고 지키고있은것 같았다. 총포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 울리군 했다. 그러니 빨찌산들은 다 죽은것이 아니였다. 그들이 쉽사리 죽지 않는다는것은 나도 알고있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찍어말할순 없었지만 불굴의 인간들이라는것만은 어린 나도 똑똑히 알고있었다.

밤이 되자 또 모닥불이 타올랐다. 우리는 눈구뎅이에서 빠져나오려고했다. 그런데 하정례의 발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종일 부지런히 손발을 놀리느라곤 했지만 갑자기 마비가 온듯 하였다. 하정례가 빈침으로 발목과 장딴지까지 찔렀지만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아라.》 그녀가 말했다. 《여길 물어뜯어. 사정을 보지 말구.》

나는 그 말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힘이 약했는지 용기가 부족했던지 피가 나도록 깨물지는 못하였다. 그러자 하정례는 나의 턱을 쳐들고 칼날같이 예리한 눈길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라, 넌 빨찌산의 딸이지? 원쑤를 깨물어버린다고 생각해. 차일평이나 최동환이 같은 변절자를 물어뜯는다고 생각하란말이지. 알겠어?!》

그렇다. 나는 빨찌산의 딸이다. 차일평과 같은 더러운 놈과는 아무 인연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이발을 사려물었다. 이번엔 어찌나 세게 깨물었던지 하정례가 비명을 질렀다.

벼랑우의 적들이 웅성거리며 사방 총질을 해댔다. 우리는 총에 맞아죽을지언정 놈들에게 사로잡힐수는 없었다. 놈들이 하정례같은 처녀를 잡는다면 어떻게 할것인지 그것은 상상만해도 몸서리치는 일이였다. 그리고 나 역시 처녀애였다.

총알이 눈속에 푹푹 박혔다. 발치와 어깨너머에도 박혔다. 끝내 아무 기척도 없자 투덜거리고 누군가를 나무래고 욕질하더니 다시 모닥불에 둘러앉는것 같았다. 우리는 눈구뎅이에서 기여나와 수많은 모닥불사이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흘째되던 날에야 남부군을 만났다.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누데기옷을 걸치고 꽁꽁 얼어버린데다가 밥한술 입에 넣지 못하여 코김조차 나오지 않는 두 녀자- 나와 하정례를 남자들이 부둥켜안고 소리없이 울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이 나를 안고 자기의 체온으로 녹여주며 빨리 아무거나 입에 넣어주라고 소리쳤었다. 하정례를 꽉 안고있는 사람은 리재명정치위원이였다.

그동안 남부군은 600명으로 줄어들었다. (다음해인 1952년 1월 적의 제1차대공세가 끝날 때엔 900여명으로 남하했던 남부군이 400명정도로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오는 줄었어도 그들의 기세는 여전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그들이여서 무서운것을 몰랐다.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였으므로 죽음따위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 죽음과 만날 그 장소에까지 힘껏 싸우며 가고있는 사람들 같았다. 이렇게 그들은 지리산에, 분렬조국의 력사우에 하나하나의 리정표를 세우며 래일에로 가고있었다.

그러나 나 아라는 하나의 작은 리정표로도 될수 없었다. 나이가 어렸기때문이 아니다.

리현상사령관이 하정례에게 말하였다.

《아라는 어떻게 할 생각이요?… 사람을 붙여 하동이나 곡성군당에 맡깁시다. 머리를 젓지 말아요. 정례, 그 애는 보내야 하오.》

리현상사령관이 《그 애는》하고 말할 때 나는 치를 떨었다. 《그 애는 변절자 차일평의 딸이요.》하는 말임을 명백히 깨달았던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리산을 떠나게 되였다. 하정례가 나를 붙안고 오래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아라, 넌 내 딸이지? 내 친동생이구, 응? 우릴 잊지 말아. 이 언닐 잊지 말아!》

나는 울며불며 했지만 말은 못했다. 《난 안갈래. 언니랑 같이 있겠어요!》하고 발버둥치고싶었지만 나를 지켜보는 리현상, 리재명, 류주목 그분들의 눈이 무서웠다. 그분들의 눈은 깨끗하고 엄하였고 무자비했다.

내가 산을 내릴 때 하정례는 물론 나를 알고있거나 모르던 사람들모두가 목메인 소리로 《아라- 또 만나자!-》하고 손을 저어주었다. 누군가 나를 업고갔는데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진정으로 친딸처럼 사랑해준 그들곁을 떠나려니 설음을 이길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리산을 떠났고 빨찌산을 떠났다. 남부군, 지리산의 력사에 눈에 띄지도 않는 하나의 작은 발자국을 찍다가 고뇌와 도피의 세계로 사라져버렸다. 아니, 해발 1 915m의 지리산 천왕봉에서 개펄에 던져졌다고 할가.…

그후 하동군당에서 돌봐주어 한 2년간 맘씨고운 농사군집에서 살았다. 1953년 여름까지 거기에 눌러있은것 같다. 매일같이 지리산에서 울려오는 총포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떤 때는 정신나간것처럼 산으로 기여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흉흉한 소문이 그치지 않았다. 리현상사령관이 호위병 2명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고 박영발도당위원장도 어느 골안에서 포위되자 수류탄으로 자폭했다는 소문이 내 귀에도 들려왔다. 그 모든 참혹한 괴멸이 언제부터 시작된것인지 나는 잘 알고있었다. 바로 그 변절자 차일평이 무선통신대를 폭격하게 한 그때부터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리재명제1부정치위원이 나와 하정례를 서울로 보낼 준비를 할 때 말한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정례동무, 이 일은 지리산빨찌산의 운명과 관련되는것이요. 변신원을 꼭 찾아내시오. 만약 놈들에게 체포될것 같으면 준비된 약을 삼켜야 하오. 가혹한 권고지만 그 길밖에 없소.》

그 모든 일들을 회상할 때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나는 한평생 차일평의 딸이라는것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자가 나를 찾아다닐줄이야!… 나는 지리산근처에서 달아났다. 남의 집 허청간, 기차칸, 다리밑에서 전재고아들과 같이 자고 빈 깡통을 핥으며 떠돌아다녔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교회학원에도 끌려갔다. 어데서나 나를 이상하게 놀랍게 보고 특별히 대해주었는데 그것은 내가 자기또래 남자아이들, 지어 어른들보다 더 많은것을 알고있고 무서운 매질에도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차일평을 무서워했다. 오랜 세월 그한테서 멀리 달아나는데 바쳤다. 서울이 제일 편한 곳이였지만 두번씩이나 그자를 가까이에서 본 다음 생각을 달리하였다. 외국으로 달아나기까지엔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화순선생, 인젠 내가 왜 집으로 청하지 않고 이 공원으로 왔는지 짐작이 가실테죠?… 그래요.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남편과 자식들에게 내가 변절자 차일평의 딸이라는게 알려질가봐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다는 모를테죠. 헌데 15년전인가… 어느날 우연히 남조선에서 가져온 신문에 난 하정례언닐 봤어요. 전향을 하고 출소했다는… 아, 그때 기막히던 심정이란…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가요. 그렇게 예쁘던 언니가 어떤 모양 됐겠어요. 그리구 뭐랄가… 그녀가 기자들에게 한 말 《아라를 찾게 도와주셔요. 내 딸이예요.》라고 한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아프게 찢던지… 그때 난 도이췰란드에 있었죠. 밤중에 서울을 찾아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군요. 기자에게 물어 언니가 있는 곳을 알고는 또 거기에… 전활 했어요. 단한번 목소리라도 듣고싶어서… 언니가 소리치겠죠. 《아라, 너 어데 있니? 응?! 아라!》 그때 내가 뭐라 했던지… 이것저것 묻는 말에 대답하면서도 그것만은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디 산다는 그 말… 그리고는 또 자리를 옮겼죠. 내가 차일평의 딸이라는걸 남편과 자식들이 알게 될가봐 또 세상끝으로 달아나려했던거예요.

보세요. 이렇게 난 다 잃고말았어요. 귀중한분들을 잃고 그들의 사랑도 잃고 결국은 조국도 잃고… 아, 불행한 녀자, 어둠속에 숨어산 불행한 과거, 인젠 눈물도 말라버린지 오래됐네요. 쓸쓸한, 적막한 그리구 버림받은 한생…

이보세요. 내가 이렇게 살아온걸 김진서선생이 아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가요. 내게 침을 뱉지 않을가요?… 아, 아녜요, 날 위안하려하진 마셔요. 나는 정해진 운명을 어찌할수 없어요. 지리산에서 내릴 때 벌써 참된 인생의 렬차에서 내린거지 뭐예요. 그래요. 난 너무 일찍 렬차에서 내렸죠. 차표를 잃었으니까요. 그래서 시작된 불행… 보통사람들은 이 고뇌를 리해하기 힘들거예요. 물질적으로는 풍족하나 정신적으로는 빈곤하기 짝이 없는 인생의 공허를 말이죠.

사실 내가 그 무엇인가를 찾아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던 낮과 밤, 마침내는 한잔술에 나의 버림받은 인생의 고뇌를 타서 마시군 할 때 얼마나 쓰라렸던것인지… 누구도 알지 못할거예요. 알수도 없고…

날 좀 도와주셔요. 내가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수 있게!… 늦었지만 이제라도 김진서선생이 오래전 그때처럼 내 노래를 들어주신다면 그리고 따뜻이 웃어주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가요. 그 정찬 웃음으로 이미전에 떠나간분들의 사랑까지도 죄다 돌려주신다면!… 아, 그러면 난… 울거예요. 행복해서, 기쁨에 목메여 울고말겠죠. 울면서 노래할거예요.

앞강의 배는 낚시질배여

뒤강의 배는 님실은 배여

님 실은 배! 그게 어데 있나요. 예?!… 그걸 보면서 울어봤으면… 실컷 목놓아 울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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