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은 74번째 연재글로 < 반일전가>를소개한다. "항일투쟁의 엄혹한 시기인 1935년에 나온 이 《반일전가》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총을 들고 나선 조선인민혁명군과 나라의 독립을 열망하던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워 졌고 이 노래로 부르면서 민중들의 의식은 한없이 고취 되었으며 일제를 때려부수고 기필코 나라의 독립을 쟁취해야 되겠다는 철석같은 결의는 결국 일제를 멸망시키고 조국의 해방을 쟁취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의글을 여기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연재-74]북 음악예술통해 북을 알아본다/
1935년에 나온《반일전가》현 시대적용
*글:리준무 지휘자(뉴욕 우륵교향악단 단장)
글:리준무 지휘자
문헌을 보면 오래 전부터 왜구들이 한(조선)반도의 남동부에 출몰하여 노략질을 일삼으며 백성들을 괴롭혔다는 기록들이 나와 있다. 신라 때도 왜구들에 관한 기록들이 가끔씩 나오더니만 고려 말에 와서는 왜구들의 활동이 점차 대담성을 보이며 내륙지방인 전라도 운봉지방에 까지 깊숙하게 침범해 들어왔다고 한다.
이곳에 출몰한 왜구들의 행패가 심해지자 나라(고려)에서는 이성계를 시켜 이들을 격퇴, 섬멸해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 후로 한동안 잠잠하던 왜적들은 그 세력이 커지자 조직적이고 군사화된 무력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20세기 초에는 서양열강들의 식민지수법을 따라 배운 이놈들은 아예 나라를 송두리째 저들의 손아귀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러한 일본은 그 옛날 빼먹던 단맛의 추억을 못 잊어 오늘도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생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들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으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각인시켜 보려는 심보를 감추지 않고 국제적인 여론몰이를 해 가고 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 해놓으면 언젠가는 놈들의 장기적 목표인 독도 영토화를 실현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보는 바와 같이 일본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왜놈들의 이런 강도적 침탈행각은 자발적으로는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강점 당한 1925년, 《피바다》로 물든 조국강토를 눈물을 글썽거리며 바라보던 김일성주석은 14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여, 일제의 사슬에서 노예생활로 신음하고 사는 우리민족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안겨주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이렇게 하여 김일성주석은 간고한 항일투쟁에 첫 걸음을 내 디디게 된다.
항일투쟁의 엄혹한 시기인 1935년에 나온 이 《반일전가》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해 총을 들고 나선 조선인민혁명군과 나라의 독립을 열망하던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워 졌고 이 노래로 부르면서 민중들의 의식은 한없이 고취 되었으며 일제를 때려부수고 기필코 나라의 독립을 쟁취해야 되겠다는 철석같은 결의는 결국 일제를 멸망시키고 조국의 해방을 쟁취하게 되었다.
영원히 울리는 신념과 의지의 노래 《반일전가》
그 때는1935년 1월 하순이었다. 김일성주석은 제1차 북만(北滿)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해따라 눈보라가 얼마나 세차게 불었었던지 적아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였다. 김일성주석이 지휘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은 거세게 휘몰아치는 폭설 속에서도 일제 토벌대의 끈질긴 추격과 포위작전을 따돌리고 목표를 향해 힘겨운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험준한 산발의 준령을 헤쳐가며 상상을 초월하는 강행군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 앞에는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난관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김일성주석이 이끄는 조선인민혁명군은 허기진 배를 눈 뭉치로 때우는 악조건 속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적들과 교전을 해야만 했던 엄혹한 상황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정황은 아주 심각했다.
이러한 심각한 순간에 설상가상으로 김일성주석은 촉한(熱病)을 만나게 된 것이다. 혹한 속에서 간고한 시련을 극복해 가는 항일유격대 앞에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것은 민중들이 민족의 태양(조선의 별)으로 받들어 모시고 모든 것을 의탁하던 주석이 뜻밖에도 병석에 눕게 된 것이다. 조선혁명의 너무도 엄혹한 현실 앞에서 대원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몸부림을 쳤고 모두들 맥을 놓고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천교령(만주)부근에서 가까스로 의식을 찾은 김일성주석은 불편함 중에서도 조선혁명의 운명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조선인민이 일제의 영원한 노예가 된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아픈 몸을 추스르며 억지로 일어난 김일성주석의 뇌리에 문득 하나의 시상(詩想)이 떠올랐던 것이다.
체온이 40℃를 오르내리는 고열로 의식이 흐려지는 속에서도 김일성주석은 초인간적인 능력과 열정으로 대원들에게 적들에 대한 치 떨리는 증오심과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기 위해 노래를 만들기로 결심을 하였던 것이었다.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위중한 병석에서도 한 대원에게 가사를 받아쓰게 하고는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힘없이 쓰러져 있던 대원들이 하나, 둘 일어나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하였다.
천만번 죽더라도 악귀 같은 일제를 쳐 없애고 기어이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려는 강철의 의지와 불굴의 정신, 열렬한 조국애가 넘쳐흐르는 불후의 고전적명작《반일전가》는 유격대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강행군에서 오는 피로로 지쳐있는 조선인민혁명군에게 귀중한 활력소로 작용하였다.
일제의 발굽 밑에 신음하는 조국과 겨레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굳은 결심 변치 말고 싸워나가자는 철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 붉은기를 높이 들고 승리의 만세를 높이 부르자는 주석의 담대한 배짱과 기상이 반영된 가요 《반일전가》는 대원들에게 “우리는 이긴다”는 혁명적 낙관주의와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었으며 혁명군과 민중들을 일제 타도의 성전에 모두 떨쳐 나서게 하였다.
항일혁명투쟁시기 유격대원들과 민중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데 이바지한 김일성주석의 가요《반일전가》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세기를 이어가며 높이 울리고 있다. 이 노래는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는 물론 19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민중들에게 필승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는 힘있는 무기로,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을 단호히 물리치며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게 한 정신적인 힘의 원천으로 위력을 발휘하였다
<반일전가》는 77년이 지난 오늘에도 자주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 나가는 이북 민중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끝없이 울려가고 있다.
불후의 고전명작《반일전가》
1. 일제 놈의 발굽소리 더욱 요란타 금수강산 우리조국 짓밟으면서 살인방화 착취약탈 도살의 만행 수천만의 우리군중을 유린 하노나
2. 나의 부모 너의 동생 그대의 처자 놈들의 총창끝에 피흘렸고나 나의 집과 너의 밭은 놈들의 손에 재더미와 황무지로 변하였고나
3. 우렁차게 들려오는 반일전소리 곳곳에서 일어나는 민중의 고함 반일하는 수천만의 웨침 소리는 놈들의 가슴을 서늘케 한다
4. <왕도 락토> 세우려는 놈들의 몽상 반역자는 발버둥치며 쩔쩔 들 맨다 대포 땅크 비행기로 미쳐 날뛰며 1기 2기 대 토벌을 진행 하노나
5. 혁명세력 장성함을 보지 못하고 백색테로 겁에 질린 이기 분자는 놈들의 포 소리에 흔들리어서 혁명을 배신하고 투항을 한다
6. 일어나라 단결하라 노력대중아 굳은 결심 변치 말고 싸워나가자 붉은기 아래 백색테로 뒤엎어놓고 승리의 개가 높이 만세 부르자
노래를 떠난 혁명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주석께서 지으신 노래의 악보와 가사를 유심히 보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게 되었다. 여기에서 주석은 항일의 불길 속에서도 민중들을 각성시켜 항일투쟁의 주력군으로 합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게 단결, 단합된 민중들은 반일전선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단결된 민중의 힘은 막강하게 자라났다. 이때 음악예술(노래 반일전가)이 가지는 특성을 파악하고 민중을 교양하였으며 그들은 점차 혁명의 승리에 대한 낙관적 신심을 갖게 되었으며 단결된 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체감하게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노래를 떠난 혁명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고 “혁명 그 자체가 장중한 교향곡이고 노래를 낳는 터전”이라는 감동적인 말을 하였다. 노래소리 높은 곳에는 언제나 혁명의 승리가 있다는 심장을 흔드는 명언을 남기었다.
가요 《반일전가》가 세상에 나오면서 《보천보》의 빛나는 승리도 가져올 수 있었고 북조선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준 90년대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빛나게 총화 할 수 있었던 것도 가요 《반일전가》의 정신으로 단결된 민중의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혁명은 그 자체가 장중한 교향곡이고 노래를 낳는 터전
김일성주석은 음악예술에 높은 관심을 두고 항일투쟁에서 이것을 중요한 영역으로 인식하고 혁명에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주석님의 이 같은 예술적 식견이 김정일시대에 시원을 열어 놓게 되었던 음악정치의 시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총포로써도 뚫지 못하는 적들의 성벽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예술이라는 진리를 일찍부터 터득하였던 위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아무리 준엄한 정세가 앞을 가로막더라도, 아무리 적들의 횡포가 잔인하고 폭압적일지라도 수천, 수만 명이 내는《반일전가》의 함성은 적들의 기를 꺾어 놓기에 충분하였고 제국주의와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대결전에서 종국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날에 울려 퍼졌던《반일전가》는 오늘, 김정은시대의 승리를 알리는 반제국주의전가로, 반미전가로 그 위력을 떨쳐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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