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 MB식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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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에 애착...'안철수=착한 이명박' 프레임 극복해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서면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이명박식 화법'을 구사해 눈길을 끈다. '박근혜=박정희, 문재인=노무현, 안철수=착한 이명박'이라는 2012년 대선구도 공식의 일환으로 해석된다는 지적이다. 기업 최고경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안 후보와 이 대통령의 스타일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반면 두 사람은 삶의 궤적이 비슷할 뿐, 근본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반박도 있다.
[안철수 스타일] 중소·벤처기업에 강하다!
"저도 해봐서 알지만, 소비자 납품과 공장 납품은 참 다르다. 영업도 다르고……."
안철수 후보의 말에 유광옥 아림산업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르다"고 맞장구를 쳤다. 17일 오후 1시경 부천 테크노파크 4단지 402동 7층. 조명 전문업체 아림산업을 방문한 안 후보가 옆에서 공정 라인을 설명하던 유광옥 대표에게 "소비자 납품용은 아닌 것 같다"며 한 말이다.
안 후보는 같은 건물 9층에 있는 방송 시스템 전문업체 가락전자도 방문했다. 안 후보를 회사 부설연구소로 안내한 장병화 대표이사는 "뭐, 이런 쪽에 대해서는 워낙 잘 아시니까"라며 설명 대신 곧바로 방송 시스템 시연에 들어갔다. 안 후보는 다시 음향연구소가 있는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10여 대의 대형 스피커를 테스트하고 있던 이재윤 대리가 "요즘 유행하는 강남스타일을 들려드리겠다"며 음악을 크게 틀었다.
안 후보는 "프리앰프냐"고 물었고, 장 대표는 "파워앰프"라고 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재윤 대리는 "아,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것 같네요"라며 설명을 중단했다.
앞서 안 후보는 부천 테크노파크 입주사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저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성공한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보탬 되나,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최대한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보통 한 장소에서 1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안 후보는 부천 테크노파크 방문에 2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표정은 한껏 여유로우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생략됐지만, 가는 곳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지식과 결부시켜 대화를 이끌어가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테크노파크 관계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휴가나 야근 등 근무여건을 물어보면서 "저도 중소기업 경영했던 사람이라 어떤 마음이신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안 후보 캠프는 중소·중견기업 맞춤형 성장정책을 발표했다. 중견기업육성법 제정, 중소기업 전용 R&D센터 건립,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 피해 방지 등이 골자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세제혜택을 일시에 중단하지 않고 유예기간을 둬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가기 전 단계인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겠다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해 IT 벤처 신화를 이뤄낸 안 후보는 대선 행보에 있어서도 중소·벤처기업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 후보는 사실상 첫 대선 행보로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방문했다.
당시 안 후보는 "자전거의 두 바퀴 모델처럼, 경제민주화와 복지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경제, 과학이 뒤따라야 한다"고 피력했다. 안 후보가 강조하고 있는 '혁신에 기반한 경제 성장'의 주요축이 바로 중소·벤처기업인 셈이다. 그는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청년창업 CEO들의 질문에 "제가 창업을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답변을 하기도 했다.
전동공구 업체 '더 하이브'를 창업한 이상민 대표는 안 후보가 사무실을 방문하고 돌아가자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 대표는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선배님으로써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솔직히 안철수 한 명은 위대하지만 한 명이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지 않나. 그래서 출마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일단 나오셨으니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교류회 회장인 김범수 다원기술 대표는 "창업을 직접 해보신 분이라 저희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며 "저희에게 물어보는 것도 일목요연하게 원포인트로 딱딱 물어보시니까 대화를 주고받는 게 수월했다"고 말했다. "간혹 정치인들이 와서 물어보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물어보는데, 안 후보는 정확하게 피드백(답변)까지 해주더라"는 것이다.
[이명박 스타일] 노점상, 철거민, 수재민, 환경미화원... 안 해본 게 뭐야?
"내가 어린 시절 노점상을 해봐서 여러분 처지 잘 안다." (2008년 12월 23일)
"나 자신이 한때 철거민,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2009년 2월 12일)
"나도 한때 수재민이어서 아는데... 마음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2010년 9월 22일)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왕년 화법'이다. 지난 5년간 소통보다는 불통의 이미지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분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해도,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될 수 있다. 특히 전문적인 분야에서 '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는 식의 설익은 지식은 위험천만이다.
지난 2010년 4월 남미지역 특사를 맡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이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사태를 언급하면서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렇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도 아닌 대통령의 인식이라는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 대통령의 '왕년 화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수영선수 박태환 선수에게는 "내가 수영연맹 회장을 15년 해 봐서 아는데…"라고 했고, 2009년 2월 서부전선 최전방인 해병대 2사단을 찾아가서는 "내가 해병대가 있는 도시에서 자라봐서 아는데…"라고 했다.
같은 해 5월 한·아세안 CEO 서밋에 참석한 외국 기업인을 만나서는 "내가 아세안 각국을 다니면서 비즈니스를 해 봐서 아는데"라고 했고, 다음 달 서울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환경미화원을 해 봐서 아는데"라고 했다. 3개월 뒤 포항죽도시장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내가 아이스케키 장사를 해 봐서"라고 말하더니, 2010년 11월 국제노동계 대표들과 면담에서는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30년 또는 40년 전 경험을 언급하며 '나도 해 봤다'고 하는 것은 국민에게 불신감을 준다. 더 큰 문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 견뎌라'라는 뜻으로 이해되기 쉽다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전세 발언으로 비슷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저도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해봐서 집 없는 설움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 집이 있었음에도 다른 지역으로의 전근 등으로 8년간 전세를 살았던 것을 두고 '집 없는 설움을 안다'고 한 것은 이 대통령의 '과장 화법'을 떠오르게 한다.
안철수, '착한 이명박' 프레임 넘어설까?
물론 안 후보의 화법과 이 대통령의 화법을 단순 비교하기는 쉽지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이 대통령의 경우, 사회 전방위적인 문제에 걸쳐 진행된 '아는 척'으로 반감을 산 반면, 안 후보는 전셋집 발언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만 '아는 척'을 하면서 '지식인'의 상을 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이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공저인 <안철수를 생각한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년간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남발하면서 시민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며 "그런데 자칫하면 안철수 후보도 그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안 후보가 얘기하는 '정의'와 '공정한 시장질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경제, 산업 정책의 상당부분이 '안철수연구소 사장'을 지냈던 안 후보의 경험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한국에서는 독일의 글로벌 중견 기업과 같은 '히든 챔피언'을 찾아볼 수 없다'고 개탄한다. 과연 그런가? 물론 안철수연구소와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 중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글로벌 중견 기업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조업 중심국인 독일,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히든 챔피언' 기업들이 많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자동차에 헤드램프를 납품하는 한 회사는 동종 업계 세계 6위의 글로벌 중견 기업이다. 이 기업은 국내 자동차 공장 외에도 GM, BMW 같은 외국의 자동차 업체에도 상품을 공급한다."
정승일 정책위원은 "소프트웨어 업종에서 형성된 그의 체험적 관점이 그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은 또 안 후보가 경제의 일자리 창출 해법으로 '창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창업이 어디 그리 쉬운가? 소프트웨어 업종의 경우에는 창업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국민 경제에 훨씬 더 기여도가 높은 제조업의 경우 창업은 많은 비용과 그리고 실패했을 때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창업을 강조하고 창업가 정신 즉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동적 생명력을 굳게 믿는 시장 자유주의의 관점이다. 그렇지만 청년 창업을 너무 권장하다가 청년 신용 불량자들을 양산한 것이 10년 전 일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너무 많은 퇴직자들이 너무 많이 영세 자영업 창업을 해서 문제다."
정승일 정책위원은 "안철수 후보가 경탄해 마지않는 실리콘밸리 모델의 성공 비결은 '복지 국가'가 아니라 '국방 국가'"라며 "국방부에서 엄청난 국방 예산에서 나오는 연구비를 마구 퍼주니, 창업도 자연스럽게 장려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사람들 눈에 '구체제'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극복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 가치'를 갈구하는 민심"이라고 했다. 5년 전 한국 정치, 특히 '여의도 정치'를 구태로 몰아붙이며 새로운 정치를 외쳤던 이명박 후보의 화법과 닮았다.
다만 "경제를 살릴 것"으로 믿었던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간 기득권층의 탐욕과 이익의 사유화만 확장시켰다. 안 후보가 5년 전 이 대통령과 다른 점은 '공정'과 '정의'라는 두 날개를 달았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은 발끈하지만, 동의하든 하지 않던 '착한 이명박' 프레임이 드리워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논거는 진보 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된다. 야권 후보 단일화 등을 앞두고 있는 안 후보로서는 싫든 좋든 착한 이명박 프레임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스타일] 중소·벤처기업에 강하다!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18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첨단의료기기 테크노타워를 방문,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관계자로부터 안내를 받으며 진동시험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
ⓒ 유성호 |
"저도 해봐서 알지만, 소비자 납품과 공장 납품은 참 다르다. 영업도 다르고……."
안철수 후보의 말에 유광옥 아림산업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르다"고 맞장구를 쳤다. 17일 오후 1시경 부천 테크노파크 4단지 402동 7층. 조명 전문업체 아림산업을 방문한 안 후보가 옆에서 공정 라인을 설명하던 유광옥 대표에게 "소비자 납품용은 아닌 것 같다"며 한 말이다.
안 후보는 같은 건물 9층에 있는 방송 시스템 전문업체 가락전자도 방문했다. 안 후보를 회사 부설연구소로 안내한 장병화 대표이사는 "뭐, 이런 쪽에 대해서는 워낙 잘 아시니까"라며 설명 대신 곧바로 방송 시스템 시연에 들어갔다. 안 후보는 다시 음향연구소가 있는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10여 대의 대형 스피커를 테스트하고 있던 이재윤 대리가 "요즘 유행하는 강남스타일을 들려드리겠다"며 음악을 크게 틀었다.
안 후보는 "프리앰프냐"고 물었고, 장 대표는 "파워앰프"라고 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재윤 대리는 "아,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것 같네요"라며 설명을 중단했다.
앞서 안 후보는 부천 테크노파크 입주사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저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성공한 중소기업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보탬 되나,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최대한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보통 한 장소에서 1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안 후보는 부천 테크노파크 방문에 2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표정은 한껏 여유로우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생략됐지만, 가는 곳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지식과 결부시켜 대화를 이끌어가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테크노파크 관계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휴가나 야근 등 근무여건을 물어보면서 "저도 중소기업 경영했던 사람이라 어떤 마음이신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안 후보 캠프는 중소·중견기업 맞춤형 성장정책을 발표했다. 중견기업육성법 제정, 중소기업 전용 R&D센터 건립,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 피해 방지 등이 골자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세제혜택을 일시에 중단하지 않고 유예기간을 둬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가기 전 단계인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겠다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해 IT 벤처 신화를 이뤄낸 안 후보는 대선 행보에 있어서도 중소·벤처기업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 후보는 사실상 첫 대선 행보로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방문했다.
당시 안 후보는 "자전거의 두 바퀴 모델처럼, 경제민주화와 복지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경제, 과학이 뒤따라야 한다"고 피력했다. 안 후보가 강조하고 있는 '혁신에 기반한 경제 성장'의 주요축이 바로 중소·벤처기업인 셈이다. 그는 당시 간담회에 참석한 청년창업 CEO들의 질문에 "제가 창업을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답변을 하기도 했다.
전동공구 업체 '더 하이브'를 창업한 이상민 대표는 안 후보가 사무실을 방문하고 돌아가자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 대표는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선배님으로써 한번 뵙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솔직히 안철수 한 명은 위대하지만 한 명이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지 않나. 그래서 출마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일단 나오셨으니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교류회 회장인 김범수 다원기술 대표는 "창업을 직접 해보신 분이라 저희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며 "저희에게 물어보는 것도 일목요연하게 원포인트로 딱딱 물어보시니까 대화를 주고받는 게 수월했다"고 말했다. "간혹 정치인들이 와서 물어보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물어보는데, 안 후보는 정확하게 피드백(답변)까지 해주더라"는 것이다.
[이명박 스타일] 노점상, 철거민, 수재민, 환경미화원... 안 해본 게 뭐야?
▲ 2010년 9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수해지역을 방문해 피해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 청외대 |
"내가 어린 시절 노점상을 해봐서 여러분 처지 잘 안다." (2008년 12월 23일)
"나 자신이 한때 철거민,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2009년 2월 12일)
"나도 한때 수재민이어서 아는데... 마음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2010년 9월 22일)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왕년 화법'이다. 지난 5년간 소통보다는 불통의 이미지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분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해도,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될 수 있다. 특히 전문적인 분야에서 '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는 식의 설익은 지식은 위험천만이다.
지난 2010년 4월 남미지역 특사를 맡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이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사태를 언급하면서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렇게 부러질 수 있다. 사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도 아닌 대통령의 인식이라는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 대통령의 '왕년 화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수영선수 박태환 선수에게는 "내가 수영연맹 회장을 15년 해 봐서 아는데…"라고 했고, 2009년 2월 서부전선 최전방인 해병대 2사단을 찾아가서는 "내가 해병대가 있는 도시에서 자라봐서 아는데…"라고 했다.
같은 해 5월 한·아세안 CEO 서밋에 참석한 외국 기업인을 만나서는 "내가 아세안 각국을 다니면서 비즈니스를 해 봐서 아는데"라고 했고, 다음 달 서울 이문동 골목상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내가 환경미화원을 해 봐서 아는데"라고 했다. 3개월 뒤 포항죽도시장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내가 아이스케키 장사를 해 봐서"라고 말하더니, 2010년 11월 국제노동계 대표들과 면담에서는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30년 또는 40년 전 경험을 언급하며 '나도 해 봤다'고 하는 것은 국민에게 불신감을 준다. 더 큰 문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고 견뎌라'라는 뜻으로 이해되기 쉽다는 점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전세 발언으로 비슷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저도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해봐서 집 없는 설움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 집이 있었음에도 다른 지역으로의 전근 등으로 8년간 전세를 살았던 것을 두고 '집 없는 설움을 안다'고 한 것은 이 대통령의 '과장 화법'을 떠오르게 한다.
안철수, '착한 이명박' 프레임 넘어설까?
물론 안 후보의 화법과 이 대통령의 화법을 단순 비교하기는 쉽지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이 대통령의 경우, 사회 전방위적인 문제에 걸쳐 진행된 '아는 척'으로 반감을 산 반면, 안 후보는 전셋집 발언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만 '아는 척'을 하면서 '지식인'의 상을 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가 이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공저인 <안철수를 생각한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년간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남발하면서 시민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며 "그런데 자칫하면 안철수 후보도 그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안 후보가 얘기하는 '정의'와 '공정한 시장질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경제, 산업 정책의 상당부분이 '안철수연구소 사장'을 지냈던 안 후보의 경험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한국에서는 독일의 글로벌 중견 기업과 같은 '히든 챔피언'을 찾아볼 수 없다'고 개탄한다. 과연 그런가? 물론 안철수연구소와 같은 소프트웨어 업체 중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글로벌 중견 기업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조업 중심국인 독일,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히든 챔피언' 기업들이 많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자동차에 헤드램프를 납품하는 한 회사는 동종 업계 세계 6위의 글로벌 중견 기업이다. 이 기업은 국내 자동차 공장 외에도 GM, BMW 같은 외국의 자동차 업체에도 상품을 공급한다."
정승일 정책위원은 "소프트웨어 업종에서 형성된 그의 체험적 관점이 그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은 또 안 후보가 경제의 일자리 창출 해법으로 '창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창업이 어디 그리 쉬운가? 소프트웨어 업종의 경우에는 창업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국민 경제에 훨씬 더 기여도가 높은 제조업의 경우 창업은 많은 비용과 그리고 실패했을 때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창업을 강조하고 창업가 정신 즉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동적 생명력을 굳게 믿는 시장 자유주의의 관점이다. 그렇지만 청년 창업을 너무 권장하다가 청년 신용 불량자들을 양산한 것이 10년 전 일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너무 많은 퇴직자들이 너무 많이 영세 자영업 창업을 해서 문제다."
정승일 정책위원은 "안철수 후보가 경탄해 마지않는 실리콘밸리 모델의 성공 비결은 '복지 국가'가 아니라 '국방 국가'"라며 "국방부에서 엄청난 국방 예산에서 나오는 연구비를 마구 퍼주니, 창업도 자연스럽게 장려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사람들 눈에 '구체제'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극복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 가치'를 갈구하는 민심"이라고 했다. 5년 전 한국 정치, 특히 '여의도 정치'를 구태로 몰아붙이며 새로운 정치를 외쳤던 이명박 후보의 화법과 닮았다.
다만 "경제를 살릴 것"으로 믿었던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간 기득권층의 탐욕과 이익의 사유화만 확장시켰다. 안 후보가 5년 전 이 대통령과 다른 점은 '공정'과 '정의'라는 두 날개를 달았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은 발끈하지만, 동의하든 하지 않던 '착한 이명박' 프레임이 드리워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논거는 진보 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된다. 야권 후보 단일화 등을 앞두고 있는 안 후보로서는 싫든 좋든 착한 이명박 프레임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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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함정님의 댓글
함정 작성일
'나도 구멍가게를 운영해 보아서 잘 아는데...자영업자들 정말 어렵다'
이런 형태의 말은 누구라도 하게되기가 쉽지만 문제는 자신이 잘 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부분이 바로 큰 함정이 된다.
실제 자신이 알고있는 부분은 코끼리 다리의 일부분임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입체적 조명이 필요하다.
직접 해당분야를 운영해본 사람/이들과 거래 또는 연관이 되본 사람/전혀 관계는 없지만
이론적으로 많이 연구한 사람, 등의 최소 삼위일체 조명이 되어야 한다.
한쪽 부분만을 가지고 마치 다 알고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결국 독재적 방식을 택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