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기-9]정기풍교수 통해 북부조국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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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9]정기풍교수 통해 북부조국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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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님의 댓글
고슴도치 작성일
[질문-2]그러한 현상은 서방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북녘동포들은 누구나 막론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그렇게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지난 1년 내내 살아 왔습니다. 저도 교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곳 평양에서 취재를 하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하여 질문해 보면 그 때마다 이곳 동포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직도 그 슬픔을 가시지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서방에 사는 우리 민족통신 독자들과 남녘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위하여 그 까닭을 쉽게 설명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답변) 우리가 위대한 장군님을 왜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는가? 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까닭을 설명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달리는 열차에서 심장의 고동이 멈쳤습니다. 현지지도의 나날들이 끊임없이 이어졌기에 과로에 겹쌓여 서거하신 것을 우리 인민들은 죄송함과 죄책감으로 안타가와 하여왔습니다. 우리들이 좀더 노력하였으면…하는 아쉬운 마음들이 넘쳐 흘렀습니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업적들을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크게 세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상, 이론적 토대를 튼튼히 세워주셨기 때문에 우리 군민들이 주체의 길, 선군의 길을 뱃장 튼튼하게 나갈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선군의 기치를 높이 추켜드시고 우리 시대에 독특한 영도력에 의하여 모든 목표들을 승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기에 위대한 장군님을 생각할때마다 선군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사상과 신념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 덕으로 이것은 사상적 기둥으로 우리 군민들이 수뇌부 두리에 일심단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선군정치 없이 발전소, 토지정리, 감자농사,과수농장, 민속공원…등 발전역사는 없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또 하나 말한다면 조국통일로 가는 토대를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6.15시대와 10.4시대가 바로 그 토대가 됩니다. 남조선에 못된 사람이 집권하여 난관이 조성되어 왔지만 조국통일의 서광은 반드시 밝아 올 것입니다.
[질문-3]이번 방문 중 ‘광명성3호’ 2호기 발사의 성공소식과 이 소식에 접한 북녘동포들의 반응과 해외동포들의 반응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하여 성공시킨 나라들은 손꼽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기술이나 자재를 얻지 않고 자체의 첨단과학기술과 자재, 그리고 자체 힘으로 발사하여 성공시킨 나라는 2백여개 나라들 가운데 서너개 나라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녘 과학자들은 1998년과 2009년에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1호와 2호 발사를 성공시킨 이후 이번에 또다시 지난 두차례에 비해 좀더 발전된 고성능의 인공지구위성 발사를 성공시켜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감과 얽힌 이야기들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답변)보도는 안되었지만 사실상 지난 4월 발사에 실패한 과학자기술자들이 지난 100년사를 총화짓는 순간에 죄책감을 느끼며 침묵했었습니다. 단 한번의 실패도 모르고 수십년 동안 일해 온 우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주신 분이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이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헤아리신 원수님(김정은 제1위원장을 가리킴)은 과학자들을 향해 “과학이란 실패를 거듭하며 자랍니다”라고 지적하며 침체된 과학자기술자들을 격려하는 한편 “그런데 실패를 너무 자주하면 소화불량 걸릴수도 있습니다. 실패에서 더 발전된 비결을 찾으십시요”라고 말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과학자기술자들은 기어코 해 냈습니다. 그것도 8개월만인 2012년, 김일성 주석님 탄생 100돐이 되는 해에 성공시켰습니다. 비록 인공지구위성을 발사하기 힘든 계절인 겨울 추운날임에도 불고하고 정확하게 제 궤도에 진입시켰습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들이 통상하는 평상 궤도가 아니라 남극과 북극을 회전하는 극궤도에 진입시킨 것입니다. 우리 위성을 발사할 때 발표한 1계단 분리 탄착점, 2계단 분리 탄착점, 3계단 탄착점을 정확히 맞추는데도 성공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관측기술이 세계적으로 발달된 일부 나라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위성기술은 다른 나라에 넘겨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흐르지 않는 과학’이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우주개발 5개년계획을 통하여 우리의 첨단과학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질문-4]나는 북부조국의 영도자 계승문제와 관련하여 ‘혁명의 계승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혁명의 계승 뿐만아니라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리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글씨도 아주 유사한 점을 관찰해 왔습니다. 혁명의 계승자인 동시에 필체의 계승자라고도 생각하는데 이에 대하여 얽힌 이야기들도 듣고 싶습니다.
(답변)필체도 계승되어 왔습니다. 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만경대 벼루돌 이야기 생각이 납니다. 김일성 주석의 아버님 되시는 김형직 선생님은 ‘지원’이라는 글을 한자로 쓰셨는데 그 의미는 ‘뜻을 멀리 보고 (결심)하라’는 내용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김보현 할아버지가 벼루돌을 꺼내 너의 아버지는 ‘지원’이라고 썼는데 너는 무엇이라고 쓰겠느냐고 청하자 ‘조선독립’이라고 쓰셨는데 그 다음에 4~5살 되던 증손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청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고 있다가 ‘김일성 장군 만세!’라고 썼다고 합니다. 주석님은 서거하시던 해 조국통일에 대한 문건에 ‘1994.7.7. 김일성’이라고 쓴 글이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주석님은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을 쓰자니 흘림체로 쓰셨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킴)의 글씨체도 흘림체입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1953년 전쟁이 끝난 시기 조선로동당 6차 전원회의 기간에 김일성 주석께서 밤늦게 집무를 보고 계셨는데 그 자리에 서기, 부관, 운전수, 비서 일군들이 “일찍 주무십시요”라고 간청하자 주석님은 “나는 백두산시절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습관이 있다” 하시면서 “동무네 가서 먼저 자라”고 하시는 말씀을 10대초인 소년시절의 김정일 장군님께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께서 주석님의 일을 덜어 드리려고 문건들을 초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도운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어떻게 글을 쓰면 주석님께서 편리하게 읽을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주석님 필체를 연구하여 쓰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장군님의 필체를 따라 연구하고 배운 원수님(김정은 제1위원장을 가리킴)의 경우에도 그 사연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체 전문가들은 김일성 주석님의 필체를 ‘태양서체’로, 그리고 장군님의 필체를 ‘백두산 서체’로 명명하여 놓았습니다. 영도자의 혁명위업은 사상과 정책, 실천에서도 이어졌지만 필체의 계승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혁명위업의 계승을 논리만으로도 설명되기 어려운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조직, 사상적 통일에서도, 우리 대오의 통일단결에서도, 그 위업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단결은 조직, 사상적으로 단결될 뿐 아니라 도덕, 의리적으로 단결되어 있습니다. 수령과 인민사이의 도덕, 의리 또는 혁명동지 호상간 도덕, 의리 두 층면에서도 이해해야 합니다.
[질문-5]서방 사람들이나 해외동포들, 남녘동포들은 ‘영원한 주석’이라는 말이나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말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으면 합니다.
(답변)수령(주석)으로서의 지위와 권위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석의 전사들입니다. 그럼으로 위대한 김일성 주석을 영구히 모셔야 하였기 때문에 금수산 의사당을 금수산 기념궁전(지금에 와서는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명하고 3년상을 다 치른다음에 우리 인민 모두가 주석님을 계속해서 국가주석으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석님의 혁명위업을 승계한 김정일 장군님의 뜻이었고, 경애하는 원수님(김정은 제1위원장을 가리킴)의 뜻이고, 우리 인민 모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석님 서거 이후 지난 17년 동안 장군님께서는 자신을 불태우면서 쪽잠과 줴기밥으로 생활하면서도 현지지도에 열정을 바치며 선대 영도자의 혁명위업을 계승하였습니다. 이렇게 전생애를 바쳤기 때문에 정작 장군님께서 서거하신 후에 그 슬픔을 어디에 가서 쏟아 낼 거처들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장군님의 사랑만 받을 줄만 알았지 모실줄 몰랐다며 우리 인민들은 땅을 치며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 박사선생도 그 당시 이곳에 있었잖습니까? 우리 인민들이 영구차를 가로 막는 장면도 있었고, 가는 길 마른길로 가시라고 목도리, 웃도리를 벗어 도로변에 깔아 놓은 감동적인 장면들을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인민은 주석님을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면서도 동시에 그 혁명위업을 계승한 영도자를 주석님과 같으신 분으로 모십니다. 이것이 우리 주체사회주의의 전통입니다.
[질문-6]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서거한지 1년이 되었는데, 지난 12개월 동안 이북의 모습이 아주 많이 변했습니다. 북녘 동포들의 모습들도 달라졌습니다. 발걸음도 빨라지고 얼굴표정들도 신심에 가득차 있는 모습입니다. 그 배경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답변)나는 1년전 해외동포 여러분에게 “두고 보십시요. 비록 우리는 피눈물을 흘렸지만 지켜 보십시요. 김정일 장군님의 뜻이 한치의 드팀없이 이뤄질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 그런 분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난 한해 동안 2012년 김일성주석님 탄생 100돐 맞는 많은 사업들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해냈습니다. 희천발전소를 위시하여 창전거리 , 류경원 , 민속공원, 조선인민군 무장장비관 및 숱한 단위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하지 못했던 건물들 다 합친것 못지 않게 일떠서게 되었습니다. 비록 땅 덩어리가 적고, 원유 한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지만 얼마나 놀라운 건축물들이 세워졌습니까. 서방일부 나라들과 우리 공화국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 나라들은 우리를 보고 다 망한다고 하였는데 그 결과는 딴판이 되었습니다. 먼저 열거한 대기념비적 건축물만 아니라 단천 항. 곽산 간석지 2계단(남포갑문, 서해갑문보다 몇갑절 더 큰 공사) 건설, CNC 어미기계완성으로 공업계열화가 이뤄졌고, 이제는 핵무기 보유국 및 인공지구위성 ‘광명성3호 2호기 발사성공’, 그리고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과 사업들이 성취되었습니다. 그 배경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비결이라면 그것은 두말 할것없이 영도자-당-군민의 일심단결입니다. 우리의 일심단결은 그 누구도 방해하거나 파괴할 수 없습니다.
[질문-7]마지막으로 간단하게나마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답변)우리는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걸출한 영도력에 의해 지난 1년 사이 달라진 모습을 돌이켜 보면서 앞으로 올 2년, 3년, 10년, 20년 후 우리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상상해 보시며 지켜 보시기 바랍니다.
[민족통신 특파원]귀중한 시간을 내주어 답변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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