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별의 세계 48.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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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이야기
1
일찌기 그렇듯 많은 설계가들이 독립가옥 하나를 놓고 재능과 기술을 다퉈본적이 없을것이다.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살 집이였다. 전국적인 현상모집이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설계가, 건축가들 그리고 건설사업소지배인들이 충분히 토론한 끝에 제일 좋은것으로 평가했다는 10점의 설계도안을 집무실로 가져오게 하시였다.
집이란 삶의 보금자리이다. 편리하고 쓸모있고 또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
각자의 취미에 따라 아담하고 정갈한 집을 선택할수도 있고 크고 화려한 집 혹은 민족적색채가 진한 량통기와집을 고를수도 있다. 설계가들은 이 모든 점을 충분히 고려한듯 했다. 특히 수십년간 철창속에서 모진 고생을 겪은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한 집이므로 집의 내부구조는 물론 뜨락의 소정원장식에도 각별한 주의를 돌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하나하나의 설계도안을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모든것이 훌륭했다. 지붕만 해도 사각지붕, 합각지붕, 유리지붕을 예견했는가 하면 로대와 토방도 있고 어떤것은 원형홀을, 또 어떤것은 대리석원주로 된 현관도 있었다. 서재와 침실, 부엌의 가구장식은 물론 갖가지모양의 담장, 뜨락의 나무 한그루, 꽃밭에도 심혈이 기울여져있었다.
아늑한 조화미, 최상의 편리를 예견한 내부구조, 조형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장식들모두가 나무랄데 없었다.
한폭의 명화작품을 감상할 때처럼 눈을 떼기가 아쉬우실 지경이였다.
중앙설계기관의 로실장이 하나하나의 설계도안들에 대하여 설명해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지막도안까지 세세히 살펴보신후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어느 도안이 제일 마음에 듭니까? 기탄없이 말해보시오.》
그러나 누구도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열점의 도안만을 골랐으랴. 그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것은 열자식중에서 평생 의지할 어느 한자식을 미리 점찍는것만치나 어려운것이였다. 그러한 고충을 권형일비서가 말씀드렸다.
《장군님, 우리로서는 더이상 골라낼수가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정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 그이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나도 정하기 힘드니 이거 어쩐다…》
모든 사람들이 따라 웃었다. 그러자 때를 기다리고있었던듯 시공을 맡게 될 책임일군이 한발 앞으로 쑥 나섰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정해주시면 시공은 저희들이 와닥닥 해제끼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물으시였다.
《언제까지 말이요?》
《한달안으로 끝내겠습니다.》
《한달안으로?》
《예, 장군님, 자신있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대기념비적건축물건설에서 벌써 여러번 솜씨를 보인 일군, 그는 허풍을 모른다. 그에게 63채의 독립가옥건설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처럼 빨리 시공을 끝내면 벽체는 언제 마르겠는가?…
《좋습니다. 이 문제는 좀 더 두고 생각해봅시다. 당장은 주택들을 앉힐 현지에 나가봅시다.》
해질무렵이였다. 서켠하늘에 널린 솜털같은 구름장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고있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한 주택구역은 시내에서 멀리 벗어난 교외의 풍치좋은 산기슭이였다. 로송들이 들어찬 안침진 골어구, 아늑하고 평온했다. 유정한 개울물소리와 메새들의 지저귐소리뿐, 멀리서 울려오는 기적소리조차 웅글은 메아리처럼 정답게 들려오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해가 지도록 산기슭을 거니시였다. 밤나무, 가래나무, 오동나무도 있다. 개울가엔 물황철나무가 빼곡이 차있고… 일군들이 이러한 장소를 고르느라고 무진 애를 썼을것이다. 역시 나무랄데 없는 적지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땅거미가 깃들고있는 개울가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이 어둠을 제일 싫어한다는것을 상기하시였다.
어둠, 고독…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진저리나는것인지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할것이다.
어둠은 빨리도 닥쳐왔다. 개울가의 징검돌조차 가려보기 힘들 지경이였다.
마침내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이 문제도 좀 더 생각해봅시다.》
×
밤이 깊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63명 비전향장기수들의 사진을 한장 또 한장 여겨보고계시였다. 63명, 아직도 전부는 아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쪽에 떨어진 사람들, 약간의 허물도 있어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도 30년이상 온갖 고초를 이겨내며 싸워왔었다. 그들모두를 데려와야 한다. 한때 반역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까지 갱생의 길을 희망하는 사람이면 모두 품에 안아주는것이 우리 당과 조국의 품일진대 약간의 허물이 피흘려 싸워온 수십년보다 더 중하단말인가?…
그이께서는 또 한장의 사진을 쳐드시였다. 홍문규… 그의 딸과 사위는 지금 각기 지배인으로 일하고있다. 피덩이같은 자식들을 남기고 떠나갔던 그가 인제는 아들딸, 손자, 손녀들을 수없이 거느린 백발의 로할아버지가 되였다.
그들은 어떤 보금자리를 원하고있을가. 불굴의 통일애국투사인 홍문규자신은 무엇을 바라고있을가?…
그이께서는 전화로 권형일을 찾으시였다.
《아직 쉬지 않고있었습니까?… 좋습니다. 밤이 깊었지만 나와 같이 시내를 좀 돌아봅시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권형일과 같이 단잠에 든 수도의 거리로 차를 달리시였다. 행인들은 물론 오고가는 차들도 뜸해졌다. 중심거리의 가로등들조차 멀리 하나씩만 불을 밝히고있었다.
승용차는 마지막궤도전차의 굴음소리도 멎은지 오랜 평양역사앞을 미끄러져가고있었다.
《가만.》 그이께서 차창밖을 내다보며 말씀하시였다. 《저 집이 어떻습니까?》
너무도 뜻밖의 물으심에 권형일은 성기여가는 머리칼만 긁적거릴뿐이였다.
《차를 세우시오.》
차가 멎자 그이께서는 눈앞에 솟아있는 초고층살림집을 손짓하시였다.
《이 집말이요.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있는지 알고있습니까?》
권형일이 대답올렸다.
《저… 중앙기관일군들이 들어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됐습니다. 이 집을 비전향장기수들이 들게 합시다.》
《예?!》 권형일은 깜짝 놀란듯 했다. 《그럼 아까 보신 설계도안은…》
《내겐 이 집이 더 마음에 듭니다. 80년대 대건설로 들끓던 때 내가 몇번 나와 시공을 봐준 집인데 어데 내놔도 손색이 없는 집입니다.
성, 중앙기관일군들이 들어있다면 그들도 기꺼이 내줄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
권형일은 못박힌듯 서있을뿐이였다.
《왜 비서동문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장군님, 이 집도 고급아빠트이긴 하지만 아까 보신 그 설계도안의 집들은 최상의 수준에서…》
《아, 알만합니다.》 그이께서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물론 그 집들은 흠잡을데가 없이 설계되였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시오. 이제 조국의 품에 안길 비전향장기수들은 한생 어둠과 고독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또 아늑한 곳이라 해서 조용한 교외에 자리잡게 해야 옳겠는가?… 그들이 바라는것은 들끓는 생활의 한복판일것입니다. 사람들이 붐비고 경적소리 그칠새 없고 노래소리, 웃음소리 차넘치는 생활의 한복판!… 어떻습니까. 독립가옥도 좋지만 수십년간 생사운명을 같이 한 동지들과 때없이 어울리고 노래속에, 웃음속에 늘 몸가까이 느끼게 하는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앞으로 품들여 고급아빠트를 지어주기로 하고 당장은 여기에 들게 합시다. 조국의 장한 아들들이 수도의 벅찬 생활을 호흡하며 살게 합시다.》
어느 한 창문에서 불이 환히 켜졌다. 그 불빛에 비쳐진 권형일의 얼굴은 벅찬 흥분에 실룩거리고있었다. 그는 마치 새로 켜진 창가의 불빛을 걸탐스레 마시고있는듯 했다. 목소리조차 밝은 불빛에 잠겨든듯 싶었다.
《알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 인젠 말씀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그이께서도 밝게 웃으시였다.
다시 승용차는 미끄러져갔다. 수도의 중심구역을 몇차례 돌고 또 돌았다.
아직도 두동의 건물을 더 골라야 했다.
어느덧 8월의 밤은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낮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포장길이 식고 버들잎들도 생기를 띄였다.
그 버드나무가지에 걸려있던 보름달도 밤이슬로 곱게 씻은듯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새로 정한 주택을 어떻게 보수하며 가구비품들은 어떻게 장만할것인지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오랜 세월 비전향장기수들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시던 그이께서 지금은 또 그들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주시려 밤을 지새우시는것이였다.
2
그날은 9월 초하루였다. 그날 온 나라의 신문과 통신, 방송들은김정일동지께서 자강도 여러 부문사업을 현지지도하신데 대하여 일제히 보도하였다. 8월 28일부터 4일간에 걸쳐 쉬임없이 현지지도하신 강계견방적공장, 흥주청년발전소, 성간림산사업소, 장강군 장평협동농장과 무덕협동농장, 성강군 성하잠업전문협동농장 등 여러 단위들과 성강군도로시설대 공훈도로관리원 김성녀가족들을 만나주신 소식들로 중앙신문들의 지면이 넘쳐나고 텔레비죤보도시간도 몇배로 늘어나게 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들에 취급되지 않은 갖가지 뜨거운 사연들도 적지 않았다. 그이께서 그 하루하루를 얼마나 멀리 달리셨는지, 낮과 밤, 휴식과 긴장한 사업의 계선은 어딘지, 준령은 얼마나 높고 험했고 때식을 잊고 계신적은 그 얼마였는지 그 모든 사연들은 목격자들을 통하여 온 나라 인민들의 마음속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새겨질따름이였다.
설핀 해빛이 차창에서 들뛰고있었다. 키돋움하여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불태우며 피빛으로 물들어가는 지는 해, 어언 20세기의 마지막해도 기울고있다. 격동적인 사변들로 이어져온 2000년,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 결속되는 해, 추억도 많고 기쁨도 희망도 큰 승리의 해이다.
《광명성 1》호의 발사로 강성대국건설의 힘찬 포성을 울린 때로부터 얼마나 많은 기적과 위훈이 창조되였던가.
온 나라에 수백수천개의 중소형발전소들이 일떠서고 강원도와 평북도에 이어 황해남도의 대규모토지정리가 힘있게 추진되고있다. 수많은 닭공장, 메기공장, 광명성제염소건설, 대홍단의 전변, 성천강, 금진강의 기적, 이제 하루만 지나면 또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분계선을 넘어 들어온다. 세계를 놀래우는 일대사변이다.
고난과 시련이 컸던것만큼 승리의 기쁨 또한 비할바없이 크다. 하여 그이께서는 련련히 뻗은 산발을 내다보며 뜨거운 생각에 잠겨계시는것이다. 얼마나 먼길을 헤쳐왔던가. 그러나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고 또 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한생이 시련과 역경을 헤쳐가는 투쟁의 한생이라고 믿고계시기에 지금도 쉬임없이 험산준령을 넘고 넘으신다.
날은 빨리도 어두웠다. 산봉우리를 불태우던 노을이 막 스러져갈무렵 그이께서는 구배가 심한 령길을 거침없이 올라오는 한대의 승용차를 보시였다.
그런데 마주 내려오는 승용차들에 길을 비키려는듯 그 차가 한옆에 멎어섰다. 이윽고 길섶에 나서는 사람의 모습이 바람처럼 마주 왔다.
그이께서는 차를 세우시였다.
정중히 머리숙여 인사올리는 그를 알아보신것이였다.
《부총리동무가 아닙니까!》
금속공업부문사업을 맡아보는 서부총리였다. 현지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게 된 기쁨으로 하여 그의 얼굴은 환히 밝아져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 여기 자강땅에서 이렇게 만나뵈올줄은…》
그가 말끝을 맺기도전에 그이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나도 반갑습니다. 로동계급속에 들어와있는 일군들을 만날 때가 제일 기쁩니다.》
그이께서 어데로 급히 가는 길인가고 물으시자 서부총리는 8월제강소에서 새로 화입식을 한 용광로의 고온보장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그 부문 전문가인 금속공업부의 국장과 같이 간다고 했다. 그런데 반갑게도 금속공업부 국장은 수진이였다. 서부총리의 뒤켠에 있던 그가 《장군님!》 하고 목메여 속삭이더니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아, 리수진동무로구만! 아니, 최수진이지. 황철에 나가 일을 제낀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여기서 또 만났구만. 여기 자강도에서!》
《장군님!-》
수진은 금시 터질것 같은 오열을 삼키는데 입에 가져간 주먹을 정신없이 깨무는듯 했다.
《그새 앓지는 않았소?》
《예, 장군님! 정말… 힘든줄 모르겠습니다.》
《좋은 일이지. 동무가 써보낸 편지도 읽어보았소. 통일애국투사인 아버지처럼 한생 당을 받들어 충성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소박하게, 진실하게 썼더구만. 꾸밈도 없구, 요란스러운 말도 없구… 정말 반갑게 읽었소.》
《경애하는 장군님, 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새로 가정을 이룬 소식은 왜 편지에 쓰지 않았소?》
《예?!》
물기에 젖은 눈을 크게 뜨며 수진은 입을 벌렸다. 어떻게 그런 일까지 다 아실가 하는 놀람의 빛이 그의 얼굴에 그물처럼 얽히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왜 그렇게 놀라오. 내가 알면 안되오?》
《아니 전, 전…》
《아 됐소. 듣자니 그 녀성과는 돌격대에서 같이 일했다던데…》
《예. 장군님!》
《참 딸의 이름이…》
《설미라고 합니다.》
《음. 설미, 그래 공부는 잘하오?》
《예, 장군님!》하고 수진은 손등으로 눈언저리를 씻었다. 《잘합니다. 전번 학기에도 최우등을 했습니다.》
《좋은 일이요. 오늘의 행복한 모습을 서산옥어머니가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했겠소.》
그이께서는 불시로 목이 잠기는것을 느끼시였다.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였던 서산옥, 전쟁로병이면서도 한 어머니에 불과했던 소박하고 인정많은 녀성, 그에게 안겨줄 표창은 따로 없다. 자식들의 행복이, 그 빛나는 미래가 이 나라 어머니들에게 주는 표창일따름이다.
《그런데 수진동무.》 그이께서 또 말씀하시였다. 《래일 아침엔 비전향장기수들을 맞이해야겠는데 그러다 늦어지지 않겠소?》
《장군님.》 서부총리가 수진이를 대신하여 말씀드렸다. 《밤새 일을 끝내겠습니다. 절대 환영행사에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일을 다 끝내지 못해도 일없습니다. 한생의 전부를 통일위업에 바친 영웅들을 맞이하는데 온 나라의 기대를 다 세운들 뭐랍니까.》
그이께서는 멀리 련련히 뻗은 산봉우리들을 감돌며 굽이쳐간 큰길쪽으로 눈길을 주시였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둘러서있던 수행원들도 일시에 머리를 돌렸다.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들이 당의 품으로 돌아오는 길, 조국통일의 려명이 밝아오는 길, 길은 아득히 뻗어갔지만 기쁨은 벌써 지척에 와있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오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도 결속짓자고 했는데 드디여 그날이 왔습니다.》 그이께서 내심의 격정을 누르며 계속하시였다. 《이제 그들을 잘 맞이합시다. 온 나라가 떨쳐나 꽃수레에 태우고 세상에 다시 없을 대경사로 들썩하게 자랑합시다. 그리고 그들이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63명모두에게 조국통일상도 수여하고 고급주택에서 깨가 쏟아지는 신혼살림도 맛보게 하고… 신혼려행, 가족관광, 참관, 상봉모임… 그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낄것이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문득 생각나신듯 수행원들중에서 김하천대장을 눈길로 찾으시였다.
《51사의 심현오전사가 생각나오? 비전향장기수 김진서로인의 외손자말이요.》
《예, 알고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 전사도 판문점에 보냅시다. 김진서로인이 군복입은 외손자를 보면 얼마나 기쁘겠소!》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럼 빨리 떠납시다. 부총리동무도 늦지 않도록 하시오.》
《예, 장군님. 제꺽 일을 보고 돌아서겠습니다.》
밤이 왔다. 천궁의 별들이 반원을 그리며 쾌속으로 달리는 차들을 따라왔다. 금빛으로 빛나는 별들, 청백색으로 눈뜨는 별들, 큰별, 작은 별, 희미한 별도 있다. 수천만, 수천억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광대무변한 우주, 그 별들의 세계에도 엄정한 법칙이 있다. 핵을 중심으로 한치도 드팀없이 자기의 자리길을 돌고 또 돈다.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은 태양주위를, 우리의 은하계는 또 초속 250km의 속도로 약 2억년에 한번씩 은하계중심을 돌고있다. 그것들을 자기의 궤도에서 떼여내거나 밀어낼 힘은 이 세상에 없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별들에서 점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 하나하나의 별들에 혁명의 산아들, 비전향장기수들의 이름을 달아보기도 하신다. 김진서, 최동환, 손성민, 김병택, 윤용기, 한제완, 최하준, 김선용, 김동길, 김현석, 강동찬, 최남규…
저 별의 세계에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있고 우리의 혁명대오엔 동지애의 법칙이 있다. 무릇 법칙이란 사물현상의 본질적, 필연적, 일반적인 련관으로서 그 누가 자의로 만들어내거나 없애버릴수 없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그 무슨 힘으로 없애며 동지애의 위대한 뉴대를 그 무엇으로 깨뜨릴수 있겠는가!… 어느덧 자강도지경을 넘어섰다. 고속도도로가 멀지 않았다. 승용차의 전조등불빛이 탐조등처럼 천공을 꿰지르다가 다시 굽인돌이의 바위벽에 부딪쳤다.
시들어가는 풀냄새와 함께 산촌의 알싸한 연기냄새가 풍겨왔다.
차가 멎었다. 운전사가 말씀드렸다.
《장군님, 휘발유를 보충해야 하겠습니다. 배기관에서 불이 나오고있습니다.》
《음-》
그이께서는 주행표식판에 눈길을 주시였다.
새벽에 《0》점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425를 가리키고있다. 425km. 그것은 이 하루동안에만도 천리길을 달리셨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럼 좀 쉬였다 갑시다.》
골어구였다.
주절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쉬고 가세요, 쉬고 가세요 하고 속삭여주는듯…
얼마나 멀리 달려왔던가. 잊고계시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드는것을 느끼신다.
그이께서는 차문을 열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신다.
골짜기의 내물소리가 자장가처럼 울려온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감돌아내리는 산촌의 물소리, 그 물우에도 별빛이 내릴것이다. 산기슭에 암팡지게 둘러앉아 고요히 잠든 개암나무며 찔레꽃덩굴엔 이슬이 돋을것이고…
좋은 밤이다.
싱그러운 숲의 냄새에 취하여 고요히 눈을 감으신다.
핑- 휘둘러지는 느낌… 달콤한 피로…
…
열댓쯤 나보이는 처녀가 시내가 징검다리를 건너오고있다.
우뚱거리는 돌다리를 짚을 때마다 가느다란 팔을 춤추듯 흔들며 몸의 균형을 잡고는 그이 계신쪽으로 방실 웃음을 날리군 한다.
《얘, 조심해!》
그이께서 주의를 주신다.
《념려마십시오. 장군님!》
뜀박질하는 구두발, 가늘고 탄력있는 다리가 징검돌을 또 건너뛴다. 누구더라. 버들잎같은 저 처녀는?… 방실 웃을 때마다 희고 가지런한 이들이 옥처럼 반짝인다.
처녀는 손에 붉은 장미꽃 한송이를 쥐고있다. 마지막징검돌을 밟고 넘어온 처녀가 그이곁으로 다가선다.
정겨운 속삭임.
《장군님, 피곤하십니까?》
《응, 그래 몹시 피곤하구나.》
《장군님,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그래?… 어쩌겠니. 할 일은 많고.》
《인젠 좀 쉬십시오. 장군님, 이 꽃향기를 맡으며 좀 쉬십시오.》
《고맙다. 헌데 그건 무슨 꽃이지?》
《초롱꽃입니다, 장군님!》
아, 초롱꽃! 붉은 장미가 아니라 보라빛 초롱꽃, 인젠 네가 누군지 알겠다. 송희, 초롱꽃처럼 삼삼한 향기, 섬약하나 발랄한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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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래 지금 어데로 가는 길이지?》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 환영을 갑니다.》
《그런데 꽃은 한송이만 들고?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은 63명인데.》
또다시 보조개를 파는 귀여운 웃음.
《일없습니다. 장군님, 이제 여기서 또 꺾으면 됩니다. 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기 방울꽃, 양지꽃, 저기엔 분꽃, 초롱꽃! 보십시오. 장군님, 얼마나 많습니까!》
가슴 가득 밀려드는 꽃향기, 목메이는 향기이다.
《그래 송희, 네 말이 옳다. 꽃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 영웅들이 많으니 꽃들도 많아야지. 송희, 그렇지?》
《예, 장군님!》
어느새 처녀의 손에는 많은 꽃송이들이 들려있다. 들가에 피는 꽃들 갸웃이 머리를 내민 작고 알뜰한 꽃들, 그 꽃들을 꺾어든 처녀 역시 작고 앙증스럽고 또 한없이 청초하다. 언젠가 비행장 가까운 풀숲에서 꽃을 꺾어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에 정히 놓았던 소녀들중의 하나인 송희, 어느새 이렇듯 발랄한 처녀로 자랐는가!…
처녀가 달려간다. 그이께서 같이 가자고 부르시나 처녀는 여전히 춤추듯 달려가며 정겨운 웃음을 날린다.
《아닙니다. 장군님! 곤하신데 좀 쉬십시오. 그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쉬십시오!》
아니, 그래선 안돼. 나의 귀중한 동지들이 돌아오는데 구석진데라도 없는지 가서 살펴줘야지. 같이 가자. 송희, 나도 빨리 가야해!… 이렇게 소리쳐부르고 싶으시나 웬일인지 목이 잠기는것을 느끼신다. 심현오가 달려간다. 솔개령초소의 군인들이 꽃을 안고 달려간다. 그들과 함께 최수진의 가족들이, 해외에서 온 정일심, 남주야도 달려간다.
여울목의 물소리가 차츰 선명해진다. 시서늘한 산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르는것까지 느끼신다.
그이께서는 눈을 뜨고 시계를 보시였다. 5분, 꿈같은 5분이 흘러갔다. 금빛눈을 깜박이는 별들이 승용차의 후사경속에 들어있다. 쪽잠에 드신 그이의 모습을 숨죽여 지켜본것인지?…
전조등의 불빛이 다시금 어둠을 썰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길을 밝히는 광망, 이렇게 헤쳐오신 선군혁명령도의 길, 사랑의 천만리길이 조국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놓았다. 사랑으로 열려진 길, 정녕 이 세상에 사랑으로 열리지 않는 길이란 없다. 열화같은 사랑, 진실한 사랑만이 마음을 열고 희망을 열고 민족화합의 길, 통일의 넓은 길도 여는것이다.
승용차는 바람같이 내닫고있었다. 후사경속에 들어있던 별들도 어느새 하늘로 올라 사물거리며 따라오고있었다.
새날이 가까와 왔다. 은하수가 길게 꼬리를 드리운 저 하늘끝에 통일의 전령들이 넘어오는 판문점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