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주진우 무죄판결과 시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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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동안도 많은 일이 있었군요. 모처럼 맑은 시애틀의 아침날, 밤새 주워담은 팟캐스트들을 담은 아이팟을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 귀에 끼우고 다녔습니다. 귀로는 심난한 이야기만 들리지만, 이곳의 가을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사탕단풍나무나 참나무 옆을 지나면 특유의 흑설탕 비슷한 향이 풍기는데, 안개가 무척 많이 끼었던 아침엔 이 향기가 안개와 함께 길 위를 흐르는 듯 했습니다. 심난한 내용의 방송을 들으며 큰 숨을 들이킬때마다, 이런 제 마음을 알고 달래주기라도 하듯 단풍나무의 향이 가슴 속 깊이 들어오는 듯 했습니다.
첫 배달을 마치고 길을 걷고 있는데 김어준, 주진우에 대한 무죄 판결 소식이 전화에 뜨더군요. 그리고 나서 친구들로부터도 연락이 오더군요. 카톡으로, 메시지로... 성당 선배님들 몇분도 같은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법부가 살아 있구나, 하는 그런 안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법부의 곤혹스러웠을 상황이 느닷없이 감정이입됐기 때문입니다. 김어준, 주진우에게 무죄를 선고한 김환수 판사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에게 영장을 발부한 적도 있었고, 이 때문에 일각에서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에게 유죄를 선고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당히 긴 마라톤 공판을 통해 이들에게 무죄 선고를 내렸을 때, 적어도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가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을 법 한' 사건에 대해 이런 판결을 내릴 때는 적어도 사법부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실질적인 압력 사이에서 무척 고민했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을 수 없더군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헌법에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지난 이명박 정권에 이어 지금껏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그의 '활약'이 있었기에 나꼼수도 나올 수 있었고,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의 언론상을 제시하는 상황이 되긴 했지만, 주진우 기자의 말대로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법원이 인정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이 상황은 참담함이라는 단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언론자유의 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정권이 원하는 무엇보다는 이미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알고 깨닫고 있는 시민들의 눈을 의식해서였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 재판에 쏠린 관심만큼 나꼼수를 통해 시민정신에 대해 눈뜬 사람들의 방청 열기가 대단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사법부도 조금은 주눅들지 않을 수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 재판장에 앉아 있던 그들도 생각해 봐야 했겠지요. 민주주의에 대해서, 언론자유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랬을 겁니다. 적어도 그랬다고 믿고 싶습니다.
만일 김어준 주진우의 무죄 판결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 시민의 힘이라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지금 찾아와야 하는 많은 것들을 다시 시민의 힘으로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정권을 잡고 주무르고 있는 저들은 지금의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모르거나 혹은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유신의 망령이 떠돌고 있을지언정 그때의 폭정이 그대로 완전하게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저들의 착각이 깨어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저들의 자만은 자기들의 발밑을 스스로 파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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