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된 카란 이야기 - 비정규직이란 직제의 철폐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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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는 직장인 우체국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배달구역이 조정되면서 네 명의 우체부가 자기 배달구역을 잃었고, 그 바람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 구역들이 새로 재편성되면서 지금까지 일하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그것도 배달지역이 엄청나게 확대된 곳들로 재배치되는 바람에 노동강도도 강해지고 일하는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그게 오늘까지 두 주 정도 되는 셈입니다.
토요일에도 변함없이 여덟시 쯤 일이 끝났습니다. 일은 과했지만, 그래도 토요일엔 한 CCA(City Carrier Associates, 반(半)정규직 보조 우체부)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우편물을 모두 배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두 주 동안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지 못한 경우 오후 여덟 시가 가까워오면 스테이션에서 전화가 와선 "남은 메일은 가지고 들어오라"고 했었습니다. 지금 우체국도 사실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바꿔 놓고 출혈이 대단합니다.
그저께 제가 다 돌리지 못해 가져온 우편물의 양이 엄청났는데, 이걸 다음 날 보조 우체부가 들고 나가 배달을 했습니다. 우편물을 분류하는 케이싱 작업을 오전 7시에 출근하자마자 시작했는데 이게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끝났고, 이걸 가지고 나가도 도저히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첫 배달지에 가니, 제가 배달하지 못한 우편물을 그 CCA가 돌리고 있었습니다.
앳된 인도 펀잡 지방 출신 청년이었는데, 그 전날에 그냥 수인사로 얼굴은 익혀두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전날 돌리지 못한 우편물을 나르느라 쩔쩔 매고 있는 거여서 좀 죄스러웠습니다. 또 다른 라우트(배달구역)를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스테이션에서 그 친구에게 얼른 들어오라고 계속 독촉 전화가 들어오고 있는 걸 보고, 어차피 제가 남겨온 우편물이기에 내가 돌리겠다고 주고 들어가라 했더니 그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 유 슈어?"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짧은 펀잡 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슈크리아(고마워). 페르밀랑게(잘 가)"
그 친구의 눈이 커졌습니다.
"우리 말을 아네?"
"조금."
펀잡 사람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택시 기사를 하거나, 혹은 성공했다는 경우 컨비니언스 스토어(그로서리라고도 부르고, 구멍가게나 잡화점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우리 가족도 그 비즈니스를 했었지요)를 운영합니다. 특히 세븐 일레븐 체인은 거의 인도인들, 그것도 펀잡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많아서 인사 정도는 배워뒀는데, 이럴 때 잘 써먹었던 셈입니다. 그 친구도 제가 자기 일을 떠안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스테이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제도 마찬가지로 일은 엄청나게 많았고, 결국 마지막 두 시간 정도는 배달하지 못하고 다시 스테이션으로 가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 메일을 아침에 다시 CCA가 돌렸고, 저는 케이싱 작업을 마치고 또 한 시를 넘겨서야 첫 배달지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오늘은 제가 늘 메일을 가지고 돌아오는 상황을 딱하게 본 수퍼바이저 한 사람이 제게 보조를 붙여주겠다고 말했는데, 한참 큰 아파트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화번호로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CCA인데, 수퍼바이저가 너를 도와주라고 했어." 그래서 제가 배달중인 아파트로 오라고 해서 봤더니, 바로 어제 제가 일을 떠 안아 줬던 바로 그 우체부였습니다.
"어, 반갑네. 끼할레이?(안녕)"
"티칵(좋아 - 영어의 I'm fine 정도에 해당되는 말)"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를 도와주게 돼 기뻐."
"왜?"
"어제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줬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제게 우편물과 소포를 떼어 가서 도와주기 시작했고, 일을 마치면 바로 제게 전화를 하고 다시 달려와서 큰 아파트들에 들어가야 하는 우편물을 또 받아가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우편물을 다시 가지고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는 그 자체로 기분이 참 안좋았는데, 이 친구가 함께 일하면서 속도가 붙었습니다. 오후 6시, 위도가 높은 관계로 오후 5시면 벌써 완전히 깜깜해지고 오늘도 이렇게 어둠속에서 일해야 하는구나, 이러고 있는데 그 친구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자, 저기 큰 아파트는 내가 배달할께."
"어, 너무 고마운데. 괜찮아?"
"너를 도와주는 거니까 좋아."
"왜?"
"어제 일을 도와준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도와줬던 우체부들 중에서 처음으로 도와줄 때마다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을 처음 봤거든."
순간, 오래전 제 PTF(도제 우체부) 때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얼마나 힘들었고, 혼자서 먹먹했던가 하는 생각이 다시 살아왔습니다. 아,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을 더 도와주려고 했었던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은 먹었어?" 제가 물어보자 그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배고프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점심으로 먹으라고 소프트 타코를 도시락으로 싸 준 게 있었는데, 저도 점심이고 뭐고 생각도 없이 일만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아내가 두 개를 싸 주었는데, 그중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이거 먹고 해. 배고프겠다."
그가 저를 한번 올려다보더니 말했습니다. "고마워, 잘 먹을께."
그리고 그는 다시 제 메일을 떼 가져가서 배달장소로 떠났습니다. 저는 그리고 밀려 있던 우편물과 소포들을 찾아 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도와주니 일이 훨씬 수월하기도 했고, 뭔가 든든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미 시간은 오후 7시가 가까울 무렵, 그는 제가 우편 수송차량을 세워놓은 곳으로 우편트럭을 몰고 나타났습니다. "다 했어. 우리가 이거 오늘은 다 함께 끝내자. 그리고 너 아내에게 전해줘. 그 소프트 타코, 정말 맛있었다고."
싱긋, 둘이서 웃음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피치를 다 해서 우편물을 드디어 다 배달하고 나서 우리는 스테이션 주차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양 팔을 크게 벌리고 포옹했습니다.
"슈크리아, 슈크리아." 저는 정말 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웠고, 다시 짧은 펀잡 말로 제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린 통성명을 했습니다.
"난 조셉이야. 너는?"
"카란."
일이 이렇게 요즘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일깨워주는 것 하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들간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소소하게 나누는 친절들이 삶의 질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지난 주 갑자기 이렇게 라우트가 바뀌어 버리고 나서 지금까지 너무나 힘들어서 절망적인 마음이 들기도 했고, 우울증 비슷한 것이 찾아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카란의 친절에 힘입어 다시 희망을 갖게 됐고, 웃음도 찾게 됐습니다. 그의 손은 무척 거칠었는데, 그것은 장갑이 없어서였을 것 같았고, 연말에 레귤러(정규직)들에게만 지급되는 유니폼 구입 비용으로 저는 그에게 장갑을 사 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직 미국의 우체국은 정규직 절반 비정규직 절반의 우리나라같은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고용은 계속해 늘 것이고, 그들은 우리보다 열악한 사정 아래서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연대의 가치는 지켜져야 하고, 이것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무기가 돼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확대는 더 많은 이윤을 내려는 자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똑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신분에 차별을 둠으로서 노동자간의 갈등을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깨려면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단결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통을 이루려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 따위가 아니라, 서로 친절을 나누고 교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단결은 자연스레 일어나고, 그러면 언젠가는 비정규직 따위의 몰상식한 직제는 없어지는 세상이 조금 더 일찍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만들어 준 소프트 타코가 어쩌면 우체국 안에서 제일 친한 친구 하나를 만들어 준 건 아닌가 합니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신 위스키 한 잔. 오늘은 그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술이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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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근래에 캄캄한데도 우리 동네 인근에도 우체부가 배달중이어서 연말이 되어가니 일이 많아진 것인가 했었는데 모든 우체국이 그런 모양이군요. 죽어라고 일하도록 만드는 사회, 세상이 점점 이렇게 힘들고 각박하게 변해가는데 당하고 있는 개개인은 모두 자기 자신의 문제로 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치에서 시작되어져 개인에게 돌아온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