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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생각해보는 예수의 강림, 그리고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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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0건 조회 1,611회 작성일 13-12-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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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만들기 위해 물을 끓이고, 커피를 갈고, 프레스에 넣은 후 물을 붓고... 이것은 아마 쉬는 날 아침엔 조금 더 일종의 '의식'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 차분함 때문에 그렇겠지요. 평일엔 이것도 후다닥 그냥 어떻게든 준비하는 식이고, 마음이 조금은 조급한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듯 합니다만, 역시 휴일의 여유로움은 좋은 거란 생각이 문득 듭니다. 성탄절 아침, 가족들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고, 평소의 습관대로 새벽 네 시 조금 넘어 일어난 저는 조그만 미니 블루베리 스콘 몇 개에 이 커피로 아침을 삼고 있습니다. 

 

아마 내 여유로움은, 지금 내가 '정규직'이란 데서도 비롯되는 건 아닌가, 문득 그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 아침, 제 우편물을 두 시간 분 잘라 나갔던 비정규직 우체부 친구에게 수퍼바이저가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일을 좀 하지 않겠는가" 라고 묻는 걸 보면서 솔직히 허걱 했습니다. 나와 그 친구의 다른 점은 제가 운 좋게도 우체국에 한 10년 정도 일찍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어떻게 변했든 간에 내가 늘 담당하고 있는 '구역' 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지난 9년간을 매일 배달하던 그 구역을 갑자기 빼앗기다시피 변경통보를 받긴 했어도, 이젠 그 바뀐 구역조차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고, 머릿속엔 새로운 이름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기분입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일하지 않겠냐는, 제가 느끼기엔 분명히 황당한 제안을 받은 이 비정규직 친구의 대답은 "이따가 퇴근할 때까지 가족들이랑 전화해서 물어봐 알려드리겠다" 였습니다. 샐러리를 받는 정규직은 이런 경우가 생기면 "웃기지 마! 돈 두 배 준대도 안해!(규정상 1.5배는 받게 돼 있으니)" 라고 큰소리 칠 수 있지만, 일한 시간만큼의 돈을 받는 비정규직들에겐 이 수입이 클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미국의 큰 명절 중 하나인 성탄절에 일을 해야 하는 이 황당함에 대해 곱씹어야 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도 할 것입니다. 

 

분명한 건, 제가 도제였을 때는 이정도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성탄절 당일에 일을 시키다니. 그래서 정규직을 조금 덜 쓰게 되면 얼마나 절약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소포의 양도 평년보다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모두 함께 즐기는 명절에... 조금은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회 안에서의 양극화는 그것이 미국이든 한국이든 간에 지금 체제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고, 그것은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기 힘든 양극화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인간적인 세상일까요? 예수님이 이런 세상을 보았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어제 성당의 성탄전야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임에도 불구하고 일은 많았고, 아침 일곱 시에 시작한 일이 오후 일곱시 반이 되어야 끝났습니다. 그리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와 샤워 하고 옷 갈아입고 성당으로 다시 내달렸습니다. 

 

아이들은 성탄 전야 미사의 복사를 서느라 일찍부터 성당에 와 있었던 듯 하고, 저는 매년 이때면 신부님의 명을 받자와 우리 성당에서 마실 글뤼바인(뱅 쇼, 각종 향신료와 과일을 넣고 덥게 데운 와인)을 만들었는데, 도저히 이번 성탄에는 일 때문에 못할 것 같았으나, 아내에게 비법을 전수하여 일단 각종 재료는 아내가 가져가 먼저 향초와 과일을 우려내도록 했고, 저는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여기에 미리 준비한 저렴한 박스 와인을 섞어 내고 향신료의 양을 최종 조절해 놓고 미사에 들어갔고, 미사 중에 계속 불 위에 올려 놓고 영성체 하자마자 다시 주방으로 뛰어나와 이걸 주전자에 옮겨 놓고, 미사가 끝나고 친교실로 들어오는 교우들에게 따라 드리는 것으로 연중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지금 성당을 찾는 발걸음들도, 아마 즐거움으로 가득 찬 발걸음들이 있는가 하면, 혹은 근심과 수심에 찬 발걸음들도 있겠지요. 아이들의 경쾌한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눈에는 즐거움이 있거나, 혹은 수심이 있거나... 이 기댈 데 없는 세상에서 교회는 그들에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다고 말할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우리 성당에는 '빈첸시오회'라고 해서, 정말 가난한 교우들에게 몰래 봉사하고 있는 좋은 단체가 있습니다. 수혜자의 신분을 보장하고 남몰래 찾아가 돕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수혜자 중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당에조차도 높은 벽과 계단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기가 죽어서 성당엘 찾아오기가 어렵다고.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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