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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그는 누구인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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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1건 조회 2,102회 작성일 14-03-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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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최재영 편집위원] 20144 초순이 되면 청년처럼 활동해 오던 민족통신 대표  편집인은 칠순을 맞는다그리고 금년은  민족통신이 창간된지15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가 된다그래서 민족통신 편집위원회는 이러한 시기를 맞아 재미동포 인터네트 언론, '민족통신' 분신이라고   있는 노길남 박사그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70 삶을 조명해 보기로 하고3차례() 걸쳐 그의 인생역정을 알아본다그중 첫번째 특별대담을 여기에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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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민족통신 대표(왼쪽)가  민족통신 편집위원 최재영 목사와 특별대담하는 모습

 

[특별대담]노길남 민족통신 대표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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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대표의 소학교 시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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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대표의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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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대표의 군대시절-성조지 한국지국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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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대표의 대학시절-심치선 교수 등과 학생회관 앞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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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대표의 결혼(1973.5.4 명동YWCA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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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대표의 미국생활 중 10년 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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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길남 대표의 미국생활-부인과 두딸의 5년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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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손자와 두 손녀들과 2013년 말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노길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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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13년12월 크리스마스휴일에 노길남대표의 댁에서 가족들(처제,처남,조카들,두딸과 사위 등) 선물교환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최재영 편집위원2014 4월초순이 되면 청년처럼 활동해 오던 민족통신 대표겸 편집인은 7순을 맞는다그리고 금년은  민족통신이 창간된지 15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가된다그래서 민족통신 편집위원회는 이러한 시기를 맞아 재미동포 인터네트 언론, ‘민족통신 분신이라고   있는 노길남 박사그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70 삶을 조명해 보기로 하고 3차례(,,) 걸쳐 그의 인생역정을 알아본다.  그중  첫번째 특별대담을 여기에 소개한다.

[질문] 민족통신 대표겸 편집인으로 15 활약해 오시고한국일보중앙일보코리안 스트리트 저널월간 뿌리라디오코리아 앵커크리스천헤랄드 편집국장  미국에서만도 40 세월 지내시면서 아마도 수백수천여차례의 인터뷰를  오셨을 것입니다게다가 1973 가을 한국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가량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유학차 도미하여 택사스주립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까지받으신 대원로 선배기자인줄 알고 있습니다게다가 유학오기전에는 연세대학교 영자신문 ‘The Yonsei  Annals’ 편집국장을 역임하셨고미국신문 ‘The Pacific Stars & Stripes(성조지)’ 한국지국에서 근무한 경력도있으셨습니다그런분이 후배언론인으로부터 특별대담을 한다는 것이 생소할지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재미동포사회해외동포사회는 물론 남과 북의 동포들도 궁금해 하는 점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이번에 제가 국내외 모든 독자들을 대신하여 노길남 박사님의 70생신을 맞아  벗겨버리려고 마음먹고 오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이해하여 주시고 질문 하나 하나에 간결하게 대답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따님들께서 70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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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님의 댓글

고슴도치 작성일

<<이어서 계속...>>>

먼저 두 따님들께서 70생신 모임을 마련했다고 들었는데 언제, 어디서 하는지 그리고 그 소감에 대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답변]취재만 해 온 언론인이 특별대담에 대상이 되니 얼떨떨한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제 두딸이 7순모임을 마련한다고 이야기 듣고도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이 30~40대인줄 착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70이 된다는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사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혼돈된 심정을 느낍니다.  70모임은 4월5일(토) 오후5시30분 로스엔젤레스 시내 용궁식당에서 한답니다.

 

[질문]노길남 박사님 생년월일과 출생지부터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정사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답변]네, 1944년 4월3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일제시기 황해도 해주에서 사시다가 1930년대 강릉으로 거처를 옮겨 강릉 시내 임당동에서 ‘형제양복점’을 운영하시다가 강릉의 외곽동네 초당이라는 곳에 사는 소작농의 딸 저의 어머니와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제가 4살이되던 직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이 아련한 정도입니다. 제 형제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는데 여동생은 코리아전쟁시기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가족으로는 어머님과 남동생이 있는데 어머님을  미국에 초청하여 잠시 함께 살았는데 미국이 재미없다고 동생한테로 돌아가 사시다가 세상을 떠난지 오래되었습니다.

 

[질문]이번에는 사모님과 자녀들에게 대해서도 들려주시죠.

[답변]제처는 미국유학오기 1년전에 결혼하여 임신 6개월이 된 것을 보고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1973년에는 가족이 함께 외국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유학생이 학교에 등록하고 한학기 다녔다는 기록이나 증명이 있어야 6개월 후에 올수 있었던 시절이고, 유학도 그 당시에는 유학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유학이 가능했던 시절입니다.  제 큰애 진이는 제가 택사스주립대학 대학원 한학기를 마치던 시기인 1974년 여름에 제 처가 안고 미국에  왔고, 둘째 아이는 대학원 졸업하고 로스엔젤레스에 와서  미주한국일보 근무시절인 1977년에 태어나 2세로 자라왔습니다. 두딸이 이젠 어른이 되어 큰 애는 지금 두딸을 낳아 잘 기르고 있고, 작은 애도 아들을 낳아 잘 기르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부모들처럼 잘 해주지 못했는데 이 자식들이 커서 10년전 60생일때에는 자동차를 선물로 사주어 지금까지 잘타고 있습니다.

 

[질문]한국에서 대학나오고  급료를 많이 주는 좋은 직장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왜 유학길을 택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재미동포가 되었는지요?

[답변]사실은 ‘도망성 유학’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20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에 우리세대는 깜깜할 정도로 답답하여 복통이 터질것 같은 시대였습니다. 긴급조치 몇호다 하여 다방이나 공공장소에서 박정희 비판도 못하고 아예 정치이야기를 할 때에는 좌우 앞뒤를 둘러보고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망성 유학’길을 택하고 박정희 군사정권이 있는 동안 공부나 하고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미국에 왔는데 그 정권이 끝나지도 않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할 경제사정도 되지 않고하여 졸업후 대학후배가 미주한국일보 편집국장으로 일하는 바람에 로스엔젤레스 한국일보에 첫 직장을 갖고 생활하다가 6개월만에 영주권도 받고 그 이후 5년이 넘어 미국시민권으로 국적을 바꾸고 이른바 ‘재미동포’가 되었습니다.

 

[질문]그렇군요. 1973년에 유학을 와서 재미동포가 되었으면 미국생활도 금년으로 41년째가 되는군요. 제가 알기로는 그 세월동안 직업을 45번이나  바꾸었다고 들었는데  대개 어떤 분야에서 일했고, 그 배경을 좀 설명해 주실수 있겠어요?

[답변] 노동조건이 열악하여 직장을 바꾼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 운동때문에 불가피하게 직업을 바꿔야 했습니다. 대학시절 접시딲기, 주유소 펌프멘, 청소일 등으로 시작하여 미국신문사 윤전기 딱는 일, 미국식당에서 웨이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사직분으로 몇년을 일한적도 있고, 건축회사 현장감독, 월드북 백과사전 판매원과 매니저, 자동차 판매원, 청소년 옷장사, 커피숍 운영, 티셔츠 판매원, 통역과 번역일, 그림장사, 다단계 판매원, 묘지 소개업, 청소년 카운셀러, 아시아인 정신질환환자 카운셀러, 미연방정부 재난구조(FEMA) 간사격인 코이네이터 및 신문사와 방송 등에서 일해 왔습니다.

 

 [질문]나는 목사이지만 노길남 박사께서는 기독교 학교인  대광고등교와  연세대학교를 나오신 분으로 교회 집사, 장로도 시무한줄 알고 있습니다. 종교관이나 교회활동에 관한 이야기도 좀 들려 주면 좋겠습니다.

[답변]나는 예수님의 33년 생애가운데 3년의 업적들이 신약에 반영되었는데 이것의 요점은 낮은 곳을 향하여, 고통받는자를 향하여, 애통하는 자를 향한 메시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럽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예수를 정의할때 “예수는 사회정의 운동이다(Jesus is the movement of social justice)”라고 풀이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기독교인, 크리스천 양심 때문에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동포교회에서 집사직을 하였고, 부부가 성가대에 참가하여 착실한 신앙생활도 한 경험이 있었고,  미국교회에서 장로직분을 갖고 활동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에 나가는 일은 졸업한 상태입니다. 종교관을 물으셨는데 저는 지금 초교파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초종교적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불교, 기독교, 민족종교, 지구상에 있는 수천개의 종교들 모두 존중합니다. 또한 어떤 종교든 믿는 사람들이나,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존중합니다. 종교나 철학 등과 관련한 것은 모두 그 시대, 그 문화의 산물로 보기 때문입니다.

 

[질문]그런 입장이라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부활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해석하시는지요?

[답변]목사님이시니깐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죽음이라는 것은 움직이지 않고 정체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삶은 또 유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죽음은 영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죽음은 또 흙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흙은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생명들을 소생시키고, 그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죽은 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전자를 가리켜 ‘부활’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사회정치학적인 측면으로 볼때 부활은 정치생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부활한 정치인들이라면 김구, 여운형, 조봉암 등을 꼽을 수 있고, 최근세사에 와서는 6.15시대와 10.4평화번영 시대를 열어놓은 주역들 속에 포함된 남한의 김대중, 노무현 등을 부활한 정치인들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세월이 흘러도 후세들은 이들의 정신을 잊지않고 지속적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이들도 부활하신 인물들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계속)

 

*관련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KNfJI5H4xF8



 노길남 박사의 두딸이 디자인하여 만든 배너
ROH-birthdaybanner.jpg

4월5일(토) 이날 오후5시30분 올림픽 블러바드와 버몬에 있는 용궁식당 2층에서
 생신연회가 열립니다.참석하실 분은 꼭 연락해 달라고 두 따님들이 신신당부합니다.

생신모임 주소:
The Dragon Restaurant(용궁식당) 966 S. Vermont Ave Los Angeles, CA 90006
연락전화는 213-458-2245 혹은

minjoktongshin@gmail.com




편집실 14-03-28 13:56  99.27.105.114  답변  수정  삭제 
독자 및 지인들로부터 보내온 축하 편지를 들어 온 순서대로 소개합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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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내티커트 장호준 목사:

노길남 박사님.
칠순을 축하드립니다.
비록 몸은 참석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박사님의 건강과 민족 통일 사업의 영광이 빛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축하드리며 통일의 그날까지 늘 건강 하시옵소서.

2014.3.16
장호준 올림

.....................................

김상일 전 한신대교수
한국에 나가는 기간이기에  못참석하여 죄송합니다
축하 합니다.
2014.3.16
.....................................

뉴욕 김수복 선생:
비록 몸은 못 가도 축하합니다. 더 건강해서 좋은 글로 즐거움 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이틀에 한번씩 수영합니다. 허드슨 대동강 한강과 혹시 와싱턴 포토맥 강까지 금년에 수영해서 건너고 싶지요. 통일에 장애가 되면 수영해서라도 극복해보겠다는 뱃짱으로 합니다. 머리에 조국통일이라는 띠 동여매고 건널려고 합니다. 70생일 기념으로 하고 싶어서 건강관리 열심히 하고 있지요.

다시 한번 노박사 70세 생일 축하합니다.

2014.3.17

..........................................

박찬일 목사:

벌써 칠순이세요? 하긴 저도 어느새 50이 됐으니...

노 선생님과 알게 된 것도 얼추 벌써 30년이 되가네요.

축하드리며 통일의 그날까지 만수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4월5일 뵙겠습니다.

2014.3.17

박사무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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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철 박사:


March 17,2014

ya
you right
he may not look it.
 
but i know
he sure feel younger.
you wanna bet?
 
Man Chul Cho, M.D.

.............................................

오인동 박사:

Welcome to the Seventies Club !
You have come to the age of golden time.
 
그런데 어쩌지요.
나는 4월1일부터 19일까지 전국순회강연회 여행 떠나요.
여기 있으면 이야 물론인데, 여하간  축하드립니다.
 
오 인동 드림
편집실 14-03-28 14:08  99.27.105.114  답변  수정  삭제 
노길남 박사님의 두 따님이 보낸 초청편지를 받고
지인들이 보내온 축하편지들을 이어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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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선생:

노선배님,
정말 놀랍습니다.  세월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늘 젊다는 착각에서 살면서 어언 우리의 청춘이 갔습니다. 
그러나 사진에 있는 청년 노길남은 아직도
열정적인 청춘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존경의 념을 보냅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또 통일후 통일된 조국을 위해서 청년처럼 계속
열정을 다 하시기바랍니다.
건강하게 맞이하는 70순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14.3.17
이 상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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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환 교수(전 통일연구원 원장) :

칠순생신을 축하드립니다
201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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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유엔대표부 박철 참사:

존경하는 로길남박사선생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아직 여러 날이 남아있어 기다리고 있던중이였는데 두 따님이 마련한 생신축하모임이 있구만요.

참가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술한잔 정히 부으며 생신을 축하합니다.
 
나이를 잊고 늘 사진에 있는 그 모습과 마음으로 계시기 바랍니다.
걸어오신 길도 결코 짧은 길도, 쉬운 길도 아니였지만 아직도 먼길을 걸어가시기 위해 잠간 신발끈을 조여매시는것으로 생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젊으시고 정력에 넘치십니다.
 
가족들, 친지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1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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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석 선생:
와우 벌써?
그렇게 안보이시는데…
우선 축하드립니다.
201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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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재 박사:
축하합니다!

그러나 날 딸아오려면 10 년 더 살아야해요!!!

간강히, 심려말고, 맘 푸근히 먹고, 남이 뭐라 해도, 자기소신 지키고,
우리반도 잘 지키고 살면 그게 보람있는 인생입니다.

Again, HAPPY BIRTHDAY!

2014.3.17
박 문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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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접수된 축하편지들은 다음호에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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