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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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회의장인 76세 노인이 23세 캐디 여성을 성추행하고 ‘손녀딸 같아서’ 그랬다는 변명을 했다. 맙소사. 세상 엄마들이 천인공노할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관련 소송은 그 진행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에게 심한 정신적 고통을 남긴다. 혹자는 성폭력 소송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그런 게 무슨 ‘범죄’냐며 덮었을 추행과 폭력에 대한 피해자들의 문제의식이 늘고 있는 것이다. 여간해선 나아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몇 안 되는 진전 중 하나인데, 씁쓸한 것은 피해자들이 고통을 감수하고 이뤄낸 성과라는 점이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 성범죄의 경우, 두 가지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의 성욕은 노소를 불문하고 의지로 컨트롤이 어려운 강력한 것’이라는 왜곡된 상상관념 문제와 계급 문제이다. 전자에 기대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에서 멀다. 설사 우발적 성욕이 생긴다 하더라도 컨트롤할 수 있어야 ‘인간’이다. 핵심은 딴 데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한들 한낱 캐디가 어쩔 테냐?’라는 계급적 우월감이다. 사회경제적 약자이므로 유린해도 상관없다, 라는 인면수심. 이것이 박희태 행위의 본질이다. ‘법’ 전공자에 국회의장씩이나 한 사람이 이 정도다. 우리 사회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윤리성은 이렇게 끝없이 추락 중이다. 이후 전개될 조사과정에서 피해자가 당할 고통이 불 보듯 훤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의 용기 있는 한걸음이 이 땅의 딸들을 지켜갈 것이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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