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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북부조국 방문기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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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2건 조회 10,334회 작성일 14-10-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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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17


능라도 5.1 경기장과 통일의 꽃 임수경 학생


대동강을 내려다보는 옥류관 테라스의 오른편으로 가니 옥류관의 이 멋진 조선식 건물의 처마와 지붕들이 뒤편의 현대식 건물들과 아주 잘 어울어지는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동안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바로 우리의 고유 문화를 소중히 여기면서 또한 해외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오늘의 북부조국의 모습을 여기서 보는 듯하다.  북부조국 지도자가 ‘발은 내 땅에 딛고 세계를 보라’고 했던가.  소중한 우리의 것을 가꾸고 지키면서 한편으로 세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북의 인민들의 의지를 여기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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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 뒤편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조선식 건축과 현대식 아파트의 조화


그렇다.  내가 만난 북의 인민들은 모두 고립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온 우리들을 모두가 반갑게 대해주었고 모두 우리의 조국이 통일을 이루기를 소원했다.  우리가 미국에서 왔다는 것에 거부감을 보이는 동포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미국이 전쟁때 북을 땅 위에 서 있는 집 한 채도 온전히 남아있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고 수백만의 인민들을 폭격으로 죽인 철천지 원수지만 지금 북은 미국과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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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세상 어떤 나라와 수교를 하며 교류하지 않으려고 한 나라가 있었던가?  미국과도 수교하길 원하고 일본과도 그렇게 하길 원한다.  그런 북부조국을 일방적으로 고립시키고 외부와 단절시키려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 아닌가?  이제 그 단절을 풀어야 한다.  우리 민중이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하지 않는 일을 이제 민중이 나서서 주장하여 듣도록 해야 한다.


나라들이 서로 교류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나면 핵무기가 무슨 위협이 되던가?  이미 구 소련과 미국의 핵무기가 온 세상을 수십번이나 파멸시킬 정도가 되었지만 서로 수교하고 교류함으로 이 지구가 핵전쟁의 위험을 벗어난 것을 기억하자.  그 핵무기들은 감축되긴 했으나 아직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가 원수되지 않는 이상 핵전쟁의 걱정을 우린 별로 하지 않고 살고있지않는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북과 평화롭게 지낸다면 북의 핵무기가 그 무슨 위협이 될 것인가?  작은 나라지만 북이 또한 강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미 한국전쟁 때 그렇게 우세한  무기의 힘으로도 이기지 못한 상대가 북이 아니던가?  북이 가진 그 신념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제 미국이 북의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서로가 살아남는 길이기도 하다.


총기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에선 집집마다 총이 있다.  수천만개의 총들을 소지하고 있지만 이웃끼리 총을 들고 서로 싸우진 않는다.   총은 오직 자신의 가정을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과 미국이 서로 수교를 하고 평화롭게만 지낸다면 북은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어 미국의 핵무장을 북이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북의 핵무기를 미국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북부조국에게 핵을 먼저 폐기하는 조건으로 대화를 하자는 것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치이다.  대화는 상대방과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가능하고 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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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멀리 왼편으로 능라도 5.1 경기장이 보인다.  바로 1989년 제13차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의 개막식이 열렸던 곳이고 지금은 남한의 국회의원이 된 통일의 꽃 임수경 학생이 15만 군중의 열화같은 환영을 받으며 입장했던 곳이다.  바로 내가 거기서 25년 전에 평양축전 참가를 위해 북부조국을 처음 방문하여 그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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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 5.1 경기장은 동구 유럽을 비롯한 세계 수십개의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과 수많은 재미 재중 재소 동포들, 그리고 15만 좌석을 가득 메운 인민들이 화려한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은은한 레이저 빛이  캄캄한 허공 가운데 수를 놓는 그 기상천외의 기술에 탄복하는 동안에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하는 모습이 지금도 인상에 남는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입장과 퇴장을 번갈아하면서 북부조국에서만 볼 수 있을 율동과 체조와 매스게임을 펼쳤고  평양축전 개막식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바로 남한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회(전대협)’에서 파견한 임수경 학생이 전대협기를 높이 들고 입장한 것이다.


임수경 학생은 당시 한국외국어대 불어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었는데 전대협에서 평양축전에 누구를 파견할지에 대하여 심사숙고 끝에  학생운동에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게 활동해온 임수경 학생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건장한 남학생이 아니라 겉보기로는 예쁘고 평범한 여대생처럼 보인  임수경 학생을 선정한 것은 당시 남한 정부가 전대협 학생들의 방북을 적극적으로 막는 상황에서 아주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이에 임수경 학생은 당시 남한의 모든 대학생을 대표하여 남한 민중의 통일의지를 북의 인민들에게 전달할 책임을 맡았었다.  북으로 오게 된 여행 경로로 그녀는  먼저 일본으로 건너가서 거기서 서 베를린으로 갔다가 다시 동베를린을 통하여 평양에 입국하는 방식으로  지척의 거리를 돌고 돌아서 몇 번의 비행기를 갈아 타고 평양으로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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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시가지에서 온 인민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 통일의 꽃 임수경


그날 낮에 호텔에서 지참했던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나는 임수경 학생이 평양에 성공적으로 들어온 소식을 듣고는 미주지역에서 평양축전에 함께 참가했던 동포들과 함께 크게 기뻐했었다. 우리들은 미국에서 난생 처음의 어려운 걸음으로 북부조국을 방문하였지만 남한에서 그것도 여린 여학생이 이곳 평양으로 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임수경 학생을 보러 나온 인민들로 평양 공항에서부터 대로변에는 인민들이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며 환영했다고 한다. 


이제 안내방송과 함께 임수경 학생이 직접 전대협기를 높이 들고 하얀 바지에 하얀 상의 차림으로 평양축전 개막식에 저쪽 대운동장 왼편 모서리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천천히 전대협 기를 휘두르며 15만 군중의 열화같은 환영을 받으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마주보고 손을 흔드는데 그것은 너무도 감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날 우리 모두는 남과 북이 통일을 절반쯤 이룬 것처럼 그 일을 반기고 흥분하여 기뻐했었다.   온 땅을 뒤흔드는 우렁찬 환호와 함께 북의 모든 인민들이 임수경 학생을 환영했다.  바로 ‘통일의 꽃’이란 별명이 붙었다.  ‘조국은 하나다’라는 깃발을 들고 그녀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의 물결로 뒤덮였다.  얼마나 많은 북의 인민들과 악수를 하였는지 손이 아파 더이상 손을 맞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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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는 임수경 학생


임수경 학생이 평양축전 개막식에 입장하는 장면과 또 어떤 장소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하는 모습을 내가 보고는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사를 몇 번 하는 와중에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그 사진을 찾을 길이 없다.  내가 지참했던 비디오 카메라로 평양축전의 수많은 동영상을 찍었는데 그 또한 오랜 세월에 유실되고 25년 세월에 얼마 안되는 사진들만이 내가 경험한 평양축전을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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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시절의 필자. 학생, 청년들이 춤추던 광장에서.


북의 인민들이 그 얼마나 통일을 원하고 있는지를 우리들은 임수경 학생을 환영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이 느꼈다.  어디 인민들만 통일을 원하랴.  북의 인민들이 통일을 원한다면 그것은 바로 북의 정권이 원하는 것이다.  이미 김 주석이 오래전에 고려연방제를 구상하여 통일로 나아갈 방법을 제시했었다.   모든 북의 인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로 통일을 갈망하고 있으며 북의 정권 또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나의 북부조국 방문에서도 북의 인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25년 전의 그날과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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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축전 당시 김일성 경기장에서 5만명이 출연하는 매스게임의 한 장면 


아, 그런데 지금 임수경 학생을 파견했던 그때의 전대협은 어디로 간 것인가?   통일을 꿈꾸면서 비민주 독재와 앞장서서 싸우던 그 대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어떻게 남한에서 이제 통일을 말하고 통일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은 이리도 적어졌는가?  그 무엇이 우리 민족의 통일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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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평양축전 당시 5만 명이 출연하는 매스게임의 한 장면 



지금 일어나는 저 수많은 크고작은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민족의 분단에 있는 것이 아닌가?   통일을 말하지 않고 통일을 꿈꾸지 않을 때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살펴보라.  통일과 민주주의는 함께 가야 한다.  선민주 후통일을 주장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미 민주와 통일은 함께 가야 한다고 오래전에 운동하던 선배들은 깨달았었다.   민주주의 없이는 통일을 이루기도 어렵겠지만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분단을 악용하는 저 간악한 무리들에 의해서 민주주의조차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우린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이 통일을 말하지 않는 지금 이렇게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신자유주의가 활개를 치고, 민영화의 이름으로 국가 공공재가 모두 재벌의 수중으로 들어가는데 그래도 통일을 말하지 않고 통일을 꿈꾸지 않으려는가?  통일없이 과연 1%를 제외한 우리의 후세들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는가?  전쟁이라도 벌어지는 날 과연 우리와 우리 후세들은 이 땅에 살아남기라도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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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큼 5.1 경기장이 보이는 가운데 비친 대동강 물빛이 너무도 파랗고 깨끗하다


이제 통일을 다시 꿈꾸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된 임수경 의원을 북의 모든 인민들은 지금도 통일의 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미 10월 초에 잠깐 방한했던 북의 고위층 3명도 임수경 의원을 반갑게 맞은 것을 기억하자.  임수경 의원을 방북특사로 이제 당당하게 판문점을 통하여 북으로 보내어 통일을 의논하게 하는 날 우리는 다시 절반의 통일을 이룬 것같은 감격을 누릴 수 있으리라.   통일은 꿈꾸지 않는 동안은 이뤄지지 않는다.  꿈꾸고 요구하고 행동하여 통일을 이뤄나가야 한다.



아래 링크에서 저의 북부조국 방문기 16회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502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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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글쓴이의 모습이 훤칠하니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군요.

한반도가 통일없이 결코 민주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언급이 아주 통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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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갯가용 님 고맙습니다.  민주주의 잘 되면 통일도 쉽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분단된 조국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도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도 한반도에 통일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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