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항상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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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같은 소문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어도, 그 대통령이 국가정보기관의 현격하고도 조직적인 선거개입에 힘입어 당선되었다고 확실히 믿고 있어도… 나는 대통령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기대하고 부탁하고 전향적으로 변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이다. 그가 내 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세월호와 관련해 순수한 유가족을 지칭하며 불순한 유가족의 존재를 암시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을 보며 절망에 이르렀다. 이제 희망의 끈을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 자신이 시키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대통령은 국가적 중대사로 번진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 자존심이 있다면 국민도 자존심이 있다. 좋은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대통령에게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국민들은 좋은 대통령을 뽑았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싶다. 대통령을 지지했거나 지지하지 않았거나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고도 창피했고 사고가 일어난 지 다섯달이 되도록 무기력하게 어떤 구체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통령과 정치권 모두를 국민들은 창피해한다. 광화문 길바닥에서 모진 세월을 견디며 눈물을 삼키는 유가족들을 보는 것이 창피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자신은 창피하지 않고 국민들과 정치권과 일부 유가족들이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정치권이 책무를 다하지 않았고 사고는 사고일 뿐 벌줄 사람은 대충 벌을 주는 것으로 책임을 진 것이고 앞으로 잘할 테니 이제 끝!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길 바란다고 딱 결론을 내렸다.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처럼.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같은 밥 먹고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도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가족을 보며 인간의 불가사의를 느끼게 된다. 대통령 자신도 여동생과 깊고 오랜 불화를 겪으면서 그런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상종 못할 인간으로 취급하거나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길 수는 없지 않은가.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치맥파티를 열며 조롱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광화문 현장에는 못 나가지만 학교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일일 단식 이일 단식을 하며 마음으로 동참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다. 그것이 사람 사는 사회고 우리 국민의 여러 가지 얼굴이다.
한 사회가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도 깊이 들어가면 심연과도 같은 간극을 느낀다. 세상은 다름을 통해서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같음으로는 결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와 다르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매일매일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노력을 하는 게 인간이다.
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수습과 모든 과정이 실수였고 실기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자신은 항상 무죄이고 무오류이고 희생자인 것처럼 나는 잘하려 하는데…라는 듯한 꽁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본인도 피곤하겠지만 국민들도 피곤하다.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혹은 불순한 집단으로 돌려서는 어떤 해결책도 얻을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왕이나 일본 정부가 조선에서 위안부를 잡아다가 군대의 노리개로 삼으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위안부를 잡아간 것은 조선 사람들이고 조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니 조선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다. 대통령의 태도는 이와 다를 바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국회가 공전하고 정치권이 무력해서 산적한 일을 처리할 수 없다면 내가 나서서라도 모든 것을 아우르겠다는 마음이 왜 안 드는 것일까. 국민들은 대통령이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고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혹시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에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은 국민에게 져야 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 또한 왜 모르는가.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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