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데이가 원주민의 날이 된 사연 - 시애틀 시의 과거사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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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제 비번날은 화요일입니다. 조금은 신나 있습니다. 이유는 월요일이 연방공휴일인 콜럼버스 데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방공무원인 관계로 그 날은 쉽니다. 그 다음날이 비번, 따라서 이번 주 토요일까지 일하면 일, 월, 화요일까지 3일을 계속 연휴로 쉬게 되는 것이지요. 연방공무원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빨간 날엔 다 논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법정공휴일'을 유급휴가로 챙겨서 쉰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복지라면 복지인 셈입니다. 물론 그런 휴일 다음날 일의 양은 많아지긴 합니다만.
그런데, 이번에 시애틀 시 의회가 의미있는 결정을 했습니다.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바꾸기로 한 것이지요. 백인들이 이곳을 발견해 이주하기 매우 오래 전부터 이곳에는 사람이 살아 왔고, 신대륙이라는 말 자체가 유럽인들의 관점에서의 신대륙이라는 사실을 아울러 지적한 시애틀 시 의회의 조치는 놀랍기조차 합니다.
물론 일부 백인들, 특히 콜럼버스의 조국인 이태리계의 미국인들이 반발하는 모습도 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 시애틀 시 의회의 반응은 쿨합니다. "역사에서 우리가 저질렀던 죄악을 먼저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습니다. 백인들이 이곳에서 저지른 죄악을 열거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정도로, 이들은 이 땅에서 엄청난 인종 학살에 맞먹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몇년 전만 해도 콜럼버스 데이엔 학교들도 쉬었지만, 학생들 스스로가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결국 교육구들이 자체적으로 콜럼버스 데이를 기념일로 축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특히 이곳의 원주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런 운동을 벌였고, 이게 확산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공감하게 됐지요.
콜럼버스의 이른바 '신대륙 발견'은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에겐 엄청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원주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학살은 물론, 이 땅에 살고 있던 그들을 이간질하여 그들끼리의 전쟁을 일으켜 학살을 유도하고, 북미에서는 오랫동안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학살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자체의 문자를 쓰며 심지어는 나중에 개명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치와 심지어는 자체 문자로 신문까지도 찍어 내던 체로키 족 같은 경우도 그랬고, 백인들과 투쟁의 길을 택했다가 서로 공존을 택했던 수우 족의 경우 '운디드 니의 학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건에서 드러나듯 강제 이주와 학살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백인들이 몰고 온 전염병은 원주민들에게 학살 이상의 인명피해를 가져왔습니다. 미국 중서부 뿐 아니라 미국 개척사에서 가장 끝에 있는 이곳 워싱턴 주의 동쪽 왈라왈라 지역에서는 홍역이 퍼지자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어갔고, 이 질병 확산의 근원으로 지목된 백인 선교사 마커스 위트먼 부부와 다른 백인들이 보복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애틀이라는 도시 지명도 백인들과의 전쟁보다는 이들과 전쟁을 해 봤자 결국 거대한 학살의 비극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스쿼미시 부족 추장인 실스(혹은 세알스) 추장이 나서서 백인들과의 화평을 주창합니다. 그리고 시애틀은 비교적 평화롭게 백인들에게 양도되지만, 그 이후로 3년간의 봉기가 계속되다가 진압됐고 결국 원주민들은 지금 그들에게 할당된(혹은 제한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밀려나 갇힙니다.
일요일 아침, 성당에 갈 때마다 '퓨열럽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나가야 합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해도 그들이 전통적으로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허름한 집들과 낡은 자동차들을 보면서 그들의 살아온 모습들이 대략 짐작은 갑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요즘 '복수'를 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부터 붐이 되어 온 '인디언 보호구역 내 카지노'는 부족 자치단체들이 백인들에게 가하는 새로운 복수인 셈입니다. 물론 그들의 이 특별한 '복수 활동'에 낚여(?) '봉'노릇을 해주는 한인들도 꽤 됩니다만. 이들은 여기서 얻은 돈으로 기금을 마련해 부족 장학생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이 부족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적지 않은 수가 변호사가 되어 돌아와 부족을 위해 일하거나, 혹은 의사가 되는 경우들도 봤습니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 불리우는 이 나라 미국. 그러나 이 나라는 분명히 학살의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살의 토대엔 인종주의와 기독교 원리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미국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 미국의 민주주의적 뿌리를 위협하는 병폐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이런 잔재들을 무시하고 진짜 '쿨하게'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 로 바꾼 것에 대해 당연히 이곳의 원주민 단체들은 환영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 데이가 Indigenous People's Day 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 역시 센스가 돋보입니다. 원래 이곳의 '인디언 원주민'을 뜻하는 Native American 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은근한 차별성을 없애면서도 그들의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름인 Indian 이라는 말과 비슷한 라임을 살리고, 동시에 요즘 그 이민 숫자가 부쩍 늘고 있는 진짜 '인도인 Eastern Indian' 들과 분명한 차별성이 있는, 그런 이름을 쓴 것도 의회의 센스가 돋보입니다.
시애틀 시가 이렇게 미국 내 다른 도시들과 비교할 때 분명히 더 진보성을 띠게 된 것은 일종의 '피의 씻김굿'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찌감치 미국 동서 횡단 철도의 종착역의 하나로 시애틀이 결정될 때부터라고 할까요. 당시 철도는 동부에서부터 건설되어 서부엔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산타페 등과 더불어 시애틀 역시 주요 종착역 중 하나로서 건설됐습니다. 여기엔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투입됐고, 이들은 이곳에서 건설을 하며 가족을 이루고 그 자식들이 장성하여 다시 철도를 까는 노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국인 노동자들은 철도 건설이 끝나자마자 추방될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미국 사람이 된 이들의 아이들을 중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시애틀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은 결국 투쟁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애틀 시는 이 상처를 치유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시애틀 시민들은 아시아계 등 소수민족의 어려움에 대해 보다 개방된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아마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이번 시애틀 시의 '원주민의 날' 제정 배경이 됐을 것입니다.
그런 리버럴하고 열린 도시에 산다는 것이 제 개인적으로는 참 고마운 일인 것이,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인종차별 문제라던지에서 저는 굉장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들도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 제 두 아들들이 자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자유로움과 자신감의 배경은 이런 리버럴한 도시의 분위기, 그에 앞서 있었던 다른 민족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럴까요?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시각들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한국을 바라보며 느끼는 갑갑함, 불합리성, 그리고 몰상식 같은 것은 이 도시의 자유로움 속에서 더더욱 눈에 띄게 불편하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자유와 상식의 도시 속에서, 이 도시의 정치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백년 이상 묵은 과거의 잘못도 인지하고 그것을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도시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그만큼 더 갑갑하고 답답합니다. 그 옆에 있는 일본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 같은 것도 당연히 함께 두드러져 더욱 비상식적으로 보이고... 어떤 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정치상황'이란 것들이 참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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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시애틀 시의회에서 바꾸기로 결정하였다하니 참 좋은 결정입니다. 역시 시애틀은 진보적인 도시입니다. 권종상 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굳이 기념일의 명칭을 바꾸겠다는 것은 시자체가 그만큼
성의와 부지런함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두루 좋은 환경의 도심에 살면서 또한 권종상님 같은 분의
좋은 글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