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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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인천공항 인근의 호텔에서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2
북부조국 가는 길에
오랫동안 그리던 북부조국으로의 먼 여행을 떠나게 되었지만 북으로 가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어디로 여행을 떠난다하고 알리는 일은 나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 몇몇 외엔 말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그 과정이 어려운 것이다. 장성해서 어른이 된 자녀들도 아버지가 노스 코리아에 간다는 소리에 의아해한다. 자세하게 설명해주어도 왜 꼭 거길 가야 하느냐하는 얼굴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결정해서 하는 일이니 받아들이고 잘 다녀오라고 한다. 집사람은 25년 전에 내가 결정하여 다녀올 때 묵묵히 그 뜻을 알고 받아들였던 터라 이번에도 별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는다.
멀리 하와이에 계시는 어머니는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나를 이해하는 어머니지만 폐렴으로 잠깐 입원까지 하신 상황에 다시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중국을 거쳐 한국에 다녀온다고 했더니 근래에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하와이로 데리고 온 종교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웬지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었다고 하면서 나도 그런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하고 오히려 더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절대로 그런 것 아니라고 안심을 시키느라 진땀이 났다. 차라리 북부조국에 간다고 했으면 이미 오래전에 다녀온 곳이라 어머니 마음이 편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마음 속에 간직만 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또 주변에 이야기하면 이웃에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마디씩 해줄 것이니 어머니의 마음 또한 편하지 않을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한편 시애틀에는 지난 7년 동안 나와 깊이 유대하고 마음을 나누는 여러 동지들이 있다. 이번 여행에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이후에 북부조국을 방문하고 통일운동에 앞장설 분들이라 그들에게는 오래전부터 나의 여행을 밝혔는데 고맙게도 노잣돈을 주신 분도 계시고, 동지들이 잘 다녀오라고 덕담과 함께 환송까지 해주었다. 나의 세 형제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나는 이번 여행을 이들에게 말하고 떠나게 되었으니 이 동지들이 바로 내 혈육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랴. 그렇다. 사회변혁운동이나 통일운동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운동하면서 서로 깊은 믿음으로 맺어진 동지들과 함께 해야만 지쳐 쓰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시애틀을 떠나 9월 1일 저녁에 인천에 도착했다. 9월 2일에 중국 선양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하여 하룻밤을 공항 인근에서 지내야 하였기에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공항 인근의 호텔을 찾았다. 저녁을 먹고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옛 초등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바로 부인과 함께 달려오겠다고 한다. 8년 전 내가 사는 곳으로 친구 부부가 다니러 왔었고 그때 보고는 처음이다. 호텔로 찾아온 이 친구에게도 일단 중국으로 간다고 말해주면서 자세한 것은 다녀와서 이야기하겠다고 하니 나를 깊이 신뢰하는 친구인지라 편하게 대해준다. 한데 친구 부인이 어머니가 물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중국에서 탈북자 선교와 연관된 일로 가는 것이 아닌가하고 물어온 것이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면서도 사실대로 북부조국으로 간다고 지금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참 안타깝다.
9년만에 찾은 남부조국에서의 밤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어찌 감회가 없을 것인가? 이곳에도 내가 지난 2년 동안 변혁운동에 뛰어들어 함께 행동하는 동지들이 있다. 함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면서 그룹을 만들어 이제 2천명이 넘는 회원들이 있는 단체다. 인터넷으로만 서로 연결되어 아직 서로 얼굴을 대하지도 못하였지만 참 보고픈 사람들이다. 그래, 다녀온 이후에 이들도 만나야 한다. 당분간 내가 여행을 떠나 인터넷 접속이 잘 안될 것이라는 말만 남겨두었는데 북부조국을 다녀온 후에 연락해서 만나는 것이 좋으리라.
그렇다. 아직은 북부조국을 찾는 일은 이렇게 조용하게 추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얼마간은 자유로운 나와는 달리 남부조국의 친구와 동지들은 아직도 보안법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 않은가? 내가 지금 여행의 목적지를 말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내 사랑하는 이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민족의 비극이 여기에도 있다. 남부조국 인천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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