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조국 방문기 36. 북의 어머니들도 모성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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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36
북의 어머니들도 모성애가 있는가?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6시에 대동강변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호텔을 나서자 날이 막 밝아오는 시간인데 사방은 안개로 자욱하고 얼굴에 와닿는 평양의 새벽 공기가 참 신선하다. 이제 가을안개가 시작되는 계절인가. 빠른 걸음으로 힘차게 걸으면서 아침운동을 하기로 하였다. 대동강변엔 역시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인민들이 아침운동에 열심이다.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이미 멀리서 걸어왔는지 강변에서 쉬는 사람도 있고 낚싯대를 던지고 입질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안개 짙은 대동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곳 북부조국에서 보낼 수 있는 동안의 아침산책이 내게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인가?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나의 조국은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종종 고향의 친지가 그리워 찾을 수 있었던 남쪽 절반과 달리 이곳 북쪽 절반을 다시 찾아오는데는 25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가버렸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을 듯한데도 세월이 이렇게 흘러간 것을 생각하며, 이제 다시 찾는 날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지금 내게 주어진 귀한 이 순간을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안개 속의 대동교를 배경으로 노 박사님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침안개 속의 대동교
대동강변의 인민들 모습/ 운동을 하면서도 학습하는 여성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처녀는 누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일까?
오늘은 강변을 걷다가 윗길로 올라와 빠른 걸음으로 조금 더 멀리까지 힘차게 걷기로 하였다. 산책이라기 보다는 제대로 걷기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노 박사님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어떤 분과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오신 이행우 선생님이라고 내게 소개를 해주신다. 두 분은 7여년 만에 이렇게 만났다고 하는데 이 선생님은 이번에 혼자 오셨다고 한다. 내일이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우리처럼 아침 산책을 하던 가운데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헤어진 후에 노 박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분은 통일운동의 대선배시다. 내가 깊이 존경하는 함석헌 선생님의 후배이기도 한데 오래전부터 남부조국에서 함석헌 선생님과 함께 활동하셨고, 미국에 오신 후 통일운동을 위해 북을 수없이 방문하며 근래에는 6.15 관련 단체에서 활동해오셨다고 한다.
노길남 박사님과 이행우 선생님의 우연한 만남
그렇다. 오늘의 내가 이렇게 평양 시내를 걸을 수 있는 것도 나의 스승 홍동근 목사님을 비롯한 이런 통일운동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당장 눈에 띄게 바뀌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제자리걸음으로 보여도 이렇게 수많은 선구자들에 의하여 조금씩 그 역사가 쌓여가며 진화되고 발전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역사의식을 갖고 그 변혁에 동참하느냐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면서 외면하고 사느냐는 순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인간으로서 보람있게 살고, 보다 고귀하게 살기 위해서는 진보적인 세상을 위해 내게 주어진 일을 외면하지 않고 변혁운동에 뛰어들어 참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이웃과 사회와 후세들이 살아갈 조국의 미래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진보적인 세상을 위해, 바로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일하는 것보다 더 귀중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침 출근길의 평양시민들의 모습
제법 멀리까지 강변을 따라 걸었기에 이제 큰 길로 되짚어서 호텔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동안 안개도 제법 걷혔고 길거리는 출근길의 인민들 발걸음이 바쁘다. 북부조국의 동포들이 출근하는 모습 또한 내게는 소중한 장면들이다. 남부 조국의 민중이 한 겨레 한 민족인 북의 인민들의 모습을 모두가 궁금해하지 않는가? 내가 여기 생생한 인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지금 직접 오고싶어도 찾지 못하는 남부조국의 동포들에게 전달하여 보는 이들이 북의 동포들을 좀더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도움이 되자는 마음 하나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서도 출근길의 평양시민들이 불쾌해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리 표나지 않게 해야 한다.
길을 걷다보니 제법 짙은 숲과 푸른 잔디의 공원이 있어 잠깐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두 개의 조각상이 우리를 반겨준다. 첫 번째 조각작품은 황소의 잔등에 올라앉은 목동이 피리를 부는 모습이다. 참으로 평화롭게 보인다. 평화라는 단어에 북부조국을 우리가 연상할 수 있을까? 모든 언론과 매스컴들은 북부조국을 호전적인 나라로 묘사해왔다. 그동안 우리들이 북은 미사일도 만들고 핵무기도 만드는 등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는 나라로 듣고 배우지 않았는가? 여차하면 전쟁을 불사하는 나라라고 여겨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실제는 이렇게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란 것을 저 조각품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하며 북을 공격하는 군사훈련을 매년 수차례씩 대대적으로 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황소의 등에 올라앉은 목동이 피리부는 조각상. 북부조국은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다.
또 다른 조각작품은 한 여성이 어린 아이를 힘차게 들어올리는 모습인데 자세히 살펴보니 사랑하는 아이를 번쩍 들어올리며 빙그르르 돌아가는 모습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니 이런 포즈를 내가 취해본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어린 동생들과 놀다가 그렇게 한 것 같기도 하고, 나의 아들 딸에게도 비슷한 모양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했던 것 같다. 얼핏 보아서도 북부조국 여성들의 자식에 대한 모성애를 저 조각작품이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렇다. 이곳 북부조국에서도 여전히 부모는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고,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진실을 대하면서도 내 마음에 걸림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의 기억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저 조각작품을 보면서 어머니와 아이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모습으로 쉽게 받아들이기엔 걸림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북의 어머니들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자식들을 키워내는 모성애를 지닌 것이 아닐까?
내가 저 평화로운 두 조각작품을 바라보며 제법 북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도 이렇게 평화를 사랑하고 부모 자식간의 따스한 사랑이 넘쳐 흐르는 곳으로서의 북부조국을 바로 연상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하다보니 남부조국에서 받은 교육과 언론매체들의 북에 대한 숱한 왜곡 가운데는 바로 북부조국 여성들의 모성애까지 왜곡시켜온 것이 내게 아직까지 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우리 모두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지 않은가?
이미 수십 년 전에 부모가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나라에서 아이들을 맡아줄 만큼 사회보장 제도를 확립하였던 북부조국을 천진무궁한 초중등생이었던 우리들에게 교과서를 통하여 가르치기를 북에서는 부모와 자식들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마저도 정권에서 가로막고 강제로 탁아소로 보내어 정을 떼도록 한다고 교과서에서 가르치며 우리들을 세뇌시켰던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모략이었는가?
세상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강제로 떼어놓는 곳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런 환경의 사회에서 어떻게 청춘남여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종족보존이 가능하며 그 사회체제의 유지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도 학교에서 우리들에게 북에서는 본능인 모성애도 없게 하고 인륜도 모르는 감옥같은 사회라고 정반대로 터무니없이 세뇌시켜온 것이니 그것이 얼마나 중대한 죄악인지를 생각해보라. 순진무궁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들에게 터무니없는 왜곡과 모략을 주입시켜 평생 동안을 그렇게 배운대로 생각하도록 거꾸로 가르친 그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 북의 어머니들에게 어디 모성애만 있겠는가? 아이들이 바로 배우고 자라나 참다운 인생을 살면서 이웃과 나라에 크게 이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세상 어느곳 보다 더욱 올바른 자식교육을 시키는 곳이 바로 북부조국이 아니겠는가? 남부조국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맹목적으로 주는 사랑, 자라나서 이웃과 세상과는 상관없이 자기 자식만 잘 되라는 그 일차원적인 사랑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훨씬 높은 차원의 모성애를 간직한 북부조국이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던 교과서를 통하여 저 추악한 반민주 독재정권과 저 교과서를 지은 양심을 팔아먹은 지식인들은 최악의 거짓말을 한 범죄자들이 아닌가? 이건 보통의 범죄가 아니다. 남부조국 모든 인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평생 그 거짓을 진실로 알고 살아가도록 한 극악무도한 범죄다. 그들 범죄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지금도 온 사방에서 여전히 그 후예들이 맹활약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를 평생 세뇌시킨 저 거짓을 말한 자들에게 이젠 분노의 돌팔매를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인터넷으로 세상에 알려진 나의 방문기를 읽고 좋은 글을 쓰고 있다며 격려하는 숱한 사람들이 있어 내가 큰 힘을 얻는다. 이미 통일운동을 해오신 귀한 분들로부터 다른 방문기에서 보기 어려운 북의 진실을 잘 알려주는 글이라며 격려해주는 분이 있나하면 또한 북에 대하여 마음을 닫고 살아왔거나 아예 관심이 없던 분들 가운데 나의 방문기가 그 마음을 변화시켰노라고 고마워하는 분들도 있었다. 한편으로 내가 북의 진실을 바로 알리면서 남쪽을 비판하는 방식의 방문기 기술방법에 대하여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두번 세번 내가 반복한다며 그렇게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다며 불평을 표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하여 오늘 이 글에서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대들을 깊이 동정하지만 이제 커다란 충격을 주려 한다. 내 방문기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대들의 머릿속은 내가 아직까지 저 조각작품을 보며 북이 평화를 사랑하고 가족끼리 서로 깊이 사랑하고 모성애가 넘치는 곳으로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보다 열 배 백 배 더 세뇌되어 있다. 그 세뇌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고등학교를 거쳐 사회인이 되고 평생을 사는 동안 매스컴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진다. 그렇게 세뇌된 상태에서는 그대들이 아무리 높은 교육을 받고 많은 책을 읽었다해도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이야기는 커다란 충격이 되어 그것을 고의로 회피하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나의 방문기를 한두 회 읽고는 계속해서 읽을 생각마저 버리고 세뇌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조언을 드린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바로 참 민중, 참 인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참 사람이 되는 기회를 버리지 말기 바란다. 바로 스스로의 세뇌된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그 길이다. 자신은 현명하고 똑똑해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의 판단은 늘 옳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결국은 세뇌된 상태에서 나온 왜곡된 판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바로 참 사람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어려서부터 교과서를 통하여 반공교육을 받아온 그대들에게 나의 이 질타가 이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참 사람이 되는 길의 시작이 될 것이다.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고, 받아들이기 싫어도 받아들여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 그대의 골수 깊숙히 박혀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니다. 내가 쓰는 이 방문기에서 몇 번 중복해서 비슷한 말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평생 동안 우리가 세뇌당해온 것이 너무나 깊숙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 두번만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는 절대로 그 세뇌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대들이 알고 믿는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철저하게 자신이 쌓아온 성을 무너뜨려야 한다. 무너뜨린 후에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우리들은 북에 관하여 모든 것을 거꾸로 배웠다. 거기엔 진실로 아름다운 인격과 아름다운 속마음을 가진 동포들이 사는 곳이다.
먼저 그대가 지금까지 알고 있다고 여기는 북에 대한 상식을 의심하라. 그대가 거꾸로 배웠다는 것을 인정하라. 그리하여 꼭 닫아두었던 마음을 활짝 열고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는 훈련을 하라. 나의 방문기를 포함한 북부조국에 관한 진실된 정보를 이제 그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마음을 열고 읽기를 바란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내가 이야기하면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여라. 그대는 평생을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한 반공교육으로 세뇌되어왔다. 자신이 지식인이고 모든 것을 다 알고 바른 판단을 한다고 자만하는 마음을 버려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면 그대는 바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삶은 그대들에게 참 삶의 가치와 목표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정말 살아볼 만한 삶이 될 것이다.
아래 링크에서 방문기 35회와 그 이전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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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말씀대로 거의 평생을 거짓에 속아 믿어온 사람들이 어찌 하루아침에
그것이 거짓이었음을 순순히 인정하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경우는 상당한 정체성의 혼돈마저 생길 수가 있다는게 상식입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우리의 몸과 정신은 그에 대한 무의식적 보호책을
발휘하게 되어있다 합니다. 충격을 줄여가며 점진적으로 수긍 또는 부정할 수
있도록 일단 거부를 해놓고 생태적으로 조금씩 수정과 조정을 해간다고 합니다.
필자님의 여행기는 그래서 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하겠습니다. 즉 그러한 정신적
인식적 조정작업을 해갈 수 있는 큰 자극과 계기를 지속 마련해 준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통일운동의 큰 밑거름이 되리라 믿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갯가용 님, 귀한 댓글 고맙습니다.
자신이 인식하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것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돈으로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것이 본능이라는 말씀은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할 수 있는 말로 여겨집니다.
처음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고는 한번 크게 충격을 받은 후에
이후엔 그 충격이 줄어들게 되고 점차적으로 일상으로 되어져 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90%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세뇌당해왔다고 말하면
참 기분이 나쁘겠지요. 남과북의 대립의 구도에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내에서 그 제도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런 세뇌는 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사회는 Melting Pot 이라는 것도 일종의 세뇌이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는 것도 그렇지요.
10%의 인구가 부의 9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걸 제대로 이슈화한다면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민중이 그런 것은 생각할 새도 없이 온갖 잡동사니들로 매스컴은 장식합니다.
뉴스도 사건 사고가 판을 치고, 오락 프로그램으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난립하고 있지요.
스포츠나 영화 티비에 푹 빠지도록 민중을 오도하면서 자본주의 제도는
망하지 않고 이어져가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