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를 총리로 만든 국회, 그리고 국민들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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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열 일곱 시간 차이가 나는 시애틀. 프레지던트 데이 날 아침 느긋하게 잠 푹 자고 일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니 아주 재밌는 뉴스가 떠 있습니다. 이완구 총리 인준이라. 그냥 재미있더군요. 정말로 대통령의 완구가 됐네,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그만큼 탈탈 털려 버린 인물을 총리로 만들 생각을 하는 저들의 상식 수준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인들, 특히 여당 정치인들의 기준이란 건 일반인들과는 다른 모양입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에서 '국민을 대표하여 선출된 국회의원들' 이 국민과 이정도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 놀라울 뿐 아니라 나라의 위기를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국민과 국민들의 대표가 이리도 '상식'에 대해, 그리고 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시각이 괴리되어 있다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신임 총리는 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거꾸로 돌리는 것에 박차를 가할 겁니다. 그의 온갖 비리 의혹들을 세간에서 감추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이고, 그 방식은 철저히 '대통령이 원하는' 방식이 될 테니까요. 폭로된 그의 언론관에서 보듯, 그에게 주어진 권력은 언론을 더욱 옥죄는 데 쓰일 것이고, 그의 삼청교육대 관련 의혹이 보여주듯, 그는 극단적인 폭압의 방식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뭐, 굳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분의 인상을 볼 때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죽어간 차지철씨의 인상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던데(저만 주관적으로 그렇게 보는 걸지도 모르지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이미 이 정권 들어서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 각하라는 말을 직접 하신 분 아니었습니까? 여러 면에서 걱정되는 건 많네요.
이번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지만, 아마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을 총리 청문회 하듯 털어 보면 분명히 적지 않은 수가 자격미달일 겁니다. 설마 이완구 정도까지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한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다 전원 그렇게 검수하고 국회의원 직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아직도 살아있는 지역감정의 망령과 냉전 사고의 논리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제대로 된 선량들이 제대로 국민들을 위해 정치를 펼 수 없게 만들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내년 총선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정치가 만일 힘의 싸움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상식의 싸움이라면, 이완구 같은 인물이 애초에 총리는 고사하고 국회의원이 될 수도 없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국민 개개인이 깨어서 적어도 자기 지역구의 국회의원은 어떤 사람인가를 조금 더 명확히 알아보려는 깨어있는 노력들이 필요한 겁니다. 그저 '우리가 남이가' 이런 말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것도 이번 기회에 새기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번 이완구 총리 인준에 대해 야당에 대해 제대로 대처를 못했느니 시험대니 하는 언론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군요.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런 역전을 바라는 것이 쉬운 일인가 하고, 그리고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그 언론들이라고.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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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생기심님의 댓글
생기심 작성일
어찌보면 현재의 한국사회 제반 부문별 수준에는 이완구 같은
인물이 오히려 걸맞을 확율이 높을 수도 있다 봅니다.
세상 일이란게 대개 사안관련 3박자가 맞아 평형을 이루어야
과업이 순탄히 도모될 수가 있는 바..
사회 대부분이 썩어있는 상황에서 총리 하나만 제대로 되었다고
일이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오히려 혼란이 증폭될 가능성도
생기게 됩니다.
차라리 같은 수준의 썩은 사람이 맡아서.. 가는데 까지 가도록
하는게 장기적 개선을 앞당기게 될 요행수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