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호황이 부른 한국 경제의 위기, 해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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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산 것은 지원이가 태어난 이듬해인 2002년입니다. 지금 집에서 산 세월이 13년이네요. 그때 산 집이, 한참 버블경제와 대출 호황이 있었던 때는 구매 당시의 가격보다 10만달러 이상을 훌쩍 넘긴 가격으로 뛰었고, 아내는 이때 우리가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가면 어떨까 하고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는 집을 알아봤는데, 좀 더 큰 집들은 제 생각엔 모기지 부담이 엄청나게 많을 듯 해서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었습니다. "조금더 큰 집을 가지게 되지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많은 부분을 집 때문에 희생하긴 싫다." 그리고 우리는 집을 사려는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분명히 집값이 엄청나게 폭락할 때가 올 거라고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고 바로 그 이듬해부터 집값은 예상했던대로 폭락했습니다. 과거 우리가 가려고 봤던 집은 교외에 있었던 50만달러 정도의 가격을 불렀던 2층집이었는데, 이 집의 가격이 30만달러 아래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실거래가격은 24만달러 선까지도 떨어졌습니다. 반토막 아래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사태가 시작할 때였습니다.
집값이 한참 오를 때 주택을 구입했던 사람들의 대책은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그 모기지를 다 부담하고 살거나, 아니면 집을 던져 버리거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으로 밀렸고, 많은 사람들이 집을 내던지는 쪽을 택했습니다. 집값은 더이상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는 동안, 저는 별 일 없이 '살던 대로' 살았습니다. 만일 그때 집에 대해 욕심을 가졌다면 제 삶은 많이 퍽퍽해졌을겁니다.
그때 미국에서는 은행들이, 그리고 사기업들이 부동산 불패론을 퍼뜨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돈을 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공이 빨랐던만큼 몰락도 빨랐습니다. 그게 겨우 10년 안짝의 시간동안에 벌어진 일입니다.
한국에서 지금 벌이고 있는 주택정책에 관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빚을 얻어 집을 사도록 만들려고 하는 정책을 보며 전율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을 어떤 지옥으로 밀어 넣겠다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미국은 말 그대로 호황입니다. 우편배달 일을 하는 입장에서, 조금 웃기는 이야기지만 경기의 호황 여부는 소포의 배달량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마존과의 계약도 그렇지만, 지난 몇달동안 여덟시간만 딱 일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늘 오버타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포의 양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경기 호황의 증거입니다. 물론 안정적인 직업이 늘어났다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만, 적어도 '집을 내던진 사람들'은 이자 부담이 줄었고, 덕분에 구매력이 상승한 것입니다. 물론 고용도 많이 늘었습니다. 숫자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 질과는 관계 없이.
미국은 이 호황이 계속되면서 천천히 통화량 조절에 나섰습니다. 이제 곧 연방기준금리가 오를 거라는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그리고 재융자 회사들이 열심히 지금 재융자 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고 입질하는 메일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 심지어는 저는 그런 내용의 광고 우편물도 열심히 배달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이제는 곧 금리가 오를 거라는 건 이곳에서도 분명히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가장 이자율이 낮을 때 좋은 조건으로 재융자 받아 이걸 30년 고정으로 묶어 놓은지라 금리 인상 따위엔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 미국의 호황이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갖고 올 거란 사실입니다. 이미 미국의 이자율은 오를 것임이 분명해졌고, 이렇게 되면 지금 한국에 투자되어 있는 달러들, 그중에서도 특히 단기 투자성 자금부터 금방 미국으로 옮겨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달러 보유량이 우선 줄어들겠지요. 이걸 막으려면 한국 정부는 지금의 초이노믹스인지 뭔지 하는 것의 기조를 바꿔야 할 겁니다. 외국 자금의 갑작스런 유출을 막으려면 미국 수준보다 조금이라도 금리를 높여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투자 자금들을 한국에 묶어 놓으려면 지금처럼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금리가 높아지면 돈을 빌리기 힘든 사람들이 부동산을 구매하진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문제는 이미 빚 내서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아마 주택-부동산 구입일 것이고, 심지어는 빚 내어 '생활을 하는' 수준에 이르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어떻게 될까요? 이자율이 오르면 그 빚에 대한 이자는 당연히 오르게 되겠지요. 한국의 상황은 여기처럼 '고정 이자율'로 묶어 놓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만, 적어도 변동 이자율에 따라 매달 이자를 부어 나가는 사람들은 고통을 겪게 되겠지요. 그렇다고 박근혜정부의 정책, 즉 초이노믹스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이자를 올리지 않는다면 당장은 단기자금으로부터 해서 달러가 썰물처럼 미국으로 빠지는 꼴을 보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제 2의 환란이 올 수도 있는,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버린 듯 합니다.
여기에 일본의 엔저 정책의 피해도 이제 여기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국산차를 사겠다며 현대차를 보다가 일본차를 사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해서,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더니 동급의 일본차가 가격이 더 저렴하더라는 겁니다. 한국 내에서 튼튼한 제조업이라면 자동차나 전화기 정도일텐데, 세계 경제 시장의 변화에 따라 판매환경조차 변하고 있고, 수출시장은 타격을 받는 것이 자명해 보입니다. 진퇴양난이지요.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를 살리려면 지금으로서는 어떤 길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자명한 듯 합니다. 수출도 조건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면 결국은 내수를 진작하는 길 밖엔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내수 진작의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시 물어야 하겠지요. 그것은 결국 1차 분배라 할 수 있는 임금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보입니다. 기업들이 아무리 세계 시장을 다변화한다 하더라도 국내 내수 시장의 바탕 없는 경제가 튼튼할 수 있겠습니까? 실질적인 소비 진작을 위해서는 고용, 그것도 양질의 고용이 진작돼야 할 것입니다.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이라는 이름으로 이익을 쌓아 놓는 동안, 하부구조에서는 모조리 빨리는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은 앞으로 더 큰 경제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의 호황이 한국의 고통이 되는 그런 이상한 세월입니다. 그리고 이럴 때 힘을 발휘해야 할 정치는... 실종 상태인 것 같습니다만.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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